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사: 팔콤 ⊙장르: 액션 RPG ⊙플랫폼: PS4 ⊙출시: 2020.02.13


RPG 장르를 좋아하는 많은 유저들의 마음 한켠에 추억으로 남아있는 게임, 이스(Ys) 시리즈의 최신작 '이스9: 몬스트룸 녹스(Ys Ⅸ: Monstrum NOX, 이하 이스9)'가 지난 2월 13일에 정식 발매됐습니다. 휴대용 콘솔인 PS 비타로 발매되었던 전작 '이스8: 라크리모사 오브 다나(이하 이스8)'가 스토리와 액션 양쪽에서 시리즈 최고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호평이었으므로, 신형 콘솔인 PS4 전용으로 개발된 이스9에 대한 팬들의 기대 또한 발매 전부터 하늘 높은 줄을 모르고 커져만 갔습니다.

하지만 이내 공개된 스크린샷과 영상으로 이스9의 인게임 비주얼이 전작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점이 밝혀졌고, 비주얼 면에서 개선된 신작을 기다리던 유저들의 기대는 크게 꺾였습니다. 이스8 출시 당시에도 '그래픽만 보고 일단 거른다'고 말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으므로, 이스9 역시 전작에 좋은 추억이 있거나, 시리즈 전체에 팬심을 가지고 있는 이들만 찾는 타이틀이 되어버렸습니다.

▲ 세월의 무게를 정통으로 맞은 도기, 이외에 캐릭터 모델링은 전작과 별반 차이가 없습니다.

실제로 이스9은 게임을 선택할 때 그래픽을 가장 중요시하는 이들에게는 선뜻 권하기 어려운 타이틀입니다. 아무리 좋게 봐주려 해도 같은 시기에 발매되는 5만 원 후반대 풀프라이스 게임들과 견주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운 비주얼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시리즈 최초로 세미 오픈 월드를 채용했다고 하지만, 주요 무대가 되는 도시 이외에 지역은 한숨이 나올 정도로 단조로운 구성이 대부분이기도 하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이스9이 RPG 특유의 모험을 좋아한다면, 그리고 붉은머리 검사 아돌의 여정에 두근거렸던 추억을 가진 이들이라면 꼭 놓치지 않고 플레이해볼 만한 게임이라고 생각합니다. 겉모습만 보고 포기하기에는 아쉬운, 정말 다양한 매력을 품고 있는 작품이거든요.

만약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순전히 '그래픽' 때문에 이스9의 구매가 망설여진다면, 매 시즌마다 할인이 적용되어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구할 수 있는 전작 이스8을 먼저 접해보실 것을 추천드립니다. 이스8을 즐겁게 플레이하신 이들이라면, 분명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아돌의 새로운 모험이 시작되는 이스9 역시 즐거운 마음으로 플레이하실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전작의 상쾌한 '하이 스피드 액션' 그대로 이어받았다
강점은 그대로, 여기에 여섯 가지 매력적인 '이능 액션'까지

이스9에 대해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꼽을 수 있는 강점은 역시 상쾌한 하이 스피드 액션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스8에서 완성된 베기와 찌르기, 타격으로 나뉘는 세 가지 속성 공격과 플래시 가드, 플래시 무브 시스템을 활용한 초근접 액션은 이번 신작에서도 그대로 이어집니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별도의 장비를 착용하지 않더라도 초반부터 2단 점프를 사용할 수 있고, L1 버튼과 R1버튼을 동시에 누르면 모든 공격이 강화되는 '버스트 모드'가 발동한다는 점입니다. 필살기인 엑스트라 스킬은 버스트 모드 상태일 때 다시 한번 똑같은 커맨드를 입력해야만 발동되죠. 전작에서는 L1버튼과 R1 버튼을 번갈아 누르다가 간혹 엑스트라 스킬이 발동되어 아까운 EX 게이지를 낭비하는 경우가 있었지만, 이스9에서는 이러한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 버스트 모드가 더해지면서 EX 게이지를 허공에 날릴 걱정은 크게 줄었습니다

위기의 순간엔 버스트 모드와 엑스트라 스킬로 일발 역전을 노리고, 적의 패턴을 파악하여 정확한 순간에 R1 버튼으로 발동시키는 플래시 가드의 조작까지 익숙해진다면, 마치 '다크소울' 시리즈를 플레이하는 것같은 고난이도 액션 게임의 재미를 만끽할 수 있습니다. 이스8 때도 이 손맛에 빠진 많은 유저들이 난이도를 올려가며 다회차 플레이를 즐기곤 했죠.

이스9은 초심자를 위한 이지 모드부터 숙련자를 위한 루나틱까지 총 6개의 난이도를 제공하는데요. 보스전의 쫄깃한 긴장감과 공략의 재미를 만끽하고 싶다면 1회차 플레이로 나이트메어를 추천합니다. 전편의 노멀이 이번 작의 하드에 해당한다고 느껴질 만큼 상대적으로 난이도가 낮은 편이고, 플래티넘 트로피를 획득하려면 결국 나이트메어 이상 난이도를 한번 클리어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 시리즈 경험자라면 1회차 시 하드, 혹은 나이트메어 난이도가 적당하다

전투를 구성하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들은 전편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여기에 이스9만의 '이능 액션'이 더해지면서 전투의 깊이는 더욱 배가됐습니다. 멀리 떨어진 적에게 단숨에 접근할 수 있는 크림슨 라인, 체공 시간을 늘려 바닥의 장판 기술을 피할 수 있는 헌터 글라이드, 보스의 숨겨진 약점을 밝혀내는 더 서드 아이, 단단한 적의 방어를 뚫고 브레이크를 발동시키는 발키리 해머 등, 각기 다른 이능을 조합하여 보스를 공략하는 재미가 바로 이스9의 전투에서만 느낄 수 있는 매력입니다.

이러한 이능 액션들이 단순히 구색 맞추기 용도가 아닌, 공략을 위해 꼭 필요한 요소로 포함된 것 또한 눈여겨볼 부분입니다. 전작에서는 적의 공격을 플래시 가드로 흘려보내고 강한 위력의 스킬을 난사하는 것으로 대부분의 보스를 클리어할 수 있었지만, 본작에서는 각각의 이능을 적재적소에 활용하지 않으면 보스의 다음 기믹을 볼 수 없는 상황이 자주 등장합니다.

또한 주인공인 아돌을 포함한 6명의 플레이어블 캐릭터가 저마다 다른 방식의 독특한 전투 스타일을 가지므로, 하나의 캐릭터로 모든 보스를 제패한 뒤, 또 다른 캐릭터로 보스를 공략해보는 것 또한 놓칠 수 없는 재미 포인트입니다. 이처럼 이스9은 전투 요소만 보더라도 파고들 만한 요소가 갖춰져 있으므로, 스토리의 지문을 읽고 성우 연기를 감상하는 부분을 제외하더라도 충분한 플레이타임이 보장됩니다.

▲ 보스전에서는 괴인들의 이능 액션을 적재적소에 활용해야만 합니다

도시에서는 전작의 요격전과 제압전에 해당하는 '그림왈드의 밤'이라는 콘텐츠를 만나볼 수 있습니다. '스펜'이라고 불리는 수정탑을 지키는 일종의 디펜스 모드로, 쏟아져나오는 몬스터를 상대하며 '무쌍' 액션을 연상케 하는 대규모 전투를 즐길 수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파티에 편성하지 않은 나머지 괴인들도 모두 등장하고, NPC 동료들의 서포트 스킬까지 더해지면서 화면 가득 메워지는 화려한 연출을 볼 수 있는 것이 인상적이지만, 전작과 비교하면 난이도가 많이 쉬워져서 더 높은 기록을 경신하는 재미는 다소 부족해진 느낌입니다.

분명한 것은 일반적인 보스전과는 확연히 다른 호쾌한 전투를 맛볼 수 있다는 점인데요. 많은 적을 한 방에 쓸어버리는 무쌍식 액션을 선호하는 유저라면, 그림왈드의 밤이 취향을 저격하는 콘텐츠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림왈드의 밤은 클리어 후에도 거점의 도기에게 언제든 말을 걸어 반복해서 플레이할 수 있습니다.



무대는 작아졌지만, 모험의 깊이는 더 깊어졌다
여섯 개의 이능 액션으로 도시 전체가 게임의 무대가 된다


이스9의 또 다른 매력은 앞에서도 잠깐 언급했던 '세미 오픈 월드'에 있습니다. 무인도 전체를 탐험할 수 있었던 전작과 달리 감옥도시로 불리는 '발두크' 하나로 무대가 한정됐지만, 여기에 여섯 개의 이능 액션이 더해지면서 모험의 재미 역시 결코 부족하다고 느껴지지 않는 것이 특징입니다.

새로운 괴인이 파티에 추가될 때마다 각 괴인이 지닌 이능을 사용할 수 있게 되고, 모든 괴인이 파티에 추가된 후엔 정말 과장 없는 표현으로 '눈에 보이는 모든 지형'을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게 됩니다. 전작이 2단 점프와 대시 점프를 활용하여 조금 더 높고 멀리 있는 상자를 먹는 수준에 그쳤다면, 이제는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위치에 숨겨져있는 보물상자를 획득하기 위해 보다 입체적으로 생각하고 움직여야하는 수준까지 발전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곧은 벽이라면 어디까지고 타고 오를 수 있는 '헤븐즈 런'과 특정 포인트까지 빠르게 이동할 수 있는 '크림슨 라인'은 신출귀몰하는 괴인의 특성을 제대로 반영한 매력적인 이능인데요. 이게 너무 편하다 보니, 이스9 이후에 출시될 차기작에서도 꼭 어떤 형태로든 계승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높은 벽을 한 번에 타고 오를 수 있는 이능 '헤븐즈 런'

▲ 이능을 활용하면 가지 못하는 장소가 없을 정도

물론 기껏 성벽을 타고 올라 도시 전경을 내려다볼 수 있는 탑 꼭대기에 서더라도 아무런 보상이 없다면 조금 섭섭하겠죠. 이스9에서는 모든 지형을 자유자재로 이동할 수 있게 된 만큼, 다양한 수집요소를 도시 곳곳에 배치하여 탐험의 재미까지 놓치지 않았습니다.

도시에는 보물상자, 낙서, 푸른 꽃, 로케이션 포인트 등 여러 수집요소가 배치되어 있기 때문에 구석구석을 샅샅이 둘러보는 맛이 있습니다. 이렇게 한번 방문했던 포인트로는 언제든 빠르게 워프할 수 있으니 똑같은 장소를 여러 번 헤맬 필요도 없고, 덕분에 지도에 표시되는 달성률 수치를 100%로 채우기 위해 돌아다니는 과정에서도 지루함을 느낄 틈이 없었죠. 물론 이러한 수집요소들은 어디까지나 부차적인 콘텐츠이므로, 메인 스토리를 빠르게 진행하고 싶은 이들은 모두 무시하고 지나가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 이능인 '더 서드 아이'를 사용하면 수집물 위치 찾기도 쉽고, 여러모로 스트레스가 적습니다

대부분의 전투가 진행되는 던전에서도 이능 액션을 활용한 퍼즐이 다수 등장합니다. 벽을 뚫어 길을 만든다거나 평소에는 보이지 않는 숨겨진 길을 찾아내고, 절벽 너머에 있는 레버를 조작하기 위해 활강하는 등, 여섯 개의 이능 액션을 충분히 활용해볼 수 있게끔 설계된 구조가 인상적이었습니다.

반면, 중반부 이후에 등장하는 도시 밖 필드 구역의 구성은 아쉬움이 크게 남습니다. 겨우 도시를 벗어나 넓은 바깥세상을 탐험하는가 했더니, 크기만 넓을 뿐 별다른 오브젝트 하나 제대로 배치되지 않은 허허벌판이 유저들을 맞이하기 때문입니다. 이럴 바에 도시 구역을 작게나마 한 구역 더 넓히고, 건물 하나를 더 두는 게 영양가가 있지 않았겠느냐는 생각이 들 정도였죠. 주요 무대인 도시의 밀도를 높이기 위해 선택과 집중이 적용된 부분일 것으로 여겨지지만, 다소 아쉬운 부분인 것은 분명합니다.

▲ 도시 밖으로 처음 나왔을 때는 나들이 기분도 들고 참 좋았는데...


'아돌'의 모험은 앞으로도 계속된다
긴장감은 부족하나, 후속작을 기대하게 만드는 스토리


이스9의 스토리는 인류의 멸망을 막기 위해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분투했던 전작에 비해 다소 차분한 편입니다. 주요 등장인물인 괴인들이 모두 강력한 모습을 보여줘서인지, 전체적으로 긴장감이 없이 느긋한 분위기로 이야기가 흘러가죠. 세계의 운명을 좌지우지할 정도로 큰 사건에 휘말린 아돌의 여행기를 기대했던 이들이라면 '한 박자 쉬어가는 이야기'처럼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느긋하다는 것이 이스9의 스토리가 나쁘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거대한 비밀을 홀로 감당하고 있는 듯 시종일관 위태로운 분위기를 풍기는 인물 '아프릴리스'부터, 감옥에 갇혀있는 또 다른 붉은 머리 수감자의 정체, 그리고 끊임없이 찾아오는 그림왈드의 밤까지. 유저들의 궁금증을 유발하는 요소들이 끊임없이 등장하기에 이야기의 몰입감은 결코 전작에 뒤지지 않았습니다. 30년 이상 이어지고 있는 장수 시리즈의 정식 넘버링 작품인 만큼, 시리즈 팬들을 위한 배려, 그리고 후속작을 암시하는 요소들도 다수 발견할 수 있었죠.

▲ 이스9에서 분위기를 담당하는 수수께끼의 인물 '아프릴리스'

정리하자면, 이스9은 전작에서 호평받은 하이 스피드 전투를 한 단계 더 발전시킨 이능 액션과 이를 충분히 활용할 수 있도록 깊이를 더한 세미 오픈월드의 무대를 선보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작 이후로 그래픽의 발전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을 포함하여 아쉬운 부분도 많이 있지만, 아직 끝나지 않은 아돌의 다음 여정을 기다리게 하기에는 충분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스 시리즈의 다음 여정은 적어도 2년 뒤, 올해 홀리데이 시즌에 공개될 예정인 PS5를 통해 이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몇몇 팬들은 이미 '이스에서 그래픽은 기대하지도 않는다'는 목소리를 내보이고 있지만, 내심 매차례 새로운 요소를 선보이는 팔콤의 저력에 기대감을 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출시 전부터 다양한 혁신이 예고되는 PS5 플랫폼을 기반으로 팔콤이 그래픽을 포함한 여러 부분에서 팬들의 기대를 충족시킬 수 있는 신작을 선보여 이스 시리즈의 명맥을 계속 이어나가길 기대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