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도 구원받지 못한 주인공


(※ 본 리뷰는 좀 더 쾌적한 설명을 위해 PS4의 스크린샷도 함께 포함되어 있습니다.)

과거, 어린아이로 있던 주인공이 어른이 되면 무슨 생각이 들까? ‘드래곤볼’에서는 영원한 소년일 줄 알았던 ‘손오공’은 중간에 갑작스럽게 어른이 되고, 결혼해 아이를 낳는다. 그 뒤에도 손오공의 모험은 계속되었고 이제 드래곤볼에서 기억되는 손오공의 모습은 ‘중년 시절’이 되었다. 이렇듯 주인공이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은 격세지감이 느껴지는 순간이다.

‘영웅전설 섬의 궤적 III’도 마찬가지다. 학생으로 생활하던 ‘린 슈바르처’는 청년이 되었고, 학생에서 교관이 되었다. 배우는 입장에서 가르치는 입장이 된 그를 보며 시간이 흘렀음을 느꼈다. 한국과 일본에서 섬의 궤적 II가 2014년에 발매되었고 이후, 3편의 발매에 일본은 3년, 한국은 4년을 기다렸다. 소년이 청년이 되는 과정을 기다리기엔 충분히 납득 가는 시간이다.

드래곤볼에서 청년이 된 손오공이 많은 부분에서 성장을 한 만큼, 린 슈바르처에 대한 성장과 이에 대한 캐릭터의 완성을 ‘3편’에서 기대한 사람들이 많았다. 물론 서사의 완성은 이루어지긴 했지만 예상 못한 ‘4편’에서 이루어졌고, 3편은 좀 더 확장된 위협과 제자리 걸음에 가까웠다. 하긴, 전투 시스템이나 그래픽 등, 많은 것이 달라져 있었으니까, 한 번만 활용할 리는 없었겠다.

4편이 2편을 오마주한 부분이 많은 것처럼 3편도 1편의 내용을 오마주한 부분이 많다. 극초반에 린 슈바르처가 신 VII반이 허둥지둥 대는 부분에서 자신의 학창 생활을 떠올리는 부분이 있을 정도로 말이다. 그렇지만 스케일은 좀 더 커졌다. ‘결사, 스스로를 먹는 뱀’이 전작보다 더욱 적극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고, 어느 정도 제로/벽의 궤적과 같은 시간대를 공유하던 전작과 다르게 이번엔 독립적인 시간대를 가지고 있다.

게임명: 영웅전설 섬의 궤적 Ⅲ
장르명: RPG
출시일 : 2021. 3. 25. (한국, Steam판)
개발사 : 니혼 팔콤
서비스 : 클라우디드 레오파드 엔터테인먼트
플랫폼 : PC (Steam) (원작: PS4)

관련 링크: '영웅전설 섬의 궤적 Ⅲ' 오픈크리틱 페이지


전작과 비교해보는 그래픽

팔콤 게임 하면 그래픽이 제일 화두에 오른다.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고 상당히 발전한 ‘여의 궤적’의 그래픽에도 같은 의견이 오간다. 하지만 알아야 할 점은 전작과 다르게 섬의 궤적 III의 그래픽은 적어도 어색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모델링은 목각 인형에서 어느 정도 곡선이 있고 캐릭터 답게 보이게 되었으며, 등신대도 크게 조절되었다.

쉐이더 품질도 어색하지만 전작 대비 나쁘지 않게 적용되어 있으며, 배경 그래픽 또한 아직 부족한 점은 많지만, 전작에서 발전한 부분이 많다. 전체적으로 많이 깔끔해졌다는 인상을 받았고 이 정도면 팔콤의 그래픽 기술이 계속해서 좋은 방향으로 발전해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왜 자꾸 “그래픽이 나쁘다.”라는 인상을 받게 되는 것일까.

첫 번째는 ‘모션’이라고 생각한다. 그래픽의 발전과 다르게 모델링에 들어가는 모션이 상당히 딱딱하고 절제되어 있다. 그리고 항상 비슷한 모션을 캐릭터끼리 돌려쓴다. 포권이나 가슴에 손을 얹는 모션 등, 많이 보았던 모션을 캐릭터마다 똑같이 행하고 있다. 캐릭터의 움직임은 각자의 성격을 묘사할 수 있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인데, 아직 이런 부분에서는 큰 부족함이 느껴지는 것이다.

두 번째는 ‘과한 기대감’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에선 아직 팔콤의 80년~90년대 황금기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다. 당시 도트 그래픽은 어색을 넘어 당대 다른 게임과 견주어도 꿇리지 않을 정도였기 때문이다. 이런 시대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현대의 팔콤이 못마땅하게 보일 수도 있다. 다만, 기억해둬야 할 부분이 있다. 팔콤은 중소 규모를 유지하면서 차근차근 발전해 나가고 있는 회사라는 점을 말이다.

▲ 섬의 궤적 I/II의 그래픽을 생각해본다면

▲ 섬의 궤적 III의 그래픽은 놀라울 정도로 진화한 편이다

▲ 다만, 돌려쓰는 모션이 너무 많고 뻣뻣하며, 어색하다

▲ 최근 모션 캡쳐를 도입하기 시작했으니 차기작을 기대해보자



링에서 원버튼으로. 직관적으로 변한 전투

전에는 위, 아래 버튼으로 링 형태의 메뉴를 움직여 커맨드를 선택하는 ‘링 버튼 시스템’이 들어갔지만, 이번 작품에서는 한층 발전된 ‘원 버튼 시스템’이 들어간다. 적과의 전투도 로딩 없이 바로 돌입할 수 있어 편리함은 더욱 쾌적해졌다. 불필요한 여러 입력이 들어가는 링 버튼 시스템과 달리 한 번에 다른 메뉴로 들어갈 수가 있게 되어서 좀 더 편리해졌다.

이번 작의 새로운 시스템은 바로 ‘오더 시스템’으로 전작의 링크 포인트에 해당하는 ‘브레이브 포인트’를 소비함으로서 발동할 수 있다. 오더 시스템을 이용해 공격력과 방어력을 높이거나, 아츠 구동 시간을 줄이는 등, 여러 버프를 얻을 수 있다. 또한 적이 쓰러지는 것과 별개로 ‘브레이크’ 게이지를 붕괴시키면 적이 다시 자세를 잡을 때까지 아군이 턴을 가져가며 적을 때릴 수 있다.

다만, 오더/브레이크 시스템이 처음이어서 그런지, 밸런스가 잡혀져 있지 않은 부분을 볼 수 있는데 바로 ‘유나 크로포드’의 오더인 슬래지 해머다. 포인트 1점을 소비해서 브레이크 포인트 +300%를 먹일 수 있게 해주는데, 이를 잘 활용하면 적들의 자세가 쉽게 붕괴되어 무너진다. 그럼 거의 무한정이란 느낌으로 턴을 가져가게 되는데, 쉬운 것을 넘어 게임의 재미를 반감시키는 요소다.

물론, 해당 오더를 중요한 순간에 쓰거나 아낀다는 가정 하에 진행하면 나름 재미를 볼 수 있다. 오더로 아츠의 구동 시간을 줄여 공격하거나, 절대방어를 통해 적의 필살기를 방어하고 반격의 봉화를 올릴 수 있다. 반대로 후속작에선 해당 시스템이 재조정에 들어갔기 때문에 오더 시스템이 얼마나 강력했는지를 본작에서 시험해볼 수도 있겠다.

▲ 전투 시스템이 개편되어 좀 더 편의성이 높아졌다

▲ 브레이브 오더는 이 게임 내에서 굉장히 중요한 요소로 작용

▲ 연출은 더욱 확대되고

▲ 정교해져서 상당히 볼만해졌다

▲ 매력적인 S-크래프트 컷신과 함께

▲ 적들을 섬멸시켜보자



이제 PC 이식은 차기작이 기대된다

섬의 궤적 III의 이식도 굉장히 훌륭하다. 옵션 설정을 어려워하는 유저들을 위해 ‘사전 설정’이 새로 생겼고, 프레임레이트는 무제한 옵션, 해상도는 4K까지 지원한다. 그 뿐만 아니라 슈퍼 샘플링 기능, 비등방성 텍스처 필터링, 앰비언트 오클루전 기능까지 설정할 수 있고, 시야각 (FOV)나 버튼 표시 기능도 수정할 수 있다.

설정할 수 있는 옵션의 다각화도 좋지만, 제일 눈에 띄는 점은 ‘오토 세이브 설정’과 ‘하이-스피드 모드 설정’이다. 오토 세이브를 아예 끄거나 1분마다 세이브 하는 형태로 지정할 수도 있고 하이-스피드 모드는 전투 시의 배속 설정과 필드의 배속 설정을 다르게 설정할 수 있다. 최대 6배까지 설정이 가능한데, 이는 콘솔에서 설정할 수 있는 한도를 넘어선 배속이다.

▲ 굉장히 놀랐던 부분인데, '와이드 모니터'가 일부 지원된다.

▲ 다만, 게임 자체가 와이드를 고려하지 않아서 그런가, 가끔 오브젝트를 뚫어버린다

▲ 일부 화면에서는 와이드가 아닌 일반적인 4:3 비율로 고정된다

▲ 그래도 어떠하리, 궤적을 좀 더 넓고 쾌적하게 즐길 수 있는데

게다가 PS4에서는 유료 DLC로 제공되었던 부분들이 PC판과 발매 예정인 닌텐도 스위치판에는 전부 무료 형태로 포함되어 있다. 코스튬 하나에도 민감한 유저라면 반가워할 정보다. 또한 하이-스피드 모드가 PS4판 본편에선 아시아판만 업데이트 되질 않았기에 반대로 PC판이나 닌텐도 스위치판이 훨씬 장점이 많아졌다.

섬의 궤적 1편에선 삐걱거리는 부분이 많았지만, 섬의 궤적 II부터는 만족스러운 옵션 기능이 들어가 있었고, 섬의 궤적 III에선 더욱 발전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다음 이식작들은 어떤 옵션을 조절할 수 있을지 기대되는 부분이다. 빨리 섬의 궤적 IV나 시작의 궤적이 발매되었으면 좋겠다.

▲ 비교샷 1. 캐릭터의 전체적인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 비교샷 2. 린 이외에도 다른 캐릭터가 내려오는 모습이 확실하게 비춰진다

▲ 섬의 궤적 3 '와이드 모니터' 플레이 영상



전작과 비교해본 린 슈바르처의 새로운 궤적

학생이었던 린 슈바르처가 걷는 궤적은 좀 더 어두워졌다. 학생에서 교관으로, ‘잿빛 기사’로 넘어가면서 점점 책임감과 억압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그런 그는 자신 나름대로의 답을 찾기 위해, ‘그저 한결같이 앞으로-’라는 유언을 지키기 위해 ‘변방도시 리브스’에 있는 토르즈 사관학교 제 II 분교에 교관으로 취임하게 된다.

그 곳에서 크로스벨 출신이라는 복잡한 사정을 안은 ‘유나 크로포드’, 자신의 검의 길에 망설임이 남아있는 ‘쿠르트 반다르’, 그리고 2년 동안 자신의 파트너를 담당했던 정보국 소속의 ‘알티나 오라이온’까지 엮여 ‘특무과 VII반’을 담당하게 된 린은 제자들을 돌보면서 자신을 되돌아보고 그들을 지키면서 잿빛 기사가 아닌 ‘린 슈바르처’로서 함께 성장해 나간다.

섬의 궤적 III은 섬의 궤적을 비추는 거울이다. 섬의 궤적에서 따라갔던 자유행동일 -> 구 교사 탐색 -> 특별 실습 시작 -> 도시의 문제 해결 -> 메인 스토리 -> 해결 -> 특별 실습 끝 -> 자유행동일 패턴을 거의 답습했다. 다만, 1편에서는 구 VII반의 인물 스토리에 집중하고 에레보니아 제국의 설명에 중점을 뒀다면 3편은 결사의 움직임이 격해져 스토리의 범위가 좀 더 넓은 범위로 확장되었다.

그리고 많은 등장인물들은 여전하지만, 분리시켜 등장시키기 때문에 큰 불편함은 없다. 구 VII반이 상당히 많다는 것을 감안해 각 챕터마다 따로 배분했으며, 흥미를 돋구는 전작 등장인물들이 대거 등장한다. 제로/벽 시리즈에선 특무지원과로 친숙한 랜디 올랜도와 티오 플라토가, 하늘 시리즈에선 티타 러셀과 애거트 크로스너가 등장해 전작에 대한 예우도 아끼지 않았다.

▲ 특히 크로스벨 인물들을 집중적으로 묘사했다

▲ 티오는 어쩔 수 없지

▲ 벽의 궤적에서 위엄을 뿜던 그 분도 등장

▲ 신규 캐릭터들의 표현도 빼먹지 않아서 더욱 좋았다

또한 구 VII반도 많은데, 여기서 신 VII반이란 새로운 등장인물을 소개시킨 것에는 호불호가 갈리나, 개인적으로는 좋은 판단이라고 생각한다. 우선 구 VII반과 린은 2편이나 되는 게임 속에서 어느 정도의 성장을 이륙해냈다. 실제로 구 VII반은 에레보니아 제국 각지에서 훌륭한 활약을 하는 캐릭터로 소개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린 슈바르처의 새로운 성장을 그려내기 위해서는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는 어린 새싹들이 필요한데, 그런 부족한 부분을 신 VII반이 채워준다. 전작에 대한 반성인지 캐릭터의 수도 특무지원과 수준으로 많지 않다. 경험 면에서도, 실력 면에서도 부족한 점이 많은 신 VII반을 어느 정도 성장한 린이 이끌어 나가면서도 자신 또한 부족한 점을 성장시킬 수 있는 장치인 셈이다.

섬의 궤적의 많은 등장인물, 그리고 똑같은 전개를 되풀이하지만 메인 스토리의 줄기가 약했던 1편과 다르게 3편은 ‘환염계획’과 ‘위대한 황혼’에 제대로 다가가게 된다. 물론 모든 것이 해결되지는 않지만 아무 것도 남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운 2편과 다르게 3편은 4편 스토리의 빌드업 과정을 훌륭하게 다지고, 그 바통을 넘겨받은 4편은 섬의 궤적 시리즈를 완결시켰다.

물론 몇몇 팬들 사이에서 밈 (meme)이 되어버린 “그럴 필요가 없어.”라든지, 대사나 연출 면에서 발전한 것이 없어 1편의 오마주가 불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최소한 전작에서 전개나 규모 측면에선 좀 더 좋아졌다. 개연성이 훌륭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기본은 하는 것을 고려해보면 팔콤의 시나리오 노하우는 어디 가지 않는다.

"정말로 누군지 모르겠다."

▲ 린이 청년이 되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는 구간

▲ 신 VII반이 린에게 보여주는 태도를 통해

▲ 그저 '사람'으로서의 린을 비추어 줘서 좋았다




영웅전설 섬의 궤적 III는 린 슈바르처를 성장시키고 그에게 새로운 모험을 제공하면서 에레보니아 제국에 둘러싼 진정한 암흑을 조명시켜 주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삼연벙’처럼 세 번 연속 충격적인 엔딩을 맞이한 유저들은 드디어 끝을 고하리라 믿었던 섬의 궤적 시리즈를 기어코 4편까지 보게 된다.

“춤춰라, 미쳐라.”로 시작되는 섬의 궤적 III의 엔딩, ‘비탄의 리플레인’처럼 린의 마음도, 유저들의 마음도 갈기갈기 찢어진 상태에서 끝나게 되지만, 이는 모두 섬의 궤적 IV에서 이뤄지는 대망의 엔딩을 향한 모험의 일부라고 생각된다. 당시에는 생각치도 못했던 만큼, 엔딩에 대한 비난도 일어났었지만, 지금은 그저 거쳐가야 하는 하나의 관문처럼 여겨진다.

▲ '밴티지 마스터'를 미니 게임으로 부활시킨 팔콤

▲ 뭔가 골치 아파진 전하도 찾아오고

▲ 린의 앞길은 왜 또 고생인지.

섬의 궤적의 절망적인 3D 표현과 중구난방으로 뭉친 캐릭터들로 인해 실망한 팔콤 팬들도 분명 있을테지만, 섬의 궤적 3은 그렇기에 늘어난 인물들을 다시 재배치시키고 주인공인 린의 주변을 정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늘어난 캐릭터를 줄일 수는 없기에 해당 캐릭터들을 재조명하면서 오는 피로감은 이루어 말할 수 없었다.

그렇지만 부족한 게임은 절대 아니다. 섬의 궤적 III은 시스템과 그래픽 등을 한층 더 발전시켜 궤적 시리즈의 수명을 크게 늘려놓았다. 그 뿐만 아니라 팬서비스 등, 전작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충분한 예우를 안겨주었고 4편으로 가는 길을 훌륭하게 이끌어줌으로써 그 역할을 충실히 다 했다고 생각한다.


▲ 과거 싸우던 둘은 이제 없고, 우정의 주먹 나누기만이 남은...!

"그러니 비추어 내라, 린 슈바르처."




▲ 기왕이니 '그 OST'도 듣고 가자
"그럴 필요는 없어."
(출처: 유튜브 'Falcom Music Channel' 채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