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월에 출시된 바이오자드 RE:2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 12월에 들려온 바이오하자드 RE:3의 소식은 바이오하자드 팬들을 다시금 기대하게 하기엔 충분했습니다. 비록 시리즈 최고 명작으로 손꼽히는 2와 4 사이에 껴있어서 비교당하곤 하지만, 그래도 다음으로 이어지는 기반을 닦은 작품이자 2와는 다른 시각에서 라쿤 시티를 조명하는 작품이니까요.

바이오하자드 RE:2는 2015년 공개 이후 4년 가까이 지나서 출시됐지만, 바이오하자드 RE:3는 작년 12월 공개 후에 지난 4월 3일 출시됐습니다. 그 전에 다소 짧은 데모를 선보였고, 기존에 없던 비대칭 대전 방식의 멀티플레이 모드 '바이오하자드 레지스탕스'가 OBT를 마치고 같이 출시됐죠.

▲ RE:2에 비해 둘 다 평가가 좋지는 않습니다

바이오하자드 RE:2에서 성공적인 리메이크의 정석을 보여준 터라 이번 바이오하자드 RE:3 역시도 기대감이 높았습니다. 그래서였을지 몰라도 바이오하자드 RE:3의 점수는 썩 좋지만은 않습니다. 물론 메타크리틱 점수가 전부는 아니고, 80점대면 충분히 준수한 게임이라고 봐도 무방하죠. 더군다나 리메이크 전의 2와 3를 비교해봐도 3가 2에 비해 평가가 좋지는 않았습니다.

이런 걸 고려하면 선방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렇게 넘어가기엔 다소 아쉬운 점들이 이번 바이오하자드 RE:3에서는 엿보였습니다. 단순히 명작인 전작과 비교되서가 아니라, 이런저런 시도들을 갈무리하지 못한 아쉬움이었죠.

※주의: 리뷰에 첨부된 영상 및 이미지에는 일부 스포일러 및 잔인한 장면이 포함되어있습니다


과도기적인 정체성은 유지
긴급회피로 다소 높아진 액션성과 클래식한 공포감의 절묘한 밸런스


잠깐 바이오하자드 시리즈의 흐름을 잠시 훑어보면, 6까지는 가면 갈수록 액션성이 강해졌습니다. 총알이 없으면 좀비 한 마리에도 쩔쩔매던 주인공들이 나중에는 어지간한 일반 좀비는 맨손으로도 때려잡고는 하니까요. 그에 반비례해서 특유의 공포스러운 분위기가 희석되어버렸죠. 그것이 4 이후 7 이전까지 바이오하자드 시리즈의 평가가 좋지 않은 이유이기도 했습니다. 클래식한 느낌을 살려낸 리메이크작 RE:2가 좋은 평가를 받는 이유기도 하고요.

그 관점에서 RE:3를 보면 RE:2의 노하우를 이번에도 잘 입힌 것으로 보입니다. 바이오하자드3에서는 긴급회피가 추가되면서 액션성이 조금은 가미되긴 했습니다. 그래도 액션보다는 곳곳에서 숨어있거나 갑작스럽게 덮쳐대는 각종 좀비들과 B.O.W를 최대한 피해다니게끔 디자인이 되어있었죠. 나이프 내구도가 없긴 하지만 붙잡혔을 때 디펜스를 할 수도 없고, 데미지나 경직은 거의 없어서 긴급회피 이후에 어거지로 우겨넣는 것 외엔 무쓸모에 가깝습니다.

▲ RE:2에선 이때 나이프나 수류탄으로 긴급탈출이 가능하지만 RE:3에선 얄짤없습니다

▲ 대신 물리기 전에 잽싸게 피할 수는 있죠

그나마 탄은 2에 비해서 조금은 여유롭게 배급되지만, 대신 위협적인 B.O.W의 비중이 늘어서 다량의 탄 혹은 특수탄 비축을 요구하는 구간이 좀 있습니다. 그게 없으면 긴급회피와 왔다갔다하는 컨트롤, 좀비들의 동선 운에 의존해야 하죠. 처음에 멋도 모르고 탄을 사용하다가 나중에 가서 느끼게 되는 후회감과 아슬아슬한 스릴, 그로부터 유발되는 공포감을 느끼기엔 충분했습니다. 좀 더 좀비에게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긴 하지만, 그게 과하지 않도록 조절하면서 공포와 액션 사이의 밸런스를 잡아간 셈이죠.

▲ 자칫하면 한 방에 보내버리는 B.O.W가

▲ 둘이 같이 포진되어있을 때는 또다른 스릴과 공포가 느껴집니다

▲ 무슨 짓을 해도 안 쓰러지는 네메시스가 쫓아오는 공포도 여전합니다

물론 시리즈를 이전부터 줄곧 즐기는 것을 넘어서서 각종 기묘한 스피드런 종목까지 신설해서 도전하는 하드코어 유저에게는 다소 다른 이야기일 수 있습니다. 좀비에게 대처할 수단이 마땅치 않을 때에도 그들을 농락하던 유저들이니까요. 그런 유저들을 고려해서 나이트메어, 인페르노 난이도를 추가했습니다.

난이도가 새로 추가된 것이 대수냐고 할지 모르지만, 나이트메어 난이도만 되도 느낌이 사뭇 달라집니다. 매그넘을 괜히 처음부터 제공하는 게 아닐 정도죠. 더군다나 일부 루트가 초반에 막히는 등 변화가 있기 때문에 하드코어 난이도를 보너스 아이템 없이 클리어했더라도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훨씬 공격적으로 덮쳐오는 좀비떼거리는 덤이고요.

이렇듯 RE:2에서 보여준, 대처하기 어려운 적들을 상대할 때 느끼는 클래식한 공포감은 RE:3에도 어느 정도 이어졌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긴급회피로 좀 더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게 했지만, 그만큼 좀 더 위협적인 적을 배치하고 난이도를 세분화하면서 유저들이 그만큼 더 긴장하게끔 했죠.

▲ 나이트메어 이후부턴 처음에 매그넘 줘서 쉽네 이랬지만

▲ 좋은 걸 줄 때는 다 이유가 있는 법입니다



빠르고 간결하게 압축한 동선
난이도를 세분화했지만 너무 짧아진 플레이타임


RE:2에서도 원작과 초반이 다소 다르게 시작하는 것처럼, RE:3도 조금 바뀌었습니다. 처음부터 네메시스가 질을 습격하게 되죠. 그 추격으로부터 도망친 뒤에도 질이 탈출하는 과정이 다소 바뀌었습니다. 질이 경찰서를 안 들리고 바로 지하철을 타고 탈출을 시도한다던가 하는 식이죠.

그러면서 퍼즐 요소가 자연히 줄어들었고, 이야기 흐름도 다소 빨라졌습니다. 바이오하자드를 비교적 최근에 접하고 예전 시리즈에 익숙하지 않은 유저, 혹은 오랜만에 해서 손이 덜 풀린 유저로서는 좀 더 쉽게 적응할 수 있었죠. 그리고 어느 정도 플레이하면 각종 요소를 해금하기 어렵지 않다보니 다회차 플레이나 스피드런 도전에 대한 거부감도 적은 편입니다.

그렇게 이야기할 수도 있겠지만, 바이오하자드 RE:3는 체감상 너무 짧습니다. 원래부터가 플레이타임이 길지 않다는 걸 고려해도 말이죠. 스피드런을 생전 안 해봤어도 세 번째 플레이만에 2시간 업적을 충분히 달성하고, 하드코어 스피드런까지 도전해볼 정도입니다.

▲ 처음 시작할 때 빌빌거렸어도 하다보면 금세 스피드런 도전해볼까? 싶어질 정도입니다

터무니없이 짧다고 느낀 이유를 살펴보면 우선 시리즈 특유의 긴장감의 한 축이었던 퍼즐이 너무 생략됐다는 점을 들 수 있을 겁니다. 물론 퍼즐은 호불호가 갈리는 요소이긴 합니다. 하지만 좀비나 각종 B.O.W가 덮쳐오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실마리를 찾고, 머리를 쓰면서 퍼즐을 풀 때 느끼는 심리적 압박감과 긴박감은 공포감을 배가하는 요소죠. 바이오하자드 RE:2에서 좀비가 계속 나오는 경찰서에서 메달 찾으러 다닐 때의 그 압박감처럼 말이죠.

그런데 바이오하자드 RE:3는 그나마 있던 퍼즐 요소도 없어졌기 때문에 그런 긴박감은 다소 줄어든 편입니다. 뿐만 아니라 조금 과장을 섞으면 레일슈터에 가까울 정도로 동선 제약이 큽니다. 물론 원작, 그리고 시리즈 다른 작품도 스토리가 진행되면서 이전에 갈 수 있던 곳을 아예 못가게 되긴 합니다. 다만 그 흐름이 바이오하자드 RE:3에서는 극초반부터 이어지다보니 원작과는 다른 느낌을 줄 수밖에 없죠. 기껏 실내가 아닌 라쿤 시티로 나왔는데, 오히려 RE:2 때보다 동선의 폭이 제한이 있다보니 밖으로 나왔다는 느낌이 들지 않을 정도죠.

▲ 경찰서는 나오긴 하지만, 시계탑이 아예 빠져있습니다


이식 거부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원래 있던 요소가 빠지고 추가된 레지스탕스는 기대 이하였다


여기까지만 두고 보았다면 바이오하자드 RE:3는 원작을 리메이크하는 과정에서 약간 실수를 했다 정도로 넘어갈 수 있을 겁니다. 여기에 같이 출시된 모드인 바이오하자드 레지스탕스와 엮이고 있는 것이 가장 큰 문제죠. 메타크리틱에서도 별도 항목으로 빠져있기 때문에 이를 같이 묶어서 이야기해야 할까 싶긴 합니다. 그래도 바이오하자드 RE:3 본편이 있어야 플레이가 가능한 터라 부록 정도로 짧게 이야기할까 합니다.

▲ 메타크리틱은 따로 나오긴 하지만, 어쨌든 RE:3를 구매해야 플레이할 수 있습니다

시리즈 최초로 비대칭 대전을 도입한 바이오하자드 레지스탕스는 어떻게 보면 실험정신을 높게 살 만도 했습니다. 어쨌든 기존 요소를 바탕으로 새로운 장르를 도입해 차별화를 꾀하고자 했으니까요. 그런데 아직은 클래식한 바이오하자드 시리즈에 가까운 RE:3와 같이 내면서 이질감이 더욱 심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긴급회피가 있다지만 어쨌든 좀비를 근접 무기로 마구잡이로 학살하는 것과는 거리가 있는 바이오하자드 RE:3인데, 일반 좀비를 마치 레포데4처럼 때려잡는 모습을 보면서 다소 낯설 수밖에 없죠. 물론 기존 바이오하자드에서도 좀비를 상대로 적극적으로 싸울 수 있는 모드가 없던 건 아니니 그렇다고 칠 수는 있죠. 그보다는 마스터마인드가 좀비를 생산할 때 생존자들이 그 지점을 미리 알 수 있다는 것도 바이오하자드를 계속 지켜본 입장에선 의아함이 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둠 속에서 갑자기 덮쳐오거나, 혹은 길을 가다가 갑자기 마주친 좀비의 공포감이 1도 느껴지지 않으니까요.

▲ 이렇게 배치하는 건 좋지만, 생존자들이 훤히 보고 있다보니 긴장감은 덜합니다

여타 공포스러운 분위기의 비대칭 게임을 훑어보면 생존자들이 자신을 쫓고 있는 누군가가 자기 근처에 오기 전까지는 어디에 있는지 잘 모르고, 잘 보이지 않기 때문에 공포감과 긴장감이 조성됩니다. 그런데 바이오하자드 레지스탕스는 그런 요소가 없다보니 기존 시리즈와는 달리 붕 떠버릴 수 밖에 없죠. 소스는 분명 바이오하자드 게 맞는데, 스토리도 본편과 연관성이 크지 않고 게임 내적으로도 바이오하자드 특유의 분위기와 겉돌다보니 연관성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매드 사이언티스트 저리가라 할 엄브렐라 사의 광기가 느껴지는 걸 빼면 말이죠.

▲ 타이런트를 조작해볼 수도 있기도 하고

▲ 좀비떼로부터 살아남으려고 발버둥치는 맛도 있긴 하지만, 시리즈 특유의 느낌은 희석됐습니다

더군다나 원래 있던 용병 모드를 고스란히 구현했다면 모를까, 그걸 삭제한 상태이기 때문에 팬들은 바이오하자드 RE:3이나 레지스탕스에 비판을 하게 됐죠. 만일 레지스탕스가 준수하게 나왔다면 달랐겠지만, 그렇지 못했기 때문에 원래 있다가 없어진 요소들의 빈자리가 느껴질 수밖에 없습니다.

▲ 레지스탕스를 빼고 본편만 보면 허전함이 느껴집니다


바이오하자드 RE:3, 미완성이 되어버린 선택과 집중 그리고 새로운 실험
시리즈 최고 명작인 4의 성공적 리메이크를 위한 발판이 되기를


지금까지 캡콤은 RE엔진을 활용해서 바이오하자드 시리즈를 두 차례 리메이크하는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첫 번째로 나온 RE:2가 너무도 성공적이었기 때문인 만큼, RE:3는 자연히 비교될 수밖에 없었죠. 마치 예전에 2 때문에 비교된 3를 보듯이 말이죠.

그래픽이나 사운드에서는 확실히 RE:2만큼, 일부에선 그 이상을 달성했습니다. 특히 사운드는 RE:2보다 다소 향상된 게 체감이 됩니다. 전체적인 볼륨도 더 높아졌을 뿐만 아니라 밀폐된 공간에서의 에코음, 물 속을 걸을 때 찰랑거리는 소리 등 효과음의 퀄리티가 상승했죠. 그러면서 사운드가 주는 몰입감, 공포감은 더욱 확실히 체감할 수 있었습니다. RE:2에서 느꼈던 비주얼적인 충격은 RE:3에선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고스란히 유지된 만큼, 그 시너지도 확실하죠.

▲ 갑작스레 시야의 사각에서 덮쳐오는 좀비의 공포.gif

▲ RE 엔진으로 구현한 그 특유의 생생한 비주얼은 RE:3에서도 건재합니다

그런 퀄리티로 원작의 요소를 최대한 유지하거나 재해석하되 조금 다른 걸 덧붙이는 식이었다면 몰랐을 겁니다. 그 대신 RE:3는 원작의 동선을 선택과 집중해서 편집하고, 기존 요소를 빼버린 뒤에 새로운 무언가를 덧붙이는 실험을 했습니다. 그 결과 평가가 엇갈릴 수밖에 없었죠.

플레이하는 메커니즘 자체는 유지하면서 동선과 퍼즐을 줄였기 때문에 분명 시리즈 초심자나 오랜만에 다시 하는 유저가 손을 풀기엔 적당했습니다. 그렇지만 기존 팬 입장에선 너무 짧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축약되어버렸습니다. 이를 난이도 다양화로 극복하려고 했지만 플레이타임이 짧다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었죠.

여기에 바이오하자드 레지스탕스, 그리고 가격 문제까지 불거지면서 바이오하자드 RE:3는 자체 퀄리티에 대해서 온전히 평가받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습니다. 원래 있던 요소까지 삭제되면서 추가된 레지스탕스는 기존 게임과 겉도는 느낌이죠. 거기다가 바이오하자드 RE:3를 사야만 플레이할 수 있는데 바이오하자드 RE:3는 바이오하자드 RE:2보다 출시 가격이 비쌉니다.

이런 이유에서 바이오하자드 RE:2에서 나왔던 에셋을 일부 그대로 쓴 것도 비판을 받고 있기도 합니다. 스토리상 RE:2에서 하루 전 이야기를 다루고 있고, 배경을 공유하다보니 일부 에셋이 그대로 나오는 건 불가피하긴 합니다. RE:2를 플레이해봤다거나, 추후에 RE:2를 플레이하면서 "이게 그렇게 되는 거구나"라고 새롭게 느낄 수 있기도 하고요. 그렇지만 가격에 대한 불만이 한 번 터져나온 상황이라 '재탕'이라는 평가로 기울어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 RE:2 사건 하루 전의 일을 다루고 있다보니 눈에 익은 장소가 곳곳에 있습니다

이렇듯 안타까움을 자아내버린 바이오하자드 RE:3긴 하지만, 한 번 클리어까지 정주행해볼 만한 가치는 있긴 합니다. 플레이타임도 길지 않아서 부담도 적고, 시리즈 특유의 긴장감과 긴박감은 확실히 담아냈으니까요.

다만 그 값어치를 충분히 하는지에 대해서는 조금 더 고려해보고 사시기를 권장합니다. 플레이타임 짧은 건 사실이고, 바이오하자드 레지스탕스를 제외하면 현재까지는 각종 스피드런 도전 및 기행 플레이로 다회차를 하는 것 외엔 별다른 콘텐츠가 없으니까요. 아직 확정이 아니지만 만일 바이오하자드 4를 리메이크하게 된다면, 이번 RE:3의 경험을 타산지석으로 삼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