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X는 게임을 잘 한다'라고 말하면, 일반적으로는 그 사람이 대단히 좋은 피지컬을 지니거나, 평균보다 훨씬 뛰어난 지능을 지녔다고 생각하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이들과 다르면서도 게임을 잘 한다고 평가받는 게이머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이들을 말할 때는 '게임을 잘 한다'라고 하기보단 '금손이다' 혹은 '대단하다'라는 표현이 앞서죠. 유별난 창의력과 표현력으로 멋지면서도 현실적인 가상의 세계를 창조해내는 건설, 제작 시뮬레이터 게이머들입니다.

게임 특성 상, 이들은 e스포츠에 나서거나 누군가와 대결해 승리하는 모습을 보여주진 못합니다만, 그들의 여러 작품들은 게이머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깁니다. 게임 내에서 컴퓨터를 만들어내는 마인크래프트의 게이머들이라든지, 변신 로봇을 만드는 비시즈의 고인물들, 그리고 에펠탑을 지어올리는 발하임의 플레이어들이 이와 같은 부류입니다.

아마 많은 분들이 이런 시뮬레이션 게임에 도전했다가 고배를 마신 경험이 있을 겁니다. 어느 정도까지는 어렵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선을 넘어 '진짜 굉장한' 작품을 만드는 것은 천부적인 재능과 엄청난 노력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진짜 고수들은 도시 전체의 한 부품에 불과한 건물 하나하나를 새로 조립하고, 이를 능수능란하게 배치해 현실성을 만들어내기 때문이죠.

'스튜디오 캐비'의 '캐비'님이 이런 부류입니다. '파키텍트'에서 누구나 인정하는 최고의 놀이공원을 여럿 만들어냈고, '시티즈 스카이라인'에서는 누가 봐도 현실같은 한국의 도시를 만들어내는, 건설 시뮬레이션의 고수입니다. 유튜브 채널은 구독자가 그렇게 많은 편이 아니지만, 그가 만든 작품들은 스크린샷이 되어 여러 커뮤니티에 퍼지곤 했죠.

우연찮게 연락이 닿아, 캐비님과 직접 이야기를 나눠 볼 기회를 얻었습니다. '시뮬레이션 고수'가 되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하고, 또 어떤 자질이 필요할까요? 캐비님의 작품을 몇 종 소개하면서, 그와 나눈 대화를 글로 정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Q. 이렇게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먼저, 본인에 대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샌드박스 건설 시뮬레이션 게임 영상을 만드는 유튜브 채널 '스튜디오 캐비'의 캐비입니다. 유튜브를 시작한지는 이제 2년 반 정도 되었고, 주로 다루는 게임은 테마파크 시뮬레이션 게임 '파키텍트'와 도시 건설 게임 '시티즈: 스카이라인'입니다.

'파키텍트' 에서는 싱글 플레이 캠페인 공략 시리즈로 시작해서 판타지, 동양풍, SF 등 다양한 테마의 창작 놀이공원 영상을 업로드하고 있고, '시티즈: 스카이라인'에서는 경기도 신도시를 모티브로 한 현실적인 한국 도시를 만들고 있습니다.

▲ 경기도 신도시를 모티브로 한 '프로젝트 신도시'


Q. 캐비 님의 작품을 본 이들은 캐비 님이 디자인 혹은 건축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이 아닌가 생각하곤 합니다. 실제로도 비슷한 일을 하시나요?

아무래도 게임 내에서 건축이라는 하나의 컨셉으로 채널을 운영하다 보니 구독자 분이나 팬분 중에 비슷한 의문을 지니신 분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신문방송학을 전공했고 현재는 모 게임사에서 사업 기획을 담당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회사에서도 영상을 만지기보다는 텍스트 기반 업무를 주로 하고 있지요.

제가 유튜브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분이 몇 분 없긴 한데, 아무래도 현실에서 하는 일들과 많이 다르다 보니 그분들도 대부분 신기하다는 눈으로 바라보시긴 합니다. "집에서 이런 게임을 한다고?" 하는 반응이 많은 편이죠.(웃음)


Q. 그럼, 어떤 계기로 이런 건설 시뮬레이션 게임을 파고들게 된 것이며, 유튜브는 어떻게 시작하게 된 건가요?

먼저 짧게 결론을 말하자면, '내면의 창작 욕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릴 때부터 그림을 그리거나 레고를 조립해서 다른 누군가에게 짠하고 보여주고 칭찬받고 싶어하는 욕구가 있었어요. 그러다 컴퓨터를 접하고 나서 창작의 초점이 게임과 영상 쪽으로 옮겨갔고, 20년 넘게 지난 지금까지 관심 분야가 여기에서 벗어나지 않고 있습니다. 실제로 게임을 만들고 서비스하는 과정에도 참여하면서, 일과 후에는 게임플레이 영상을 만들고 있네요.

건설 시뮬레이션 게임을 파고들게 된 계기라면 꽤 옛날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것 같습니다. 지금 30대인 게이머라면 어린 시절에 다들 '롤러코스터 타이쿤'을 한 번쯤 플레이하셨을 거라 생각합니다. 저 또한 어린시절 설레는 마음으로 마트에서 '롤러코스터 타이쿤' 패키지를 사 와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플레이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당시에 이 게임을 하던 분들이라면 ‘지마의 롤러코스터 타이쿤’이라는 홈페이지도 들어가 보셨을 것 같은데요, 이 홈페이지의 쉼터 만들기 강좌가 당시 공원 제작의 바이블이었습니다. 게임 기능도 간신히 익히면서 플레이하던 저에게는 마치 무림 고수의 비급처럼 보였죠. 그 때부터 뭔가 ‘게임을 잘 하고 싶다’는 의욕이 생겼던 것 같습니다.

▲ '지마의 롤러코스터 타이쿤' 페이지 모습

예나 지금이나 주변에서 너도 나도 하는 이른바 '국민' 게임은 실시간 대전 게임인데, ‘스타’하던 시절부터 ‘LOL’, ‘배그’에 이르기까지 이런 게임에서는 제 실력의 한계가 명확했습니다. 때문에 그보다 혼자 깊게 고민하며 컨셉을 구상하고 여러 번 고쳐 만들면서 결과물을 완성할 수 있는 시뮬레이션 게임에 집중하게 되었죠. 시간에 쫓기거나 다른 사람과 경쟁하지 않아도 되고, 얼마만큼의 노력과 시간을 투입하는가에 따라 결과물의 수준도 스스로 제어할 수 있으니까요.

그러다 2016년 어느 날 스팀에 얼리 액세스에 파키텍트라는 게임이 보이더라고요. 딱 봐도 롤러코스터 타이쿤 2를 그대로 3D로 옮겨 놓은 모습이어서 일단 구매부터 해 뒀습니다. 당시에는 알파 초기 버전이어서 정식 버전과 비교해보면 그래픽이 투박한 편이었어요. 그래서 언젠가 나아지겠지, 하고 잊은 채로 또 2년 정도 시간이 흘렀습니다.

2018년 말에 드디어 정식 런칭을 한다는 소식이 들리고 오랜만에 다시 게임을 플레이해 봤더니 그래픽과 사운드도 대폭 업그레이드되고, 과거 롤러코스터 타이쿤 시리즈에서 아쉬웠던 소소한 편의성이나 디테일을 보강해서 거의 완전판 같은 느낌으로 나왔더라고요.


그래서 이 게임이 정식 런칭되면 누구보다 빠르게 캠페인 클리어에 도전해 보겠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런데 게임을 클리어하고 스크린샷 몇 장만 남기기에는 아쉽기도 하고, 기왕이면 저보다 늦게 이 게임을 접한 초심자들이 참고할 수 있도록 그 과정을 영상으로 담아 보기로 했습니다.

처음에는 비교적 평범하게 플레이했지만, 각 편마다 차별화를 위해 컨셉을 가진 특별한 공원을 만드는 방식으로 발전하게 되었죠. 유럽 마을이나 서부극, 군대 막사나 디아블로 속 지옥까지 게임 내 부품을 조합해서 별의 별 컨셉의 공원을 만드는 데에서 즐거움을 찾았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국내에서 꾸준히 파키텍트 영상을 올리는 사람은 저만 남아 있더라고요.

이쯤 되니 게임을 더 깊게 파고 들어가보자는 생각이 들어서, 롤러코스터 타이쿤 시절부터 로망이었던 자기 이름을 딴, 나만의 대형 공원을 3개월에 걸쳐 완성했습니다. 파키텍트의 개발자도 이때쯤 저의 존재를 알게 되었는지 공식 트위터 계정에서 제 영상을 트윗 해주고, 글로벌 커뮤니티에서도 인지도를 얻게 되었습니다. 소소한 클리어 영상 컬렉션을 목표로 시작했는데 어느새 이렇게까지 일이 커졌는지 모르겠네요.

▲ 개발사에서 인정한 실력


Q. 작품을 보면, 하나하나에 들어가는 공과 시간이 어마어마한 것이 느껴집니다. 현실의 일과 병행하면서 하기엔 물리적 시간 부족이 느껴지지 않나요?

처음엔 게임 플레이나 영상 편집에 공을 많이 들이지는 않아서 업로드 주기도 빠르고 일상에 크게 문제가 될 만한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계속해서 '전보다 더 나은 것'을 추구하며 시간을 들이다 보니 지금은 영상 한 편 한 편에 들어가는 시간이 크게 늘어났습니다.

초창기에는 6~8시간 정도 게임 플레이를 하고, 다시 6시간 정도 편집을 거쳐서 한 편을 완성했는데, 최근 영상들은 한 편을 완성하는 동안 적게는 40시간에서 많게는 120시간 정도 플레이 타임이 늘어나더군요. 저도 이런 시뮬레이션 게임 유튜브를 보기만 할 때에는 다들 왜 이렇게 영상 올리는 빈도가 낮냐고 불평을 많이 했는데 제가 해보니 정말 꾸준히 영상을 업로드하는 게 어렵네요.

사실 게임 플레이나 영상 편집처럼 제가 통제력을 가질 수 있는 시간은 괜찮은데, 점점 나이를 먹으면서 현실의 삶이 제 주의력과 여유를 침식해 오는 게 느껴집니다. 직장에서도 더 많은 책임을 요구하고, 사는 데 신경 써야 할 일도 늘다 보니 여유롭게 게임에 집중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빈도도 늘어나는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지금의 유튜브 활동이 일상 생활에서 얻기 어려운 성취감을 충족하는 저만의 방법이기 때문에, 앞으로 영상 업로드 주기가 더욱 길어질지 언정 이 활동을 멈추지는 않을 생각입니다.

▲ 이렇게까지 만들려면 시간이 부족하긴 할 것 같습니다


Q. 가족 분들은 캐비님의 작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아내도 평소에 게임을 즐기는 편이라 영상을 업로드할 때마다 이번엔 어떻게 하나 하고 지켜보는데, 사실 영상보다도 구독자 분들의 댓글 반응을 꼼꼼하게 챙겨보는 편입니다. 아내가 제 작업을 보고 보이는 반응은 다른 구독자 분들과 비슷하지만 댓글을 남기시는 분들이 여러 창의적인 표현으로 칭찬을 해 주시다 보니 그런 표현을 보는 재미가 있다고 하네요.

아내는 이전에 'GTA 온라인'이나 '몬스터 헌터 월드' 같은 코옵 멀티플레이어 게임을 함께 재밌게 해서, 파키텍트도 함께 플레이해보려고 했는데 이렇게 창의성을 요구하는 게임은 어려워해 포기했습니다.


Q. 경력과 무관하게 디자이너로서의 감각이 느껴지는 부분이 많이 느껴집니다. 관련해서 공부를 하거나 업무 경험을 쌓은 적이 있는 건가요?

대학을 다닐 때 전공 분야 중에서도 뉴미디어나 광고에 관심이 많아서 양질의 레퍼런스를 많이 접한 게 지금의 활동에 영향을 미친 것 같습니다. 지금은 비공개로 전환했지만 학생 시절에도 과제나 여러 습작 영상을 유튜브에 올려 두기도 했고요. 그러다 보니 졸업 전에 디자인과 수업을 몇 과목 듣기도 했습니다.

한 15학점 정도? 운 좋게 과제전에서 상을 탄 적도 있긴 하지만 전문적으로 디자인을 공부했다고 하기에는 어폐가 있을 것 같습니다. 사실은 디자인과 수업에 재미를 느껴서 복수전공까지 고민하기는 했는데, 그러려면 졸업 요건을 맞추기 위해 학교를 1년 정도 더 다녀야 해서 포기했거든요.

디자인적 감각이 어디에서 오는지에 대해서 저도 딱 잘라 말하기는 쉽지 않은데, 아마 일부는 선천적으로 타고난 부분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부모님이 예전에 들려주신 이야기로는, 제가 기어 다닐 때쯤 아버지께서 일하시던 종로나 시청 부근에서는 직장인들 상대로 일수 명함을 건네는 사람이 많았다고 하더라고요.

어느 날은 아버지가 퇴근하시고 그렇게 받아온 명함을 버리려고 꺼내 놓았는데, 제가 그걸 색상별로 분류하고 있는 모습을 보셨답니다. 그걸 보시고 다음날부터는 그런 명함을 수십 개씩 모아오시고 저는 또 그 명함을 가지고 놀고 했다는데요, 저도 들은 얘기라 실화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웃음)



Q. 현재 주력 게임은 '파키텍트'와 '시티즈 스카이라인' 두 종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 외에 고려하고 있는 다른 게임은 없으신가요?

저도 게이머로서, 또 콘텐츠 크리에이터로서 늘 새로운 게임에 목마르기 때문에 두 가지 주력 게임 외에 심즈4, 모여봐요 동물의 숲, 마인크래프트 등으로도 콘텐츠를 만들어 봤습니다. 그런데 이런 게임들은 이미 게임에 통달한 분들이 너무나도 많고 저는 갓 시작한 초보이다 보니까, 제가 만족할 만한 수준의 콘텐츠를 만들기에는 눈이 너무 높아져 버렸습니다.

그래서 어떤 신작이 나오는지에 더 주목하고, 새로 발표된 시뮬레이션 게임은 주기적으로 체크하는 편입니다. 그 중에서도 내가 커스터마이징하고 꾸밀 수 있는 콘텐츠가 존재하는지, 꾸미기 시스템의 편의성과 표현 가능성을 갖춘 게임이 있는지를 집중적으로 살펴봅니다.

그런데 건축 시뮬레이션 게임이 높은 복잡성 때문에 개발하기 쉽지 않은 반면에 큰 수익을 기대할 만큼 대중적이지는 않다는 딜레마가 존재해서, 기대작을 만나는 게 쉽지 않습니다. 2년 전쯤 '호텔 마그네이트'라는 호텔 경영 게임이 제 관심을 끌어서 킥스타터 펀딩에 참여했는데, 아직 발매될 기미는 안 보이네요.

▲ 개인적으로 기대하는 중이라는 '호텔 마그네이트'


Q. 게이머로서가 아닌, 콘텐츠 크리에이터로서 가진 목표가 있다면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채널의 외형적 성장보다는 꾸준히 시뮬레이션 게임, 그 중에서도 건축이나 꾸미기에 특화된 시뮬레이션 게임이라는 작은 분야에서 엣지 있는 콘텐츠를 만들고 모아서, 예쁜 갤러리 같은 채널을 만들고 싶습니다.

미술관에 어떤 작가 특별전을 관람하러 가면, 작가의 작품을 시간 순이나 각 주제 별로 감상하면서 그 작가의 성장이나 작품에 담긴 고민, 철학의 변화를 느끼고 관객이 저마다 작가의 일대기를 상상하게 되잖아요. 그렇게 한 작가의 일대기를 감상할 수 있는 공간처럼 제 채널도 꾸준히 성장하는 ‘캐비 특별전’ 같은 존재가 되었으면 합니다.

콘텐츠 주제 측면에서 또 다른 목표를 얘기해보자면, 언제가 될 지는 모르겠지만 현실의 집을 짓고 그 과정을 유튜브 콘텐츠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요즘 들어 하고 있습니다. 저도 거의 평생을 아파트에서 살긴 했지만, 작년부터 재택 근무 비중이 늘면서 제 삶과 생활 방식에 딱 맞는 집에 대한 갈망 같은 것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올해 들어 단독주택 건축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고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책이나 잡지부터 시작해서, 건축박람회도 찾아가보고 실제로 단독주택 매물이나 땅도 보러 다니고 있습니다. 물론 지금 당장 시도하기에는 ‘출퇴근이 가능한 단독주택’에 필요한 예산이 너무 크기 때문에 엄두를 못 내고 있지만, 인생 계획을 길게 잡아보면 한 10년쯤 뒤에는 가능하지 않을까요?

▲ 직접 찍은 건축 박람회 브로슈어들, 현실 속 건축에도 관심이 있다고 합니다.


Q. 시뮬레이션 게임을 잘 하고 싶어하는 유저는 많은데, 어려움을 느껴 도전하지 못하는 분들에게 '금손'으로서 조언하신다면 어떤 말을 하고 싶으신가요?

시뮬레이션 게임에도 여러 세부 장르가 있지만, 제가 주로 플레이하는 ‘짓고 꾸미기’ 중심의 시뮬레이션 게임에 한정해서 얘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가장 흔한 경우는 커뮤니티나 유튜브에서 접하는 멋진 스크린샷이나 영상을 보고, 게임을 사자마자 대작을 만드는 데에 도전하다 생각처럼 되지 않아서 금방 흥미를 잃어버리는 케이스입니다.

정말 천부적인 재능이 있는 사람이라면 몰라도, 어떤 게임이든 손에 잡자마자 대작을 만들어 내기는 어려운 일입니다. 또, 예를 들어서 '시티즈: 스카이라인'처럼 오랜 기간동안 커뮤니티에 축적된 수많은 모드와 애셋 중심으로 돌아가는 게임은 처음부터 남들과 같은 수준에서 플레이하려면 그걸 일일이 숙지하고 게임 세팅을 갖추는 데에만 며칠씩 걸릴지도 모릅니다.

▲ 처음부터 어셋을 능수능란하게 활용하기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우선은 게임으로 만들어낼 결과물을 고민하기보다는 게임 플레이 자체에 흥미를 가지고 시작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과정에서 이 게임의 시스템으로 표현 가능한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창작에 사용할 수 있는 파츠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부터 파악을 하는 게 먼저라고 생각하고요, 점차 게임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면서 창작의 단계를 올려 나가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 될 것 같습니다.

본격적으로 ‘무엇을 만들까?’, ‘어떻게 만들까?’를 고민하는 시점에서는 가장 먼저 현실에서 레퍼런스를 찾는 걸 추천 드리고 싶습니다. 놀이공원을 예로 들면, 'RCDB.com'처럼 세계 곳곳의 롤러코스터 정보가 정리된 웹사이트도 있고, 유튜브로도 많은 실제 테마파크를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잖아요? 창작이 완전히 상상의 영역에서 이루어지기보다는 현실에 존재하는 것들에 기반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게임을 켜서 부품들을 쌓기 전에 느긋하게 마음을 먹고 레퍼런스를 탐구하는 시간을 가져 보시길 권합니다.

또 현실에 있는 건물이나 구조물을 게임에서 표현하기 어렵다고 느껴질 때에는 단순화할 방법을 찾아보는 게 도움이 됩니다. 저는 카툰 스타일의 일러스트레이션이나 레고 창작 작품, 미니어처 등을 많이 참고하는 편인데요, 게임에서 모든 걸 현실과 동일한 디테일로 표현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다른 아티스트들은 어떻게 선과 면을 간략하게 표현했는지 관찰하는 것이 큰 도움이 됩니다.

▲ 컨셉은 여러 경험이 쌓여야 완성되는 것


Q. 건설 시뮬레이터 외에, 평소에 게이머로서 즐기는 게임은 어떤 것들이 있으며, 이런 게임을 좋아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게이머로서는 플랫폼이나 장르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게임을 즐기는 편입니다. 좋아하는 게임을 꼽으려면 정말 한도 끝도 없이 말할 수도 있겠지만, 콘텐츠를 만들 때 외에는 아무래도 AAA 게임이 플레이 시간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편입니다. 아직 차세대기를 구매하지 않기도 해서 가장 최근에 플레이한 AAA 타이틀은 '사이버펑크 2077'이네요. 저도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컸지만 그래도 꽤 재밌게 70시간 정도 즐겼습니다.

저만의 갓겜을 꼽아보자면 '드래곤 퀘스트 빌더즈' 시리즈를 선택하겠습니다. 첫 인상은 마인크래프트 아니야? 였는데 이 게임의 건축 시스템은 각 방마다 용도가 구분된 공간을 구성하고, 이에 맞게 NPC들이 상호작용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빌리징으로 이어지는 게 인상깊었습니다. 거기에 JRPG식 스토리라인이 이 플레이 루프를 이질감없이 이끌고 있는 걸 보면, RPG와 건축 하우징이 예술적으로 조합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줬다고 생각하는데 왜 ‘드퀘 빌더즈 라이크’ 게임들이 쏟아져 나오지 않는지 아쉽습니다.

잘 하지는 않지만 또 특별히 좋아하는 장르로는 리듬 게임이 있는데요, 사실 게임 회사 내에서도 리듬 게임은 마이너한 취향이라 외롭습니다. 특히 DJMAX 시리즈를 좋아하는데 DJMAX 온라인 발매 초창기부터 최신작인 DJMAX RESPECT V까지 전 시리즈를 모두 플레이하기도 했고, 게임 업계에서 일하려고 마음먹은 계기도 DJMAX였습니다. 막상 취준생 때는 네오위즈에서 신입사원을 뽑지 않아서 지원조차 해보지 못하고 다른 회사에 입사했지만요.


Q. 언젠가 꼭 작업해보고싶다고 생각하는 테마의 작품(특정 컨셉의 파키텍트 놀이공원이나 시티즈의 도시 등)이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워크래프트 2' 부터 쭉 블리자드 게임을 플레이해와서, 블리자드 테마파크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늘 있었는데 아직 실현하질 못했네요. 블리자드 프랜차이즈 중에서도 스타크래프트 테마가 가장 탐나는데, 여러가지 아이디어를 구상하기는 했지만 실현 가능성이 있을지는 아직 확신이 없어서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습니다.

그 외에는 현실에 있는 놀이공원, 그 중에서도 롯데월드 매직 아일랜드가 규모도 적당하고 벚꽃이 만개한 호수 가운데에 있는 섬이라는 특징이 있어서 꼭 한 번 도전해보고 싶은 공원입니다.

▲ 지금도 다양한 테마의 놀이공원들이 채널에 업로드되어 있습니다.


Q. 마지막으로, 캐비님의 작품을 사랑하는 해외 및 국내 구독자 팬분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이 있을까요?

우선 2년 반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동안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로마는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말처럼 저는 아직 갈 길이 멀다고 생각합니다. 아직 여러분들께 보여드리고 싶은 것들이 많이 남아 있고, 앞으로 더욱 참신한 컨셉과 퀄리티를 겸비한 작품을 선보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