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넥슨코리아 장기은 기획자

  • 주제: 나==내 캐릭터? <마비노기>게임 스토리텔링에서 플레이어와 캐릭터 구분하기
  • 강연자 : 장기은 - 넥슨코리아 / NEXON KOREA
  • 발표분야 : 게임기획
  • 권장 대상 : 시나리오 디자이너 , 퀘스트 디자이너
  • 난이도 : 기본적인 사전지식 필요


  • [강연 주제] 최근 들어 시나리오 콘텐츠의 유인을 결정하는 주요한 요인이 이야기 자체보다는 매력적인 인물상 쪽으로 무게가 기울어졌다고 여겨집니다. 실제 업데이트 시 마케팅이나 세일즈 포인트 역시 캐릭터에 맞춰져 있기도 하고요. 다년간 게임 시나리오 콘텐츠를 제작하고 동향을 살펴보는 과정에서, 이야기 내/외부적으로 존재하는 인물의 유형에 따라 소비자의 반응과 몰입 양상이 다르게 나타나는 부분을 꾸준히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게임의 전반적인 콘셉트 및 특징, 그리고 플레이하는 사람의 성향에 따라 플레이어블 캐릭터의 정체성 역시 다르게 나타났습니다. 그에 맞춰 스토리에 몰입하는 요인 역시 차별화된 공략 요소로 활용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부분에 관한 고민 점을 지난 2년간 여름에 업데이트된 <마비노기> G24/G25 메인스트림 제작 시에 어떻게 활용하고 반영했는지를 공유해 보고자 합니다.

    게임 속에는 다양한 캐릭터가 존재한다. 그리고 유저들은 그 다양한 캐릭터의 상황에 이입하고, 게임을 진행하며 열광한다. 하지만 각 캐릭터들은 플레이어블 캐릭터, NPC 등등 여러 유형을 지니며 그에 따라 몰입을 위한 방법과 활용도 역시 매우 다양하다.

    이에 NDC 2021 첫날 넥슨코리아의 장기은 기획자가 게임 스토리텔링에서의 캐릭터 유형, 정체성 유형, 각 유형별로 공략 요소, 마지막으로 이러한 내용을 실제 마비노기 메인스트림 작업에 어떻게 활용했는지를 사례와 함께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다.




    ■ 주요 캐릭터의 세 가지 유형


    게임에서 제공하는 캐릭터의 유형에는 무엇이 있을까. 일반적으로 접하게 되는 주요 캐릭터의 유형은 세 가지로 나뉜다.

    먼저 뚜렷한 정체성과 특징을 가진 인물, 캐릭터의 이름과 외형이 고정되어 여러 디테일한 설정을 비롯해 고유한 특징을 보유한 A 유형이 있다. 이들은 주로 콘솔 게임류에서 정해진 이야기를 쭉 진행하는 주인공에 해당한다. 이런 유형에 몰입하기 위해서는 캐릭터의 매력을 어필하는 것이 가장 유효하다. 호감 가는 캐릭터 외형이나 공감하기 쉬운 대사나 행동으로 동질감을 느끼고 애착을 가지게끔 유도한다.

    다음은 기초적인 정보와 포지션만 제공하는 B 유형이다. 이른바 시작은 평범한 주인공, 이입하게 쉽도록 처음에는 큰 개성이 없는 경우가 많다. 직접 캐릭터의 이름을 짓거나 외형을 마음대로 설정할 수 있는 편이고, 플레이어마다 캐릭터를 키워가면서 각자 다른 성장 모습을 보이게 된다. 이러한 유형은 롤플레잉과 성장 요소를 강화하는 쪽으로 몰입을 시킬 수 있다. 풍부한 커스터마이징 요소라던가 꾸준한 플레이로 쌓아가는 플레이어의 경험, 강함에서 오는 성취감 제공 등의 방법이 있다.

    마지막으로 캐릭터 뒤의 플레이어를 인지하는 C 타입이다. 몇 년 전부터 이런 소위 메타적인 영역에서의 재미를 추구하는 게임들을 많이 찾아볼 수 있게 되었다. 진짜 주요 캐릭터는 내부 캐릭터가 아닌 모니터 뒤의 유저, 즉 플레이어인 경우가 많다. 화면 너머의 나와 아이컨택을 하거나 직접적으로 메세지를 주기도 하며, 세이브/로드 기로고가 같은 플레이 액션에도 반응하는 점이 특징이다.

    사실 모든 게임들이 이 세 가지 유형에 정확히 들어맞지는 않는다. 서로 혼재되거나 특징을 공유하기도 한다.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이나 베리드스타즈 처럼 디폴트 네임과 역할은 정해져 있는데 다양한 액션을 통해 멀티 엔딩을 제공하는 케이스도 있고, 마비노기처럼 정말 유저가 게임에 접속해서 플레이한다는 컨셉을 통해 B와 C 사이에 절묘하게 걸쳐져 있는 경우도 있다.



    ■ 내 캐릭터의 정체성 네 가지


    확실한 점은 캐릭터 유형에 따라 몰입시키는 방법에 차이점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 더해 캐릭터의 유형이 똑같더라도 받아들이는 플레이어에 따라 정체성을 다르게 해석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를 네 가지 유형으로 나눠서 생각하는 편이다.

    각 유형은 나와 내 캐릭터를 동일하다고 여기는 정도인 자아 동일성, 의사 결정을 할 때 외부의 플레이어가 얼마나 적극적으로 개입하느냐의 정도인 외적 자아의 개입도를 통해 구분할 수 있다. 캐릭터에 감정을 이입하는 1번 유형, 나를 내 캐릭터와 동일하다 생각하는 2번 유형, 작품 밖의 관찰자인 3번 유형, 마지막으로 제 2의 자아라고 여기는 4번 유형이 있다.

    각각의 유형을 예시와 함께 살펴보자면, 우선 캐릭터에 이입하는 1번 유형에는 '더 라스트 오브 어스 2'의 엘리가 있다. 플레이어는 조엘의 복수를 하려는 엘리에게 이입하게 된다. 이런 유형은 이야기에서 나타나는 인물이 마치 나인 것 처럼 깊게 이입은 하되 의사결정은 내가 아닌 캐릭터의 선택을 수용할 수밖에 없다.

    다음은 내가 바로 내 캐릭터다 하는 2번 유형이다. 캐릭터는 나를 게임에 연결하는 분신, 즉 아바타에 가까우며 모니터 뒤의 내가 주인공이니까 의사 결정도 내가 내리는 경우가 많다. 작품 밖의 관찰자 유형인 3번은 소설책을 읽는 독자처럼 이야기의 흐름과 작품에서 보여지는 인물의 행동을 감상하는 쪽에 무게를 두는 편이다.

    마지막으로 제2의 자아를 나타내는 4번 유형이 있다. 예시로 디비니티 2를 들 수 있다. 묘지기 파리마가 어떤 살인 사건에 관해 질문하는데, 사실 살인 자체는 내 캐릭터가 저지른 게 맞지만 사기꾼 컨셉의 캐릭터이기에 전혀 모르겠다는 대답을 하게 된다. 이렇게 4번 유형은 플레이어가 내 캐릭터의 설정을 미리 잡아두고 그에 맞춰 행동하는 타입으로 TRPG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정체성 역시 어느 한 쪽에만 속한다고 보긴 어렵다. 어떤 순간에는 1번이었다가 2번이 되기도 하고, 게임 장르에 따라 어느 한 유형에 고정될 수밖에 없기도 한다. 하지만 사람에 따라 캐릭터를 받아들이는 방법이 다르다는 점은 확실하다. 그렇기에 이 유형에 따라서도 이야기에서 신경 쓸 부분이 다르게 존재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이를 실제 작업에 어떻게 유효한 지점들을 활용했는지 구체적 사례와 함께 살펴보자.

    작년 여름 업데이트한 마비노기 G24/G25는 챕터7에 속한 4개의 메인스트림 후반부 중 2개였고, 마무리단계다 보니 플레이어가 수용해야 할 정보가 매우 많았다. 그래서 이야기에의 몰입도가 떨어지면 큰일이라 생각했고, 어떻게 하면 더 집중시킬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그래서 앞에서 다뤘던 캐릭터 유형에 따른 공략법을 먼저 참고했다. 초창기 프로젝트에서 정의했던 캐릭터 밀레시안은 플레이어와 같았다. 소울스트림은 인터넷의 은유고, 플레이어는 이를 통해 게임 세계인 에린에 접속한다는 컨셉이었다. 하지만 17년 동안 라이브 서비스가 진행되며 아주 많은 이야기들이 이어졌고, 점점 초창기의 컨셉은 옅어지고 밀레시안이 하나의 주인공 캐릭터로서 영웅의 길을 밟아가는 여정에 좀 더 무게가 실려 갔다.

    이에 기본적으로는 기초적 정보와 포지션만 제공하는 B 유형에 맞는 공략법을 참고해 초안을 짜되 여전히 초창기 때의 소위 메타 설정 부분을 매력 있게 활용할 여지는 남아있다고 판단했다. 이 점이 마비노기만의 고유한 특색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각 케이스에서 캐릭터와 플레이어에게 어필할 부분을 추려냈다.


    A유형의 경우 이야기에 등장하는 다른 NPC들을 다룰 때 유효한 포인트가 있다고 판단되어 함께 참고하기로 결정했다. 이렇게 주요 캐릭터 유형별로 유효점을 살펴봤으니 정체성 유형에 따른 특징도 마비노기에 맞춰 확인하고자 했다.

    마비노기에서는 2, 4번 카테고리, 즉 나와 캐릭터를 동일시하거나 제 2의 자아로 생각하는 곳에 대부분의 플레이어가 속할 것이라 판단했다. 지향색 요소 등 내 캐릭터에게 플레이어의 의사 개입이 행해지는 상황이 아주 많았기 때문에 전반적으로 외적 자아의 개입도가 높지 않을까 싶었다. 2번 유형은 플레이어 입장에서 의미가 높은 지점을 강화하기로 결정했고, 4번 유형은 롤플레잉 요소를 재밌게 여길 경우가 많은듯해 다채로운 선택지와 세심한 피드백을 주는 방향을 잡았다.

    1, 3번 유형의 경우 다른 타겟을 대상으로 유효점을 찾을 수 있으리라 판단했다. 1번 유형은 특히 NPC를 다룰 때 공략법이 될 수 있겠다 생각했고, 3번 유형은 전반적인 이야기 흐름에 중점을 두고 감상하는 타입이라 깔끔한 마무리와 감상 환경 쪽에 신경을 쓰기로 했다.

    이렇게 주요 캐릭터 유형과 캐릭터 정체성 유형에서 뽑아낸 내용을 바탕으로 시나리오 작업 방향을 4개로 구분해서 설정했다. 캐릭터와 NPC, 플레이어, 마지막으로 이야기 전개 시에 참고할 나름의 공략법을 정리했다.



    ■ 캐릭터와 관련하여 신경 써야 할 부분

    사실 대부분의 플레이어들이 내 캐릭터가 이야기의 구심점이 되면 쉽게 몰입한다. 그럼에도 그동안 많은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안 사건의 중심에 서 있는 인물은 내가 아닌 NPC인 경우가 많았다. 중요한 전투나 행동을 내 캐릭터가 진행하긴 하지만 이야기를 감상하는 포지션에서 전개되는 일이 다수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후 조금씩 NPC에서 PC로 초점이 이동되었고, 챕터 7은 처음 시작부터 내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잡고 끝까지 그 기조를 유지해 몰입도를 높이려 했다.

    그러기 위해 진짜 주인공이 나라고 느껴지게끔 신경을 많이 썼다. 이야기의 중심은 내 캐릭터고 G25의 경우에는 아예 가장 핵심적인 사건 자체가 내 캐릭터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많은 NPC들이 나 때문에 모이고 움직이며 나의 선택과 결정으로 변하는 요소도 많이 넣도록 초안 작성 단계부터 고민을 했다.


    다음은 이야기 개입도를 높이고 피드백을 주는 부분이다. 내 선택으로 이야기를 바꾼다는 경험 자체가 굉장히 의미 있기 때문에 개입도를 높이면 당연히 좋다. 하지만 라이브 서비스 게임에서 개입도를 높이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다. 당장 넣는 건 할 수 있지만, 다음 이야기를 쓸 때 고려할 요소와 그에 따른 개발 비용이 너무 커질 수도 있다. 매년 정해져 있는 성수기 직전 6개월이라는 한정된 시간 안에 시놉시스부터 시작해 리소스를 구성하고 구현하려면 물리적으로 한계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

    이에 의미 있는 선택이라는 느낌을 전달하는 게 더 중요하다 생각했다. 결과를 크게 바꾸기보다는 도달하는 방법에 차이를 두거나 세심한 피드백을 마련하는 쪽으로 선택이 충분히 존중받고 반영된다는 느낌을 전달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G24때의 예시를 하나 들어보자. 캐릭터가 마을을 돌아다니며 악몽을 꾼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이때 골랐던 선택지의 답을 저장해서 중간 보스 미션에 활용했다. 무섭거나 싫은 대상이 나오는 악몽이라는 컨셉에도 좀 더 부합하게 만들 수 있었던 사례라고 생각한다.

    이런 식으로 선택 과정의 의미를 더하려 노력했다. G25에서 베임네크의 마지막을 직접 결정짓는 상황 역시 카메라 워크나 BGM등을 통해 결정에 대한 중요성을 전달하려 했다. 이 부분의 경우 사실 무엇을 고르더라도 후회가 남도록 의도적으로 디자인된 부분인데, 그런 느낌이 NPC에 대한 애착으로 남게 될 거라 예상했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문득 단순히 대화 선택지 말고도 개입도를 높일 법이 없을까라는 고민도 있었다. G24 1부 중간 보스 미션을 한창 테스트할 때였는데, 담당 QA가 너무 어려워 못 깨겠다는 말을 했었다. 이미 두세 차례 너프한 상황이었기에 고민이 많았다. 이에 캐릭터의 행동으로 분기를 만들어 보자는 결론을 내렸다.

    처음 미션에 입장하면 클리어 조건이 마치 1개인 것처럼 여겨진다. 그러다 2페이즈에서 계속 행동 불능 상태가 되면, 어느 순간 목표가 변경되도록 수정했다. 계속해서 쓰러질 때마다 적군 NPC가 해당 사실을 인지하고 그에 맞는 대사를 해서 캐릭터성을 강화할 기회도 같이 챙길 수 있었다.

    그렇게 원래 목표대로 적군을 물리쳐도 되지만, 일정 횟수 쓰러지면 적군이 흥미를 잃었다는 방식으로도 미션을 클리어할 수 있게 스크립트를 고쳤다. 단순 선택지 버튼 외에 내 행동으로 방법이 결정된다는 느낌을 전달할 수 있었던 사례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개입도를 높이고 피드백을 주는 게 마냥 좋지만은 않았다. 가장 큰 이유는 역시 비용의 증가였다. 투입하는 부분이 늘어날수록 텍스트와 구현 비용은 물론이고 전투 담당과의 커뮤니케이션도 계속 증가했기 때문이다. 결국 개발 기간을 고려해 꼭 필요한 부분 위주로 개입도를 신경 쓰게 되었다.

    두번째는 제공 가능한 롤플레잉 요소의 한계점이 명확하다는 점이었다. 우선 선택에 대한 아주 디테일한 묘사나 연출이 어려웠다. 아무리 여러 선택지를 넣어둔다 한들 모든 케이스를 마련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자칫하면 선택지 중 마음에 드는 것이 하나도 없어서 몰입도가 하락하는 역효과가 발생할 수도 있다. 그래서 예/아니오로 분명하게 대답할 부분에만 넣어야 하는가의 고민도 있었고 그 고민 끝에 G25에서는 침묵이라는 선택지도 추가했는데, 신선함과는 별개로 효용성이 컸는지는 개인적으로 다소 의문이 들기도 했다.


    ■ NPC와 관련하여 신경 써야 할 부분


    우선 어디를 가든 인물과 NPC가 조우하도록 의도적으로 동선을 짰다. 퀘스트를 진행할 때 혼자 머무는 구간을 최소화해서 디자인했고, 전투 상황에서도 가능한 많은 동료를 아군으로 투입해 미션 도중에 NPC와 함께하는 장면 위주의 카메라 워크를 빈번하게 잡았다.

    인물 사이의 상호작용 요소도 많이 신경 썼다. 내 캐릭터와 NPC 사이에 굉장히 다양한 대사를 넣어두었다. 거의 모든 순간의 서브 대사를 투입했고 선물 대사는 거의 백 개 가까이 배리에이션 했던 것 같다. 이외에 특정 콘텐츠나 퀘스트 수행 여부도 체크했다.

    그 밖에 상대방과 관련된 아이템을 보유하거나 입고 있는지에 따라 반응을 하기도 하고, 같은 아이템이라도 대화하는 인물에 따라 반응을 다르게 챙겨 넣기도 했다. 이런 식으로 내 캐릭터와 NPC 간의 상호작용을 디테일하게 신경 썼다.

    그리고 NPC끼리의 합도 잘 맞추려 노력했다. 다른 인물들과의 비교로 각자의 특징을 비교하거나, 이야기에 흥미를 잃지 않게 유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런 부분을 잘 해소하기 위해 인물의 태도와 행동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도록 충분히 정보를 제공하는 게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이에 과거 회상이나 NPC 입장에서 플레이하는 RP 미션 등을 통해 정보를 적절한 순서에 맞게 전달했다. 인물의 동기나 목적을 파악해야 충분한 공감이 가능하기에 인물의 정보를 전략적으로 배치해서 적절한 시점에 제공하려고 초안부터 신경을 굉장히 많이 썼다.

    다음은 퇴장 방법에 대한 고민이다. 마무리 단계라 인물과 잘 작별하는 부분도 중요하게 다루어 주려 했다. 최선의 해피 엔딩을 목표로 삼고 이야기를 구성했다. 인물의 매력에 빠져 이야기를 즐겼다면 해피 엔딩을 좀 더 선호할 거란 예상도 있었다. 이에 후일담 파트를 배치해 나와의 교류를 통해 저마다 조금씩 성장한 모습도 보여주고, 작별을 하게 된 인물 역시 적어도 본인 기준에서는 만족했다는 점을 전달하려 했다.

    챕터7은 매력적인 악역이 많아서 퇴장법 정하기가 솔직히 쉽지는 않았다. 일종의 속죄를 위한 죽음을 반복하는 게 과연 괜찮을까의 지점에서 고민을 많이 했고, 옳다 그르다의 답은 내리지 않도록 주의하되 최대한 다양한 방법을 제시해보려 했다. 이외에도 완료 이후에 상주 NPC를 배치해서 지속적인 상호작용이 가능하도록 했다.



    ■ 플레이어와 관련하여 신경 써야 할 부분


    게임 밖의 플레이어여야만 발견할 수 있는 영역에도 공을 많이 들였다. 대표적으로 퀘스트나 미션, BGM의 제목으로 볼 수 있는 네이밍이 있다. 의도적으로 대비되는 단어를 사용해서 상황을 강조할 수 있다. 예시로 G25에서 1부와 2부가 마치 데칼코마니처럼 반대로 뒤집힌 상황에 맞게 퀘스트와 미션 명을 배치했다.

    언어유희를 통해서도 좀 더 생각할 부분을 남겨줄 수 있다. 이 지점이 모국어 게임을 즐기는 메리트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비유와 함의를 통해 고찰할 부분을 남겨두는 것도 중요하다. G22, G24, G25에서 각각 체스 용어를 사용했던 미션과 퀘스트들이 있었다. 특수규칙의 뜻에 부합하는 내용이라 생각해서 이름 붙였는데, 업데이트 후 의도한 부분을 근접하게 분석한 글이 있어 굉장히 흥미롭게 읽었다.

    플레이어가 화면을 봐야만 깨달을 수 있는 영역도 있다. 인물 배치나 구도로도 이야기 상황을 전달하는 게 가능한데, 대비되는 포인트를 강조해 이야기 흐름에서 처한 상황을 알아차릴 수도 있고, 등장인물 사이에서의 차이점을 부각하는 수단으로도 쓸 수 있다.

    게임 시스템 요소 역시 활용했는데, 특정 캐릭터의 시점에서 플레이할 때 주로 사용했다. 스킬 레벨업 효과를 연출하거나 인벤토리 안의 구성품도 인물의 특색에 맞는 물품으로 넣어주기도 했다. 또한 캐릭터 스테이터스나 스킬 목록 역시 신경 써서 만들었다. 그렇게 설정한 내용의 변화를 통해서 이야기의 흐름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보여주는 수단으로 활용하기도 했다.



    ■ 이야기 전개와 관련하여 신경 써야 할 부분

    다음 사례 전 G25의 초안을 고민할 때 이야기를 먼저 하고 싶다. 보통 스토리 콘텐츠를 즐기다 보면 중간에 전투하는 미션이 있고, 이를 클리어 할 시 자연스럽게 다음 스토리로 진행된다. 하지만 실패했을 땐 어떻게 될지가 신경 쓰였다. 미션에서 실패하면 진행 직전으로 시점이 이동하는데, 그럼 실패했던 사실 자체도 사라지는 건가? 다음 스토리로 진행하지 못한 그 시도는 어떻게 된 거지?라는 궁금증이 들었고, 여기서 시작된 의문이 G25 내용을 짜는 데 많은 영향을 끼쳤다.

    이러한 메타 설정을 전체 스토리텔링에서 미션 실패의 부분을 정확히 짚어냄과 동시에 기존에 다소 애매하게 처리된 설정을 보완하는 수단으로 쓸 수 있었다. 왜 내가 이야기를 진행해야만 에린의 시간이 흘러가는 것 처럼 보여지는지, 나 말고 다른 주인공이 진행하는 이야기는 어떻게 같은 세계에 공존할 수 있는 건지, 전투에서 패배하면 실패한 세계는 어떻게 되는지 등을 타니미라크와의 대화를 통해 마비노기 세계관에 이런 메타적 설정을 녹여낼 수 있었다.

    물론 이 지점은 상당히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다뤄야 한다고 생각한다. 몰입도를 깨는 역효과가 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처음 G23에서 타닐리엠이 '0과 1의 세계'라는 대사를 하는데 이때 반응이 극명하게 갈린 게 그 이유 때문이 아닌가 싶었다. 이에 그 뒤로 설정을 보완해서 전달하는 데 신경을 많이 썼다. 단, 마비노기는 기존에 현실과 게임 세계를 연결하는 특유의 설정이 있어서 가능했던 사례라고 생각한다.


    다음은 과거 이야기를 상기시키는 방법이다. 예전에 나왔던 스토리나 설정을 기억하고 있다면 더욱 내용이 의미 있게 느껴지도록 구성했다. 베임네크가 권속을 부르기 위해 사용한 주문은 이전 키홀이 사용하던 것과 거의 동일하고, G25 초반 기사단의 카즈윈과 조우하게 되는 미션은 G20에서 아주 힘겹게 아주 힘겹게 마주할 수 있었던 첫 만남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그 밖에도 익숙한 소재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어, 이거! 하는 느낌을 주고 내용을 되짚어 볼 때 의미 있는 지점을 심어주도록 노력했다.

    플레이어 파트에서 가장 신경 쓴 부분은 여운을 느낄 수 있도록 지금까지의 플레이에 의미를 부여한 것이다. 이야기를 감상해온 행동 자체가 뜻깊었다는 점을 전달하고 싶었다. 마비노기가 벌써 17년 된 게임이고, 수많은 이야기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감상한다는 것이 아주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당신의 이야기'라는 점을 강조하고자 했다. G25의 가장 마지막 퀘스트 이름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진행한 모든 내용이 마치 도미노처럼 연속성이 느껴지게끔 보완하는 데 중점을 뒀다. 이를 통해 마지막까지 즐겨준 주체인 플레이어의 행동까지도 이야기의 일부로 끌어들일 수 있었다. NPC의 대사를 통해서도 언급했는데, 여태 재미있게 했던 이야기가 다름 아닌 내 이야기였다라는 점이 잘 전달되길 바라면서 여기까지 해주셔서 정말 감사하다는 마음으로 썼던 대사였다.


    이야기 전개에서 가장 신경을 쓴 포인트 중 하나는 바로 감상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자는 것이었다. 정보량이 많다 보니 최대한 쉽게 풀어쓰자는 생각이었고, 흐름만 따라오면 내용을 파악할 수 있게 유도해서 이후 전개를 예측하고 적중하는 쪽의 재미에 좀 더 포커싱을 두었다. 이에 내용을 예측할 수 있게 일부러 복선을 만든 부분도 꽤 있었다.

    새로운 인물이 등장할 때도 쉽게 파악할 수 있도록 유도했다. 인물이 나오자마자 어디에 속했는지 알 수 있도록 설정했으며, 기존 인물과의 관계성을 가늠할 수 있도록 관련 포인트를 넣기도 했다.

    다음은 이야기 완급 조절이다. 개발 일정이나 마케팅 이슈 때문에 하나의 이야기를 여러 차례 분할하며 업데이트해야 할 일이 생긴다. 이때 적절히 나누는 점 역시 유효한 공략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G24의 경우에는 분량이 상당히 많아 1부와 2부가 각각 독립된 이야기에 가까웠다. 덕분에 완성도는 높았으나 꼭 2부를 해야할 동기 부여가 부족했다고 판단했다.

    이에 고민하다 웹소설과 웹툰에서 착안, 아주 중요한 장면을 보여준 채 끊어버리고 다음 업데이트를 기대하게 만들기로 했다. G24 2부 종료 장면이라던가, G25 1분의 마지막, 모 커피 체인점 로고를 넣어야 할 것 같은 그 부분이다. 만들다 보니 예상보다 더 절절한 타이밍에 끊어지더라. 아쉬워하던 분들도 있었으나, 원래 의도했던 꼭 다음 이야기를 보게 만들자는 부분은 확실히 유효했던 것이 지표상으로도 나타났다.


    좀 더 신경 쓴 지점은 다시 하거나 구경할 때도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자는 부분이었다. 앞서 개입도를 높이는 데 신경을 썼으니 다른 사람과 진행에 소소하게 차이점이 존재할 것이라 생각했다. 이 부분이 콘텐츠 플레이 완료 후의 추가 액션으로 이어진다고 봤고, 타인의 감상을 보거나 내용을 복기할 때 새롭게 보이는 부분을 많이 심어뒀다. 서로가 어떻게 반응했는지를 비교하는 데에서 오는 즐거움도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 외에 스토리 진행 난이도를 하향하는 쪽도 같이 진행했다. 처음 아포칼립스 챕터가 상당히 어려웠으나 더는 안되겠다는 내부적 판단이 있었고, 이에 업데이트 전 선행 스토리의 난이도를 전부 하향하고 G25의 진행 난이도도 거기 맞춰 밸런싱했다. 확실히 케어한 보람이 있었고 효과는 엄청났다.

    여러 차례 시나리오 콘텐츠를 담당했는데 이렇게 완수율이 높게 나온 적이 드물었기에 정말 놀랐다. 진행 현황 역시 케어 이후 이탈 수치가 줄어들었다. 끝까지 완수한 비율도 G25는 거의 두 배 이상으로 대폭 증가했고, 이탈 캐릭터 규모도 자릿수가 달라질 정도로 큰 폭으로 감소했다.

    이렇게 이야기를 감상할 환경을 조성했으니 좋은 마무리를 짓는 것이 정말 중요했다. 좋은 마무리라는 것은 크게 두 가지 포인트를 갖춰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그 첫 번째는 해묵은 의문점을 풀어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동안 쌓여온 여러 떡밥들의 깔끔한 해소가 필요하다 판단했고, 대표적으로 G24에서 다뤘던 파르홀론 족의 세라라는 인물을 통해 2악장 이후 진행되지 못했던 삼하인 이벤트를 매듭지었다.

    좋은 마무리를 위한 두 번째 포인트는, 하나의 이야기를 끝마칠 때 다음 이야기의 윤곽을 그리는 것이다. 앞으로 무엇이 올 것이며 미래에 누구를 만날 것인지 그런 내용과 관련된 기대감과 여운을 이어갈 수 있는 새로운 떡밥을 잘 배치해야 한다. 다만 추후 개발 시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너무 구체적인 내용은 언급하지 않고 해석하거나 응용할 여지를 남기는 게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