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핸스 미즈구치 테츠야 대표

많은 이들에게 더욱 생생한 체험을 전달하기 위한 수단인 '게임'은 지금껏 새로운 기술의 등장과 발맞춰 날로 발전해왔다. 과거 단순한 도트 그래픽으로 표현됐던 게임은 2D에서 3D로, 나아가 실사와 쉽게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높은 수준의 그래픽을 보여주게 되었고, 오늘날에는 사각형의 좁은 프레임에서 벗어나 그 한계를 단정할 수 없는 VR과 AR 영역에까지 그 영역을 넓힌 상황이다. 그렇다면 과연, 지금 게임이 도달한 위치의 그 너머에는 과연 어떤 것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

4일, 컴퓨터 엔터테인먼트 개발자 컨퍼런스 2019(CEDEC 2019, 이하 세덱) 기조 강연의 강연자로 나선 인핸스(enhance)의 미즈구치 테츠야(水口 哲也) 대표는 비디오 게임이 기술과 함께 진화하는 '체험의 미디어'라는 점을 강조했다. 이어, 앞으로 등장할 최신 기술들이 게임 업계에 가져올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도록 미리 준비하고, 이러한 기술을 충분히 활용하여 게임을 넘어서는 그 무언가를 새롭게 만들어내야 할 시기가 도래했다고 설명했다.

지난 1990년 세가(SEGA)에 입사하여 세가 랠리 챔피언십, 스페이스 채널 5, REZ, 루미네스 등 다양한 게임을 제작하며 게임 디자이너로서의 입지를 쌓아온 그는 현재 인핸스의 대표로서 지금껏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차원의 경험을 창조하기 위한 도전을 이어나가고 있다.



▲ 미즈구치 테츠야 대표의 게임 인생에 영감을 준 '신기술'

미즈구치 테츠야 대표의 발표는 그가 게임 업계에 발을 들이기 직전에 마주한 '신기술'에 대한 소개로 시작됐다. 그는 세가에서 출시한 아케이드 게임 머신 'SEGA R-360'과 나사의 초창기 VR 시스템을 보고 큰 영감을 얻었고, 이러한 기술들이 곧 국경의 장벽을 넘어 전 세계로 퍼져나가는 다음 세대의 게임에 영향을 주게 될 것임을 깨달을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후 세가에 입사한 그는 프로토타입 AR 안경을 만들고 VR 아케이드 게임을 연구하는 등, 지금껏 볼 수 없었던 새로운 게임 경험을 만들기 위한 다양한 시도를 이어나갔다. 당시는 3D 게임조차 널리 알려지지 않은 시기였기 때문에 그의 아이디어는 회사 내에서도 간단하게 묵살되기 십상이었지만, 그는 '이 앞에 분명히 미래의 게임이 있다'는 믿음을 놓지 않았고, 새로운 경험을 위한 도전을 멈추지 않았다.

▲ 미즈구치 테츠야 대표의 이력이 정리된 이미지. 그의 대표작들을 찾아볼 수 있다

미즈구치 테츠야 대표의 지난 30년간의 이력을 살펴보면, 음악에 대한 그의 남다른 애정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게임 디자이너가 되지 않았다면 뮤직비디오 감독이 되었을 것이라는 그의 소개처럼, 그의 작품들 속에는 음악을 활용한 시도가 자주 등장하곤 했다.

게임과 음악의 조화를 통해 새로운 경험을 전달하려 했던 그의 도전은 지난 1999년에 출시된 드림캐스트용 리듬 게임 '스페이스 채널5'를 통해 시작됐다. '음악과 춤, 그리고 게임을 사랑하는 모든 이에게'라는 당찬 캐치프레이즈와 함께 공개된 스페이스 채널5는 매력적인 캐릭터와 단순하고 직관적인 조작으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고, 리듬 게임으로서 전례 없는 큰 히트를 기록하며 다양한 시리즈로 이어지기도 했다.

▲ 미즈구치 테츠야의 대표작 중 하나인 '스페이스 채널5'

미즈구치 테츠야 대표는 스페이스 채널5 이후 좀 더 소리를 통해 '즐겁다'는 감정을 전달할 수 있는 게임을 만들기 위해 고민했고, 소리로 느껴지는 감정들과 게임을 융합하여 실제 악기를 연주하는 것 같은 기분을 만끽하면서도 어려운 리듬감을 요구하지 않는 독특한 컨셉의 리듬 게임 '레즈(Rez)'를 만들었다.

2001년 PS2 런칭 타이틀로 처음 공개된 레즈는 전뇌 공간 속에서 다가오는 바이러스 타겟에 레이저를 발사하여 파괴하는 리듬 슈팅 액션 장르의 게임으로, 플레이어의 움직임과 화면 속 영상, 음악, 그리고 진동을 복합적으로 느끼며 플레이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미즈구치 테츠야 대표는 이 게임을 통해 시각과 청각, 촉각까지 하나의 게임에서 느낄 수 있는 '공감각'적 요소를 담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이후에도 미즈구치 테츠야 대표는 게임에 음악을 섞으려는 도전을 이어갔고, 매번 신기술에서 영감을 얻었던 그의 다음 타겟이 된 것은 출시 당시 '인터렉티브 워크맨'이라 불리며 화제를 모았던 소니의 휴대용 콘솔 PSP였다. 간단히 음악을 즐길 수 있는 장치인 워크맨과 휴대용 게임기가 만났을 때 가장 좋은 경험은 '퍼즐'에 있다고 생각한 그는 낙하형 퍼즐 게임 '루미네스'를 완성시키기에 이르렀다.

빛과 소리를 콘셉트로 한 화려한 비쥬얼과 평범한 퍼즐 게임에 전략성을 더하는 '타임라인' 요소로 주목받은 루미네스는 테트리스와 뿌요뿌요 이후로 별다른 혁신이 없이 정체상태에 있던 낙하형 퍼즐게임계에 신선한 충격을 안겨준 작품이다.

▲ 최근 휴대용 콘솔 버전으로 '루미네스' 리마스터 버전이 출시되기도 했다

과거에 개발한 대표작들을 차례로 소개한 그는, 루미네스 이후 새로운 경험에 대한 영감을 얻지 못하고 약 3년 정도 게임 개발을 하지 못했다고 토로했다. 아무리 게임의 그래픽이 좋아지고 3D 기술이 발전하더라도, 결국 게임은 사각형의 좁은 프레임 밖으로 나올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때, 신기술의 등장에 목말라하던 그에게 다시금 영감을 가져다주는 매개체가 등장했으니, 바로 오큘러스와 바이브가 선두에 서서 전개한 VR 기술의 도래였다. VR 기술은 사각형의 프레임 속에 갇혀있던 게임의 범위를 그 끝을 알 수 없는 드넓은 가상공간에까지 확장시켰고, 이는 미즈구치 테츠야 대표가 그토록 바라왔던 '다음 세대의 게임'을 가능케 하는, 영감을 주는 신기술이었다.

이후 게임 개발에 대한 의욕을 다시 찾게 된 그는 VR 기술을 더욱 가까이에서 접하기 위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미국으로 거점을 옮겼고, 빠르게 VR 기술을 습득하여 VR 게임 '레즈 인피니트'와 '테트리스 이펙트'를 개발하기에 이른다.

그가 개발한 VR 게임들 중 '레즈 인피니트'는 VR의 원년으로도 불리는 지난 2016년, 더 게임 어워드의 VR 게임 부문에서 수많은 경쟁작을 제치고 '최고의 VR 게임'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미즈구치 테츠야 대표는 이때의 수상이 자신의 지난 노력을 모두 인정해주는 것 같은, 절대 잊을 수 없는 환희의 순간이었다고 회고했다.


▲ VR을 만난 그는 '레즈 인피니트'와 '테트리스 이펙트'로 새로운 가능성을 선보였다

끝으로 미즈구치 테츠야 대표는 게임을 디자인할 때 다양한 감정의 화학반응을 만드는, 이른바 '공감각화되는 경험'이 앞으로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오늘날에는 스토리와 음악, 영상, 문자 등 여러 구성 요소를 조합하여 유저에게 감동을 선사하는 것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이는 패미컴으로 '슈퍼 마리오'를 플레이하던 지난 과거에는 표현할 수 없었던, 새로운 형태의 게임 경험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사람의 감정이라는 유기적인 이미지를 표현하기 위해 캔버스와 물감밖에 사용하지 못했던 과거의 선조들과 달리, 지금의 게임 개발자들은 정말 다양한 최신 기술을 활용할 수 있는, 유복한 시기를 맞이하고 있다. 그는 최근 가장 주목받고 있는 최신 기술인 AR과 5G, 클라우드 기술이 본격화되면 더 놀라운 감동을 선사할 수 있는 게임을 만들 수 있게 될 것이라며, 항상 최신 기술의 등장에 관심을 기울이고, 유저에게 공감각화되는 경험을 전달하기 위한 방식을 함께 연구해나가자고 이야기했다.



현지시각 9월 4일부터 일본 요코하마에서 세덱(CEDEC 2019) 행사가 진행됩니다. 세덱 현장에서 기자들이 다양한 소식과 정보를 생생한 기사로 전해드립니다. ▶ 인벤 세덱 2019 뉴스센터: https://bit.ly/2lF0i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