[인벤게임컨퍼런스(IGC) 발표자 소개] 이진희 올포펀 기획 총괄은 엠게임의 열혈강호2와 NC소프트의 블레이드&소울에서 시나리오, 퀘스트, 설정 등의 콘텐츠 관련 업무를 담당했다. 이후 덱스인트게임즈의 모바일 AOS 게임 아이언사이드 제작에 참여했으며, 현재는 올포펀에서 AR 프로젝트를 개발 중이다.

몇 년 전부터 VR/AR이 게임 업계 최고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하지만, 차세대 게임 콘텐츠를 이끌어나갈 것으로 예상했던 VR/AR 시장은 성과적인 측면에서 기대에 못 미치고 있다. 저조한 성적의 원인은 명확한 분석 없이 찍어내듯 VR/AR 게임을 만들기 때문이다. 이 강연은 기존의 게임과는 완전히 다른 VR/AR이 '왜 다른지' 분석적인 관점에서 살펴보고 VR/AR 게임의 성공 필수 조건인 스토리텔링에 대해서 살펴보려고 한다.

※ 내용 전달 및 편집의 용이성을 위해 이진희 올포펀 기획 총괄의 시점에서 서술합니다.


■ VR/AR 게임의 스토리텔링


⊙ AR/VR 시장의 현실


기대를 모았던 신규 기술 가상현실(VR)과 증강현실(AR)은 기대와는 다르게 시장에서 저조한 성적을 기록하고 있다. AR/VR 산업의 부진에 대해서 AR/VR이 3D TV 산업처럼 금방 사라질 것으로 예상하는 이들도 있지만, 확실한 것은 3D TV의 경우처럼 VR/AR 산업은 기획 단계부터 잘못된 산업은 결코 아니라는 점이다. AR/VR은 단지 킬러 콘텐츠를 찾지 못해서 부진을 겪고 있을 뿐.

'킬러 콘텐츠'는 산업이 성공하는 데 있어서 필수 요소 중 하나다. 플레이스테이션과 파이널판타지, 닌텐도와 슈퍼 마리오, 엑스박스와 헤일로. 각각의 플랫폼을 성공시킨 킬러 콘텐츠의 면면을 보면, 킬러 콘텐츠가 산업 성공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지 알 수 있다. 아쉽지만, VR/AR 시장은 200만 원의 기회비용을 지불하고 즐길만한 킬러 콘텐츠가 없다.

그렇다면 가장 중요한 킬러 콘텐츠는 어떻게 만들어야 할까? 기술적인 부분보다는 게임의 진정한 재미를 이끌 수 있도록 기획과 스토리텔링이 중심이 돼야 한다.


⊙ 게임 스토리텔링의 맥락


-경험적인 측면에서의 게임

과거의 게임과 현재의 게임을 보면 그래픽을 비롯한 기술의 발전은 있었지만, 게임을 통해서 무언가를 '경험'한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게임의 기술 자체가 발전한 사례는 수없이 많다. TCG를 예로 들면, 하스스톤은 워크래프트 세계관을 가진 매직 더 개더링의 온라인 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

결정적으로 블리자드는 하스스톤을 만들 때, 온라인 게임의 요소를 살리는 데 중점을 두고 만들었다. 속도가 중요한 온라인 게임의 특성을 살리기 위해서 매직 더 개더링에서 속도감을 방해할 수 있는 요소를 대폭 삭제한 것이다. 결국, 카드 게임을 하면서 경험할 수 있는 진정한 재미는 그대로 느낄 수 있었기 때문에 하스스톤은 카드 게임의 강자로 떠오르게 됐다.

기술보다 중요한 '경험'을 플레이어에게 심어주기 위해서 '스토리텔링의 맥락'을 잡을 필요가 있다. 스트리트 파이터, 오버워치, 스타크래프트, 리그 오브 레전드 등 인기 게임의 공통 키워드는 무엇일까? 그것은 사람과 사람이 대결하는 '대전 게임'이라는 점이다. 플레이어가 서로 협력하거나 대전하면 재미의 정도가 달라진다. 보드게임이 재밌는 이유는 친구와 함께하기 때문이다. 이런 것이 게임의 '경험'을 반영하는 것이다.

게임을 통해 이러한 것을 '경험' 할 때, 입력 장치가 다르면 '경험'의 깊이가 달라지는 경우도 있다. 닌텐도는 입력 장치의 변화를 통해서 게임의 재미를 극대화했다. 닌텐도 wii는 VR과 유사한 가상 하드웨어로 재미를 극대화하려는 노력을 했고, 어느 정도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 캐릭터 & 플레이어 포지셔닝

캐릭터와 플레이어의 포지셔닝으로 스토리텔링의 맥락을 설명할 수 있다. 과거의 게임들이 캐릭터와 플레이어를 분리했다면, 최근에는 캐릭터와 플레이어가 어느 정도 걸쳐 있는 MMO RPG 장르의 게임이 인기를 끌고 있다. '아바타'를 통해서 플레이어와 캐릭터가 연결된 상태에서 퀘스트를 수행하며 스토리텔링의 재미를 느끼는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다. 아바타를 중심으로 게임의 세계가 돌아가기 때문에 플레이어는 그 세계관에서 주인공이 된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하지만, 대부분의 MMO RPG의 퀘스트는 스토리의 주체가 플레이어가 아닌 퀘스트 의뢰자가 되는 경우가 많다. 플레이어는 단순히 의뢰인의 부탁을 들어주는 용병인 셈이다. 플레이어가 주체가 돼서 몰입도를 높일 수 있도록 하는 퀘스트를 만들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반면, VR/AR 게임은 캐릭터와 플레이어가 동일시 되기 때문에, 퀘스트의 개념이 앞서 언급한 것과 차원이 다르다. 기존의 게임들이 간접 경험이라면 VR/AR은 직접 경험이라고 할 수 있다. 내가 직접 아이언맨이 돼서 적과 싸우고 퀘스트를 수행한다. 경험의 질 자체가 다르다고 할 수 있다.

많은 이들이 게임의 역사는 아직 짧다고 말한다. 하지만, 지금이 기존의 게임과 새롭게 등장할 게임을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는 시기다. VR/AR 게임은 '경험' 측면에서 기존의 게임과 완벽하게 차별화를 이루기 때문이다.


⊙ R에 대한 이해


AR(증강 현실)은 이미지를 겹쳐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다. 드래곤볼의 '스카우터'가 AR 기계라고 볼 수 있다. 아이언맨이나 많은 SF 영화에서 등장하는 그것이 AR이다. 여기서 말하는 R은 현실 세계를 뜻한다. 게임도 현실 세계를 기반으로 만든다.

반면, VR(가상 현실)의 R은 가상 세계를 기반으로 두고 있다. AR과 VR 모두 기본적인 맥락은 캐릭터가 플레이어가 되고, 플레이어가 캐릭터가 되는 것이다. 다른 점은 AR은 현실 세계를 기반으로 하고, VR은 가상 세계를 기반으로 하는 점이다.


⊙ VR과 FPS


FPS 장르가 VR 게임의 킬러 콘텐츠가 될 수 있을까? FPS 장르는 기본적으로 1인칭이라서 VR의 특성과 잘 맞는다. 하지만, FPS 게임은 슈팅뿐만 아니라 이동을 하거나 위치를 잡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측면을 지금의 VR 기술로 해결하기 어렵다.

비슷한 예로 모바일 FPS를 살펴보자. 모바일 FPS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이동이 없는 FPS와 이동이 있는 FPS. 이동이 없는 FPS는 사실상 대전이 불가능하다. 슈팅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으며, 성장이 중요한 RPG 타입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이동이 있는 FPS는 PC FPS와 마찬가지로 대전할 수 있지만, 디바이스 UI의 한계로 원하는 수준의 조작이 어려운 단점이 있다. 유저들이 원하는 수준의 FPS가 되려면 모바일 FPS와 VR FPS 모두 극복해야 할 문제가 많다.


⊙ 한계가 분명한 VR... 언제쯤 활성화될까?


지금의 기술로 봤을 때, VR은 한계가 명확하다. 그렇다면 VR 시장은 언제쯤 활성화될 수 있을까? VR 시장이 열리는 시기는 플레이어가 '이동'을 의식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이동할 수 있게 되는 순간이 될 것이다. 플레이어가 이동을 의식하지 않게 되면 게임의 스펙트럼은 엄청나게 넓어진다. FPS의 장르의 특성도 그대로 살릴 수 있어서 가상세계의 몰입이 극대화될 것이다.

현재 많은 업체들이 하체를 이용한 컨트롤러를 개발하고 있다. 아직 표준 모델이 등장하지 않은 상태지만, 통합 표준 컨트롤러가 만들어 지면 시장의 규모는 더 커질 것이다.

최근에는 생각으로 제어하는 VR 게임이 처음으로 개발되기도 했다. 영화나 상상 속에서나 가능할 것으로 생각했던 그 컨트롤러가 태동을 보이고 있다. 물론, 아직 발전 단계에 있지만, 상상이 현실이 될 수 있는 미래가 가까이 다가왔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다.


⊙ VR 게임의 지향점


VR 게임은 현실보다 더 극적인 가상 세계를 플레이어가 경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플레이어와 캐릭터를 동일시 하기 때문에, 게임을 하면서도 게임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의 몰입이 필요하다. 플레이어가 세계의 일부라고 느껴질 정도로 몰입하기 위해서는 높은 수준의 그래픽은 필수다. 그래픽의 완성도가 높을수록 게임의 몰입도는 점차 높아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되도록 자본력을 갖춘 기업이 나서서 VR 게임을 개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한, 패드 같은 입력 장치 없이 모션 컨트롤러를 사용해야 플레이어가 더욱 쉽게 가상 세계에 빠져들 수 있다. 초기의 VR 게임은 패드를 이용했기 때문에 몰입에 방해가 있었다. 최근에는 모션 컨트롤이 등장하면서 몰입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물론, 현재 시중에 유통되고 있는 VR 게임은 VR 기기 자체의 한계를 아직까지 완벽하게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컨트롤러의 무게, 멀미 등 다양한 문제가 아직 완벽하게 해결되지 않았다.

추가로 VR 게임의 몰입을 높이기 위해서 '이동' 컨트롤이 해결돼야 한다. 아직 하체를 사용해서 이동하는 모션 컨트롤러가 등장하지 않고 있다. VR 게임의 한계를 극복하고 영역을 넓히기 위해서는 이동 문제를 해결할 '하체 모션 컨트롤러'가 필요하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하체 모션 컨트롤러가 지금 당장 등장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현재 개발되고 있는 게임은 이동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만드는 것이 좋다. 이동을 최소화하면 RPG 게임에서 성장의 기본 요소라고 볼 수 있는 '노가다' 요소를 줄여야 한다. VR 게임 플레이어들은 기본적으로 약 200만 원의 비용을 지불하고 게임을 플레이하는 유저다. 여기에 추가로 '노가다' 요소를 넣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부적절한 성장 시스템이 포함되면 여러 가지 부작용이 생길 수도 있다. 성장의 요소를 넣더라도 적절한 밸런스를 맞춰야 한다. 또한, 지금의 VR 게임은 장시간 플레이하기 어려운 특성이 있어서 15~30분 내로 완결될 수 있는 서사를 가진 게임이 좋다. 최근에는 '추리' 장르가 흥행 콘텐츠로 떠오르고 있다. '추리'가 VR/AR과 잘 맞는 이유는 기획 측면에서 별도의 리소스 없이 플레이어들의 플레이 타임을 벌 수 있는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 포켓몬 GO의 성공이 의미하는 것은?


대표적인 AR 게임 포켓몬 GO는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흥행을 기록했다. 포켓몬 GO의 성공을 놓고 IP(Intellectual Property)의 성공인지 AR의 성공인지에 대해서 의견이 나뉘고 있다. 포켓몬 GO를 즐기는 유저들의 연령대를 살펴보면 만화영화 '포켓몬스터'를 잘 알지 못하는 4~50대가 상당히 많은 수를 차지하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포켓몬 GO의 성공을 단순히 IP로 인한 성공이라고 볼 수 없다.

포켓몬 GO는 나름의 서사가 있었다. 플레이어가 포켓몬 트레이너가 돼서 직접 증강 현실 공간을 이동하며 포켓몬을 잡고 대결을 펼치는 색다른 경험을 즐길 수 있었다. 포켓몬 GO의 성공에는 '이동'과 '양질의 위치 정보'가 기반이 되어 있었다. 전 세계에 퍼져 있는 정확하고 안전한 위치 정보를 토대로 했기 때문에 포켓몬 GO가 성공할 수 있었다.

우리는 포켓몬 GO를 통해서 '스토리텔링'과 '이동' 두 가지 요소를 만족한 AR 게임이 엄청난 파괴력을 가졌다는 사실을 목격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