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그레이드지만 크니까 괜찮아



5월 13일,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의 최신작인 '어쌔신 크리드 발할라(이하 발할라)'의 첫 번째 스토리 확장팩인 '드루이드의 분노'가 출시되었습니다. 이전의 작품들에서 바예크가 페르시아로 향했고, 미스티오스가 아틀란티스로 갔듯, 이번작의 주인공인 '에이보르'가 탐험할 새로운 땅이 생겼죠.

발할라의 게임성이나 시스템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분도 다 알고 있고 출시 당시 리뷰로도 다뤘던 바 있습니다. 혹시나 게임을 안 해보신 분을 위해 간단히 말씀드리면, 균형의 수호자이자 바이킹인 에이보르가 노르웨이에서 만족하지 못하고 잉글랜드 동남부인 '데인로'로 건너가 분란을 일으키는 모든 이들의 머리를 도끼로 쪼개 잉글랜드를 평화의 땅으로 만드는 그런 평범한 어쌔신 크리드입니다.

관련링크 바로가기: [리뷰] LIKE A VIKING, '어쌔신 크리드 발할라'

하지만 문제가 있습니다. 어쌔신 크리드 뿐만 아니라 모든 싱글플레이 전용 게임이 그렇듯, 이런 대규모 DLC는 사긴 쉬워도 플레이하기가 영 쉽지 않습니다. 이미 게임을 손에서 놓고 수개월이 지난 지금, 조작법도 까먹고 이전의 스토리도 가물가물한 상태에서 이전의 세이브파일을 이어 플레이하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처음부터 새로 플레이하자니 수십 시간은 가뿐히 가져가는 분량을 다시 플레이해야 하나 고민되죠.

개인적으로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의 팬이지만, 전작의 확장팩인 '아틀란티스의 운명'은 플레이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미 출시 전에 3회차 이상을 달린 마당에, 다시 게임을 켜는 것도 쉽지 않았기 때문이죠. 그렇기에, 오늘 리뷰의 중점은 '과연 이 확장팩 때문에 게임을 다시 플레이할 가치가 있는가?'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살 만 하다면 게임을 살 가치가 있다는 뜻이고, 게임을 사냐 마느냐가 바로 리뷰의 존재 이유일 테니까요.

게임명 : AC 발할라: 드루이드의 분노
장르명 : 오픈월드, 액션, 어드벤쳐
출시일 : 2021. 5.13.
개발사 : 유비소프트
서비스 : 유비소프트
플랫폼 : PC(Steam), PS4,5, XBO




'아일랜드'로 떠난 바이킹

오랫동안 묵어뒀던 세이브파일의 로드가 끝나면, 게이머는 아일랜드에서 온 뭐시깽이가 본거지인 '레이븐소프'에 도착했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그렇게 만나는 빈말로도 예쁘다곤 할 수 없는 외눈박이 아주머니는 아일랜드의 소식을 들고 왔다며 에이보르의 사촌인 '바리드'가 더블린의 왕으로 있으며, 아일랜드와 잉글랜드 간 무역을 트고 싶다는 말을 전하죠. 다만, 아일랜드로 향하는 항로가 봉쇄되어 이를 뚫어내야 한다고도 덧붙입니다.

▲ 대충 아일랜드로 가야 한다는 뜻

부모님은 어린 시절 유명을 달리했고, 하나뿐인 형은 정신이 오락가락하며, 믿는 형수는 애인과 가족의 경계에 애매하게 놓여 있는 상황의 에이보르는 오랜만에 듣는 가족 소식에 신이 나 단신으로 해상 봉쇄선을 박살내버리고 곧장 아일랜드로 향하는 배에 오릅니다. 그리고, 정말 오랜만에 사촌과 머리가 굵어지다 못해 술을 먹고 덤비는 조카를 만나게 되죠.

하지만, 아일랜드의 상황은 에이보르의 예상만큼 평화롭지는 않습니다. 아일랜드엔 이미 수없이 많은 왕이 있고, 사촌인 '바리드'는 그 중 한 명이며, 전체적인 세력 구도는 종교와 경제의 얽힘에 따라 지고왕(High King)인 '플란 너 시나너'와 북부의 오웬이 양분하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이 때부터, 에이보르는 잉글랜드와 마찬가지로 아일랜드의 균형을 이루고 평화를 지켜내기 위해 모든 분란 종자들의 머리통에 도끼날을 박아주는 여정을 시작합니다.

▲ 이번 확장팩의 주요 인물인 '지고왕 플란'. 실존 인물입니다.

이 과정에서, 새로운 무기와 장비가 여럿 생겼습니다. 만들어둔 모델링을 폐기하기 싫었던 유비의 꼼수인지는 모르겠으나 '어쌔신 크리드 오리진' 이후로 모습을 보기 어려웠던 '코페쉬'가 대검 유형의 무기로 합류했으며, 마찬가지로 이집트에서나 볼법한 '의식용 낫(Ceremonial Sickle)'이라는 새 유형의 무기가 추가되었습니다. 아일랜드와 잉글랜드가 얽히는 이유가 '무역'이라는 설정에 맞게 이국에서 사 온다는 설정이죠.

이에 따라, 새로운 적들과 스킬 트리, 몬스터들도 등장합니다. 늑대소년을 비롯한 신화적 몬스터들은 물론, 새로운 무대에 걸맞게 말만한 개인 '아이리시 울프하운드'를 소환하거나, 상대를 기절시키는 박치기, 그리고 무난한 연막 화살 등의 어빌리티도 추가되었습니다. 아일랜드는 총 네 개의 주로 이뤄져 있고, 플레이 시간은 최소 8시간에서 길게는 30시간 정도까지 나오죠.

▲ 노지심 못지않은 박력

확장팩 이름이 '드루이드의 분노'인 이유는 기존의 북구 신화 중심이던 '발할라'와 달리 이번 확장팩의 기본 컨셉이 '켈트 신화'에 맞춰져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이야 '드루이드'라는 개념이 이런저런 형태로 미디어 믹스가 가해져버려 대충 야생동물을 잘 다루는 준마법사 정도로 여겨지지만, 사실 드루이드는 켈트 신앙의 사제를 일컫는 말이기 때문이죠. 어쌔신 크리드 신화 3부작의 중심이 결국 '신화'이듯, 이 드루이드들은 작품 내에 전반적으로 등장해 에이보르가 아일랜드를 누비는 또 다른 이유가 되어 줍니다.

이렇듯, 겉보기로는 얼핏 참 괜찮은 확장팩입니다. 새로운 땅, 새로운 무기, 새로운 신화, 그리고 어크 시리즈답게 막 엄청나진 않지만 충분한 완성도를 갖춘 새로운 이야기까지 갖춰졌죠. 콘텐츠에 대한 소개가 끝났으니, 그럼 이제 내면을 봅시다. 그것이 곧 게임을 살 만한 충분한 이유가 되는지 말이죠.


▲ 이렇게만 보면 이전과 꽤 달라 보이는데



사도, 안 사도 그만이지만, 뭔가 아쉬운 그 경계

먼저, 확실히 하고 갈 것이 있습니다. 아일랜드 '발할라'의 주 무대는 분명 잉글랜드입니다만, 출시 시점에서 이미 잉글랜드가 끝은 아니었습니다. 애초에 게임의 도입부인 '노르웨이'만 해도 잉글랜드와는 다른 별개의 무대고, 빈란드와 아스가르드도 독립된 지도로 존재합니다. 그리고 '아일랜드'는 이렇듯 이미 존재하던 네 곳의 무대에 추가된 하나의 지역이죠.

아일랜드가 잉글랜드만큼 넓다면 모를까, 그런 것도 아닙니다. 웬만한 독립 게임 수준의 사이즈긴 하지만, 본편 기준으로 보면 아일랜드는 단 네 개의 지역으로 이뤄져있는 지역이며, 타 군소 지역에 비해 압도적인 크기도 아니죠. 그렇다고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완전히 다른 형태의 지형으로 이뤄져 있다거나, 기존의 시스템과 완전히 다른 게임 시스템이 들어가 있지도 않습니다.

▲ 이전에도 여러 구역으로 나뉘어 있던 '발할라'

결국, 아일랜드에서 에이보르의 여정은 이전과 똑같습니다. 똑같이 술마시기 대결을 하고, 랩배틀로 상대 기분을 시궁창으로 만들고, 숨겨진 보물을 찾아내는 한편 이를 방해하는 모든 녀석들에게 평화의 도끼를 선물해주죠.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를 전혀 해본 적 없는 이가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아일랜드에서 게임을 처음 시작한다면 '우와'를 연발할 수도 있겠지만, 이미 쓴물 단물 다 맛본 본편 게이머들에게는 '오' 정도의 감탄사로 끝날 수준입니다.

그렇기에, '드루이드의 분노'라는 콘텐츠에 대해 평점을 내린다면 더도, 덜도 아닌 본편과 완전히 동일한 점수를 줄 수 있습니다. 무대만 바뀌었을 뿐, 게임의 핵심은 여전히 똑같습니다. 드루이드의 분노가 업데이트되면서 켈트 신앙이 본편의 무대에도 결합되어 잉글랜드 곳곳에 드루이드들이 출몰한다거나, 아일랜드 무역상들이 등장해 이들을 지키는 형태의 새로운 방어전 콘텐츠가 생겼다면 분명 이 확장팩은 '업그레이드'가 되기 충분했을 겁니다.


▲ '발로르'와의 전투가 그나마 본편에 없던 요소

하지만 결과적으로 확장팩의 등장은 게임의 전체적인 질적 향상이 아닌 양적 팽창만을 가져왔고, 이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옆그레이드'라는 한 단어로 표현할 수 있지요. 게임의 모든 새 콘텐츠를 새로 만든 '아일랜드'에 몰아넣었고, 그마저도 기본은 본편과 똑같으니 뭐 어쩔 수 없는 결과이긴 합니다.

다만, 시나리오적 기획 의도는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의 발전에 있어 분명한 플러스 점수가 될 수 있습니다. 발할라를 포함해 기존의 신화 3부작은 '거대 신화'라는 명백한 테마가 있었습니다. 오리진은 이집트 신화, 오디세이는 그리스-로마 신화, 그리고 발할라는 북유럽 신화가 서사의 근본이 되었죠. 하지만 이번 확장팩에서 '켈트 신화'가 뜬금 엉덩이를 들이밀었습니다. 확장팩이긴 하지만, 게임의 서사 중심이 되는 나무의 가지가 아닌, 아예 새 나무가 돋아나온 셈입니다.

▲ 새 유형이라 반가운 '의식용 낫'

이를 케이스 스터디로 적용하면 이렇게도 될 수 있습니다. 루머대로 다음 어쌔신 크리드가 일본을 배경으로 하는 게임이 된다면, 확장팩의 형태로 한반도가 등장할 수도 있는 거죠. 일본이 무대인 본편과 완전히 다른 문화권의 또다른 무대로 등장할 가능성이 생기는 겁니다. 물론 가능성도 낮고, 웬만하면 독립 작품이면 더 좋겠지만 말이죠.

하지만, 기획 의도가 아무리 좋은 방향으로 발전해 봐야, 그것은 시리즈 전체의 발전 방향에나 영향을 줄 뿐, 이번 확장팩에 가산점으로 적용될 수는 없습니다. 결국, '드루이드의 분노'는 이렇게 정리됩니다. 업그레이드가 아닌 옆그레이드, 규모 자체는 꽤 커서 웬만한 독립 게임만큼의 크기를 자랑하기에 '돈 값'은 그럭저럭 합니다만, 여태껏 그래왔듯, 게임의 전반적 개선이 아닌 양적 팽창만을 이뤄낸 확장팩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