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마스터의 '정석'은 무엇인가?



'좋은 리마스터'가 무엇일지 한 번 정의해봅시다. '원작의 게임성을 살려 팬덤을 만족시키고, 게임을 출시 당시보다 나은 비주얼로 포장하며, 가능한 한 원작의 불편함을 없앤다' 더 짧게 쓸 수도 있겠지만, 일단 급하게 문장을 만들면 이 정도로 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근래 쏟아진 수많은 리마스터 중 이를 모두 만족한 사례는 손에 꼽도록 적습니다. 원작의 인기에 기대다 이도 저도 아니게 되어버린 경우가 대다수죠.

애초에, '리마스터'는 한계가 명확합니다. 옛 명작을 아무리 잘 만들어봐야, 그 당시 원작이 받은 평가를 앞지를 수는 없습니다. 그래픽과 조작성이 현대화된다 해도, 게임 시스템 자체는 이전을 그대로 따라가는게 리마스터입니다. 그리고 당시의 명작이 아무리 좋은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다 해도 시간이 지난 지금 이를 되돌아보면 '낡았다'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죠.

그런 와중, 원작 팬들의 높은 기대감도 감당해야 합니다. 팬들은 원작의 재미를 원하면서도, 오늘날의 기술력을 온전히 투사한 작품을 원합니다. 게다가 원작이 유명한 게임이다 보니(애초에 유명하지 않은 게임은 리마스터를 하지 않으니까요) 개발 소식도 쉽사리 알려져 팬덤의 기대를 달굽니다.

잘 못만들어지면 욕이란 욕은 다 먹게 되고, 잘 만들어봐야 딱 원작 정도의 평가에 그치는 게 '리마스터'의 숙명입니다. 원작이 대단할수록 성공의 가능성도 높지만, 그만큼의 위험 부담을 안고 가는게 '리마스터'라는 작업이라는 뜻입니다.

하지만, 가뭄 중에도 콩은 나고 개천에서도 가끔은 용이 납니다. '매스 이펙트 레전더리 에디션'. 간만에 등장한 제대로 된 리마스터 작품이자, 바로 오늘 말씀드릴 게임입니다.

게임명 : 매스 이펙트 레전더리 에디션
장르명 : 슈팅, 액션, 어드벤쳐
출시일 : 2021. 5.15.
개발사 : 바이오웨어
서비스 : EA
플랫폼 : PC, XBOX, PS


관련 링크: '매스 이펙트 레전더리 에디션' 오픈크리틱 페이지


'리마스터'도 바뀌는 부분은 은근히 많다

원작에 비해 무엇이 바뀌었는지부터 봅시다. 일단 그래픽 수준이 통일되었습니다. '매스 이펙트 레전더리 에디션(이하 '리마스터 버전', 혹은 '레전더리 에디션'으로 칭함)'은 구 3부작의 본편과 DLC를 모두 모은 합본팩이며, 필연적으로 그래픽 수준의 차이가 있기 마련입니다. 1편과 3편의 출시 시기는 만으로 3년 정도이지만, 2000년대 후반기 ~ 2010년대 초는 그래픽 기술이 엄청난 속도로 빨라지던 시기였기에 수준 차이가 눈에 확연히 드러날 정도입니다.

▲ 솔직히 지금 봐주기엔 영 꼬릿한 1편의 그래픽

리마스터 버전에서는 이 모두를 하나의 엔진 빌드로 모두 갈아 놓았습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세 작품의 기반이 된 '언리얼 엔진 3'의 빌드 중 3편에 사용된 빌드로 갈아치웠죠. 때문에, 언리얼 엔진 4 기반으로 개발되는 현존 게임들과 비교할 만한 그래픽 수준을 갖추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1편과 3편 사이의 수준 간극은 느끼지 못할 정도로 상향 평준화되었습니다.

그렇다고 그래픽 수준이 3편 원작 기준에 맞춰진 것은 아닙니다. 그래픽 에셋이 모두 리마스터되었고 텍스처 해상도도 4K 기준으로 리마스터되었으며, 후처리 효과 및 HDR 지원이 포함되면서 3편의 비주얼도 상당 부분 개선되었습니다. 720p의 해상도로 재생되던 인게임 영상들도 4K 기준에 맞춰 리마스터되었죠.

▲ 비교해 보면 확실히 변하긴 했습니다.

단순 비주얼 뿐만 아니라 게임 내적으로도 꽤 많은 부분이 바뀌었습니다. 몇몇 애니메이션이 현대적으로 바뀌었고, 어느정도 게임의 윤곽이 잡힌 2, 3편과 달리 어설픈 면모를 보이던 1편의 전투 밸런스와 조작성이 2, 3편의 수준에 맞춰졌습니다. DLC 콘텐츠는 소스 유실로 개발되지 못한 일부 DLC 외에 모든 요소가 기본적으로 게임 내에 포함되어 있지요.

전체적으로 보자면, 3부작으로 쪼개지고, 그 안에서도 여러 DLC로 파편화되어 있던 안드로메다 이전의 매스 이펙트 3부작. 즉 '셰퍼드 트릴로지'의 완전판이라고 보아도 무방합니다. 예시로 들자면 피터 잭슨 감독의 '반지의 제왕 3부작'의 삭제 장면을 모두 포함한 확장판을 4K 해상도로 만든 다음 11시간이 넘는 볼륨 그대로 상영한 격입니다. 팬이 아니라면, 도대체 그 긴 영화를 어떻게 볼까? 싶지만 팬이라면? 그보다 더 좋을 수는 없죠.


▲ 팬이라면 1편을 켜고 매스 릴레이를 다시 탈 때의 감동을 피할 수 없습니다

게임의 완성도와 게임성은 전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매스 이펙트 시리즈는 PC 버전 기준으로 3작품의 메타크리틱 점수가 합산 300점 만점에 272점. 평균 90점을 넘긴 검증된 명작입니다. 게다가, 내러티브가 매우 중요한 게임 특성 상 소위 '시스템 빨'을 심하게 타는 게임도 아니다 보니 이 재미를 저해할 요소만 없다면 적당한 리마스터로도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는 작품이죠. 그리고 이번 리마스터 버전은 적당 그 이상의 품질을 보여줍니다.

무엇보다 멋진 점이라면, 우주를 구하고 죽었다 살아나고 또 우주를 구하는 셰퍼드의 모험을 중간에 걸리는 부분 없이 끝까지 즐길 수 있다는 점입니다. 구 3부작은 세이브 파일 연동이 되긴 했으나 제대로 작동이 안 되는 경우도 많았고, 그래픽 수준에 차이가 있다 보니 셰퍼드의 외형도 작품마다 천차만별로 달라지는 등 관절의 문제로 몰입이 떨어지는 경우가 잦았습니다. 하지만 리마스터 버전은 그럴 걱정 없이 통일된 수준의 그래픽에서 게임을 끝까지 즐길 수 있다는 굉장한 장점을 지니고 있지요.


▲ 좀 더 이뻐(?)진 캐릭터들을 보는 것도 재미 포인트



왜 바이오웨어는 '앤섬'만 한국어화해줬을까?

하지만, '레전더리 에디션'도 완벽한 게임이라 할 수는 없습니다. 서문에서 길게 얘기한 '리마스터' 특유의 한계가 그대로 드러나기 때문이죠. 마치, 소설의 등장인물이 아무리 똑똑해 봐야 작가의 똑똑함을 넘을 수는 없듯, 리마스터 작품은 아무리 용을 빼도 원작의 평가를 넘어갈 수는 없습니다. 리마스터의 출시 시점은 이미 센세이션을 일으키기엔 너무 시간이 지난 후일 테니까요.

일단, 많이 좋아졌다고 해도 오늘날 출시되는 AAA급 게임에 비해 비주얼 면에서 약하다는 건 어쩔 수 없는 부분입니다. 후처리와 해상도를 싹 손봤다고는 하지만, 결국 게임의 근본 엔진은 '언리얼 엔진 3'이기 때문입니다. '언리얼 엔진 5'가 이미 공개된 지금, 두 세대 전의 엔진은 아무리 쥐어짜봤자 현존 게임들의 비주얼에 비비기는 어렵습니다. 물론 오늘날의 게이머들 수준으로도 충분히 수용 가능한 수준이며, 불편함을 느낄 정도의 수준은 아니지만 말이죠.

▲ '괜찮다' 정도지 '우와 쩐다!'싶은 수준은 아닙니다.

또한, 내러티브가 굉장히 중요한 게임인 만큼, 원작에서 문제가 되었던 내러티브도 그대로 드러납니다. 특히 게이머들이 시리즈의 오점 취급을 하는 3편의 엔딩 부분도 원작 그대로에 달래기용 DLC가 적용된 그 사양 그대로 출시되었죠. 물론, 시나리오 플롯을 바꿔버린다는게 사전적 의미의 '리마스터'를 넘어선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패키지명을 '레전더리 에디션'으로 한 만큼 뜬금없이 등장한 데우스 엑스 마키나로 마무리되는 결말부를 수정할 당위성은 충분히 존재했다고 봅니다. 국내 팬덤이 해외에 비해 적었기에 비교적 이슈가 덜했을 뿐, 해외에서는 소송까지 갔던 사안이었던 만큼, 보다 개선된 사양의 게임 종반부를 만들었다면 진짜로 '레전더리 에디션'이 될 수 있었을 것 같습니다.

▲ 전자 초딩으로 끝나는 결말은 여전...

또 다른 큰 문제도 하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바이오웨어의 게임은 참 좋아합니다만, 바이오웨어 자체는 좋아할 수가 없는 이유죠. 도대체 이 회사는 왜 한국어화를 쏙 빼놓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게이머들이 알아서 유저 한글 패치를 제작하니까 그쯤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걸까요?

클래식 RPG를 제외한 바이오웨어의 주력 타이틀을 꼽자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게 매스 이펙트 시리즈고, 그 다음이 드래곤 에이지 시리즈입니다. 이 두 시리즈 모두 한국어화는 없습니다. 선량한 한국 게이머들의 자발적 노력으로 만들어진 유저 한글 패치만 존재할 뿐이죠. 그런데 차라리 모든 게임에서 일관적으로 한국어화를 빼버렸다면 이해할 수 있습니다만, 그와중에 앤섬은 또 한국어화를 해 놨습니다. 이 대목이 사람을 화나게 합니다. 한국은 망한 게임만 하라는 걸까요?

그 때문에, 레전더리 에디션을 플레이하면서도 굉장히 힘들었습니다. 평범한 한국 게이머의 의무 교육 수준의 영어로는 문장 하나하나를 읽고 해석하는데 시간이 걸리기 마련입니다. 뒤에서 총알이 날아들고, 노르망디호는 피격당해 와장창 터져나가는 와중 선택지를 읽다 보니 몰입도는 흩어지고, 게임을 하는데 피곤해 죽겠고 근데 또 게임은 재미있고 아주 정신이 나가는 줄 알았습니다.

▲ 뭐라는거야 진짜

정리해 보자면, '레전더리 에디션'은 매우 잘 만든 매스 이펙트 3부작의 리마스터 버전입니다. 그래픽은 상향 평준화되었고, '조각내 팔기'라고 욕먹던 DLC는 모두 합본으로 포함되어 있으며, 미식축구 쿼터백 뺨치던 여성 셰퍼드의 박력넘치는 애니메이션도 현실적으로 바뀌었습니다. 게임 자체가 워낙 대단했으니 리메이크가 아닌 리마스터만 해도 여전히 대단한 게임이 나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대단함을 가져온 만큼 기존 게임의 문제점 또한 고스란히 들고 왔습니다. '리메이크'가 아닌 이상 이 부분은 어쩔 수 없는 태생적인 문제이며, 사실 완벽한 게임은 없는 만큼 이 쯤이야 별 불편함 없이 플레이 가능합니다만, 타이틀명을 '리마스터'가 아닌 '레전더리 에디션'으로 정한 만큼 그 이상의 무언가를 보여주지 못한 아쉬움은 다소 있습니다.

물론, 가장 큰 문제는 비한국어화입니다. 지금도 분명 어떤 선량한 능력자 게이머 분이 한국어 패치 작업을 하고 계실 거라 믿지만, 애초에 한국어화를 했다면 그분이 그렇게 고생할 필요도 없었는데 말이죠. 별 쓸모없는 앤섬은 한국어화 잘만 해 주면서 왜 이건 안 해주는지 다시 생각해도 이해가 안 됩니다. 결코 게임하다 영어 독해에 지쳐서 영어로 욕설 내뱉고 감정이 격해져서 하는 말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