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채화풍 비주얼로 마음이 포근해지는 동화책 같은 어드벤처


플레이할 게임을 고를 때 오직 '비주얼'만 중시하다 보면 아쉽게 놓치게 되는 게임들이 꽤 많습니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은 다소 별로더라도 전략성이 대단하다거나, 스토리가 진심이라든지, 그 속에 담긴 개발자의 의도 혹은 충격을 주는 반전 요소로 유명세를 타게 된 게임들도 더러 존재하죠.

이러한 게임들을 사랑하게 된 유저들은 열띤 표정으로 게임의 알짜배기 포인트를 소개하며 자신의 '최애' 작품을 주변에 알리려고 합니다. 하지만 비주얼이 전하는 첫인상으로 플레이어의 시선을 사로잡지 못하면, 상대방에게 게임을 찍어 먹어보게 하는 것조차 호락호락하지 않은 법입니다.

스팀과 닌텐도 스위치를 통해 출시된 어드벤처 게임 '스미레(Sumire)'는 이러한 면에서는 걱정이 덜한 편입니다. 첫인상부터 자극적이지 않으면서도 감성을 자극하는, 풋풋한 수채화풍 비주얼이 먼저 눈에 들어오는 작품이거든요.

물론 빛 좋은 개살구라는 말처럼 겉보기에만 화려하고 속은 비어있는 평범한 게임들 역시 적지 않습니다. 첫인상에 반해 게임을 고른 플레이어에게 '속았다'는 기분을 줄 수도 있으니, 내실을 다지느라 겉모습에 신경을 못 쓴 게임들보다 이쪽이 더 비호감으로 느껴질지도 모르겠네요.

감성을 자극하는 비주얼을 통해 첫 모습만큼은 그야말로 '극호감'에 가까웠던 게임 스미레는 과연, 아름다운 겉모습에 걸맞게 그 내실까지 탄탄한 게임일 것인지 직접 플레이하며 확인해보았습니다.

게임명 : Sumire
장르명 : 어드벤처
출시일 : 2021.05.27.
개발사 : GameTomo Team
서비스 : GameTomo Co., Ltd.
플랫폼 : PC, 닌텐도 스위치

관련 링크: 'Sumire' 오픈크리틱 페이지


스미레와 함께 보내는 아주 특별한 하루


'스미레'는 고즈넉한 시골 마을을 무대로 진행되는 어드벤처 게임입니다. 어느 날 돌아가신 할머니의 꿈을 꾼 스미레는 마치 동화 속 이야기처럼 갑작스레 나타난 꽃 형상의 정령과 함께 할머니의 마지막 메시지를 찾아 길을 나서게 됩니다. 정령과 스미레에게 주어진 시간은 단 하루뿐. 스미레와 정령이 함께 보내는 하루가 어떤 모습으로 마무리될지는 모두 플레이어의 손에 달려있습니다.

게임은 스미레를 조작하여 시골 마을과 그 주변의 아름다운 풍경을 둘러보고, 조사하고, 마을에 있는 다양한 등장인물들과 대화하고, 그들의 부탁을 들어주는 식으로 진행됩니다. 'NPC에게서 부탁(퀘스트) 받기 - 문제 해결을 위한 단서 찾기 - 퀘스트 완료'가 반복되는 단순한 방식의 어드벤처 게임이지만, 이 과정에서 볼 수 있는 아름다운 시골 마을의 전경을 감상하는 것이 이 게임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가로운 시골 마을이 게임의 주요 배경이지만, 게임 속에 그려지는 배경들은 단순히 숲과 나무만 무성한 일반적인 시골 풍경과는 다릅니다. 따뜻한 밥 냄새가 날 것 같은 가정집부터 아름다운 꽃이 가득한 숲, 신비로운 분위기의 신사, 문구점과 뷰티샵은 물론 패밀리 레스토랑까지 있을 건 다 있는 아담한 마을, 금방이라도 귀신이 나올 것 같은 으스스한 폐가, 맑은 시냇물이 흐르는 공원, 그리고 아름다운 노천탕이 있는 온천까지. 스미레가 하루 동안 돌아볼 수 있는 마을의 풍경은 유명 관광지 저리 가라 할 정도로 볼거리가 가득합니다. 이 모든 배경이 부드럽고 알록달록한 색상의 수채화풍 그래픽으로 꾸며졌으니, 한 발짝 움직일 때마다 스크린샷을 남기느라 여념이 없을 정도였죠.




▲ 당장 동화책 속 삽화로 넣어도 아쉽지 않을 아름다운 배경들이 끊임없이 이어집니다

스미레의 매력은 단순히 아름다운 배경을 감상하는 것에 그치지 않습니다. 어드벤처 장르의 게임들은 대부분 텍스트 중심으로 스토리가 진행되기 때문에, 계속해서 글만 읽다 보면 자칫 지루해지기 십상인데요. 스미레에는 다양한 미니게임들이 삽입되어 있어 스토리를 플레이하는 중에도 '다음은 어떤 종류의 미니게임이 등장할까?'라며 기대하는 마음으로 즐겁게 플레이할 수 있었습니다.

가장 기본적인 미니게임 요소는 '동전 찾기'입니다. 스미레에서 스토리를 진행할 때 매우 중요한 요소로 활용되는 동전은 마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찾은 동전은 NPC의 부탁을 들어주기 위한 물건을 구매할 때는 물론, 문구점 앞의 뽑기 기계에서 가챠를 뽑을 때도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습니다. 물론 동전을 하나도 찾지 않아도 이야기를 진행할 수는 있지만, 하루를 끝내고 마주하게 되는 엔딩의 모습은 동전을 사용했을 때와 확연히 달라지게 되죠.

▲ 맵 곳곳에 숨겨진 동전을 찾는 것도 재미 포인트 중 하나.

▲ 잠든 부모님의 가방에서 돈을 슬쩍하는 선택지도 존재합니다

▲ 이렇게 모은 돈으로 마음에 드는 물건을 사거나,

▲ 문구점 앞 뽑기 기계에서 '가챠'를 돌리는 등,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이외에도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놀이, 마을 사람들이 영웅 캐릭터로 등장하는 오리지널 카드 게임, 상대 진영으로 자신의 말을 먼저 옮기는 사람이 승리하는 보드 게임, 여러 색을 조합하여 특정 색깔을 만들어내는 게임, 그리고 낚시까지 다양한 종류의 미니 게임이 게임 속에 등장합니다.

딱딱한 텍스트를 읽는 것만으론 흥미를 느끼기 어려운 이들까지 '스미레'의 스토리에 충분히 몰입할 수 있도록 특별히 준비된 이 게임들은 엔딩 후에도 별도의 모드로 제공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게 할 정도로 매력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이러한 요소들은 단순히 잘 짜인 스토리로 감동을 주거나 시각적인 만족감을 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플레이어에게 한 편의 '게임'을 플레이하고 있다는 느낌을 전달하는 강력하고도 효과적인 장치가 됐다고 생각합니다.



▲ 단순하지만 흥미로운 미니 게임들은 스토리에서만 플레이할 수 있는 것이 아쉽게 느껴질 정도



짧지만 긴 여운이 남는, 돌이킬 수 없는 '하루'라는 시간


스미레의 이야기는 시시각각 흘러가는 '하루'라는 시간 안에서 진행됩니다. 새벽녘에 시작된 스미레의 여정은 해가 지는 것과 동시에 마무리되죠. 꽃의 형상을 한 정령이 등장하는 것부터 이미 충분히 판타지스럽지만, 의외로 게임 속 시간 개념은 철저한 편입니다. 마법의 힘을 가진 오카리나로 시간의 노래를 연주할 수도 없고, 30초 전으로 시간을 돌려주는 모 여신의 신비한 가호도 기대할 수 없죠.

'하루'라는 한정된 시간이 게임의 주요 키워드다보니, 게임 속에는 특정한 시간대에 방문해야만 진행할 수 있는 요소들이 여럿 등장합니다. 해당 시간대를 놓치고 스토리를 진행했다면, 다시는 이전 시간대로 돌아갈 수 없게 됩니다.

첫 회차를 진행하다 보면 일단 모든 등장인물의 요구 사항을 들어주는 방향으로 게임을 진행하게 되는데요. 이때 시간을 고려하지 않아 하나라도 놓쳐버리면, 완료 도장으로 가득한 'To Do 리스트'에 남아있는 빈자리 하나를 끝내 채울 수 없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나머지 게임 플레이를 이어가는 내내 그 찜찜함이 계속 이어질 수밖에 없죠. 실제로 점심시간 이전에 한번 찾아와달라는 허수아비의 부탁을 깜빡 잊어버린 저는 게임 엔딩 컷신에서까지 까마귀들의 공격에 당해 끔찍한 몰골이 되어있는 허수아비의 모습을 봐야만 했습니다.

▲ 그저 점심시간 전에 한번 찾아와만 달라던 허수아비의 부탁을 잊는다면,

▲ 감동의 여운에 잠겨야할 엔딩에서도 찜찜한 기분을 맛보게 됩니다

게임의 전체 볼륨은 결코 긴 편은 아니지만, 잘못된 결과를 바로잡기 위해선 지금까지 진행했던 스토리를 전부 지우고, 처음부터 스미레의 하루를 다시 시작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이야기의 끝에서 확인할 수 있는 엔딩의 종류가 두 종류 이상이므로 이에 맞춰 세이브 슬롯도 적어도 두 개 이상을 기대하게 되지만, 현재 게임에서는 단 하나의 세이브 슬롯만 제공됩니다. 이는 결코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의 소중함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의도된 요소라고 볼 수 있으나, 다양한 엔딩과 도전과제를 수집하는 것이 목적인 플레이어에게 있어선 불편한 요소가 되기도 합니다.

시간과 함께 게임의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인 '카르마' 수치에 대한 안내가 부족한 것도 아쉬운 부분입니다. 스미레의 모든 선택에는 그에 따른 대가가 따라오는데요. 도덕적으로 올바른 결정을 하면 선함을 의미하는 파란 꽃이, 비행이나 일탈과 관련된 잘못된 선택을 하면 빨간 꽃이 표시되는 식입니다.

카르마는 게임의 엔딩, 그리고 도전과제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중요한 부분이지만 자신이 쌓은 카르마 수치가 어느 방향을 향하고 있는지, 게임을 진행하는 동안은 확인할 방도가 없습니다. 하늘의 색상 외에도 시간의 흐름을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는 시계, 그리고 카르마 수치를 대략적이라도 가늠할 수 있도록 표시해주는 UI가 더해진다면 더 즐거운 게임 플레이가 가능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일상의 현실과 마법 같은 경험이 녹아있는 신기한 하루를 담은 어드벤처 게임 '스미레'는 스토리 면에서도 꽤나 높은 완성도를 가진 작품입니다. 직접 플레이할 때의 즐거움으로 남길 수 있도록 이번 리뷰에서 스토리 부분에 대한 언급은 최대한 줄였으니, 게임의 독특한 비주얼과 어드벤처 장르의 게임 플레이 방식이 취향에 맞는다면 꼭 직접 플레이해보시길 바랍니다.

동화같은 잔잔한 분위기와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BGM, 그리고 플레이어의 선택에 따라 '잔혹 동화'를 연상케 하는 반전 요소들도 만나볼 수 있어, 1회차를 플레이하는 동안 정말 즐겁게 플레이했습니다. 1회차만으로도 약 3시간가량의 볼륨을 가지고 있으며, 가격은 스팀 기준으로 1만 6천 원입니다.

꿈과 추억, 그리고 현실 속에서 고민하는 스미레의 하루가 어떤 모습으로 채워질 것인지는 오롯이 플레이어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당신은 과연 스미레의 소중한 하루를 '잊지 못할 하루'로 꾸며줄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