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평범한 즐거움에 대한 고찰


죽음의 뒤에는 과연 무엇이 남는가. 왓 컴즈 애프터는 그러한 질문에 완벽한 것은 아니지만 한참 생각해 볼 만한 답을 툭하고 던진다.

게임은 고작 한 시간 정도의 플레이타임을 지니지만, 지금 내가 살아가고 있는 삶에 대해서 그리고 가족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왓 컴즈 애프터는 커피 토크의 제작자와 레이지 인 피스의 개발사가 함께 써내려간 사후에 대한 짧은 이야기다.


※ 스토리 스포일러가 일부 있습니다.

게임명 : What Comes After
장르명 : 어드벤처
출시일 : 2020.11.05.
개발사 : fahmitsu & Rolling Glory Jam
서비스 : Rolling Glory Jam
플랫폼 : PC(Stove, Steam), NSW

관련 링크: '왓 컴즈 애프터' 오픈크리틱 페이지


최소한의 조작에서 오는 전달력, 하지만 같이 오는 지루함

게임은 삶과 죽음, 그리고 사후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그리고 이를 오직 대화형 텍스트를 통해서만 보여준다. 뭐랄까, 게임을 플레이한다기보다는 짤막한 단편 책을 보는 기분이다.

그도 그럴 것이 보통의 스토리 게임들은 아무리 텍스트가 중심이 된다 하더라도 다른 뭔가의 조작을 통해 지루함을 방지하는 편이다. 선택지를 준다거나, 간단한 이벤트를 넣는다거나 하는 방식으로.

하지만 왓 컴즈 애프터는 캐릭터를 5~6칸정도 되는 기차 안에서 좌우로 이동하는 걸 제외하면 딱히 조작이나 이벤트라고 할 만한 부분이 아예 없다. 오직 주인공인 비비와 다른 영혼들의 대화가 진행될 뿐이다.


즉, 불필요한 조작이 모두 사라지면서 유저는 오롯이 게임이 전달하는 메시지를 읽어나가는 데 집중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글을 조금 읽다가 다른 뭔가의 조작이 등장해 쌓으려던 감정을 깨버리거나, 이야기의 흐름을 방해하거나 하는 부분이 전혀 없다. 이동하고, 글을 읽고, 또 조금 이동하고 글을 읽고, 오직 이러한 조작만이 반복되기에 앞선 영혼과의 대화에서 쌓은 감동이나 감정을 그대로 가지고 다음 대화로 넘어갈 수 있다.

특히 비비의 이동 동선은 수평, 좌우로만 이루어져 있기에 마치 책의 페이지를 넘기는 듯한 느낌을 준다. 기차의 칸을 넘어갈 때마다 페이지를 한 장씩 한 장씩 넘기는 기분이랄까. 그렇게 한 칸의, 한 페이지의 기차칸 속에는 영혼들의 이야기가 문단처럼 담긴다.


화면 하단에 텍스트 박스를 두고 그냥 읽어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캐릭터들의 머리 위 말풍선을 통해 이야기가 진행되기에 그러한 느낌은 더욱 강하게 다가온다. 한 영혼과의 대화는 연속해서 이어지고, 그 하나의 대화가 끝나면 아주 조금의 이동으로 다음 대화로 넘어가기 때문.

죽음, 사후, 삶이라는 쉽지만은 않은 주제를 다루고 있기에 영혼들이 전하는 말의 의미는 절대 가볍지 않다. 비비와 영혼들의 대화 내용의 대부분은 은유적이거나 숨겨진 의미가 꽤 많은 편이다. 그렇기에 유저의 집중력에 따라 게임이 주는 의미 역시 천차만별로 다르게 다가온다.


결국 게임의 조작이나 다른 컨트롤적 즐거움을 모두 포기하면서 메시지에 대한 집중력을 최대화 시켰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이것이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되진 않는다. 이유는 심플하다. 재미가 없다.

복잡한 이동이나 다른 뭔가를 최소한으로 줄이면서 전달력을 살렸지만, 이는 필연적으로 너무나 작은 볼륨과 지루함이라는 단점도 동시에 가져왔다.

이동, 그다음에는 오직 텍스트와 텍스트와 텍스트, 그리고 또 이동, 또 텍스트와 텍스트와 텍스트. 약 1시간 동안 오직 이 부분만 계속해서 반복된다. 그럼 어떨까. 당연히 ‘지루하다’.

암만 영혼들과의 대화가 유익하고 감동적이더라도 계속해서 이어지는 ‘텍스트’의 물결은 내가 게임을 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그냥 그래픽이 가미된 책을 읽고 있는 것인지 헷갈리게 만든다.



어쨌든 내가 하고 싶은 것은 ‘게임’이다. 아무리 교훈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더라도 게임의 범위 내에서 감동하고 싶은 것이지 그걸 마치 책을 읽듯 이해하는 건 바라지 않는다.

게임이라는 매체의 장점은 분명 일방적일 수 있는 주제 전달을 쌍방으로 소통하는 느낌을 주며 진행하는 부분이다. 이 과정에서 굳이 조작 방식을 다양화하지 않더라도 일러스트와 사운드, 컷신 등을 통해 흥미로운 ‘전달’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왓 컴즈 애프터는 그러한 다이나믹함이 많이 부족하다. 콘텐츠적 다양함이 적기에 결국 지루한 느낌이 따라오고, 볼륨도 같이 줄어들어 버렸다. 즉, 게임의 주제는 감동적이지만 게임 그 자체로 두고 본다면 ‘재미없는’ 게임이 되어 버린 것이다.




뻔한 주제를 다르게 풀어내다

사후를 다룸으로써 삶을 빛나게 하는 것, 이는 많은 매체들이 이미 다룬 주제다. 하지만 왓 컴즈 애프터는 그 뻔할 수 있는 주제를 완전히 새롭지는 않지만 나름 독특한 흐름으로 풀어냈다.

저승으로 가는 기차칸에 우연히 타게 된 비비와, 그가 만나는 많은 영혼 간의 대화는 굳이 나레이션이나 설명이 없더라도 자연스레 삶이 주는 행복과 고통에 대해 생각할 수 있도록, 그리고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도록 해준다.


성인의 시점에서 시작해 아직 현실에서는 말조차 제대로 하지 못할 정도로 어린 아기, 사람들에게 친숙한 동물, 인간으로인해 고통받은 동물, 그리고 마지막으로 인간의 곁에서 오랜 시간 지내온 고목은 비비를 향해, 아니 그 너머에 있는 우리에게 ‘삶’에 대한 이야기를 전한다.

즉, 현재 우리가 당장 너무나 쉽게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부터 외부의 시선을 통해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이야기로 찬찬히 이동하는 것이다.


흥미로운 부분은 사람의 시점을 지나 동식물의 관점으로 이동할 때부터 생겨난다. 직접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의 이야기는 사실 이제 우리에게 큰 감동을 주지 못한다. 정말 어지간히 독특한 이야기가 아닌 이상 새로운 부분이 없기 때문. 하지만 독특한 내용은 공감을 이끌어내지 못하기에 결과적으로 ‘사람’의 이야기는 식상하게 느껴질 수 밖에 없다.

그렇지만 동식물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사람의 삶, 그리고 자신들의 삶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는 분명히 새롭다. 새로우면서도 분명 그들이 전하는 사람의 삶이 담겨있기에 공감과 감동, 그리고 스스로에 대한 반성까지 이끌어 내는 효과를 가진다.



특히 이러한 효과는 게임의 마지막, 비비의 무릎에 앉아 자신의 ‘사후 일’을 부탁하는 고양이의 모습을 통해 극대화된다. 크게 후회하고 크게 고통받는 사람의 영혼과 달리 고양이의 영혼은 담담하게 자신이 이루지 못하고 온 일을 비비에게 이야기한다.

그리고 비비는 그런 고양이의 모습을 통해 새롭게 삶에 대한 의지를 다지고 살아갈 목표를 가지게 된다. 고통스럽고 별 게 없던 삶 속에서, 죽어있던 삶 속에서 다시금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작은 씨앗을 찾아낸 것이다.


게임은 삶에 대한 소소한 행복이 어디서 오는지, 그리고 사람의 기억에서 어떤 부분이 가장 오래 남아있는지를 메인으로 다루고 있다. 영혼 열차에 올라탄 비비는 수많은 영혼과의 대화를 통해 그 ‘주제’를 깨닫게 되며, 이는 게임을 플레이하며 비비와 함께 그들의 이야기를 들은 유저도 마찬가지다.

결국 비비라는 존재를 통해 현재 살고 있는 삶에 대한 위로를 주는 것, 그게 이 게임이 관통하고 있는 주제이자 교훈이다.




이 게임은 게임 자체의 재미를 어느정도 포기하면서 대신 전달이라는 부분에 온 힘을 쏟았다. 그만큼 뭐랄까, 교훈적이다. 수많은 영혼들이 비비에게 하는 말은 아마 개발진이 유저들에게 하고 싶었던, 전달하고자 했던 ‘삶’에 대한 메시지일 것이다.

죽음을 통해 삶을 빛나게 하는 것, 그리고 삶의 의미를 찾는 것. 왓 컴즈 애프터는 이를 너무나 단순하면서도 자연스럽게 이야기한다. 비록 특별하거나 독특한 방식은 아니지만 괜찮다. 왜냐하면 게임 속에서 이야기하는 ‘삶’이라는 것 자체가 특별하지 않아서다.

비비가, 아니 우리가 마주한 기차 속 영혼들의 삶은 모두 평범하다. 하지만 그렇기에 그들의 슬픔과 개운함, 후회 등을 모두 자연스레 이해할 수 있다. 평범한 삶, 그리고 그들의 죽음을 통해 삶과 죽음은 맞닿아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즉, 현재 주어진 삶을 열심히 살아가야 한다는 뻔한 이야기를 조금 더 공감할 수 있게 전달해 주는 것이다.

만약 왓 컴즈 애프터를 플레이하다가 어느 순간, 어느 영혼과의 대화에서 눈물이 난다면 그건 게임이 전하는 메시지를 완벽하게 이해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