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그에게 '하루'란 그저 또 한 번의 순환에 불과하다. 매일 아침이면 그가 일하는 병원에 들러 진료를 하고, 주에 한 번은 응급실에서 간혹 오곤 하는 긴급한 환자들을 본다. 하수상한 시절이다 보니 응급 환자들은 꽤 되는 편이었다. 매 번 오는 이유는 서버 문제나 자잘한 버그였지만.

금요일은 조금 다르다. 금요일은 제 4병동의 회진이 있는 날이다. 삶보다 죽음이 더 가까운 이들. 다가올 서비스 종료의 순간을 기다리며, 하루하루 가쁜 숨을 이어가는 이들이다. 불쌍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어디까지나 그 죽음의 책임은 그들에게 있으니까. 그리고 오늘. 그는 또 한 명의 환자를 만났다.


"선생님. 오늘 보실 차트 준비됐습니다."

"벌써 4주차구만. 그래 오늘 환자는 어떤 환자지?"

"환자가 아니에요."

"환자가 아니라니? 그럼 내가 왜 있는건가?"

"선생님이 필요하긴 해요. 대상이 환자가 아니라 이미 사망한 상태라 그렇죠."

"이미 사망했어? 그럼 이번엔 부검 의뢰인가?"

"네. 사실 언제 가도 이상할 게 없는 환자긴 했어요. 그래도 정확한 이유는 알아야 차트를 쓰니까요."

"법의학 전공은 아니지만 어쩔수 없지. 그래 사망자 신원은?"

"서든어택2입니다. 이미 사망한지 2년 정도 지나서 기억 부패가 좀 있어요."

"괜찮네. 나도 들어본 이름이야. 전국민이 다 아는 이름 아닌가?"


조금 남은 꽁초를 손가락으로 튕겨냈다. 미처 타지 않은 담뱃잎들이 부산히 날렸다. 마치 앞으로 보게 될 사체의 기억처럼. 그러다 결국은 빗물에 젖은 바닥에 닿아 똑같이 젖어들었다. 그리곤 아무런 움직임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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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주일 만입니다. 원래는 10주차 정도 되면 쓰려던 게임을 오늘 들고 왔습니다. 망겜의법칙 1화가 나간 이후로 언젠가 써야지 써야지 생각은 하고 있었는데, 도저히 더 참을 수가 없었어요. 다른 게임을 쓰려 하면서도 샤워할때나 출근할때나 심지어 자기 전에도 자꾸 서든어택2가 나타나서 노크를 해댔거든요. '난 언제 쓸거야?' 하면서요. 그래서 참지 못하고 이번 주에 써버리기로 했습니다.

▲ 오늘의 주인공

오늘의 게임. 전 국민이 망한 걸 다 아는 바로 그 게임. '서든어택2'입니다. 흔히 게이머들 사이에선 '갓든킹택'이라고 불리죠. 이번 기사를 쓰기까지 꽤 오랜 고민이 필요했습니다. 저 또한 그전에는 진지하게 이 게임이 왜 망했을까? 하고 객관적인 시선을 가져본 적이 없습니다. 요즘 게임의 수명은 흑사병 창궐 시즌의 중부 유럽과 비슷한지라 1년만 지나도 다행이고 5년을 넘기면 잔치라도 해줘야 하거든요. 게임 망하는 게 하루 이틀이 아닌지라 2년 전엔 '아 망했구나' 하고 넘어갔죠.

그래서 기억을 더듬었습니다. 집 안에 당시 넥슨에서 진행한 서든어택2 시연회에 갔다가 받은 기념품이 아직 있더군요. 보는 순간 그 당시의 기억이 새록새록 돋아났죠. 국내에서 가장 화려하게 성공한 게임을 꼽자면 많은 게이머의 의견이 갈릴 테지만, 반대로 국내에서 가장 화려하게 망한 게임을 꼽자면 압도적 1위를 받을 것이 분명한 게임. 오늘의 분석 주제는 '서든어택2'의 몰락입니다.

환자 차트


사진(규격 사이즈에 맞춰 붙여주시기 바랍니다)

이름: 서든어택2 (Sudden Attack2)

출생: 2016년 7월 6일 (만 85일)

가족관계: 부(넥슨), 모(넥슨GT), 집에서 안나가는 형(서든어택)

확진 시기: 2016년 7월 29일

병명: 다발성 장기부전

원인: 유저층 니즈 파악 실패

완치 가능성: 뭐라고요?

사망일: 2016년 9월 29일


차트부터 보면서 시작해봅시다. 매번 저보다 앞서 게임을 뜯어보는 우리 의사 선생님이 정성껏 작성해온 차트입니다. 일단 보시는 대로 수명이 극도로 짧습니다. 초등학생 때 문방구 앞에서 그날 용돈 다 털어 사온 제 병아리 삐약이도 이보단 오래 살았습니다. 하다못해 한철 곤충인 잠자리도 4개월은 살아요. 여러분 중 아무도 모르는 웹게임도 이 정도 서비스하고 종료한다 하면 쯧쯧 하면서 혀를 찹니다. 그런데 이 게임은 대대적으로 홍보한 국산 블록버스터 게임이었어요.

가족관계를 살펴보시면 몇 년째 집에서 안 나가고 있는 큰형이 하나 있습니다. 무려 13년을 해먹고 있어요. 이 정도면 이제 하던 것 좀 물려줄 동생이 생길 때가 됐는데 막상 나온 동생이 병아리보다 빨리 죽는 바람에 아직도 노구를 이끌고 계속 일하고 있습니다. 병명을 보시면 의사선생님이 고심한 흔적이 보입니다. 이유가 한 가지가 아닌지라 뭐라고 써야 할지 헷갈렸나 봐요. 다발성 장기부전이면 몸속 내장이 죄다 고장 났다는 뜻이니 뭐 대충 비슷하긴 하네요.

▲ 아아아아아아아아~~~ 쉬고 싶다아아아아아아아!

잘 봐두셔야 합니다. 세상에서 어떤 게임을 가져다 대입해도 쉽게 나오기 힘든 차트입니다. 개발사가 폭탄 테러 협박까지 받았다는 '헬로 게임즈'의 '노맨즈스카이'도 이만큼이나 망했는데 2년이 지난 지금 대형 업데이트를 진행했어요. 앞으로도 이런 게임이 나올 일은 아마 없을 거고, 나온다 해도 몇 년은 지나야 할 겁니다. 만약 이런 사례가 또 나오면 제가 몇 년 후에 특집으로 한편 더 쓸게요.

정리하자면 대판 망했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망하지?'라고 할 정도로 심하게 망했어요. 망한 게임이 당할 수 있는 건 정말 다 당했습니다. 개발비 날려 먹은 건 기본이죠. 전작과 비교당해서 욕먹고, 광고 문구로 조롱당하고, 개발자도 욕먹고, 개발사도 욕먹고, 캐릭터 모델링도 추출 당하고, 그렇게 망하고 끝났으면 다행인데 망한 지 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사람들이 기억하면서 꾸준히 욕합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넥슨지티가 게임이 아니라 바이러스를 개발한 줄 알 겁니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게임이 나왔을까요? 개발사는 무슨 생각을 했던 걸까요? 아무 생각이 없었을 것 같습니까? 아니에요. 그들도 분명 생각이 있었습니다. 부끄러운 건, 이 게임이 개발 단계에 머물러 있을 때 저를 포함한 기자들 또한 개발사의 생각에 고개를 끄덕였다는 겁니다.


유저들이 이걸 원할 겁니다!
그리고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2년 전이었습니다. 몇 달 더 전이니 아마 2년 하고도 3~4개월 정도 전이었을 거에요. 당시 기자들을 대상으로 넥슨이 신작들을 모아서 시연하는 자리가 있었습니다. 시간이 지나서 잘 기억은 안 나지만, 당시 시연했던 게임 중에 '니드포스피드'와 '천애명월도'도 있었을 거에요. 미리 넥슨이 밀고 있는 차기작들을 미리 해볼 수 있는 자리였어요.

그리고 거기서 서든어택2를 처음으로 플레이했습니다. 제가 담당했던 게임은 아닌지라 한 판정도 했는데, 느낌은 그냥 1편에서 그래픽만 업그레이드한 느낌이었어요. 리메이크도 아닌 그냥 리마스터 정도의 게임 감각이었죠. 머릿속으로는 '이럴 거면 그냥 1편을 패치를 하는 게 낫지 않을까?'라고 생각했지만, 굳이 마음 밖으로 꺼내진 않았습니다. 저는 그저 게임 기자이고, 넥슨은 수없이 많은 게임을 개발하고 퍼블리싱해온 개발사니까요. 그들이 무슨 생각이 있을 줄만 알았죠.

이어진 Q&A 세션에서 비슷한 질문이 나왔습니다. 전작과 완전히 같은데, 왜 그렇게 만들었느냐는 질문에 개발사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이미 유저들이 익숙해져 있는 게임 감각을 바꾸는 건 옳지 않다. 이 느낌을 그대로 가져가면서 몇 가지 요소를 더할 것이다." 이 당시 분위기를 전부 다 글로 옮기기는 쉽지 않지만, 넥슨에서는 기존의 서든어택 게이머들이 서든어택2로 분산되고, 이주하게 될 것을 당연히 여기는 듯했어요. 그리고 그들의 설명에 거기 있던 기자들 또한 '그렇겠구나'하고 생각했습니다.

▲ 솔직히 너무 똑같았는데 노렸다는 말에 끄덕끄덕

결과적으로, 그 당시 행사장에 모여 있던 사람들 전원의 착각이었습니다. 결과가 그렇게 말합니다. 서든어택을 즐기던 게이머들은 잠깐 서든어택2를 건드렸지만, 이내 자신들의 홈그라운드로 돌아갔습니다. 서든어택을 하지 않던 게이머들 또한 호기심에 한두 번 게임을 해보고는 큰 재미를 느끼지 못하고 게임을 지워버렸어요. 완벽한 판단 실수였습니다. 게이머들은 단 1cm도 넥슨의 예상대로 움직이지 않았어요. 지금부터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겠습니다.

넥슨은 게이머들이 11년(당시 기준)이나 된 서든어택을 꾸준히 플레이하는 이유를 판단하는 과정에서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그들이 그 게임을 계속하는 이유를 '서든어택의 시스템과 게임성을 선호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던 거죠. 아니라고 하면 할 말은 없지만 제가 볼 땐 그렇게 판단했습니다. 왜냐고요? 당시 시연회에서 개발진이 그렇게 말했습니다. 유저들에게 친숙하고 선호 받는 전작의 시스템을 그대로 가져온다고요. 그게 승부의 포인트라고 말했습니다.

한 걸음만 물러서서 생각했으면 잘못된 생각이었음을 금방 알 수 있어요. 2년 전, 그러니까 2016년에 등장한 FPS를 세 가지만 말해 볼까요? '오버워치', '둠', '콜오브듀티: 인피니트 워페어' 이렇게 셋입니다. 게임 처음 하는 사람한테 저 세 게임하고 서든어택을 갖다 두면 뭘 할까요? 100명 중에 서든어택을 고를 사람이 한 명은 있을까요? 인정할 건 해야 합니다. 서든어택은 완전 구식이에요. 개발자들이 계속해서 콘텐츠를 추가하고, 연예인들이 자기 분신이 총 맞고 죽어 나가는걸 감수하면서 모델을 서준 덕에 지금까지 버텨온 거지, 아마 업데이트가 없었으면 한참 전에 자연사했을 게임입니다. 꽃보다 할배가 선글라스 쓰고 옷 잘 입는다고 꽃보다 남자가 되나요? 그래도 결국 할배는 할뱁니다.

▲ 이중에 하나만 해야 한다면 뭘 하실래요?

근데 왜 사람들이 서든어택을 할까요? 바로 그 사람들이 '게임을 처음 하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저도 너무 궁금해서 6년째 서든어택만 하는 사촌 동생과 10년 차를 찍은 친구한테 물어봤어요. 이미 둘 다 고일 만큼 고인물들입니다. 그 두 명의 대답은 이거였어요. "친구들이 다 하고 있으니까", "쌓아온 게 있는데 다른 거 하긴 버리기가 아까워서".

이게 정답이었습니다. 넥슨은 처음부터 이걸 노렸어야 했어요. 처음부터 1편의 데이터를 그대로 연동하던지, 아니면 그냥 1편의 대규모 패치로 만들었어야 합니다. 무슨 클랜하고 친구 목록만 연동해서 더 이상해졌어요. 이름만 적당히 붙이면 되잖아요. 서든어택 레볼루션, 서든어택 넥스트. 뭐 이런 거 잘 짓더니만요. 1편의 업데이트로 만들었으면 문제 될 게 하나도 없어요. 개발진 모두가 1편의 느낌을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했잖아요. 아마 그랬다면 지금쯤 서든어택이 조금 더 잘 나가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 봐야 할배가 젊은이가 되는 건 아니지만, 미백 캐어는 제대로 받은 거니까요.

그동안 서든어택을 계속해온 사람들은 그들과 함께해온 사람들과의 인연, 혹은 커뮤니티 요소 때문에. 그동안 쌓아온 계급과 K/D 때문에 게임을 계속해온 건데 넥슨은 이를 서든어택이 훌륭한 게임성을 가지고 있어서라고 생각해버린 겁니다. 넥슨이 나서서 아니라고 해도 나온 작품이 온몸으로 그렇게 말하고 있잖아요. 이게 1차 실수였어요. 애초에 서든어택2는 개발 방향부터가 잘못된 게임이었던 겁니다. 중요한 건 이게 '1차'라는 거에요. 이게 전부는 아니라는 거죠.


근데 왜 이게 2편이에요?
만들면서도 고개를 갸웃한 게 안 봐도 비디오


앞서 말했듯, 이 게임이 1편의 대규모 업데이트였으면 사정이 좀 달라졌을지도 모릅니다. 근데 굳이 넘버링을 붙이고 2편이라고 말하면서 상황이 더 커져 버렸어요. 문제의 원인은 개발진이 밝혔던 '전작의 게임 감각을 그대로 가져온다'라는 개발 기조입니다. 전작의 감각을 그대로 가져오면서 신작을 개발한다는 건 모순이에요. 전작을 그대로 가져올 거면 왜 개발을 합니까? 그냥 그대로 전작을 하면 되는데? 물론 이런 경우가 없는 건 아니에요. 흔히 '리마스터'라고 하는 작업이 전작의 느낌을 그대로 살리면서 현대로 가져오는 거니까요.

하지만 이런 리마스터는 원작을 구동할 수 있는 콘솔이나 OS가 단종되었거나, 다이렉트X 지원이 안된다는 등 기술적 문제가 있을 때나 시도해요. 그리고 누구도 여기에 2라는 넘버링을 붙이진 않아요. 이러다 보니 개발진은 전작과 똑같은 후속작을 만들어야 하는 개발자적 모순에 빠져 버렸어요. 아니 세상에 전작과 똑같이 만들려고 후속작을 개발하는 경우가 어디에 있어요. 이제 서든어택이 너무 낡아서 윈도에서 구동이 안 된대요? 막 하드가 왜 이런 거 깔았느냐고 구토를 하고 엉엉 운답니까?

▲ 이중 하나는 2입니다. 뭐게요?

이 상황이 이상하다는 건 개발진도 아마 알고 있었을 거에요. 그래서 그런지 전작에서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것들을 막 집어넣으려고 '시도'한 흔적이 여기저기 보입니다. 문제는 말 그대로 보이기만 한다는 거에요. 서든어택2에 등장하는 새로운 요소들은 게임 플레이에 단 1도 영향을 끼치지 않아요. 스코프 줌 기능을 도입했는데, 명중률은 그냥 쏘는 것과 차이가 없어요. 왜 넣은 건데요? 리볼버도 추가됐는데 그냥 전에도 있던 똥파워 권총이에요. 장전 모션을 보니 제 눈에만 리볼버로 보이는 게 확실한가 봐요. 왜 넣었어요?

이 중에서도 정점이 '싱글 플레이'입니다. 이 싱글플레이 좀 까볼게요. 게임을 시작하면 녹색 브리핑 텍스트가 떴다가 사라지는 전형적인 콜오브듀티형 연출로 게임을 시작합니다. 그리고 작전 지역 어디론가 투입된 주인공이 신나게 사람을 쏘다가 로켓도 쏘고 막 다 터뜨립니다. 그렇게 이말년식 엔딩을 하나 만들고 탈출하던 차에 '스팅레이'라는 이름의 딱 봐도 악당 같은 놈이 와서 주인공에게 수줍게 고백하고는 주인공을 쏴버립니다.

▲ 깨알같이 띄어쓰기도 틀림

솔직히 말씀드려서 줄거리는 잘 기억이 안 나요. 차라리 기억 못하는 게 더 잘된 것 같지만요. 근데 제가 생각하는 베스트 엔딩은 그 스팅레이의 총에 맞고 주인공이 그대로 삼도천을 건너버리는 거에요. 그래야 이 싱글플레이가 더 이어지지 않을 테니까요. 게이머들도 더는 이걸 할 필요가 없고, 개발진도 다시는 컷씬 만든다고 고생 안 해도 되고, 스팅레이는 맘에 드는 상대를 자기 맘 속에 영원히 품었으니 이득이고 어차피 남캐라서 인기도 없을 주인공은 인생 빨리 하직했으니 모두가 해피한 엔딩 아닙니까?

제 생각엔 아마 줄거리도 없었을 거에요. 서든어택2가 진짜 싱글 플레이를 비중 있게 생각했고, 라이터를 기용해서 시나리오를 짰다면 그 세계를 기반으로 게임을 구성해야 해요. 그리고 게임을 알리는 과정에서 이게 드러나야 하죠. 아마 못 본 분들이 많겠지만 놀랍게도 서든어택 1편의 트레일러에서는 이런 점들이 다 드러나요. 하지만 2편의 트레일러는 주인공과 스팅레이의 애정전선은 오간 데 없고 전장의 아이돌이 현대무용을 하면서 건카타를 하고 있습니다. 개발사 입장에서도 이 싱글 플레이를 밀 생각이 없었다는 뜻이에요.

▲ 스팅레이가 순정마초든 악당이건 간에 얘가 진주인공입니다.

결국, 개발진이 만든 '전작과 다른 모든 요소'가 기술 데모 수준에 그칩니다. 마치 '우리도 이런 거 할 수 있다!'하고 자랑하는 기분이에요. 마치 멀티플레이에만 집중하라고 하는 걸 '우리도 이런 것 만들 수 있습니다'라고 만들어서 들고 갔더니 '어 괜찮네?'라고 판단한 윗사람이 그럼 어디 한 번 넣어보라 해서 진짜 그냥 한 번 넣어본 것 같아요. 하다못해 새롭게 추가된 요소들이 유기적으로 뭔가 시스템을 만들어내는 것도 아니잖아요.

우리는 이런걸 사족(蛇足)이라고 해요. 영어로는 Useless one, 한국어로는 '쓸데없는 것'이라고 하죠. 사람들이 스팅레이가 왜 주인공을 좋아했는지 늘 궁금해하는데, 전 하나 더 궁금한게 있어서 총 두 가지에요. 하나는 스팅레이가 주인공의 어디를 마음에 들어했을까이고, 두번째는 이걸 왜 만들었는가죠.

정리해보면, 서든어택2는 게임 자체에 개발자적 모순이 너무 눈에 띄게 드러나요. 전작과 똑같이, 그래픽 수준만 올려야 하는 개발 기조와 후속작이면 그래도 전작과는 달라야 한다는 양심이 충돌하고 있죠. 그러다 보니 새로운 요소들이 추가는 됐지만, 게임에는 아무 영향도 주지 못하고 산발적으로 흩어져 있어요. 결국 이 새로운 요소들은 유기적으로 작용할 수도 없고, 아무런 시너지도 내지 못하는 쓰잘데기 없는 것들이 되어버린 겁니다.


하나만 더 말할게요.
이건 진짜로 화가 나요.


우리 하나만 더 짚고 넘어가죠. 지금까지 위의 내용을 적으면서 전 최대한 개발사 처지에서 생각하려 했어요. 뭔가 이들도 어쩔 수 없었을 거로 생각하기도 했죠. 이미 2년을 욕을 먹었는데 또 욕먹는 건 좀 너무하니까요. 그런데 이 부분은 그냥 넘어갈 수가 없습니다.

도대체 캐릭터 디자인을 왜 이렇게 하신 겁니까? 여기서 말하는 디자인은 아트 모델링이 아니고 기획안 말씀드리는 겁니다. 아티스트야 기획자가 전달한 대로 만들었을 테고, 컨펌 권한자도 결국 기획자였겠죠. 도대체 어떻게 생각해야 이런 캐릭터들을 만들 생각을 할 수 있는 거예요? 솔직히 전 서든어택2에서 다른 부분들은 그래도 참작의 여지가 조금씩은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만큼 욕도 많이 먹었으니까요. 하지만 캐릭터 기획 부분은 아무리 생각해도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 솔직히 그냥 기절시키고 갈 줄 알았는데

2016년입니다. 30 년이 넘게 게임업계가 이어져 오면서 게임도 굉장히 성숙한 미디어가 되었어요. 그런데도 전쟁과 살상을 이렇게 생각 없이 묘사해요? 지금 와서 그런 캐주얼한 FPS 게임들은 죄다 사람 대신 종이 인간이 나오거나 물총을 쏘거나 하는 쪽으로 바뀌었습니다. FPS면서 캐주얼한 느낌을 담기 위해 아예 게임의 테마와 소재를 바꿔버린 거에요. 이게 어떤 게임이든 간에 실총과 비슷한 무기를 사용하고, 사람과 사람 간의 총격전을 소재로서 담으려 했다면 더욱 진지한 접근이 필요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뭐예요?

저는 '전장의 아이돌'이라길래 6.25 전선에 위문공연 온 마릴린 먼로 같은 캐릭터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몇 살인지도 모를 핫팬츠 입은 여자가 통행 제한도 안 걸린 강남역에서 쌍권총을 쏘고 있네요? 현실적 고증은 늘어놓고자 하면 기사가 세 배로 길어질 테니 더 쓰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캐릭터 컨셉과 디자인은 좀 솔직히 말씀드려야겠네요. 이런 캐릭터와 디자인이 게임업계를 망치고, 게이머라는 계층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말아먹어요.

▲ 키우던 개라도 죽은 것인가

게임과 폭력성이라는 주제로 지금도 수많은 사람이 갑론을박하고 있습니다. 수많은 논문이 발표되고 있지만, 아직도 게임이 사람의 폭력성을 고양한다는 주장은 그치지 않고 있어요. 그런 이들이 늘 먹이로 물고 뜯는 것들이 슈팅 게임입니다. 게임을 보다 성숙한 미디어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분들이 몇인데 이런 걸 내놓으면 그분들의 노력은 뭐가 됩니까? 아무리 게임으로 교훈을 얻을 수 있고 간접 체험을 통해 긍정적인 효과를 볼 수 있다고 말하면 뭐합니까. 이쪽 게임은 강남역에서 놀면서 총을 쏘고 있는데.

'스펙옵스: 더 라인'이나 '콜오브듀티: 월드 앳 워'같은 게임들은 아예 전쟁의 참혹함을 현실적으로 묘사하고, 반사적 교훈을 남김으로써 오히려 이미지 반전을 했어요. 물론 서든어택2가 그 정도로 잔혹한 메시지를 담음으로써 사회에 말하라 하는 건 아니에요. 그래도 전쟁과 살상을 미화하고, 어떤 캐릭터를 부각하기 위한 요소로 사용해서는 안 되죠.

▲ 비상시 사용하는 문은 왜 안열리고...

미야와 김지윤이 어떻게 생겼든 간에 그들에게 어떤 대의를 위한 목적이 있고, 이들의 싸움이 더 큰 선을 위한 필연적인 행위였다는 묘사만 있어도. 사실 이들은 더 많은 생명을 구하려 한다는 배경 설정만 있었어도 이 정돈 아니었을 것 같아요. 그런데 뭐? 전장의 아이돌을 한 번 더 보려고 내전을 벌여요? 총하고 수류탄을 가진 사람들이요? 단체로 다윈 상이라도 노리는 거에요?

전작인 서든어택에 엄청나게 많은 연예인 캐릭터들이 등장하고, 그들이 서로 머리에 총알을 박으면서 논다고 이런 것까지 용인되리라고 생각하면 안 돼요. 그것들이 용납되는 것은 서든어택이라는 게임 자체가 워낙 구식 그래픽이라 봐도 별 느낌이 없고 서비스를 더 이어가기 위한 개발사의 노력이라고 인정하는 분위기가 깔렸기 때문이니까요.

전장에서 미소녀가 설친다는 건 조금만 생각해 봐도 너무 구식이잖아요. 아니 할 거면 좀 설득력이라도 있게 하던가요. 강남역에서 총격전 하러 가면서 음악은 왜 들어요? 옆에서 누가 오면 그냥 죽게요? 수중 침투 특수부대원은 왜 다리를 까고 있는 건데요? 제가 혹시나 몰라서 각국 수중 침투 부대원 이미지 다 찾아봤는데 단 한 장도 다리 까고 있는 사진이 없어요. 수중 침투에 능한 특수부대원이요? 해파리 만나면 바로 둥둥 뜨겠네요.

▲ 암만 생각해 봐도 저 바짓단 찢어다 팔고 아이섀도 샀을겁니다.

설득력도 없고, 현실성도 없고…. 그냥 없는 정도도 아니고 서든어택2를 이용 가능한 나잇대라면 누가 봐도 심하게 유치하다고 생각할법한 캐릭터 컨셉에 살인 미화와 인명 경시. 거기다 쓸데없는 섹스어필까지. 참 대단해요. 스카이림 모드 제작자들이야 물개박수를 치면서 좋아했겠지만, 저로서는 근 몇 년 들어 본 캐릭터 설정 중에 최악이었어요. 외모로 치면 전 편에서 보여드린 매스 이펙트의 피비보다 미야가 훨씬 예뻐 보이지만, 전 피비가 더 나았습니다.

이게 서든어택2가 필요 이상으로 욕을 먹은 이유입니다. 여기서 사후대책도 문제가 되었는데, 이런 논란이 불거지니까 아예 이 캐릭터들을 삭제해버렸어요. 처음에 동료 기자가 그 말 하는 걸 듣고 거짓말하지 말라 했습니다. 이미 욕은 먹었잖아요? 그게 없어진다고 욕을 안 먹는 게 아니라 이미 먹을 대로 먹은 상황이잖아요. 아무리 캐릭터가 논란이 되었다 해도 모델링은 괜찮았어요. 아니 이 게임에서 제대로 된 게 그 캐릭터 모델링밖에 없었어요. 메인 캐릭터라고 영상도 만들고 광고 모델로도 써먹었는데 게임에서 삭제한다고요? 살다 살다 이런 사후처리는 처음 봤어요.

▲ 총을 내려놓은 후 한결 편해 보이는 미야


이쯤 되니 안 망하는 게 이상하네요.
온갖 악성 요소가 하나로 뭉치면 이렇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정리해봅시다. 서든어택2가 망하는 과정은 총 세 가지 단계를 겪었어요. 먼저 게임을 만들기 시작할 때부터 목표를 잘못 잡았어요. 게이머들이 이 게임을 '왜 할 것이며, 어떻게 하게 만들 것인가'를 상정하는 과정에서 큰 실수를 했습니다. 유저들이 서든어택 1을 계속 플레이하는 이유를 정확히 분석하지 못한 겁니다.

그러다 보니 개발 방향이 '신작'과는 모순되는 방향으로 흘러갔고, 점점 중구난방의 작품이 되어갑니다. 마치 학예회 발표 내용 같은 쓸모없는 추가 콘텐츠들이 달라붙고, 캐릭터 기획과 설정은 시대와 전혀 맞지 않는 방향으로 잡혔고, 11년 전 게임하고 똑같은데 그래픽만 좀 더 좋고 캐릭터 모델링만 잘 뽑은 게임이 되어 버렸죠. 욕먹어도 싼 캐릭터 설정도 이때 만들어졌습니다.

▲ 이 와장창은 왜 만들어 진 것인가.

여기에 말도 안 되는 사후처리가 결정타를 날렸습니다. 게임 출시 전부터 밀어주던 간판 캐릭터들은 선정성을 이유로 삭제되었고, 처음에 예정되어 있지 않던 전작 데이터 승계를 갑작스럽게 도입했습니다. 이 점이 또 큰 문제가 되었어요. 전작의 골수 플레이어 중 서든어택2로 진지하게 넘어온 게이머들은 목적이 하나였어요. 아예 모든 것이 초기화된 상황에서 높은 랭크를 만들어내는 거죠. 그렇게 넘어와서 열심히 랭크 높이려고 투자를 했는데 전작의 데이터가 그대로 연동돼버리네요? 넘어와서 높이 올라가려고 노력하던 사람들은 뭐가 됩니까? 그렇게 서든어택2의 마지막 사람들마저 등을 돌렸습니다.

▲ 스칼렛은 뭘 잘못했다고 두들겨 맞았는가.

이쯤 되면 안 망하는 게 더 신기합니다. 개발 단계부터 틀려먹었고, 개발 과정도 이상했는데 출시 후 사후 처리도 못지않게 이상했어요. 너무 많은 실수를 저질러서 대체 어디부터 바로잡아야 할지 답도 보이지 않습니다. 기획자가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 아예 개발 전 기획 단계로 돌려야 해요. 그리고 거기에 쓰여 있는 '신작 프로젝트'를 보며 "큰 물에서 놀 때야!"하고 좋아하는 자기 자신을 처리해야 합니다. 아니면 '대규모 업데이트'로 바꿔놓던가요.

논리적으로 생각해보고, 직접 게이머들 의견도 들어보고, 당시 기억도 되짚고, 분노도 터뜨리다 보니 결국 오늘 기사도 이만큼이나 길어졌습니다. 사실 저로서는 조금 부담되는 기사긴 했어요. 누가 봐도 '이것' 때문에 망한 게임은 쓰기가 굉장히 쉽습니다. 그 점을 강조해서 그로 인한 결과들을 하나씩 되짚으면 되니까요. 그런데 서든어택2는 워낙 맛이 간 부분이 많다 보니 기사를 다 써놓고도 제가 못 쓴 부분들이 꽤 될 것 같네요.

▲ 아아... 이것이 '총'이라는 것인가?

전 서든어택2 기획자분의 얼굴을 모릅니다. 성함도 모르고요. 아마 뵈었을 수도 있는데 지금은 까먹었어요. 그리고 게임 개발에 힘쓴 모든 분에게 어떤 개인적 감정도 없습니다. 이 기사를 쓰기 위해 저는 기자가 아닌 게이머로서 게임을 보려고 노력했고, 그렇게 나온 결과들이 위에 정리한 내용입니다. 그러니 나중에 보시더라도 너무 미워하지 말아주셨으면 좋겠어요. 제가 먼저 웃으면서 인사드리겠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긴 글 읽으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그럼 전 이만 여기서 줄이고, 다음 주에 또 다른 망한 게임을 들고 찾아오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