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년간, 사용량이 대폭 늘어난 단어들을 나열하면 단언컨대 '구독'이 그 중 한 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유튜버들이 엔딩멘트에서 단골로 사용하는 용례 외에도, '구독'은 단순히 신문이나 잡지의 결제 방식 이상의 포괄적인 개념을 설명하는 단어가 되었다. 오죽하면 '구독 경제'라는 용어가 생길까.

'구독 경제'에 발빠르게 반응한 업계는 음악과 영상 등의 미디어 콘텐츠 제공자들이다. '멜론'과 같은 음악 제공 업체들은 빠르게 월정액 모델을 제시했으며, '넷플릭스'나 '왓챠'와 같은 영상 콘텐츠 제공자들도 일정 금액만 지불하면 콘텐츠를 제한 없이 즐길 수 있다. 개념이 바뀌었다. 과거 '구독'이 정기적 발간물에 대한 지속적 소유권을 신청하는 형태였다면, 오늘날의 '구독'은 기간 별로 일정 금액을 지불하고 해당 기업이 제공하는 모든 서비스에 제한 없이 접촉할 수 있는 거대한 개념을 뜻한다.

게임 산업에서도 '구독'은 꽤 중요한 개념으로 자리잡은지 오래다. 넷마블이 '웅진 코웨이'를 인수하던 때에, 많은 이들은 왜 게임 개발사가 전혀 상관 없는 가정용 가전제품 회사를 인수하는지 궁금해했지만, 게임 산업의 첨단에 놓인 이들은 나름의 이유를 생각해낸 후 이내 납득했다. 게임 산업의 주요 BM으로 떠오르는 '구독'의 노하우를 가져오기에 코웨이만큼 노하우가 쌓인 기업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렇듯, 게임 산업에서 '구독' 시스템은 이제 시장 권역을 막론하고 주력 비즈니스 모델로 떠오르고 있다. GDC 2021에서 강연을 진행한 옴디아의 수석 분석가 '조지 지지아슈빌리(George Jijiashvilli)'의 '게임 모델로서의 구독'이라는 강연 또한 같은 맥락에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었다.


◆ 게임 구독의 여섯 가지.

오늘날, 게임 산업에서 구독은 여섯 가지 형태로 구분된다.


1. 다양한 개발사의 게임을 플랫폼 단위로 구독하는 형태
ㄴ PS Now, Xbox 게임 패스, 애플 아케이드 등

2. 자사의 게임을 대상으로 자체 ESD에서 구독권을 판매하는 형태
ㄴ 오리진 억세스, 유플레이 플러스 등

3. 유통사가 담당 게임들의 구독권을 판매하는 형태
ㄴ 마그네타 게이밍, 게임나우, 게임박스 등

4. 지속적으로 업데이트되는 하나의 게임
ㄴ 전통적인 온라인 게임들(월드오브워크래프트, 엘더스크롤 온라인, 월드오브탱크 등)

5. 하나의 게임이지만, 여러 부분으로 나눠져 있는 콘텐츠를 구독하는 형태
ㄴ 로블록스, 포트나이트, 스팀 게임들의 창작 마당 콘텐츠 등

6. 게임 플레이 외적인 서비스 구독
ㄴ 트위치, 유튜브 게이밍 등

이렇듯, 게임 산업에서 구독(Subscription)의 형태는 단순히 하나의 형태로 정의할 수 없다. 사실상 '일정 금액을 기간 별로 지불하는' 모든 형태가 구독이라는 형태로 분류되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까지 오기는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비디오 산업에서 '구독'은 훨씬 오래 전부터 높은 성장세를 보였다. 하지만, 게임은 비디오를 비롯한 다른 미디어와는 여러 면에서 달랐기 때문에 구독 시스템의 도입이 늦어질 수밖에 없었다.

▲ 비디오 시장에서 구독 모델은 굉장히 가파른 성장세를 보였다.

일단, 게임은 하나 하나의 용량이 매우 크고 모든 이들이 플레이할 수 없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지금도 전세계의 인터넷 망은 빠른 속도로 개선되고 있지만, 그럼에도 하나의 게임을 통으로 다운받기엔 매우 느리다. 국내에서는 별로 어렵게 느껴지지 않지만, '스팀'만 해도 해외에서의 다운로드 속도는 한국인들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느리다. 용량이 제법 있는 게임이라면 8~10 시간, 거대한 용량의 게임은 하루를 꼬박 써야 다운로드가 가능한 경우도 있다.

게다가 AAA급 게임의 경우 소화 가능한 PC도 많다고 할 수 없다. 이 또한 국내 산업은 높은 고사양 PC 보급률을 보여주기에 와닿지 않지만, 유럽 등지만 해도 5년 전에나 보급형으로 출시된 PC들이 지금 현역 PC의 평균인 경우가 많다. 자연스럽게, 영화나 음악 처럼 빠르게 실시간 적용이 어렵다 보니 '구독 시스템'의 도입도 늦어질 수밖에 없다.

▲ 아직 게임 시장에서 구독 모델을 소화하지 못하는 계층도 많다.


◆ 오늘날 게임 시장에서의 '구독'과 미래

실제로, 오늘날 수많은 게임사들이 구독형 시스템을 도입하고 있지만, 2021년인 지금도 '구독' 시스템은 그닥 큰 영향력을 보여주고 있지는 않다. 전체적인 규모는 꾸준히 성장하고 있지만, 말 그대로 '꾸준히'일 뿐 극적인 성장세는 아니다. 그나마 모바일 게임 시장에서는 구독형 시스템의 매출이 상당히 늘어나고 있지만, PC나 콘솔 시장의 경우 늘었다 줄었다를 반복하며 현상 유지 정도로 그치고 있다.

그럼에도 '구독' 시스템이 끊임없이 도입되고 있는 이유는, 많은 이들이 결국 언젠가는 게임 구독 또한 비디오나 음악 못지 않은 속도로 가능해질 것이라 예측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큰 사례가 바로 우리, '대한민국'인데 국내에서는 실제로 구독형 게임 상품을 이용하는데 전혀 불편함이 없다. 100메가비트 단위의 인터넷 회선이 매우 일반적이고, 이를 넘어서는 500메가비트, 1기가비트의 회선도 드물지 않게 깔려 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구독형 모델은 세계 인터넷 회선 평균이 한국에 가까워질수록 급격히 늘어날 수 있는, 미래가 보장된 BM이라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 모바일 외엔 아직 그저 그런 수준

여기에, '클라우드 게이밍' 서비스의 대두 또한 하나의 이유가 된다. '스태디아'나 '지포스 나우'를 비롯한 스트리밍 클라우드 게임 산업은 인터넷 회선에 큰 영향을 받는 영역이며, 동시에 기본적으로 구독형 모델을 활용할 수 밖에 없는 분야다. 산업의 여건이 맞춰졌기에 등장한 모델이 아닌, 앞으로 산업이 갈 길을 내다보고 앞서 등장한 모델이 오늘날의 '스트리밍 게임'인 것이다.

이에 대한 구체적인 예측도 존재한다. 옴디아는 2024년 기준으로 130억 이상의 기기가 클라우드 게이밍을 소화할 수 있으리라 예측하고 있으며, 2025년엔 모바일과 고정형 5G, 그리고 30메가비트 이상의 고속 통신망 보급율이 현재 대비 218%에 이를 것으로 예측했다. 물론 이보다 더 높을 수도, 낮을 수도 있지만 일단 고속 통신망의 보급 자체는 확정된 사실이니 클라우드 게이밍을 비롯한 구독형 서비스의 전성기가 올 날도 머지 않았다는 것이다.

▲ 옴디아가 예측한 미래상은 구독형 모델이 활약하기 딱 좋은 형태


◆ 다양한 '변화의 신호'들

게임 시장이 '구독 경제'로 변해갈 것이란 거대한 흐름의 예측은 단순히 인터넷 보급의 개선만으로 도출된 결과가 아니다. 게임 시장은 변하고 있으며, 전통적인 개념들도 하나씩 무너지고 있다. 개발자들은 작년 까지만 해도 과반수 이상이 '클라우드 게임 서비스'를 통한 구독형 서비스가 각 게임의 가치를 절하할 위험을 가지고 있다고 여겼다. 하지만, 1년 후인 지금은 상황이 바뀌어 과반수 이상의 개발자들이 클라우드 게임 서비스에 의한 게임의 평가 절하가 이뤄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 개발자들의 인식과 실제 보급율은 점점 늘어나는 상황

이미 앞서 구독형 게임 모델을 도입한 'Xbox 게임패스'는 2020년에 이르러 전년 대비 30% 더 많은 장르와 40% 더 많은 게임을 서비스하기 시작했으며, 구글 플레이스토어는 구독형 모델의 성장률이 세계 시장 기준 2019년보다 2020년에 70%의 성장세를 보였다고 밝혔다.

모바일 게임 최대 흥행작들의 부분적 구독 모델 도입률도 전례없이 늘어나고 있는 상황. 2020년 기준 최상위 흥행 게임 15종 중 8종이 2020년에 이르러 구독형 BM을 게임 내에 도입했으며, GDC에서 개발자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게임 내 BM에서도 구독형 모델의 비중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구독형 모델이 늘어나는 이유는 결국 이 모델이 모든 이들에게 '혜택'을 줄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구독형 모델은 구독자와 제공자, 모두에게 여러 가지 이점을 준다. 구독자는 여러 서비스를 개별 구매하는 가격보다 더 싼 가격에 이용할 수 있고, 다양한 게임 내 혜택과 게임 콘텐츠에 대한 모든 권한을 최소한의 가격으로 이용할 수 있다.

서비스 제공자의 이점도 만만치 않다. 게이머들의 권한 범위가 넓어짐에 따라 게임 내 콘텐츠들에 대한 피드백과 게이머들의 행동 패턴을 보다 상세히 파악할 수 있다. 굳이 개별 판매를 하지 않아도 유저 피드백을 얻을 수 있으니 모험적인 콘텐츠의 도입도 보다 부담이 적다. 궁극적인 목표인 유저 잔존율과 매출 증대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기대할 수 있다.

▲ 여러 이점이 있지만, 아직 모든 이가 이 이점을 누릴 수 있는 시점은 아니다.

물론, 뭐든 일장일단이 있듯 구독형 모델은 현재 '극적인' 효과를 보여주지 못한다. 규칙적으로 게임을 하지 못하고 잠깐씩 플레이하는 캐주얼 유저들에게는 퍽 적합하다 할 수 없으며, 신작 게임을 나오는 즉시 플레이하기 힘든 저사양 PC 이용자들에게도 구독형 모델은 딱히 끌리는 방식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구독형 모델이 차후 주류 BM으로 성장하리란 강연자의 주장이 틀린 말이라 할 수는 없다. 수년 후의 세계라면 확실히 구독형 모델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을 것이고, 그 떄에 구독형 모델은 충분히 주류 BM으로 여겨질 수 있을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