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벤게임컨퍼런스(IGC) 발표자 소개] 강건우 기획자는 올엠에서 '루니아전기', 엔씨소프트에서 '블레이드&소울'을 개발했다. 현재는 펄어비스에서 '검은사막 모바일'을 맡고 있다. 그는 펄어비스가 어떻게 짧은 시간에 큰 성공을 거뒀는지 기획자 입장에서 소개한다.

성공한 게임 회사의 조건을 콕 집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펄어비스를 성공한 게임 회사라고 평가하는 데는 이견의 여지가 적다. 자체 개발한 게임 엔진으로 제작된 MMORPG '검은사막'을 세계에 선보였고, '검은사막 모바일' 역시 꾸준히 매출 상위권을 유지함과 동시에 글로벌 시장을 넓혀가고 있다. 최근에는 '이브 온라인'으로 유명한 아일랜드의 게임사 CCP를 인수하기까지 했다. 객관적인 회사의 지표 역시 코스닥에 상장되어 건실함을 증명한다.

펄어비스의 역사는 다른 대형 게임사보다 비교적 짧다. 그래서 사람들은 펄어비스가 빠른 성공을 이룰 수 있던 비결을 궁금해한다. 누군가는 엔진부터 개발해내는 펄어비스의 실력을 이유로 꼽는다.

강건우 파트장이 IGC 2018에서 강연한 '펄어비스에서 기획자가 일하는 방법'이 하나의 답이 될 수 있다. 그는 올엠과 엔씨소프트에서 경력을 쌓고, 블랙비어드를 창업한 뒤, 펄어비스에 합류해 '검은사막 모바일' 기획자로 일하고 있다. 강건우 파트장은 IGC에서 펄어비스의 기획자, 개발자, 아티스트가 어떻게 일하길래 빠른 성공을 이룰 수 있었는지를 자세히 소개했다.


■ 강연주제: '펄어비스'에서 기획자가 일하는 방법


⊙ "일 얘기는 상대방과 얼굴을 마주하고 해라"

강건우 파트장이 소개한 방법은 스스로도 '뻔한 얘기'인 '빠르고 효율적인 커뮤니케이션'이다. 이에 일반적인 회사와 펄어비스가 다른 점이 있다면, 펄어비스는 대면 커뮤니케이션을 중요시한다는 것이다. 그의 소개에 따르면 다른 회사들의 경우 사무실이 대체로 조용하다. 업무에 대한 이야기는 대부분 이메일, 메신저 등을 통해서만 나누며, 바로 옆 사람과도 일 얘기는 메신저를 통해 나눈다.

기존 메신저를 통한 대화는 기록이 남고 후에 검색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단, 빠르지는 않다. 이메일의 경우 상대방이 읽을 때까지 기다려야 하고, 읽었다 하더라도 바로 답장을 보낸다는 보장이 없다. 그때까지 발신인은 다른 업무를 하면서 시간을 보낼 뿐이다.

펄어비스는 대면 커뮤니케이션을 강조한다. 보고할 일이 있으면 바로 결정권자에게 찾아가 글이 아닌 말로써 이야기하고, 즉시 결론을 낸다. 이를 위해 펄어비스는 사무실의 적절한 자리 배치를 고민한다. 담당자들이 빨리 찾아갈 수 있는 동선을 위해서다. 일례로 액션과 이펙트 파트는 서로 가까이 있으며, 시스템과 UX/UI 파트가 가까운 자리에 있다. 그리고 이 파트 모두가 기획팀 안에 있다.

다음으로 강건우 파트장은 엘리베이터 피치를 설명했다. 엘리베이터 피치는 영업이나 투자, IR 전문가들이 많이 쓰는 보고법이다. 엘리베이터가 1층에서 5층까지 가는 짧은 수십 초 안에 상대방을 설득시킨다는 게 요지다. 이를 위해선 중요한 내용만 최대한 빠르고 간결하게 설명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그는 "펄어비스에 입사하고서 어디서든 이야기한다는 게 다소 신기했다"고 전했다. 꼭 회의실이 아니더라도 논의가 필요하면 화장실에서 마주칠 때라도 바로 이야기한다는 것이다. 그만큼 펄어비스는 '회의를 위한 회의'를 지양하고 짧고 빠른 논의를 추구한다.

모두가 전방위적으로 일한다는 것도 펄어비스의 빠른 성공의 이유였다. "저는 디자이너에게 시안 넘겼는데요?"와 같은 태도를 펄어비스는 지양한다. 내 일은 물론 그 전과 다음의 일도 관심을 두고 맡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강건우 파트장은 전했다. 그는 "전체 프로세스를 계속 생각하고 노파심을 가져야 완성도 높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소개했다.

그리고 강건우 파트장은 "마지막까지 더 나은 결과를 추구한다"고 말했다. 과정과 결과에 있어서 '이 정도면 충분한 거 같다'라거나 '다른 데서는 이렇게 했다'와 같은 자세는 지양한다. 더 나은 결과를 위해선 최대한 빨리 피드백을 받는 게 중요하다. 기획과 개발에 시간을 쏟기보다 최대한 빨리 프로토타입을 만들어보고서 재미를 시험한다. 기획에서 생각한 것과 실제는 다를 수 있기에 빨리 시험 버전을 준비한다. 만약 예상과 다르면 빠르게 수정하고, 맞았다면 그대로 게임에 적용한다.

과거에 유명 수능 강사가 "공부는 엉덩이로 하는 것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이 말을 강건우 파트장은 게임 개발에 있어서는 "발로 뛰는 게임 개발"로 바꿨다. 누구라도 재밌는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결정권자에게 달려가 얘기하고, 곧바로 결정해 게임에 적용하는 것이다.


⊙ 기획서 없이 게임을 개발하는 방법

▲ 토끼를 그린 기획서가 오리로 오해될 수도 있다

끝으로 강건우 파트장은 펄어비스의 비결로 이미 유명해진 '기획서 없는 게임 개발'을 소개했다. 보통의 게임 개발은 기획자가 과정을 문서로 정리해 담당자들에게 전한다. 이때 새로운 내용이 추가되면 업데이트 문서를 다시 전달한다. 일반적인 방법이지만 누군가 바빠서 업데이트 문서를 갱신받지 못하거나, 기획서 자체에 문제가 있으면 개발에 차질이 생긴다. 또 사람을 보질 않고, 기획서만 바라보는 현상이 생긴다. 마치 차안대를 찬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달리는 거다.

모두가 개발에 참여하면 기획서 없이도 게임을 만들 수 있다. 기획자가 사람들을 불러 모아 "이렇게 생각하는데 어때?"라고 물으면 솔직한 대답을 내놓는다. 그럼 그 자리에서 바로 피드백을 받아 개선할 수도 있다. 또한, 참여자에게 '내 기획'이라는 생각을 심어줄 수 있다. 이러면 남이 쓴 기획서를 그대로 만들 때보다 더 적극적인 자세를 기대할 수 있다.

물론 펄어비스가 아무런 문서도 남기지 않는 건 아니다. 아이디어는 휘발성이 높기에 간단히 메모로 정리한다. 많은 사람에게 전파해야 하는 사항은 메신저를 통해 나눈다. 일반적으로 떠오르는 딱딱한 기획서를 채우는 데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강건우 파트장은 "기획자는 기획서를 쓰는 사람이 아니라, 기획을 잘하는 사람"이라고 강조한다. 이를 위해선 문서 작성 외에도 코딩과 스크립트를 잘 볼 수 있어야한다. 기획자가 기술을 모르면 아이디어와 결과가 다르게 나올 수 있다. 도구 이해도가 높으면 기획의 퀄리티와 재미를 함께 잡을 수 있다.

정리하자면, 펄어비스는 △짧고 간결한 대면 커뮤니케이션을 추구한다. △개인이 자기 업무만 하는 걸 지양하고 조직의 일로 생각한다. △기획서에 들이는 시간을 빼고 모두가 함께 생각한 다음 빠르게 게임에 적용한다.

강건우 파트장은 "물론 이 방법이 최선은 아니겠지만, 나름 성공한 회사가 효과를 거둔 사례로 봐달라"며 "미래를 고민하는 회사가 한번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