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L을 해본 게이머라면, 자신에게 익숙하지 않은 포지션이 걸려 당황한 경험이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실력을 최대로 발휘하기 힘든 어색함 속에서 게임을 하는 게 쉽진 않다.

프로씬 역시 마찬가지였다. 프로게이머를 선발하는 과정부터 포지션별로 나눠서 후보를 뽑는다. 그렇게 선발된 선수들이 포지션 변경이라는 위험을 감수하는 일 역시 흔하지 않다. 결과로 모든 것을 말하는 프로의 세계인데, 자신의 최대 기량을 발휘하기 힘든 포지션으로 향한다는 건 모험에 가까운 일이다. 그것도 최고 수준의 프로들 사이에서 시도하긴 더 어렵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2021 LCK 서머의 담원 기아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포지션 변경을 해내고 있다. 과거 G2의 '퍽즈-캡스'나 '앰비션-스코어'를 떠올려 볼 수 있으나, 담원 기아의 행보는 이들과 또 다르다. G2나 '앰비션-스코어'는 다른 포지션을 준비할 기간을 가지고 임했다. 반면, 담원 기아는 자신의 포지션으로 경기에 임하다가 스플릿 중간에 갑작스럽게 포지션을 변경한 것이다. 그런데도 승리를 이어가고 있다. 그것도 한 명이 아닌 두 명 '쇼메이커-캐니언'이 동시에 포지션을 바꿨다. 한 스플릿 내에서 자신의 역할도 소화해내면서 동시에 다른 포지션까지 소화하하는 건 정말 드문일이다.

이전까지 담원 기아와 비슷한 형태의 라인 스왑은 오래가지 못했다. 과거 아프리카 프릭스가 에이스 '기인' 김기인의 캐리력을 협곡 전반에 영향력을 펼치기 위해 미드 라인으로 포지션 변경을 시도해봤고, KT에서는 탑 라이너 '스멥' 송경호가 건강상의 이유로 결장한 '투신' 박종익의 서포터 자리를 대신하기도 했다. 해당 라인 변경은 임시방편이었을 뿐, 본보기가 될 만한 선례는 아니었다. 그렇기에 담원 기아의 행보가 더 신선하게 다가온다. 일회성이 아닌 연승의 공식이 되면서 앞으로 더 성장할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담원 기아는 어떻게 포지션 변경과 승리 공식을 완성할 수 있었을까. '고스트' 장용준이 6월 13일 KT전에 출전한 뒤, 단 4일 만에 변신과 함께 승리를 이어가고 있다. 짧은 시간 내에 해낸 일이기에 더 대단해 보인다.



담원 기아 승리 공식 : '쇼메-캐니언' 한타만 가자



독보적인 신예 미드 라이너 탄생? '캐니언' 미드 지표

승률 4전 전승 100% - 1위

분당 골드 수급 414골드 - 1위

KDA 8.4 - 1위

경기당 평균 킬 2.8회 (미드 '쇼메이커' 지표와 동일) - 공동 4위


먼저 담원 기아는 간단, 명료한 승리 공식에 맞춰 경기를 이끌 줄 알았다. 라인전 단계가 지나고 한타 단계에 들어서면, 스프링 우승팀 담원 기아의 장점이 나온다. 팀원들이 기본적으로 정확한 스킬샷-어그로 핑퐁, 적절한 합류와 운영 능력은 갖췄기에 가능했다.

그중 '캐니언'은 미드 프로도 잘 다루는 선수가 몇 명 없다는 라이즈를 선보였다. 영상에선 상대 딜러진의 진입을 막는 포지션에 있다가, 난입으로 상대 공격을 회피한 후 다시 들어가는 움직임이 돋보였다. 정글러 출신이다 보니 AP 메이지는 익숙하지 않을 텐데, 잘 소화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쇼메이커' 허수 역시 이즈리얼로 착실하게 딜을 넣으며 POG까지 선정된 적 있을 정도다.

해당 공식 하에 담원 기아의 과제는 라인전 단계를 무사히 넘기는 것이었다. 한타 단계에 영향을 줄 만한 CS 격차가 벌어지거나 솔로 킬을 당하지 않는 것부터 시작한다. 주 포지션이 아닌 '캐니언-쇼메이커'은 레벨마다 다른 상황이나 챔피언 상성과 같은 정보는 상대에 비해 부족하다. 나아가, 챔피언 폭을 넓혀야 한다는 점이 발목을 잡을 수 있었다.

이를 바탕으로 상대 팀은 픽밴 단계에서 '캐니언'과 '쇼메이커'를 저격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미리 준비했다는 듯이 새로운 픽을 꺼내면서 원하는 경기를 펼쳤다. 특히, 정글-미드로 기용 가능한 세트-비에고 정도 잘라주면 막힐 것 같았던 '캐니언' 김건부는 챔피언 폭을 아칼리-라이즈까지 넓히면서 상대 팀을 당황하게 했다. 정작 미드 비에고를 잡았을 때, 정글러로 보여주지 못한 캐리력을 뽐내는 장면은 이색적이었다. 상대 입장에서 어느 정도로 '캐니언'을 픽밴으로 저격할지 오히려 고민이 많아지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 픽밴으로 '쇼메이커-캐니언' 막지 못했다




담원 기아 승리 공식2 : 라인전-한타 징검다리 '칸-말랑'


▲ 근성있게 봇 라인 판 '말랑', 세 번의 솔로 킬

포지션을 변경한 '캐니언-쇼메이커'가 무난하게 라인전 단계만 넘긴다고 원하는 한타 구도로 넘어가진 않는다. 그 사이를 누군가 이어줄 역할이 필요한데, 이를 '칸-말랑'이 충실히 해주고 있다. 포지션 변경 후 담원 기아의 경기를 보면, 두 선수가 초-중반에 변수를 만들어내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칸-말랑'이 한타 단계로 넘어갈 징검다리 역할을 해주면서 조심스러운 라인전으로 경직될 수 있는 담원 기아의 경기가 부드럽게 흘러갔다.

'칸' 김동하는 플레이 메이킹 면에서 뛰어나다. 과거 극한의 라인전이 주 무기였다면, 이제는 노련하게 팀 플레이에 강한 모습이다. 공격적인 '말랑' 김근성의 갱킹에 호응하면서 초반 킬을 만들어내고, 초반 합류전 단계에서도 많은 변수를 만들어냈다. 아칼리-제이스-세트 등으로 한타 때 활약은 기본적으로 담원 기아 경기의 밑바탕이 된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까지 왔다. 그렇게 '칸'이 위기가 될 수 있었던 상황을 맏형으로서 잘 이끌어 주고 있다.

LCK CL에서 LCK로 콜업된 '말랑'은 갑작스럽게 등장해 주목받고 있다. 첫 출전한 아프리카 프릭스 전 2세트에서는 홀로 봇에서 3킬을 만들어내는 인상적인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다. 상대 심리의 허점을 파고드는 능력이 발군이었다. 부쉬 속에서 나와 선제공격을 하는 상황마다 솔로 킬을 기록했다. 그렇게 정글러 '캐니언'의 빈자리가 느껴지지 않는 경기를 이어갔다.

나아가, '말랑'은 현 메타에 맞는 교전 중심의 운영을 충실히 해내고 있다. 과거 '말랑'은 독보적인 갱킹 능력으로 에버8 위너스를 LCK에 올려놓았고, KT에서는 점화 그레이브즈를 선택해 상대 정글로 과감히 들어간 경험이 있다. 아쉽게 자신의 장점이 드러나지 않으면서 하위권 팀을 구하진 못했다. 그렇지만 담원 기아에서 '말랑' 특유의 공격성이 빛나기 시작했다. 포지션과 메타의 변화와 함께 드디어 자신의 장점을 살릴 만한 무대를 만난 것이다.



담원 기아 포지션 변화의 끝은?


포지션 변경 후 담원 기아는 2:0이란 세트 스코어로 2연승을 기록했다. 자신들이 미리 변수를 파악해 제거한 듯한 경기의 연속이었다. 그렇지만 담원 기아가 극강의 라인전을 자랑하는 팀이나 상위권 팀을 만나지 않았기에 가능한 것일 수 있다. 젠지 e스포츠처럼 최상의 라인전 능력을 자랑하는 팀은 여전히 상대의 작은 실수 하나로 킬을 만들어내거나 주도권 차이로 경기를 끝내기도 한다. 아직 담원 기아가 라인전 단계부터 완벽한 것은 아니기에 변수는 충분히 남아있다.

반대로, 담원 기아의 성장세가 어디까지 향할지 모르는 것도 사실이다. 빠른 시간 내에 자신들의 챔피언 폭을 늘리고 라인전 단계의 약점을 극복한 담원 기아의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다. 기존 포지션을 맡은 선수들이 서로에게 조언을 해주면서 발전하는 게 보인다. 게다가, '캐니언'이 "정글러 동선이나 감수성을 이해하는 미드 라이너"라는 '말랑'의 말처럼, 두 선수가 미드-정글에서 어떤 합을 선보일지 모른다. 나아가, '캐니언'은 MSI 출국 이전 휴가 기간에 "탑 라인에 흥미가 생겨서 해봤다"고 말한 만큼 추가로 팀 포지션 변경의 가능성마저 남아있는 상황이다.

이렇듯 담원 기아의 이번 행보는 2021 LCK 서머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변화의 끝이 어디일지 감을 잡기 힘들다. 정말로 LoL을 잘하는 개개인이 모이면, 주 포지션과 상관없이 승리로 향할 수 있는 걸까. 담원 기아는 많은 궁금증을 일으키는 LCK 경기들을 앞두고 있다.


■ 2021 LCK 서머 1R 담원 기아 일정

담원 기아 vs 프레딧 브리온 - 23일 2경기
담원 기아 vs 한화생명e스포츠 - 25일 2경기
담원 기아 vs 농심 레드포스 - 7월 2일 1경기
담원 기아 vs 젠지 e스포츠 - 7월 4일 2경기
담원 기아 vs 리브 샌드박스 - 7월 7일 1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