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니 산타모니카 스튜디오, 코리 발록 디렉터

2018년 가장 인상 깊었던 게임을 꼽으라면? 아마 꽤 많은 수의 게이머들이 '갓 오브 워'를 선택할 것이다. 지난해 봄에 출시된 '갓 오브 워'는 기존 프랜차이즈의 방향성을 유지하지 않은 새로운 게임 플레이.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 주인공 '크레토스'의 변화 등 거의 모든 부분에서 호평을 받았다.

흠잡을 곳 없는 완성도는 전 세계 수많은 개발자가 관심을 두는 계기가 될 수 있었다. 당장 개발자들이 이번 GDC에서 뽑은 최고의 게임에도 선정되었으니까. 그리고 바로 이 게임, '갓 오브 워'의 제작을 지휘한 '코리 발록(Cory Barlog) 디렉터가 이번 GDC에서 강연을 진행했다.

GDC 2019 마지막 날 아침. 강연장을 꽉 채운 청중 앞에서 코리 발록은 '갓 오브 워'의 개발 과정을 회고했다. 자신이 다시 산타모니카 스튜디오로 돌아와,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했던 바로 그 시점부터 말이다.


2013년 산타모니카 스튜디오로 자리를 옮긴 코리 발록은 섀넌 스터드스틸(산타모니카 스튜디오 대표)에게 다음과 같은 방향성을 받게 된다.

“갓 오브 워로 정말 대단하고 거대한 일을 진행하고 싶다. 다만, 신화와 같은 부분은 바꾸지 않으면서도 현실적인 게임으로 만들어보자. 그리고 사람들을 놀라게 하자” 라고 말이다. 코리 발록 개인에게 있어서 이는 도전 과제이기도 했다. 그간 시리즈가 보여줬던 모든 것을 바꾸면서도 연결 고리는 남겨둬야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2013년 6월. 코리 발록은 4주 동안 플레이스테이션의 소프트웨어 책임자 스콧 로드(Scott Rhode)에게 게임의 초기 버전을 설명하는 과정을 진행했다.

코리 발록은 이 과정에서 많은 부담감과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회고했다. 그리고 여담이지만, 부담을 주는 높은 사람들의 이름에 전부 S가 들어갔다는 어느 순간 깨달았다고 농담을 던졌다. 섀넌 스터드스틸 (Shannon Studstill), 스콧 로드(Scott Rhode), 요시다 슈헤이(Shuhei Yoshida, SIE 월드 와이드 스튜디오 대표), 션 레이든(Shawn Layden, 당시 SIE COO) 까지 모든 ‘높으신 분’들의 이름에는 S가 항상 포함됐다.


아무튼, 코리 발록은 갓오브워의 신작을 개발하기 위한 다음 단계로 스콧 로드에게 ‘리부트’라는 컨셉으로 설명을 진행하게 됐다. 그간 섀넌 스터드스틸과 이야기하며 정립된 새로운 갓오브워의 설계도이며, 핵심 가치를 전하기 위해서다.

먼저, 갓오브워는 이번 타이틀을 통해서 ‘리부트’를 진행하고자 했다. 그러나 완전한 ‘리셋’과는 달리 기존의 가치를 유지하는 방식을 택했다. 영화 ‘스타트랙: 네메시스(2002년 작)’가 2009년 리부트를 성공적으로 진행한 것처럼, 캐릭터와 세계관은 유지하면서 새로운 이야기와 인물들을 등장시키는 방식으로 새로움을 주고자 했다. 한편으로는 갓오브워 세계의 확장이자 가능성을 늘리는 작업이기도 했다.

모든 것을 리셋하고 새로이 창조하는 리부트의 개념과는 다르다. 전작들과 연결되는 부분은 있어야 했으며, 그럼에도 새로운 경험과 플레이를 게이머들에게 보여주는 것이 핵심이었다. 그렇기에 리부트에서 중요히 생각한 기준을 세우고 개발이 이루어졌다.


리부트에서 중요히 다룬 기준은 ‘타임라인과 재창조’다. 리부트이기는 하지만 전작 이후의 시간대를 배경으로 만들어 연속성을 갖추고자 했다. 동시에 게임이 주는 전반적인 느낌을 재창조한다는 기조를 세웠다. 시간이 흐른 뒤이므로, 캐릭터는 그만큼 변화하고 성장한 모습을 보여주고자 했다. 그리고 산타모니카 스튜디오의 역량을 동원하여 강렬한 게임 플레이 경험을 플레이어에게 전한다는 방향성을 잡았다.

변화를 주기 위해서 장르에도 변화를 줬다. 액션 게임이었던 시리즈의 정체성을 비틀어, 액션 어드벤처 장르로 게임을 디자인하는 결정이다. 이를 통해서 새로운 플레이 경험과 개념 등을 활용할 수 있게 됐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개발의 최종적인 목표를 ‘GOTY를 만들자’는 목표로 설정했다. 이는 게임의 완성도를 올리고 사람들이 흥분할 정도의 게임으로 만들겠다는 목표이기도 했다.

동시에 ‘네러티브’와 ‘게임의 요소’, ‘플레이의 흐름’까지 크게 세 측면에서 새로운 설계도를 그렸다. 네러티브 면에서 중점을 둔 것은 ‘크레토스’라는 캐릭터의 변화다. 크레토스의 존재가 곧 갓 오브 워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리부트라는 이유로 이를 허투루 손대기에는 위험이 따를 수밖에 없었고, 그럴만한 당위성을 갖춰야 했다. 그러므로 네러티브를 전달하는 과정에서 캐릭터의 성격 변화와 그럴듯한 이유를 만들어 내는데 초점을 맞췄다.


리부트이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타임라인의 연장선에서 진행되는 네러티브를 보여준다. 그러므로 크레토스는 시간의 변화에 따라 성장하고 변화했다는 당위성을 가질 수 있었다. 크레토스라는 캐릭터에 있어서 신선한 출발점이 되는 셈이다. 그리고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를 통해 캐릭터의 성격이 어느 정도 변화했음을 자연스레 전달하고자 했다.

그러나 찢고 죽이고 부수는. 크레토스의 본질과 같은 요소는 캐릭터의 내부 감정으로 갈무리했다. 외부적으로는 변화하려는 모습을 보여줌과 동시에, 파괴적인 본성을 통제하는 변화와 성장의 모습을 보여주는 방식이다. 캐릭터들의 변화는 게임 플레이를 통해 자연스레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코리 발록은 네러티브의 변화를 두고 성공적인 변화였다고 자평했다. 플레이어들은 게임을 진행하며 자연스럽게 변화를 인식했고, 크레토스의 변화를 환영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 성질이 죽은 거지, 약해진 것은 아니라 더더욱.

그리고 게임 플레이의 중요한 요소들을 정하고 이 기준에 맞춰 게임을 개발했다. 어려운 게임 플레이보다는 즐겁고 접근하기 쉽도록 조정했으며, 크레토스 개인의 액션에 맞춘 전투 시스템을 개발하고자 신경 썼다. 코리 발록은 이를 두고 "전투 측면에서는 야만적 그리고 에픽이라는 두 단어를 잊지 않으려 했다"고 설명했다. 크레토스의 본성이 드러날 수 있는 부분이기에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를 고민한 결과물인 셈이다.

다음으로는 로딩이 없는 게임플레이에 집중했다. 게임을 심리스 형태로 구현하면서 플레이어의 불편함이 사라지고, 게임에 더 집중하는 형태로 만들기 위함이다. 카메라 연출은 컷을 구분하지 않고 계속해서 이어지므로, 북유럽 신화의 세계를 자유롭게 모험할 수 있게 됐다.

마지막으로 코리 발록은 '기본(Basic)'을 잊지 않는 것이 반드시 필요한 요소였다고 강조했다. 프랜차이즈를 시작했던 시점을 잊지 않고, 집중할 것. 보여줄 것이 무엇인지를 신경 쓰고 개발을 했다는 의미다.


게임이 틀을 잡아나가는 시점에서 게임 플레이는 크게 '전투', '내러티브', '탐험'이라는 세 요소로 구분할 수 있었다. 이와 같은 요소들이 한데 뭉쳐, 캐릭터의 성장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게임 플레이의 일반적인 흐름이다. 코리 발록은 세 요소가 조금 더 가깝게, 구분되지 않고 긴밀하게 연결되기를 원했다.

따라서 네러티브 면에서는 주목할 만한 변화를 줬다. 전작의 플레이에서 크레토스가 플레이어의 분신과도 같은 역할을 했었다면, 이번 작품은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를 그리면서 플레이어를 분리했다.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과정에서 크레토스와 아트레우스는 관계를 맺고, 발전시켜 나간다.

코리 발록은 게임 플레이와는 별개로, 플레이어를 둘 사이의 관계를 지켜보는 역할로 만들었다. 그리고 이를 통해서 게임에서 조금 덜어져, 이야기를 관망할 수 있도록 변화시켰다.


전투 면에서는 더 현실적으로. 가깝고 친숙한 전투를 보여주고자 했다. 비현실적인 액션이나 연출보다는, 영화와 같이 현실에서 있을 법한 액션과 연출을 보여주는 방향이다. 또한, 아무 이유 없이 일어나는 전투를 지양한다. 이번 갓 오브 워의 전투는 모두 시나리오의 일부분으로 기획되었으며, 이야기의 맥락에 따라 전투가 발생하는 방식으로 설계됐다.

세 번째 요소인 탐험은 심리스 환경을 이용한 강제적이지 않은 퍼즐로 구성한다는 방향을 세웠다. 퍼즐은 강제적으로 플레이어의 능력을 시험하는 선에서 그치며, 게임 진행을 위해서 강조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플레이어는 세계를 탐험하며 퍼즐을 풀고, 무언가를 발견하는 경험을 할 수 있게 됐다.


성장 시스템은 크레토스의 능력이나 액션을 성장시키기보다, 아트레우스를 가르치고 성장시키는 데 초점을 맞췄다. 아들 아트레우스를 AI를 거쳐 직접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설계했다. 스킬 시스템은 존재하기는 한다. 하지만 크레토스라는 캐릭터가 성장하기보다는 아트레우스의 능력에 더 많은 무게감을 두고자 했다.

▲ 관계와 유대의 성장이기도 하다.

이와 같은 설명. 피칭은 게임이 처음으로 공개되기 직전인 E3 2016 까지 계속해서 이어졌다. 많은 실패와 도전이 있었고 개발진은 처음으로 게임의 영상을 알리지 직전까지 의견을 교환하고 고민해야만 했다. 당시 첫 트레일러를 공개하기 직전까지 코리 발록은 많은 부담감에 시달렸다고 회상했다.


첫 공개 이후 대중들의 긍정적인 반응을 확인하기까지, 속으로는 '젠장(Suuuuuucks)' 같은 생각만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코리 발록의 부담감과는 별개로 결과물은 매우 준수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고, 출시 이후에는 판매량도 따라왔다. 그 이후는 이미 우리가 알고 있는 '갓 오브 워'의 기록들이 자리한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코리 발록의 고민은 의미가 없었던 것을 수 있다. 하지만 개발 과정에서 겪은 고민과 부담감도 남긴 것은 있었다. 긴 시간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는지를 돌아본 코리 발록은 강연의 마지막에 이와 같은 말을 청중에게 전한다.

"솔직히 말하면, 걱정이 많았죠.
'네가 프랜차이즈를 망쳐놨어!'라고 하지 않을까 걱정도 됐고요.
밖으로는 '괜찮아 잘 될 거야' 라고 했지만 속으로는 'F**K'을 수없이 외쳤어요.
뭐, 그런 말이 맞았을 수도 있었겠지만요. 하지만 이것 하나는 기억해야 합니다.
뭐든 시도를 해야 변화할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죠"

▲ "잊지 마세요!"


! GDC2019 최신 소식은 박태학, 정필권, 원동현, 윤서호 기자가 샌프란시스코 현지에서 직접 전달해드립니다. 전체 기사는 뉴스센터에서 확인하세요. ▶ GDC 뉴스센터: http://bit.ly/2O2Bi0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