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장주 박사

[인벤게임컨퍼런스(IGC) 발표자 소개] 이장주 박사는 현재 이락 디지털문화연구소 소장으로 사회문화심리 분야를 연구하고 있다. '디지털시대, 기술을 넘어선 사람의 행복'을 테마로 게임과 e스포츠를 비롯해 디지털 문화 전반에 걸쳐 다양한 주제로 심리학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올해로 4회를 맞이한 IGC 2018의 이튿날, 이락 디지털문화연구소의 이장주 박사는 심리학적 관점에서 바라본 영웅과 몬스터라는 주제로 강단에 섰다.

이번 강연을 통해서 그는 게이머들이 늘상 상대하는 게임 속 '몬스터'의 존재를 재조명하며, 유저들이 게임 플레이를 통해 얻고자 하는 그 무엇을 무의식적 상징, 발달심리학적 의미, 사회문화적 해석 등의 관점으로 풀어 나갔다. 과연, PC방에서 앉아서 잠이 들 때까지 몬스터를 사냥하는 우리 게이머들은 왜 아직까지도 몬스터을 잡는 것에 갈증을 느끼는 것일까? 이장주 박사는 아주 먼 옛날부터 인류와 몬스터는 함께 공존해 왔다고 전하며 강연을 시작했다.


■ 강연주제: 심리학적 관점에서 본 영웅과 몬스터

▲ 우리는 왜 몬스터를 끊임없이 잡기를 원하는가?

⊙ '몬스터를 잡는 것'에 대한 갈증은 어디에서 올까?

귀여운 몬스터부터 기괴하게 생긴 악마까지, 게임 속에서 유저들은 수없이 많은 몬스터들을 만나고 물리친다. 셀 수도 없을 만큼 몬스터를 잡고 나서도 다른 몬스터를 잡기를 희망한다. 이장주 박사는 강연을 시작하며, 이토록 다양한 몬스터들이 게임에 등장함에도 사라지지 않은 '몬스터를 잡는 것'에 대한 갈증의 근거를 하나씩 소개해 나갔다.

그에 따르면, 이러한 몬스터들을 물리치면서 게이머들이 가장 먼저 느끼는 것은 '생존'이다.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몬스터는 게이머에게 '생존해야 한다'는 생명체가 가진 근본적인 동기를 제공한다. 그러한 몬스터를 쓰러뜨리고, 생존해 나갈 수 있다는 것은 곧 자신의 유능함을 증명하는 것이 된다. 이장주 박사는 "자신의 유능함을 느끼고자 하는 사람일수록 더욱 강한 몬스터를 찾을 가능성이 높다"며, "유저들이 할 게임이 없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어쩌면 지금 존재하는 게임이 몬스터를 좀 더 강하고, 매력적으로 디자인하지 못한 한계에 대한 유저들의 목소리는 아닐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두 번째는 '사랑'이다. 게임을 비롯한 다양한 문화 콘텐츠에서는 이 사랑이라는 과제가 단골로 등장한다. 매력적인 사랑의 대상 옆에는 언제는 범접하기 힘든 몬스터들이 존재한다. 이러한 몬스터들을 제치고 사랑을 쟁취하고자 노력할 때, 사람들이 사회적으로 한 단계 더 성숙해진다는 것이 이장주 박사의 설명이다.

세번째는 욕망으로, 몬스터들이 강하면 강할수록 쓰러뜨리면 우리가 얻게 되는 보상이 좋아진다. 결국, 경험치와 보상부터 시작해 새로운 월드, 던전을 경험할 기회 모두가 몬스터에게 있는 셈이다. 이런 시선에서 본다면 우리가 '몬스터'라고 이름을 붙이긴 하지만, 어쩌면 아직 자신에게 찾아오지 않은 미래 또한 몬스터적 속성을 내재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 우리가 원하는 것들은 모두 '몬스터'가 가지고 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맞서야 하고, 어떤 식으로든 해결해야 할 과제를 우리는 '몬스터'라고 퉁쳐서 부르는 것은 아닐까?" 이장주 박사는 이처럼 몬스터를 잡는 행위를 통해 다가올 어려움에 대비해 단련하면서, 자신은 앞으로도 잘해나갈 수 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 게임이기에 많은 청년이 게임을 즐기는 것은 아닌지, 또 몬스터를 아무리 잡아도 더 잡고 싶은 이유는 그 앞에 미래가 있기 때문은 아닌지 고민해 볼 가치가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인류의 문명화가 진행되면서 인류는 문명이라는 이름 아래 신화 속에 등장하던 괴물들을 모두 없애고, 그 자리를 온전히 인간으로 채워 넣었다. 그러자, 이제는 사람이 사람을 잡기 시작했다. 곧 사람이 몬스터가 되어버린 것이다. 이장주 박사는 이처럼 몬스터는 순수하게 게임 속에 나오는 캐릭터나 과제가 아니라 인류사적으로, 또는 심리적으로 중요한 구성요소로 작용한다고 전하며 강연을 이어나갔다.

▲ 몬스터는 오래전부터 인류에게 친숙한 존재였다

⊙ 오랜 시간 인류와 함께 해 온 '몬스터'

그에 따르면, '몬스터'는 게임이 등장하기 훨씬 이전부터 인류에게 친숙한 존재였다. 그 사례가 바로 원시 사회부터 전해져 온 '토템'이다. 아프리카의 부족 중 하나인 마사이족 일부에게 몬스터를 사냥하는 것은 성인식의 한 과정이었다. 창 한 자루만 가지고 사자를 사냥할 수 있어야 성인의 자격과 결혼을 할 수 있는 자격을 주었다.

이 이야기를 하며, 이장주 박사는 몬스터와 영웅, 둘 중에 무엇이 먼저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음을 설명했다. 위 마사이족 사례에서 볼 수 있듯, 몬스터(사자)는 세상에 적응하기 위한 하나의 시험으로서 작용했다. 사자의 존재는 필수적이지만, 성인식 시험은 성공할 수도 있고 실패할 수도 있다. 즉 몬스터와 영웅 중에는 몬스터가 먼저라는 이야기다.

결국 약한 사람이 더욱 강해지기 위해서는 무언가 극복해낼 수 있는 보충물이 필요하다. 역사적으로도 인류는 이러한 보충물로 몬스터를 사용해왔다. 하지만, 극복해야 할 몬스터의 힘이 상상할 수 없이 강하다면? 이때 인류는 어떻게 했을까?

이토록 상상할 수 없이 강한 힘을 지닌 몬스터들을 우리의 조상은 '수호신'으로 만들었다. 경복궁 앞에 있는 해태도 몬스터고, 용 또한 이러한 종류의 몬스터다. 이러한 성격의 수호신들은 디지털화에 따라 게임에서도 일부 등장하기도 했다.

▲ 단합의 상징으로도 사용되었다

또한 이러한 몬스터는 단합의 상징으로써 활용되기도 했다. 지금도 사용되는 독일의 독수리 휘장은 근원을 따지면 고대 로마 시대 이전으로 돌아간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곰의 자손이라는 인식은 곰이 맹수임에도 어딘지 친근하게 느껴지게 하는 데 일조한다. 이장주 박사는 이처럼 '몬스터'라는 요소는 위협이나, 성장을 위한 보충물의 의미 외에도 심리적 매개물로서 아주 오래전부터 작용하고 있었다고 전했다.

어쨌든 '몬스터'라는 존재가 극복해야 하고, 물리쳐야 할 대상이라면, 미스터리한 존재로 가만히 둘 것이 아니라 좀 더 친근해질 필요가 있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인류가 몬스터와 친해질 기회를 '축제'를 만들어냈다는 것이 이장주 박사의 설명이다.

그 사례로는 스페인의 팜플로나에서 열리는 산 페르민 축제를 들 수 있다. 이 지역 사람들은 황소라는 몬스터와 함께 거리를 달리며 몬스터와 친숙해지고, 나아가 이를 극복하게 된다. 또한, 생물적인 몬스터 외에도 관념적 몬스터인 '귀신'의 사례도 존재한다. 10월 말에 열리는 핼러윈 데이는 삶의 한편을 차지하고 있지만 두려움의 대상인, '죽음'을 친숙하게 여기려는 인식이 녹아 있다. 이장주 박사는 "이처럼 몬스터들은 멀리 있는 존재가 아니라 우리의 일부이며, 때로는 힘의 근원이 되기도 한다. 몬스터는 우리에게 미래가 존재한다는 삶의 역동과 에너지를 제공하는 존재"라고 덧붙였다.

▲ 몬스터와 친숙해지고자 하는 계기에서 탄생한 축제들

⊙ 방어 기제부터 타자의 역할까지, 몬스터가 제공하는 심리학적 기능들

다음으로 이장주 박사는 몬스터들이 단지 겁을 주거나, 위협하는 존재를 넘어 생각지도 않는 심리학적 기능을 제공한다며 강연을 이어나갔다.

그중 하나는 방어기제로, 인간은 위협적인 무언가나 자신과 급이 다른 이들을 몬스터로 칭하며 그에게서 오는 불안감을 완화하고는 한다. 그 사례가 바로 학창시절 무서운 선생님을 흔히 '미친개'라고 부르던 것이다. 무서운 선생님을 '미친개'라고, 몬스터로 명명하는 순간 학생들에게 웃음의 대상이 된다. 또한, '괴물 신인'이라는 단어처럼 자신보다 뛰어난 누군가를 괴물로 지칭하기도 한다. 이장주 박사에 따르면 이런 방식으로 우리는 처리하기 힘든 인물, 사물들을 몬스터화하여 같이 살아갈 수 있는 접근 방식을 만들어 낸다. 강자들과 함께 지낼 수 있는 중요한 적응 기제로 작용하는 것이다.

▲ 기자의 학창시절에는 '말대(가리)'가 유명했다

두번째 기능은 몬스터가 '나'라는 존재에 대해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는 '타자'의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내가 누구냐'는 의문은 나 혼자서는 풀 수 없는 질문이다. 자신을 인식하기 위해서는 남이 필요하고, 근대화 과정에서 이 타자는 주로 동물이 담당했다. 이장주 박사는 동물원이 코끼리나 기린, 얼룩말 등을 보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동물과 다른 사람, 즉 '나'를 인식하기 위한 현장으로 탄생하게 되었다고 덧붙였다.

인간은 옆에 부자가 있으면 상대적인 재산의 유무로 자신을 규정한다. 옆에 운동선수가 있다면 상대적인 신체의 특성으로 자신을 규정한다. 이처럼 자신을 규정하는 데 있어 타자의 역할은 매우 크며, 몬스터를 다루는 데 있어서 이러한 기능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이장주 박사의 설명이다.

이처럼 몬스터는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에 대한 사회적 욕망의 방향을 반대로 가르쳐주는 기능을 한다. 그리고 때로는, 몬스터는 우리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거울의 역할을 넘어 '도덕'이라는 중요한 삶의 가치를 소환하는 기능을 할 때도 있다.

▲ 나와 다른 '타자'를 인식하기 위해 탄생한 동물원

이어 이장주 박사는 미국의 심리학자 킬리 햄린(Kiley Hamlin)이 6에서 10개월 된 영아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실험 영상의 일부를 소개했다. 동그라미, 네모, 세모 인형이 나오는 실험에서 동그라미 인형은 언덕을 올라가기 위해 애를 쓴다. 그리고 네모 인형은 동그라미 인형이 언덕을 올라갈 수 있도록 뒤에서 도와주는 반면, 세모 인형은 동그라미 인형이 올라오지 못하도록 방해한다. 이러한 인형극을 몇 번인가 영아들에게 보여준 뒤 세모 인형과 네모 인형을 선택하라고 했을 때, 영아들은 거의 100%의 확률로 네모 인형을 선택했다.

위 실험 결과는 10개월 미만의 영아들도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에 대한 도덕적 개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이장주 박사는 인간에게 "룰을 방해하는 것에 대해 응징하고자 하는 기본적인 동기가 있음"을 시사하며, 네모 인형이 세모 인형을 응징하는 것은 폭력이 아닌 정의구현에 해당한다고 전했다.

그는 "칼이 나오고 피가 나오더라도, 이처럼 맥락에 따라 폭력이 될 수 있고 정의를 구현하는 것이 될 수 있다. 그런데도 피가 빨간색이면 폭력적이고, 초록색이면 평화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10개월 아이도 알고 있는 근원적인 해석의 의미 체계를 무시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 영아들에게도 도덕적 개념이 있음을 증명한 실험

세번째로 몬스터들은 우리에게 동기를 제공한다. 우리가 가장 시험공부를 열심히 하거나, 기사 작성을 열심히 하는 것은 언제일까? 바로 몬스터(시험 직전 또는 마감)가 코앞에 다가왔을 때다. 몬스터가 나타나지 않는 한 인간은 에너지를 잘 쓰려고 하지 않으며, 이 때 "꼭 해야 한다"는 동기를 강렬하게 부여해주는 요소들이 몬스터의 형태로 등장한다. 단지 몬스터는 효과적으로 나타낸 캐릭터의 의미가 아니라, 우리가 살면서 닥치는 다양한 상황들이 될 수도 있다.

마주치는 다양한 상황 속에서 무엇을 선택해야만 하는가? 우리는 태어나 살아가면서 선과 악을 끊임없이 구분하는 연습을 한다. 세상은 선과 악의 경계가 더욱 복잡하기에 게임 속에서는 그나마 적은 위험 부담으로 연습이 가능하다. 이장주 박사는 "이처럼 현실과 유사한 몬스터를 구현한다면 그것은 갓 게임이라 불리는 것이 된다"며, "그 경계가 편향되거나, 유저가 성취하고자 하는 욕망과 거리가 있는, 원치도 않는데 강요에 의해 물리치게 하는 몬스터들은 환영받지 못한다"고 덧붙였다.

▲ 무엇이든 닥치면 다 하게 되어 있다

⊙ 나이먹은 영웅은 몬스터가 된다? '레거시 시스템'의 굴레

다음으로 이장주 박사는 나이를 먹고 현실의 삶에 부딪힌, '나이 든 영웅들'의 이야기에 대한 주제로 강연을 이어나갔다.

용사가 마왕을 물리치고,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몬스터가 사라졌다. 그 이후, 몬스터가 사라진 곳에서 용사는 무슨 역할을 해야 할까? 한동안은 평화롭게 노후를 보냈을지도 모르는 이야기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이다. 이장주 박사는 몬스터가 사라진 세상의 나이든 영웅에 대해 '레거시 시스템'이라는 부작용이 생길 수 있음을 지적했다.

레거시 시스템(Legacy System)은 쉽게 말하면 과거에 너무 큰 성공을 거둔 기술이 앞으로의 혁신을 방해하는 사례를 의미한다. 이장주 박사는 코닥과 노키아 등 과거에 큰 성공을 이뤘지만, 그 때문에 혁신을 이루지 못한 기업을 그 사례로 들었다.


이장주 박사는 이러한 '레거시 시스템'의 사례를 역사 속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고 첨언했다. 그 사례는 바로 조선의 개국공신이자 역사상 가장 뛰어난 혁명가 중 하나인 정도전으로, 조선 왕조의 시스템을 체계적으로 구축한 그는 당대의 영웅으로 손꼽히게 됐다.

조선이라는 왕조의 시스템 설계자로서 정도전은 사람들의 추앙을 받았고, 당시의 많은 청년들은 모두 그를 닮기를 바랐다. 하지만 이 자체가 가진 함정이 있었으니, 정도전은 역성혁명을 통해 성공한 인물이었던 것이다. 조선의 미래를 위한 시스템을 설계한 그였지만, 결국 그 또한 자신과 마찬가지로 혁명을 일으키려는 세력 때문에 흔들릴 수밖에 없게 되었다.

물론 이 이야기는 몬스터(이방원)의 등장으로, 형제의 난을 통한 비극적인 죽음들로 결말을 맞이한다. 이장주 박사는 여기서 이방원이 존재했기에 비로소 다음 대에 세종대왕이 등장할 수 있었음을 시사하며, "영웅이 집권해야 세상이 평화로워진다는 것은 어린 아이들의 생각"이라고 전했다. 몬스터가 사라진 세상에서, 나이를 먹은 영웅은 또 다른 몬스터가 될 수 있다. 그렇다면 그 몬스터는 어떻게 물리쳐야 하나, 생각처럼 합리적이고 깔끔한 방식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이어 이장주 박사는 이러한 영웅들이 역사 속에도 많았으며, 국내 게임업계에 또한 존재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현재 국내 굴지의 게임 업계의 창립자들은 약 20년 전 세상에 없던 무언가를 만들어낸 영웅들이었다. 이들은 현재 수십조에 달하는 자산을 보유하고, 청년들을 고용하고, 젊은이들에게 저렴한 놀이환경을 제공하는 데 큰 기여를 했다. 하지만, 이것이 '레거시 시스템'으로 들어가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볼 문제"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유저 또한 레거시 시스템에 빠지고 있지 않은지 스스로를 경계해야 할 필요가 있다며, "우리는 게임을 할 때 아직도 옛날처럼 저렴하게, 소과금으로 해야 한다는 사고를 계속 가지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래픽은 좋고, 월드는 넓은, 다양한 콘텐츠를 즐기기를 원한다"고 전했다.

또한, "누구의 잘못을 따지는 것은 현재 우리가 처한 문제를 해결하기엔 맞지 않다. 중요한 것은 우리 스스로가 몬스터가 되고 있지 않은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라며, "스스로 몬스터가 되었다고 생각이 든다면, 최소한 겸손해질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 다음 나아가야 할 옳은 방향은 무엇인지 고민하는 몬스터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도 스스로 늘 자신이 레거시 시스템에 빠지고, 혹시라도 우리나라 게임이 발전하는 데 한 발자국이라고 걸림돌이 되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 사라질 때를 알아야 '고급 몬스터'다

이처럼 '몬스터'는 세상에서 사라질 수 없는 존재이며, 닥쳐오는 몬스터를 어떻게 해결했는지는 곧 세상의 진보를 의미한다. 전투를 잘하거나, 권모술수에 능한 몬스터(또는 영웅)은 흔해졌으니, 이장주 박사는 이제는 좀 더 고급 몬스터들이 필요하게 됐다고 전했다.

몬스터와 영웅의 경계에 선 인물들이 사용하는 고급 기술로 이장주 박사는 먼저 '사라지기' 기술을 언급했다. 사라지기의 사례는 텔테일 워킹데드에 등장하는 주인공 '리'를 통해 알 수 있다. 클레멘타인을 살리기 위해 스스로 몬스터가 되고, 사라지기로 결심한 그의 결정에 유저들은 크게 감동했다. 내 안에 있는 몬스터의 일부를 인정하고, 수용하는 과정에서 울컥하는 감동을 느끼는 것이다.

이장주 박사는 또한 이것이 영화 '어벤저스:인피니티 워'에 등장한 악당 타노스가 영웅이 될 수 없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타노스는 어벤저스의 입장에서는 몬스터이지만, 나름대로 대의와 관련해 설득력을 가진 인물로 보이기도 한다. 그렇다면 그를 영웅으로 보기 힘든 이유는 무엇일까? 이장주 박사는 "타노스가 손가락을 튕겼을 때, 자신도 함께 사라졌으면 영웅이 될 수 있었을 것"이라며, "영웅과 몬스터는 가지고 있는 능력이나 지혜에서 차이가 나오는 것이 아니다. 영웅이라고 불러줄 그 사람들을 위해 무엇을 제공했느냐가 가장 큰 차이점"이라고 말했다.

▲ 손가락을 튕겼을 때, 자신도 함께 사라졌으면 영웅이 될 수 있었을 텐데

이어 그는 이러한 고급 기술들을 어떻게 적절하게 연출하고, 영웅으로 남으려 하는 몬스터들의 욕망을 직면하게 할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이 GOTY 수상 게임 혹은 갓게임이라고 부르는 게임들에 잘 나타나 있다고 설명했다. 이 시대의 갓 게임이 되기 위해서는 아이들의 동화 같은 엔딩으로는 부족하다. 영웅이 실연과 상처를 안고 사라질 때, 사람들에게는 기대라는 것이 생긴다. 그만큼 시장에서 큰 반향 또한 기대할 수 있다.

여기에 덧붙여 이장주 박사는 "이러한 사라지기를 오늘날 온라인게임에도 도입할 수 있지는 않을까? 죽을 때 죽지 않고 끝까지 살아있는 것을 우리는 '좀비'라고 한다. 세상 일이 그렇듯 우리는 영원히 살고자 좀비가 되기를 원하지만, 좀비가 된 순간 주변의 무엇인가를 어마 무시하게 잡아먹어야 한다. 바로 몬스터가 되는 것이다"고 이야기했다.


⊙ "적절한 몬스터 역할은 어쩌면 진짜 영웅이 가야 할 하나의 사명이 아닐까"

그렇다면 이러한 '늙은 영웅'들은 몬스터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떤 역할을 맡는 것이 중요할까? 이장주 박사는 나이든 영웅들은 히어로가 아닌 '샤먼'을 지향해야 한다고 전하며 강연을 이어나갔다.

히어로가 어딘가 혈기왕성한 느낌이라면, 주술을 사용하는 샤먼은 그와는 달라보이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히어로와 샤먼의 가장 큰 차이점은 히어로의 경우 완전한 선의 편에 서기를 원하지만, 샤먼은 선과 악을 조화롭게 수용할 줄 안다는 것이 이장주 박사의 설명이다.

자신이 생산자와 소비자의 입장일 때 각각 생각이 다르듯, 우리는 내면에 서로 반대 극의 사고를 가지고 있다. 보통 그 반대극의 일부를 억누를 경우 신경질 같은 현상으로 나타나는데, 나이가 들면 내면에 있는 부족함을 수용하고, 인정하며, 바깥에 드러내는 데 창피하지 않게 된다. 다시 말하면 성숙해지는 것이다. 결국 이것이 나이든 영웅이 샤먼의 길을 택해야 하는 이유다.

이장주 박사는 이런 사례 또한 구전동화를 통해 찾을 수 있다며, '혹부리 영감'을 그 예로 들었다. 자신의 결점인 혹을 수용함으로써 무난한 삶을 산 혹부리 영감과 다르게, 이웃 마을의 혹부리 영감은 혹을 떼려다 되려 두 개를 붙이고 말았다. 그는 혹부리 영감의 이러한 일화가 "나이가 들어서도 젊은 시기의 영웅만 생각하면, 어마 무시한 몬스터가 될 수 있다는 사례"라며, "거꾸로 젊은 시절의 영웅이었다고 하더라도, 몬스터의 역할을 해야만 할 때가 오게 된다. 이때 적절한 몬스터의 역할은 어쩌면 진짜 영웅이 가야 할 하나의 사명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끝으로 이장주 박사는 결국 게임계에 혁신이 있기 위해서는 몬스터의 혁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양산형 게임은 몬스터가 천편일률적이라는 확실한 증거가 된다. 20년 전이라면 괜찮을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환경이 달라졌고, 게이머의 욕망 또한 달라졌다. 그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남기며 강연을 마무리했다.

"변화한 사회의 게이머들의 욕망은 옛날 몬스터를 설계했을 때와 많이 달라졌다. 게이머들의 욕망의 결집체가 곧 몬스터다. 이를 해결하면 더욱 좋은 세상이 올 것 같지만 더 강한 몬스터가 등장하고, 그 속에서 우리는 원하든 그렇지 않든 타협하고 수용하는 복잡한 삶을 살고 있다"

"이러한 삶을 시뮬레이션하고, 게이머 자신이 유능하다고 느끼게 하며, 미래에 어떤 몬스터가 등장하든 능력과 기술을 가지고 있다는 자부심을 전달하는 것이 게임 서비스가 가야할 길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