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운 내가 더 외로워지는 게임


'잇 테익스 투(It Takes Two)'는 2인용 게임의 명가, '헤이즈라이트'가 개발한 액션 플랫포머 게임입니다. 30년 전에나 말하던 오락실의 두 마리 용 '2인용'을 말하는게 퍽 어색해 보일지도 모르지만, 헤이즈라이트는 지금껏 2인용 게임만을 개발해 게임 산업에 센세이션을 일으켰습니다. '어 웨이 아웃(A Way Out, 2018)'과 '잇 테익스 투'모두 두 사람을 위해 만들어진 게임이죠. 혼자서는 게임 자체를 못합니다.

그러다 보니, '잇 테익스 투'를 둘러싼 게이머 반응도 게임 자체보다는 '2인용'이란 키워드가 중심이 되곤 했습니다. 출시 후 한 달이 지났지만, 게임 자체에 대한 이야기보단 '혼자서는 못 하는 게임', '솔로의 애환을 자극하는 게임', '고사양 PC보다 더 높은 진입 장벽을 보여주는 게임'등의 우스갯소리가 더 많이 들리는 게임입니다. 반면, 게임을 어떻게든 즐긴 게이머들과 평론가들 사이에선 사뭇 다릅니다. 'GOTY 수상을 충분히 노려봄직한 수작'이라거나, '이 정도로 재밌을 거란 생각은 하지 못했다'라는 좋은 평가가 연일 쏟아지고 있습니다.

PS4시절, 몇몇 명작 게임엔 이런 말이 있었습니다. "PS4를 사서라도 해야 하는 게임이다." 어디 한 번 봅시다. '잇 테익스 투'가 없는 친구를 사귀어서라도 해야 하는 게임인지, 게임에 전혀 관심 없는 가족을 꼬셔서 할 만한 게임인지 말이죠.


게임명 : 잇 테익스 투(It Takes Two)
장르명 : 플랫포머, 협동, 액션
출시일 : 2021.03.26.
개발사 : 헤이즈라이트
서비스 : EA
플랫폼 : PC, 8,9세대 거치형 콘솔 일체


관련 링크: '잇 테익스 투' 오픈크리틱 페이지



뻔하지만, 반칙같은 완성도의 내러티브


엔지니어이자 집안 수입을 책임지는 어머니 '메이'와 주부로서 집안일을 도맡고 로즈를 돌보는 '코디'는 결혼 생활의 끝을 눈 앞에 두었습니다. 감성적인 코디와 이성적인 메이는 사사건건 부딪히고, 결국 '이혼'을 입에 담는 단계에 이르렀습니다. 하루 이틀 싸워서 이렇게 된 건 아닙니다. 수년의 세월 동안 이들 부부 사이엔 해묵은 갈등이 덕지덕지 끼었고, 부부생활의 원동력이 될 사랑이라는 엔진은 이 기름때를 이기지 못해 멈춰가고 있는 상황인 거죠.

그리고, 이들의 딸 '로즈'는 부모의 다툼이 모조리 제 탓인 것 같아 속상하기만 합니다. 나무 조각과 털실을 엮어 엄마 '메이'의 인형을 만들고, 진흙에 풀을 붙여 아빠 '코디'의 인형을 만든 후 두 인형이 사이좋게 지내는 인형극으로 원인 없는 죄책감을 달래고, 가족의 평화를 바라죠.

▲ 사사건건 충돌하는 '코디'와 '메이'

그러다 어느 날, 엄마와 아빠가 화해하길 바란다는 소원을 빌며 흘린 눈물이 인형에 닿았을 때, 코디와 메이는 인형 속으로 들어와 버립니다. 위기의 부부에서 한 쌍의 인형이 되어버린 이들은 마법을 풀고 다시 로즈의 부모가 되어 하던 이혼을 마저 하기 위해 모험에 나섭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굉장히 뻔한 이야기입니다. 사이가 좋지 않은 부모, 파국의 위기를 맞은 가족. 드라마에서는 뻔질나게 나오는 구도이며, 아이의 도움과 노력으로 부모 사이가 다시 좋아지고 아이가 바라보는 가운데 되돌아온 사랑이 뚝뚝 떨어지는 눈망울로 입을 맞추는 엔딩은 너무 많이 봐서 뻔하기 그지 없는 엔딩입니다. 달리 말하면, 그만큼 오래 검증받았고, 무조건 통하는 이야기라는 뜻도 됩니다.

▲ 뜬금 인형이 되어버리면서, 게임이 시작됩니다.

구조적으로 보면, 대부분의 게이머가 공감할 수 있는 가족 간의 갈등과 사랑이란 주제를 내러티브의 중심에 배치해 시선을 강하게 끕니다. '잇 테익스 투'의 도입부는 영화 못지 않은 성우들의 호연으로 일단 게이머들이 게임을 끄지 못하도록 만듭니다.

보통 이렇게 되면 이후는 게임 플레이의 재미가 게이머를 붙잡아두기 마련입니다만, 개발사는 게임 플레이 과정에도 내러티브를 뺴놓지 않았습니다. 게임 내내 이들의 갈등이 어디서 시작되었고, 어떤 갈등들이 있었으며, 그걸 두고 부부는 어떤 생각을 했는지, 그리고 상대의 생각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를 그립니다.

▲ 수년에 걸친 갈등인 만큼, 쉽게 봉합되진 않습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도, '코디'와 '메이'는 끊임없이 싸웁니다. 다시 돌아가면 무조건 이혼하고 말겠다고 폭언을 날리고, 상대의 상처를 서슴없이 헤집기도 하지만, 그러면서도 공동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끝없이 대화를 나누죠. 그리고, 이들의 갈등과 이기심, 가려진 사랑과 애정을 상징하는 다양한 보스들과 만나며 게임의 끝을 향해 나아갑니다.

잇 테익스 투의 '내러티브'는 굉장히 뻔하지만, 높은 완성도를 지니고 있으며, 강한 힘을 보여줍니다. 저와 함께 게임을 한 인벤 취재부 팀장님은 세계 최고의 게임을 '마리오'를 꼽는 마리오주의자이기에 게임 내내 "이 부분은 마리오 못지 않다", "와 이건 마리오보다 나은데?"라며 마리오를 플랫포머 게임의 기준으로 삼는 분이지만, 개인적으로 저는 마리오라는 시리즈에 큰 재미를 느끼지 못합니다.

▲ 몇몇 연출은 다이하드 부럽지 않은 수준

마리오의 게임 디자인이 훌륭하다는 건 알고 있지만, 솔직히 뭔 이야기인지 잘 모르겠거든요. 하지만, '잇 테익스 투'는 후술할 게임 플레이도 플레이지만, 매력적인 이야기 때문에라도 계속 플레하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였습니다. 팀장님이나 저나 둘 다 유부남인 관계로 리뷰를 쓸 플레이타임을 뽑는 데 한 달이나 걸리긴 했지만요.

▲ 군국주의 다람쥐부터 용병 딱정벌레까지 별 게 다 나옵니다.



'액션'의 모든 것을 모아 둔 게임 플레이


게임 플레이를 봅시다. 훌륭한 내러티브는 훌륭한 게임의 조건 중 하나이지만 어디까지나 조건에 그칠 뿐, 핵심이 될 수는 없습니다. 좋은 게임이라면, 게임 플레이가 무조건 재미있어야 하죠. 그런 면에서, '잇 테익스 투'의 게임 디자인은 다소 독특합니다. 다른 게임들과는 개발 철학 자체가 다르다고 해야 할까요?

일반적으로 흥행하는 게임들은 게임 전체를 아우르는 핵심 디자인이 존재하고, 이에 맞춘 여러 요소가 덕지덕지 붙은 모양새를 띄고, 우리는 이 핵심 디자인을 '장르'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잇 테익스 투'는 전통적 장르 구분이 힘들 정도로 온갖 게임의 모양새를 띄고 있습니다. 게임 전체를 관통하는 디자인은 오로지 '화면 분할 협동'밖에 없죠.

▲ 나는 비행기를 몰테니 너는 총을 쏘고

▲ 나는 또 비행기를 몰테니 너는 주먹을 휘두르렴

▲ '성공'

'점프 액션'으로 구분되는 전통적인 플랫포머부터, 슈팅, 대전 격투, 리듬게임, 비행, 레이싱, 쿼터뷰 액션 등 일반적으로 '액션'의 범주에 들어가는 모든 게임 디자인이 잇 테익스 투라는 게임 안에 녹아 있습니다. '코디'가 장애물을 피해 비행기를 조종하는 와중 '메이'는 날개 위에서 보스와 대전 격투를 치러야 하고, '메이'가 2인칭 플랫포머 게임을 할 때 '코디'는 슈팅을 통해 메이가 갈 길을 열어 줘야 합니다.

이렇듯, '잇 테익스 투'는 지금껏 검증된 특정 게임 장르를 기본으로 삼거나, 반대로 배제하는 일 없이 상황에 걸맞는 최적의 게임 디자인을 자연스럽게 녹여내고, 이를 통해 질리지 않는 재미를 추구합니다. 이 과정에서 화면 분할이나 연출, 그리고 시점 전환 등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이뤄지기 때문에 게이머 입장에서는 연신 감탄을 내뱉게 되죠.

▲ 자연스럽게 쿼터뷰 액션이 되는가 하면

▲ 전통의 2D 횡스크롤 플랫포머가 되기도 합니다.

'잇 테익스 투'의 콘텐츠 길이는 대략 12시간 분량에 달합니다. 최근 등장하는 게임들의 플레이 시간에 비추면 그리 길다고 볼 수 없는 시간이지만, 게임 장르가 '플랫포머'라면 짧다고 말하기도 어려운 분량입니다. 하지만, '잇 테익스 투'는 이 시간 전체에 걸쳐 수없이 많은 장르적 변화를 줌으로서 게이머가 '지루함'을 느낄 틈을 없애버렸죠. 게임 중간중간 보이는 25종에 이르는 미니 게임 또한 놓칠 수 없는 재미 포인트입니다.

여기에, 높은 속도감과 적절한 난이도가 더해져 있습니다. '잇 테익스 투'의 특징 중 하나라면, 단순하지만, 반사신경을 요구하는 속도감 높은 구간이 다소 많이 포함되어 있다는 겁니다. 레일과 레일 사이를 건너뛰며 미끄러지는 구간이나, 몇 번씩이나 로프를 타고 건너가야 하는 구간, 그리고 슬라이딩과 함께 장애물을 격파하거나 넘어가는 구간 등은 두 사람의 생각을 요구하기에 다소 처지기 쉬운 게임 플레이 템포를 빠르게 잡아끄는 역할을 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에 '잇 테익스 투'의 핵심 가치인 '협동'과 '상호 작용'이 녹아 있습니다. 게임의 모든 구간은 무조건 두 사람이 협력해야 클리어할 수 있으며, 일부 구간은 시간을 정확히 맞춰야 넘어갈 수 있는 등 끊임없이 서로간의 대화를 요구합니다. 한 문장으로 표현하자면, "어떻게 해야 2인용 게임을 재미있게 만들 수 있는지 치열하게 연구한 결과"와 같다고 해야 할까요?

▲ 고민할 시간을 안 주는 빠른 속도감은 물론

▲ 서로 경쟁할 수 있는 미니 게임이 수없이 등장하는가 하면

▲ 게임 진행과는 별 상관 없지만 그냥 재미있는 구간도 있습니다.



'가족'을 그렸지만, '가족과 하긴 어려운' 게임


약간 아쉬운 부분을 말해 봅시다. '잇 테익스 투'는 부정할 여지가 없는 수작이며, GOTY 최다 수상까지는 몰라도 십수 개는 받을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닌 게임입니다. 이미 점수가 이를 검증하고 있으며, 플레이 리뷰를 살펴보아도 친구가 없어서 할 수 없다는 말은 있을지언정, 게임 자체에 대한 재미나 완성도를 부정하는 내용은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죠. 하지만, 이런 게임에도 아쉬운 점은 분명 있습니다.

일단 하나는, 지긋지긋하게 나오는 '친구가 없으면 할 수 없다'라는 부분입니다. 이 문장을 조금 다르게 해석해보죠. 그럼 친구가 아닌 가족과 함께 하면 되는 것 아닐까요? 내용도 부부 사이를 다루겠다, 커플이나 부부가 하면 딱 좋을 텐데요. '기만자용 게임'으로 딱 적당한 게임으로 보이지 않습니까?

▲ 가족이랑 하면 딱 좋아 보이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잇 테익스 투'의 난이도는 숙련된 게이머들에게는 도전적이지만 어렵지 않은, 딱 적당한 황금 난이도지만, 게임을 처음 하거나 패드에 익숙지 않은 이들에게는 무척 어렵습니다. 실제로 게임을 함께 도전한 부부가 게임 내용이 무색하게 싸움에 이르렀다는 제보도 들은 바 있고, 저 또한 아내와 함께 하는걸 생각했지만, 도무지 아내가 저걸 소화해낼 거란 기대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굳이 제가 아내를 냅두고 불편한 회사 상사와 함께 패드를 잡은 이유도 적어도 그 분은 게임을 잘 하기 때문입니다. 함께 게임을 한 팀장님 또한 "게임 잘 하는 사람이랑 하면 모를까 와이프랑 하기엔 게임이 너무 어렵다"라고 말했죠. 그러다 보니, 결국 가족보단 함께 게임하던 친구를 찾게 되고, 그런 친구가 따로 없는 게이머들은 그 어느 게임보다 높은 진입 장벽 앞에 무너졌습니다. 저는 좀 재미없어도 되니 누구나 쉽게 할 정도로 난이도를 조절하는 기능이 있었다면 오히려 더 나았을지도 모르겠네요.

▲ '겜알못'에겐 보통 빡신 게임이 아닙니다.

한 가지 아쉬움을 더 꼽자면, 매 챕터의 플레이 디자인을 다르게 해둔 것은 너무나 멋지지만, '클리어' 외에 도전적 콘텐츠가 없다 보니 다회차 플레이 유도가 매우 약합니다. 끽해야 코디와 메이가 서로 역할을 바꾸는 정도일까요? 일단 한 번 끝을 내고 나면, 두 번, 세 번 게임을 플레이할 만한 욕구는 느끼지 못합니다. 솔직히 말해 플랫포머 액션 게임에서 다회차를 바라는 건 욕심에 가까운 일이지만, 이 정도 외에는 따로 아쉬움이 느껴지는 부분이 없다 보니 이런 말을 하고 있네요.

틀림없는 사실은, '잇 테익스 투'라는 게임이 너무나 잘 만든 2인용 게임이며, 함께 시간을 투자할 수 있는 게임 좀 하는 친구가 있다면 꼭 한번쯤 플레이해야 할 게임이라는 겁니다. 어쩌다 친해진 친구가 "넌 왜 나랑 친해지려 했어?"라고 물어올 때 "게임 하고싶은게 있는데 같이 할 사람이 없어서"라고 답하는 건 꽤 이상한 일이지만, 이 게임은 그 이상함을 무릅쓸 정도의 가치를 지녔습니다.

▲ 나랑 게임 하나만 해주지 않을래...?

아마, 게임 이름은 봤지만 그냥 "이런 게임이 나왔구나" 하고 그러려니 넘어간 분들이 꽤 많을 겁니다. 잠시만 생각을 돌려 한 번쯤 시도해 보시죠. 게임을 사주지 않는 한, 관심없는 친구에게 게임을 권하는 건 꽤 어려운 일이긴 합니다만, 이 게임은 한 명만 사면 다른 사람은 그냥 공짜 플레이도 가능합니다. 아예 게임을 사지 않아도, 챕터 하나는 데모 버전으로 플레이가 가능하니 '찍먹만 해 보자'고 하기도 적당하죠. 일단 그렇게라도 시작을 했다면, 분명 후회는 하지 않으실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