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런 사진만 봐도 기분이 좋아진다면? 당신도 키보드 중독이다!

요즘 키보드에 관심을 갖는 게이머들이 부쩍 늘어난 것 같다. 일 년 전까지만 해도 인벤에 키보드 물어보는 유저들이 몇 안 됐었는데, 최근 들어 일주일에 두 건 정도는 보이는 편이다. 나 또한 키보드에 관심이 많다 보니 볼 때마다 반갑다.

키보드의 꽃, 아니 모든 분야의 시작이자 끝은 커스텀 아닐까? 커스텀에 대해 기판부터 스위치를 직접 납땜해서 제작하는 일련의 작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겠지만, 좁게 보면 그리 거창한 것도 아니다. 기존에 쓰던 키보드에 키캡놀이만 해줘도 커스텀이라고 인정해 주는 게 이 바닥(?)이니까.

기계식 키보드에 어느 정도 관심을 갖고 제품을 꽤 접해본 사람이라면 반드시 검색해보는 콘텐츠가 있다. 바로 '키보드 윤활' 되시겠다. 제품을 좀 써봤다는 것은 하나로 만족을 못 했기 때문에 타건샵에 가서 인터넷에 떠도는 유명한 제품들은 다 한 번씩 쳐봤다는 얘기니까. 매장에서 타건 해본 제품과 내가 구매한 제품의 느낌이 애매하게 다른 이유는 윤활의 여부가 가장 크게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유튜브나 인터넷에서 찾아본 키보드 장인들의 윤활 과정을 보면 맛보기로 체험 할 엄두조차 안 난다. 시간은 고사하고 저런 정교한 작업을 내 손으로 해낼 수 있을까 싶다. 괜히 키보드 공방이 있는 게 아니니까. 이런 콘텐츠는 기사로 담아낸다 해도 이게 과연 게이머에게 도움이 될까라는 핑계로, 윤활에 대해서는 다룰 필요 없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2~3년 전부터 '스프레이 간이 윤활'에 대한 정보들이 커뮤니티에 심심치 않게 올라오기 시작했다. 스프레이를 통한 간단한 윤활 작업이었는데, 워낙 의심 많은 성격이라 믿지 않고 있었지만, 반년 이상 사용했는데도 별문제가 없었다는 사례가 등장하면서 나도 한번 해봐야겠다 싶어 소개해보고자 한다.

▲ 윤활 욕망이 솟구치다가도, 기판 뜯는 과정을 보면 의욕이 꺾인다 (출처: 제이뷰 유튜브 채널)

▲ 이제는 '키보드 윤활'만 검색해도 스프레이 윤활에 대한 콘텐츠가 제법 나온다





■ 잠깐! 왜 윤활을 하는가?

▲ 그럴 일 없겠지만 혹여나 무접점이라면 공방에 의뢰하는 것을 추천한다. 고난이도라고..

모든 기계는 '때 빼고 광내고 기름칠하고'의 삼박자가 필요하다. 기계식 키보드도 예외는 아닌데 키보드 윤활은 마무리 단계인 기름칠에 해당되는 행위로 스태빌라이저와 스프링, 플라스틱 사이의 유격에 기름을 칠해줘서 불쾌한 잡음을 없애는 작업이다.

기계식 키보드의 스위치는 종류가 정해져있지만 윤활 상태는 브랜드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다만 윤활이 잘 되어 있다고 무조건 그 제품이 좋다는 것은 아니다. 키보드라는 분야에 입문하는 것 자체가 주관적인 부분으로 시작하기 때문에 어떤 브랜드가 좋고 나쁘고를 정의하는 것은 다소 우스운 얘기다. 윤활이 과하면 오히려 타건감이 먹먹하여 싫어하는 유저들도 꽤 있으니까. 결국 키보드 성향에서 시작하여 성향에서 종결된다. 이런 분야다 보니 오히려 키보드에 관심이 없는 그 시절이 그리울 때도 있을 정도.

키보드에 꾸준히 관심을 갖다보면 어느 순간 내 키보드에서 나는 잡음이 신경 쓰이기 시작한다. 심지어 사용자에 따라 불쾌한 소리가 제각각이기 때문에 명확히 무슨 소리라고 말하지는 못한다. 난 키보드에 뭘 안 했는데 잡음이 들리지 않는다고? 내가 가장 부러워하는 타입이니 즐겁게 사용하시면 되겠다. 잡음은 보통 스프링 소리, 파워 타건으로 인한 내 손가락이 땅바닥을 치는 소리 등이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다만, 윤활이라는 것도 결국 개조의 일종이기 때문에 작업을 진행하면 더 이상 판매 업체에 A/S를 요구할 수 없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사전에 신중해야 하며, 작업 후 키 입력이 갑자기 안된다는 등의 좋지 않은 사례가 많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키보드 윤활 작업을 전문으로 하는 공방에 의뢰를 하는 편이라는 것을 꼭 참고하도록 하자.

스프레이 간이 윤활을 소개하기 앞서, 당장에 필요성을 못 느끼는데 단순히 "키보드는 윤활이지!"라는 얘기를 어디선가 듣고 관심이 생긴 거라면 아직 할 필요가 없다는 얘기가 윤활을 고민하고 있는 게이머들에게 닿길 바라며, 직접 진행해본 스프레이 윤활 작업 과정을 보여주고자 한다.




■ 사용하지 않는 키보드로 연습해보자! - C604 체리미엄 PBT 측각 저소음 적축

▲ 스프레이 윤활 후 타건 영상 (1초~3초 구간: 윤활한 스위치 표시)

내 파워타건과 불협화음을 내기 때문에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여분의 키보드가 있어 그 제품으로 콘텐츠를 짜려 했다. 하지만 키보드를 선물해 줄 만한 친구놈이 나타나 겸사겸사 새 제품으로 스프레이 윤활을 해보기로 했다. 친구의 생일 겸 개업 기념으로 좀 괜찮은 키보드를 선물하기로 했다.

막상 윤활제를 구입하고 나니, 괜히 실수할까 겁이 났다. 그래서 결국 집에서 뒹굴고 있는 키보드를 꺼내서 조금만 실험 삼아 뿌려보기로 했다. 스태빌라이저 윤활 테스트는 덤. 윤활제를 너무 과도하게 도포할 경우, 키감이 너무 먹먹해져서 오히려 답답하다는 후기도 제법 접했기 때문에 먼저 연습 삼아 테스트해보기로 했다.

▲ 연습삼아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키보드로 특정 스위치 몇개만 작업해봤다

▲ 스위치를 수직으로 누르며 뿌리면 윤활제가 다 튄다. 대각선으로 뿌려줘야한다 (그래도 좀 튄다)

▲ 실전을 위한 테스트기 때문에 특정 부위는 많이, 특정 부위는 적게 뿌려봤다

▲ 치간칫솔을 이용하여 스태빌라이저에 윤활제를 도포한다

▲ 사실 이 키보드를 쓰지 않는 가장 큰 원인은 이 스페이스바 때문이었다





■ 간이 윤활을 해보자! - 하이퍼엑스 Alloy Origins 레드(적축) + 하이퍼엑스 PBT 푸딩 키캡

▲ 선물할 제품은 '하이퍼엑스 Alloy Origins 레드(적축)'과 '하이퍼엑스 PBT 푸딩 키캡'

▲ 사은품으로 받은 하이퍼엑스 가방과 키보드 파우치

▲ 이 제품은 알루미늄 하우징을 갖추고 있어 탄탄하고 안정적인 키감을 자랑한다

▲ 왜 내 것이 아닌데 설레지..?

▲ 비키 스타일의 하우징 덕택에 은은하게 보이는 하이퍼엑스 레드 스위치

▲ 개인 취향이지만 적축은 PBT 키캡과 함께 쓰는 맛이라고 생각한다

▲ 그래서 키캡도 따로 구입했다

▲ 하이퍼엑스 PBT 푸딩 키캡! 국내에는 아직 PBT 버전이 정발되지 않아 해외 직구로 구했다

▲ 국내 정발된 ABS 푸딩 키캡과 구성은 비슷하지만 도면(?)까지 주는 섬세함이 있다

▲ 비교를 안해볼 수 없지. 좌측부터 기본(ABS) / 푸딩(ABS) / 푸딩(PBT)



▲ 좌: ABS / 우: PBT

▲ ABS는 나처럼 손에 기름이 많은 유저에게는 가혹한(?) 사용 흔적을 남긴다

▲ 근접해서 보면 돌기가 보이는 PBT 푸딩 키캡

▲ 윤활제는 그냥 자주 사용하는 가성비의 제품으로 구입했다

▲ 선물 주러 가는 길

▲ 그럴싸해보이는 자리였지만

▲ 친구가 사용하던 키보드 + 마우스 세트를 보니 분노가 차올랐다. 콘텐츠 기획의 원흉

▲ 윤활에 앞서, 키캡을 제거하자

▲ 모든 키캡을 제거했으면 준비 완료!

▲ 인간이 집중하면 등이 굽는 것은 자연의 이치

▲ 잘 막았다고 생각했는데도 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정교하게 뿌리는 것을 포기하고 따로 닦아내자

▲ 스태빌 윤활은 연습 때처럼 치간칫솔로 구석구석 도포한다

▲ 윤활 포인트는 꺾이는 지점과 끝부분. 즉, 플라스틱과 철이 맞닿는 부분이다

▲ 체리식 스태빌라이저를 초록선으로 표시해봤다. 위치마다 방향이 다르니 참고하도록 하자

▲ 틈이 좁기 때문에 구석구석 윤활하기 위해서는 핀셋 혹은 손으로 살짝 들어줘야 한다

아 다르고 어 다르니.. 머스크? 앞머리가 너무 불편해서 그만..

▲ 친구야, 니 여자친구에게 뺏긴듯 하다

▲ 설정이 아닌 실제상황





■ 간단한 테스트 및 후기

▲ (윤활 전) 하이퍼엑스 적축 타건 영상

▲ (윤활 후) 하이퍼엑스 적축 타건 영상

친구는 매우 만족해했다. 당연하지.. 네가 쓰던 키보드랑 가격을 비교하면 키캡을 빼고도 10배는 비쌀 테니.

키보드에 관심이 많은 유저야 스프레이 윤활을 한 직후에 어느 정도 차이가 느껴지겠지만, 예민하지 않은 유저들의 경우 "이거 윤활된 거 맞아?"라고 할 수도 있다. 특히 키보드의 가격이 올라갈수록 원제품 윤활에 신경을 많이 쓰다 보니 그 차이가 더 미비하게 느껴질 수 있겠다. 정보에 의하면 일주일 정도는 평소처럼 사용해야 윤활이 제대로 먹는다고 하니 천천히 키감을 느껴보며 윤활 정도를 조절하도록 하자.

스프레이 윤활의 특장점은 아무래도 시간 절약에 있다. 처음 해봤음에도 불구하고, 노닥 거린 시간과 화장실 간 시간을 포함하여 약 2시간밖에 걸리지 않았다. 생각보다 길다고? 키보드 커스텀 전문가들이 제품을 해체하여 윤활에 정성을 쏟아 평균 6시간 정도 걸린다는 것을 감안하자. 똥손인 내가 해도 간단해서 직접 내 손으로 커스텀 한다는 뿌듯함은 덤.

어쨌건 손쉬운, 말 그대로 간이 작업이기 때문에 기판을 뜯어 붓질로 섬세하게 하는 풀 윤활 작업보다는 정밀도에 있어서 단점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키보드 잡음이 거슬리는데 공방에 의뢰하기엔 다소 부담스러워 그냥 참고 있는 게이머에게 스프레이 윤활은 한번 즈음 시도해볼법한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나 또한 지인의 의뢰가 들어온다거나, 노는 키보드가 생긴다면 더 해볼 계획이다.

다만 거듭 강조하지만 윤활 작업은 "이 소리 뭐지?", "아 뭔가 타자 칠 맛이 안 나는데" 등의 내 키보드에 대한 불만이 생겼을 때 알아보는 것을 추천한다. 별도의 윤활 작업 없이 지금 나의 키보드에 만족한다면 할 필요가 전혀 없는, 선택적인 요소라는 점을 꼭 염두에 두도록 하자.

▲ 하이퍼엑스 전용 유틸리티를 통해 RGB 패턴을 변경할 수 있다

▲ RGB 패턴에 잘어울리는 아케이드 헤카림을 선택(당)한 친구

▲ 영롱한 하이퍼엑스 PBT 푸딩 키캡, 국내 정발이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