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밸브 코퍼레이션이 스팀 전용 휴대용 게임 머신인 '스팀 덱(Steam Deck)'을 최초로 공개했다. 스팀 덱은 밸브의 휴대용 게이밍 UMPC로, 기존의 스팀 링크 기능을 활용한 스트리밍 방식이 아닌, 기기가 자체적으로 스팀 라이브러리 속 게임들을 구동할 수 있다. PC 게임의 호환성을 위해 2개의 터치 패드가 양쪽 그립에 달려있어서 휴대하며 언제든 스팀 게임을 플레이할 수 있는 것은 물론, 닌텐도 스위치처럼 독에 꽂아 거치형 게임기처럼 활용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스팀 덱에는 PC 게임들을 무리 없이 실행할 수 있도록 돕는 맞춤형 APU가 탑재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공개된 사양에 따르면 CPU는 Zen2 4코어 8스레드의 2.4~3.5GHz, GPU는 1.0~1.6GHz의 8 RDNA 2 CU가 있으며 최대 1.6 Tflops의 성능을 낸다. 램은 16GB LPDDR5가 사용된다.

스팀 덱이 처음 공개되었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스팀 라이브러리 속 VR 게임들을 휴대기기로 플레이하는 것에 대한 기대였다. 첫 공개 영상을 통해 소개되었던 것처럼, 스팀 덱은 '컨트롤'이나 '둠 이터널'과 같은 AAA급 게임들도 무리 없이 실행할 수 있는 월등한 사양의 기기로 비쳤기 때문이다.

결과만 먼저 말하자면, 스팀 덱으로 VR 게임을 구현하는 것은 아예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스펙 자체만 두고 따져보면 비트 세이버나 슈퍼핫 VR과 같은 몇몇 캐주얼 VR 게임을 구동하는 것은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닐 것으로 추측된다. 순전히 VR 게임을 플레이하기 위해 고가의 PC를 마련해야 하는 이들에겐 스팀 덱이 긍정적으로 고려해볼 만한 가성비 좋은 대안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다만 밸브는 스팀 덱을 활용하여 VR 콘텐츠를 플레이하는 것에 대한 최적화 작업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은 상태라고 설명했다. VR 게임을 구동시킬 수 있는 것과는 별개로, PC에서 플레이하던 것처럼 쾌적하게 VR 게임을 즐길 수 있으리라는 확신은 주지 않은 셈이다.

스팀 덱 머신은 용량에 따라 최소 45만 원에서 100만 원까지의 여러 개의 라인업으로 출시될 예정이나, 고가의 하이엔드 기계라 하더라도 용량 외에는 별다른 성능적 차이가 없는 상황이다. 휴대용 게임기로 VR 게임을 구동하는 것 자체는 가능하나, 당장은 이에 큰 메리트를 찾기 어려워 보인다. 그 누구도 최적화가 이뤄지지 않아 최소한의 프레임도 갖춰지지 않은 미완성 상태의 VR 게임을 플레이하고 싶어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게 아무리 휴대성을 갖춘 비교적 저렴한 기기라 할지라도 말이다.

다만, 스팀 덱으로 VR 게임을 구동할 수 있게 되는 것에는 적지 않은 의미가 따라붙는다. 닌텐도가 골판지로 이루어진 라보 킷으로 VR 콘텐츠 플레이를 지원하고, 페이스북이 모바일 프로세서 기반의 일체형 기기로 PC VR 게임 구동을 성공시켰던 것처럼, 스팀의 새로운 하드웨어를 활용한 VR 게임 구동은 그저 '가능할 것인가, 아닌가'를 넘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도전이라는 대에 의미가 있다. 물론, 밸브가 야심 차게 선보이는 휴대용 PC가 "어디에서든 스팀 라이브러리를 즐길 수 있다"라는 자체적인 목표를 완전히 달성하기 위해서 꼭 거쳐야만 하는 통과 의례이기도 하고 말이다.

스팀 덱의 '휴대용'이라는 특성에 초점을 맞추면 PC VR 게임의 가능성은 더욱더 넓어진다. 번거로운 케이블 연결 없이 대부분의 VR 게임을 구동할 수 있을 정도로 VR HMD와 하드웨어 기술은 몇 년 사이에 크게 도약했으나, 고사양의 PC VR 게임을 플레이하기 위해선 여전히 여러 종류의 선을 연결할 필요가 있다. 향후 사양 측면에서 더 발전한 스팀 덱이 라이브러리 속 VR 게임을 모두 지원할 수 있게 된다면, 그때는 진정한 의미의 '선으로부터 자유로운 VR'을 즐길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 모든 것은 스팀 덱의 VR 콘텐츠 구동 가능성에 대한 여지가 남아있기 때문에 떠올려볼 수 있는 기분 좋은 상상들이다. 밸브는 스팀 덱이 모든 하드웨어와 연결할 수 있는 오픈형 PC이며, 일반 PC와 다를 바 없는 성능을 지닌 무한한 가능성의 기기라고 소개하고 있다. 그들이 자신 있게 내세운 홍보 문구처럼 스팀 덱이 수많은 VR 하드웨어들과 무리 없이 호환된다면, 하프라이프 알릭스나 오큘러스 퀘스트2가 보여준 충격에 버금갈 정도의 큰 대중화의 계기가 되어줄지도 모르는 일이다. 밸브가 새롭게 공개한 휴대용 PC 게임기 스팀 덱이 VR에도 혁신을 가져다줄 수 있을지, 그 여부는 오는 12월에는 분명해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