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버스터 로그라이크


소니의 2021년 첫 번째 독점작이자 대규모의 자본이 투입된 '리터널'은 로그라이크 장르의 게임이다. 아마 로그라이크 게임을 자주 접해본 게이머라면 묘한 기시감이 느껴질 것이다. 로그라이크는 주로 인디 쪽에서 자주 만들다 보니 '인디=로그라이크'라는 인식이 은연중에 자리 잡았다. 이 때문에 AAA급 타이틀로 나온다는 이 게임의 정체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우스마퀴가 개발했다는 점 역시 궁금증에 불을 지피기 충분했다. 하우스마퀴는 23년 동안 아케이드 장르의 슈팅 게임을 개발한 회사로 로그라이크 장르와는 연이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왜 아케이드 게임 개발사는 대규모의 자본을 가지고 로그라이크 장르의 게임을 만든 걸까. 그리고 대규모의 자본이 들어간 로그라이크 게임은 과연 인디 게임보다 나은 차별성을 보여줄 수 있을까?


게임명 : 리터널(Returnal)
장르명 : 로그라이크 액션 TPS
출시일 : 2021.04.30.
개발사 : 하우스마퀴
서비스 : 소니
플랫폼 : PS5

관련 링크: '리터널' 오픈크리틱 페이지


스토리 위주의 로그라이크

▲ 수준급 그래픽은 일단 감탄부터 나온다

먼저, 로그라이크 장르만의 특징을 꼽자면 스토리보단 플레이에 집중하고 죽었을 때 모든 것을 잃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 주인공은 죽음과 부활 사이를 끊임없이 반복하게 되는데, 이때 반복 플레이의 지루함을 해소하고자 랜덤 요소를 넣어 매판 색다른 경험을 얻을 수 있도록 만든다.

'리터널'만의 차별 요소는 스토리에서 시작한다. 앞서 로그라이크 장르가 스토리보단 플레이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인다고 언급했다. 주인공이 죽고 다시 살아나는 이유는 게임마다 가지각색이지만, 죽음과 부활 자체에 큰 의미를 부여하기보단 주인공의 전체적인 목적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는 편이다.

가령, '하데스'를 예로 들자면 주인공은 지옥을 탈출한다는 목표에 의미를 둘뿐 죽어서 다시 살아나고 그 안에서 무언가 일어나는 일련의 사건들에 모든 의미를 부여하진 않는다. 게임 플레이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사소한 이벤트에 지나지 않으며, 이를 게임의 핵심을 관통하는 스토리로 보진 않는다는 소리다.

▲ 운전 중에는 방심하지 맙시다

반대로 '리터널'은 주인공은 중심으로 펼쳐지는 스토리의 비중이 매우 크다. 출시 이전 인터뷰에서 하우스마퀴는 개발 초기에 캐릭터의 설정에 큰 노력을 들였다고 밝힌 바 있다.

주인공 '셀린'은 미확인 신호를 찾아 어느 행성에 왔다가 불시착하면서 행성에 고립되고 만다. 그런데 무슨 연유에서인지 행성에서 미래의 자신이 녹음한 파일과 알 수 없는 외계 문명을 발견하게 되고 죽어도 다시 시간을 되돌아가는 타임 루프를 겪게 되는 일련의 사건을 다루고 있다.

만약 억지로 넣은 스토리와 캐릭터였다면 없는 것만 못한 마이너스 요소가 됐을 것이다. 실제로 게임 첫 공개 당시에는 주인공 캐릭터가 액션 장르에선 다소 드문 할머니 설정이라 말이 많기도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리터널'의 스토리는 게임의 장르와 꽤 잘 어우러져 계속해서 궁금증을 유발한다. 전체적인 스토리는 SF 장르로서 주인공이 타임 루프를 겪어 죽어도 다시 살아난다는 설정을 자연스럽게 녹여냈다.



또한, 특정 구간마다 스토리를 알려주는 컷신이 등장하거나 전투 중에 사망했을 경우, 주마등처럼 옛 기억들을 파노라마 형식으로 빠르게 보여주는 등 게임 내내 스토리에 대한 떡밥을 계속 흘려준다. 다양한 떡밥들이 처음에는 중구난방처럼 느껴지지만, 게임을 진행하다 보면 퍼즐처럼 하나둘씩 맞춰가면서 마치 스토리 엔딩이 존재하는 게임을 끝낸 것 같은 경험을 선사한다.

다만, 스토리가 전체적으로 SF 장르를 기반으로 두고 있으므로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 평소에 SF 장르를 자주 접하지 않았다면 타임 루프나 외계 문명에 대한 설정, 각종 용어가 생소하게 느껴질 수 있으며, 이런 자잘한 설정들이 스토리의 몰입을 방해한다. 아무래도 초현실이란 내용이 복잡해질 수밖에 없는 장르인지라 이쪽 장르의 팬이 아니라면 세세한 줄기를 감상하기보단 전체적인 맥락을 짚어가는 방식이 스토리를 이해하기 더 쉬울 것이다.

▲ 또 다른 나를 발견한다거나

▲ 뜬금없이 집이 튀어나오는 등 흥미진진한 스토리 전개를 보여준다



23년 아케이드 슈팅 외길 인생의 참맛

로그라이크 장르는 다른 장르와의 결합이 쉬운 편에 속한다. 게임 플레이가 딱히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고 게임 룰에 더 가깝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까지 출시된 로그라이크 게임을 살펴보면 액션부터 슈팅, 퍼즐, 플랫폼 등 다양한 장르와 결합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리터널'은 로그라이크에 대중적인 게임 방식인 슈팅과 TPS를 결합한 게임이다. 대부분의 로그라이크 게임이 2D를 기반으로 만드는 것과 대조된다. 사실 지금까지 3D 작품이 적었던 이유는 간단하다. 로그라이크는 주로 인디 개발사에서 만들었으며, 3D를 제대로 만들기에는 비용도 많이 들고 개발도 까다롭기 때문이다.

게다가 개발이 어려운 것은 둘째치고 플레이 난이도도 훨씬 어려워진다. 2D는 탑뷰 시점 기준으로 동서남북에서 날아오는 총알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지만, 3D는 상하좌우에 시야를 돌려가면서 봐야 하고 여기에 점프와 지형지물의 낙차까지도 생각해야 한다.


하지만, 어려운 만큼 제대로 만들었을 때는 2D에서는 느껴볼 수 없는 뛰어난 액션과 손맛을 느낄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봤을 때 '리터널'의 슈팅 플레이는 합격 수준을 넘어섰다.

그도 그럴 게 개발사인 하우스마퀴는 무려 23년 동안 아케이드 시장에서 슈팅 게임을 개발해온 곳이다. 슈팅 장르에 한해서라면 고일 대로 고인 사람들인 셈이다. 유일하게 걱정되는 부분은 3D TPS 장르의 슈팅 게임을 만든 것이 이번이 처음이라는 점이었는데, 실제 플레이를 해보니 괜한 걱정이었다.

먼저, '리터널'은 TPS에 슈팅 요소를 녹여내기 위해 몇 가지 변화를 줬다. 플레이어가 쏘는 총알은 탄속이 매우 빨라 거의 히트박스처럼 느껴지게 만들었고 반대로 적들의 총알은 상대적으로 속도를 느리게 만들어 보고 대응할 수 있다.

▲ 일반적인 투사체부터

▲ 레이저빔도 쏜다

슈팅 게임은 탄막에 죽고 탄막에 사는 장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탄막을 얼마나 합리적인 방식으로 뿌리냐에 따라 게임의 난이도와 재미가 결정된다. 특히, 탄을 보고 피하는 게임인 만큼 직관성 또한 중요한 편이다.

플레이어가 쏜 총알은 탄속도 빠르고 이팩트도 간결하거나 혹은 작은 수준이라 화면을 크게 가리지 않는다. 반대로 적들의 탄은 속도도 느리고 크기도 큼직하니 탄막을 직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물론, 보조 무기로 발사하는 탄환과 무기별 특수 탄환 중에선 이팩트가 화려하고 시야를 가리는 투사체가 있긴 하지만, 전투에 크게 방해될 수준은 아니었다.

투사체의 형태도 꽤 다양한데 일반적인 공 모양의 투사체를 발사하는 것부터 레이저를 쏘거나 근접 공격을 하기도 한다. 스테이지마다 적들이 랜덤으로 등장하는데 보통 많으면 10마리까지도 등장하며, 공격 방식이 저마다 다르니 꽤 다채로운 탄막을 만들어낸다.


탄막의 난이도는 일반적인 슈팅 게임 기준으로 봐도 꽤 어려운 축에 속한다. 앞뿐만 아니라 좌우, 뒤까지 신경 써야 하니 전투가 정신없이 펼쳐진다. 무적 회피와 함께 시야에서 안 보이는 적과 총알을 파악할 수 있도록 전투 중 일정 거리에 접근한 적의 방향을 알려주는 표식과 미니맵에 적의 위치를 표시해주긴 하지만, 날아오는 총알을 파악하기도 벅찬 상황에서는 별 소용이 없다.

다만, 슈팅 손맛만큼은 근래 했던 게임 중 제일 만족도가 높았다. '리터널'은 PS5 독점 게임으로서 PS5의 최신 기능을 모두 지원하는데 미세한 진동을 잡아내는 '햅틱'과 게임 설정에 따라 트리거의 감도를 자동으로 조종해주는 '적응형 트리거', 전후 소리를 구분해주는 3D 오디오까지. PS5에서 새롭게 추가된 각종 신기술을 모두 체험해볼 수 있다.

원래 기자는 패드보단 키보드+마우스가 더 익숙한 유저였는데, '리터널'을 하면서 PS5 패드의 참맛을 알아버렸다. 총을 쏠 때마다 울리는 진동과 트리거로 당기는 슈팅의 참맛은 게임의 몰입도와 전투의 재미를 배가시킨다. 현재 PS5 패드의 성능을 모두 끌어낼 수 있는 게임은 몇 없으므로 새로운 기술이 도입된 액션 게임을 해본다는 것 자체로도 '리터널'을 플레이할 이유는 충분할 것이다.



로그라이크 장르만의 매력은 부족함



슈팅 플레이의 완성도가 높은 만큼 로그라이크 장르만의 매력이 부족한 점이 아쉽게 다가왔다. '리터널'은 일반적인 로그라이크 게임처럼 캐릭터가 죽으면 최초의 지역에서 다시 살아나고 그전에 얻었던 모든 장비를 잃어버린다. 대신 얻었던 무기의 정보와 각종 지식 등은 죽어도 계승되며, 인 게임 재화로 쓰이는 에테르와 슈트에 특별한 능력을 해금시켜주는 영구 장비 역시 사라지지 않는다.

플레이 방식도 비슷하다. 랜덤하게 등장하는 스테이지와 각종 무기, 아이템을 모아 캐릭터를 육성하고 수수께끼로 가득 찬 미로 같은 숲을 탐험한다. 아쉬운 점은 일반적인 로그라이크 게임을 따라갔지만, 깊이가 부족하다는 점이다.

로그라이크 게임은 마치 '디아블로' 시리즈의 하드모드처럼 캐릭터가 죽으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니 반복 플레이가 요구된다. 아무리 재미있는 게임이라 할지라도 똑같은 구간을 계속 반복하면 금방 지루해지니 반복 플레이의 피로도를 낮추고 흥미를 높이고자 랜덤 맵과 무기, 아이템을 넣어 매판마다 색다른 즐거움을 느낄 수 있도록 만드는 편이다.

▲ 아이템의 성능이 살짝 애매한 편이다

이러한 반복 플레이 부분에서 '리터널'은 구색만 갖췄다는 느낌을 들게 한다. 랜덤으로 맵이 등장하는 것은 맞지만, 맵의 형태는 고정되어 있다. 즉, 형태가 고정된 맵들이 A-B-C순에서 C-A-B순으로 순서만 바뀌어서 계속 등장하는 것이다. 맵에 따라 등장하는 몬스터도 어느 정도 고정되어 있어서 몇 번 죽다 보면 데자뷰를 느끼게 된다.

무기와 아이템의 형태가 너무 딱딱한 점도 부족한 깊이에 한몫한다. 로그라이크의 반복 플레이가 재미있는 이유는 매판 색다른 플레이 스타일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대표적인 예로 '아이작'을 살펴보면, 탑뷰에 슈팅 게임인 점은 똑같지만, 아이템의 가짓수가 워낙 많고 아이템마다 특징이 뚜렷하니 매판마다 다른 플레이 스타일로 게임을 즐길 수 있다.

'리터널'도 다양한 무기와 아이템이 있지만, 플레이 스타일을 획기적으로 바꿀 만큼의 변화를 주진 못한다. 권총, 샷건, 라이플 등의 총은 발사 스타일이 다른 만큼 차별화 된 조작감을 느낄 수 있지만, 총기에 달린 옵션이 제한적이라 몇 번 쓰다보면 금방 익숙해져버린다. 또한, 레벨이 높은 총을 얻어도 제한적인 옵션과 성능 때문에 순식간에 강력해졌다는 체감을 느끼기 어렵다.

▲ 오염 패널티가 꼭 있어야 할까란 의문이 들기도 한다

게임 중 얻는 장비 혹은 특정 상자에는 오염이란 시스템이 존재하는데 득이 되는 효과와 페널티를 동시에 부여해주는 장치다. 강력한 효과 혹은 좋은 아이템이 나올 확률이 높은 상자일수록 오염될 확률이 높아지며, 페널티 역시 플레이에 지장을 줄 만큼 성가신 것들이 많다.

오염 수치는 특정 조건을 만족할 경우 해제할 수 있는데, 몬스터를 몇 마리 처치하거나 아이템을 몇 회 제작하는 등의 간단한 방식부터 다중 처치 몇 회 달성, 아티팩트 몇 회 습득 등의 다소 번거로운 방식도 존재한다. 강력한 성능의 아이템을 아무 조건 없이 습득하는 것을 방지하고 파밍을 전략적으로 생각할 수 있게끔 만들어주는 장치지만, 막상 게임을 해보면 왜 있을까에 대해 의문이 드는 장치로 다가온다.

오염도로 얻는 장비라고 해봤자 사실 일반 필드에서 얻는 장비와 다를 게 없다. 위험을 감수한 만큼 훨씬 좋은 장비가 나온다면 고민을 해보겠지만, 득보다 실이 많은 것 같으니 급하지 않은 이상 굳이 할 필요가 없는 셈이다. 나중에는 오히려 귀찮아서 거들떠보지도 않게 된다.

▲ 같은 무기에 레벨이 높아지면 그냥 데미지나 범위가 증가하는 심플한 구조다

이렇듯 게임을 진행하면서 다양한 아이템을 얻었는데 처음과 딱히 다른 점을 느끼지 못하니 새로운 아이템이 나와도 감흥이 없고 결국 반복적인 플레이를 하고 있다는 느낌만 든다. 전투 자체가 워낙 재미있다 보니 초반에는 이를 쉽게 느끼기 어렵지만, 결국 게임이 어려워서 자주 죽는 상황이 온다면 피곤해질 수 있다.

요약하자면 아이템 파밍을 통한 캐릭터 육성의 즐거움을 느끼는 방식이 아니라 아이템은 부가적인 요인일 뿐 플레이어의 컨트롤 실력에 큰 영향을 받는 방식이다. 컨트롤만 좋으면 무슨 아이템을 끼든 한 번도 죽지 않고 끝까지 갈 수 있으므로 파밍의 가치가 떨어지는 편이다. 아이템을 획득해봤자 컨트롤이 부족하면 제대로 쓰지도 못하니 굳이 위험을 감수하면서 위험한 지역에 가려고 하지도 않게 되고 정형화된 게임 플레이를 반복할 수 있다.

또한, 컨트롤이 부족한 게이머라면 부족한 컨트롤을 아이템으로 채울 수가 없으니 가뜩이나 어려운 게임이 더 어렵게 느껴질 것이다. 난이도가 고정이라 조절도 못 하니 게임에 적응하기 위해선 수십 수백 번의 죽음을 참아내야 할 것이다.

▲ 사람 살려





로그라이크의 깊이가 부족한 점과 어려운 난이도를 감안해도 '리터널'은 충분히 매력적인 게임이다. 풀프라이스 게임으로 게임의 볼륨이 풍부하며, 슈팅 장르의 완성도가 높은 데다 타격감과 조작감, 액션 모두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올해 첫 번째 소니의 독점작으로 PS5의 기능을 모두 활용했다는 점도 PS5를 보유한 유저라면 한 번쯤은 구매해볼 만 하다.

적어도 슈팅 게임으로서의 불합리함은 없으니 어려운 난이도는 반복 플레이를 통해 충분히 극복할 만 하다. 게임을 진행하다 보면 다양한 영구 장비를 얻어 숏컷도 뚫을 수 있고 스토리 진행도 흥미진진하니 약간의 끈기만 가지고 있다면 불편함을 감내하고 즐길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