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즐겨 보던 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한 정신과 의사 분을 보았습니다. 짧은 시간 동안이었지만, 정신과 의사들이 어떤 삶을 살고 있고, 정신과 치료 과정은 어떻게 되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등을 단편적으로 엿볼 수 있었죠.

여러 이야기들이 오갔지만, 그 중에서도 유독 충격적으로 다가오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의료인 중 자살률이 가장 높은 이들이 정신과 의사다'. 수시간에 걸친 수술을 집도할 일은 없을 테니 여러 진료과 중 육체적으로는 가장 어려움이 덜하겠지만, 다른 이들은 쉽게 알 수 없는 이들만의 고충이 느껴지는 부분이었습니다. 철인이 아닌 이상 마음이 힘든 사람을 자주 대한다는 건, 본인의 마음도 함께 상해간다는 뜻일 테니까요.

지난 22일, 스팀 얼리 억세스로 출시된 '헬프 미'는 정신과 의사의 이야기입니다. 작은 정신과 병원의 개업의인 주인공은 여러 환자들을 상대로 상담을 진행하고, 그들에게 필요한 말을 해주는 한편 가장 알맞는 약을 처방해야 하죠. 환자와 라포(rapport)를 형성하고, 올바른 약을 처방하며 그들이 다시 문제 없이 본인의 일상으로 돌아가게끔 도와주는 것이 주인공의 역할입니다.

그리고 이를 표현하는 과정에서, '헬프 미'는 참 많은 메시지와 질문을 게이머에게 던집니다.



게임명 : 헬프 미(Help Me)
장르명 : 시뮬레이션, 퍼즐, 캐주얼
출시일 : 2021.07.22.
개발사 : UnicON
서비스 : UnicON
플랫폼 : PC



그들은 어디에나 존재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정신과 환자' 하면 대다수의 사람들은 약간의 거리감을 느낍니다. 먼 옛날 시민의식이 성숙하기 이전에는 '저 사람은 이상한 사람이다'라고 터부시되던 시절이 있었고, 그보다 더 이전에는 우생학이라는 끔찍한 학문을 빌미로 아예 사회에서 배제해버리던 시기도 있었죠. 그래도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신 질환이 엄연한 질병이며, 그들의 의사와 관계 없이 고통받는다는 사실을 머리로 인지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들과 거리낌없이 교류하는 건 또 다른 차원의 문제로 받아들이죠.

▲ '헬프 미'의 환자들 또한 그냥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이들입니다.

저 또한 사회생활을 하면서 정신 질환을 앓고 있는 이들을 여럿 만나 보았고, 이들이 대부분 자신의 질환을 숨기고 싶어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제때 약만 먹어 주면 아무 문제 없이 사회생활을 할 수 있는 이들임에도, 본인의 유병 사실이 알려졌을 때 달라질 시선을 크게 의식하면서 살고 있었죠. '헬프 미'는 이 점을 먼저 게이머들에게 말합니다.

게임 속에서 등장하는 환자들은 대부분 겉보기에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라이건'은 본인이 물고기이며 바닷속에 들어가야만 편히 숨쉴 수 있다는 망상 속에 빠져 있습니다. 육지에서는 숨 쉬기가 답답하다며 끊임없이 넥타이를 매만지고,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은 바다로 돌아가야 할 것 같다고 주장하죠. 하지만 사회에서 라이건은 재벌 2세로서 절제된 삶을 살아가는 건실한 청년입니다.

▲ 스스로 물고기라고 생각하는 라이건

일용직 건설 노동자인 '나루'는 본인이 질환이 있다고 생각조차 하지 않습니다. 그냥 늘 몸이 피곤하고 밤에 잠을 잘 못 잘 뿐이죠. 스스로 질환을 자각하지 못했으니 병원에 오는 것 조차 시간낭비라고 생각하며, 병원에 온 것 또한 친한 건축소 소장이 추천해 그냥 한 번 와본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60대의 '켈링턴'은 알콜 중독과 기억력 저하를 앓고 있으나 본인은 이를 강력히 부인합니다. 아내를 칭찬하면서도 아내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고, 그런 자신에게 화를 내곤 하죠. 대학생인 '헤일리'는 공황 장애를 얻었지만, 본인의 질환에 대한 무지로 공포를 느낍니다.

▲ 본인을 병원으로 보낸 가족에게 배신감을 느끼는 '켈링턴'

이들 중 누구도, 딱 보았을 때 '나는 정신질환자다'라고 쓰여 있는 이는 없습니다. 병원 로비에서 대화를 걸면 아무렇지 않게 대화를 받아주고, 상담 중에도 상식적인 일반인의 모습을 잃지 않습니다. 하지만 올바른 상담 과정을 통해 내면을 파고들면서 주인공은 이들 마음 속 깊은 곳에 본인도 모르게 숨겨져 있던 트라우마와 문제들을 인지하게 됩니다.

이렇듯, '헬프 미'의 출발은 정신과를 방문하는 환자들이 결국 우리의 주변에, 전혀 아무렇지 않은 모양새로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말하며 시작합니다. 이전의 다양한 의학 시뮬레이터 게임들이 환자를 이미 수술실에 누워 있는 형태의 어떤 목표 오브젝트로 표현했던 것과 달리, '헬프 미'의 환자들은 게임의 목적임과 동시에 게임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메신저로서 존재하는 형태입니다.

▲ 공황장애를 앓는 '헤일리'까지 모두 제각각의 사연이 있습니다



정신과 진료는 왜 어려운가?

게임을 하지 않고 여기까지 보면, 환자들과 라포를 쌓아 나가는 의사 주인공의 이야기를 담은 따뜻한 힐링물이 아닐까 생각하게 됩니다. 과거 리뷰했던 '커피 톡'처럼 등장 인물과의 대화를 통해 스토리를 쌓아 나가고, 이를 '듣는' 과정을 통해 여러 상황에 공감하는 것을 주제로 삼는 몇몇 게임들과 마찬가지로 말이죠.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헬프 미'는 어디까지나 정신 질환과 그 치료라는 게임의 기본 베이스를 철저하게 지킵니다. 몇몇 치료 과정은 '게임'이라는 미디어에 맞게 퍼즐 형태의 미니 게임으로 표현하고 있지만, 이조차도 기억력 저하 방지를 위한 사천성 게임이라든지, 그라운딩 훈련을 위한 숨은그림찾기처럼 연관성을 띈 퍼즐들을 활용했습니다.

▲ 간단한 퍼즐 형태의 심리 치료

상담 과정에서, 환자의 상태를 파악하는 것은 필수입니다. 당신의 앞에 있는 환자는 겉보기엔 아무런 문제도 없어 보이고, 편하게 대화를 이어갈 수 있는 상대처럼 보이지만, 모두 다 마음의 상처를 안고 있는 이들이죠. 대화 선택에서 섣불리 상대를 예단하거나, 내 주장을 고집하는 것 처럼 보인다면 순식간에 신뢰도가 날아가 버립니다. 그리고 신뢰도를 잃은 환자는 두번 다시 병원에 방문하지 않죠.

그리고 이 상담 과정은 굉장히 어렵습니다. 나는 분명 상대의 마음을 배려하는 말을 했다고 생각해도, 상대가 앓고 있는 질병과 기분 상태에 따라 받아들여지는 결과는 완전히 다를 수 있기 때문이죠. 때문에, '헬프 미'를 잘 플레이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버리는 연습이 선행됩니다. '나'라는 개인을 버리고, 상대의 말을 가감없이 들어줄 수 있는 대나무숲이 되어 상대방의 입장을 생각하고 이에 공감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 환자의 심리와 마음에 공감하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물론, 아무리 그렇게 생각한다 해도 가끔은 실패하기도 하고, 믿음을 잃기도 합니다. 게임이니만큼 시스템적으로 상담에 실패한 환자는 초기화를 통해 다시 처음부터 진료를 진행할 수 있고, 게임이니만큼 규칙성이 존재해 갈수록 쉬워지긴 합니다만, 이를 게임이 아닌 실제 상황이라 생각하면 마음이 섬뜩해지는 걸 느낄 수 있습니다.

서두에서 잠깐 언급했던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정신과 의사가 했던 말이 있습니다. 진료하던 환자가 스스로 삶을 져버릴 때 무엇보다 큰 상처를 받게 된다는 말이었죠. 게임 내에서야 신뢰를 잃고, 초기화해 다시 도전할 수 있지만, 실제 1선에서 근무하는 정신과 의사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환자의 생명이 달려있을지 모를 안갯속 길 찾기와 같은 질문들을 마주할 겁니다.

▲ 잘못된 치료의 끝은 환자의 생명을 위협하기도 합니다

게임의 난이도가 퍽 쉽지는 않지만, 난이도에 불평할 수는 없는 이유입니다. 실제로 많은 정신과 의사들은 실제로 잘못된 약을 써서, 잘못된 말을 해서, 환자에게 충분히 공감하지 못해서 많은 위기를 겪을 겁니다. 눈으로 환부를 살펴볼 수 없는 환자의 마음을 진단해야 하는 진료과 특성 상 실수가 없을 수 없고 그만큼 마음의 가책과 상심도 크겠죠. 안타까운 일이지만, 의사들 또한 마음의 병을 안게 되는 건 어쩌면 필연적인 결과일 겁니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은, 굉장히 사실적인 상황 속에서 이뤄집니다. 실제 의사의 자문을 받아 만들어진 대화문과 상담 내용들은 누가 봐도 그럴싸한 사실성을 보여줍니다. 게임 플레이 내내 환자의 심리 상태와 이에 따른 행동 양상, 자신의 질환에 대한 부정이나 미지로 인한 공포 등 환자를 대면했을 때 환자가 보일 만한 여러 자세와 태도를 살펴볼 수 있지요.

▲ 실제 치료에서 쓰이는 기법들도 약간이나마 체험 가능



'시뮬레이터'로서의 역할에 충실한 게임

감정과 메시지를 배제하고 '게임'으로서 '헬프 미'를 평가하자면, 썩 훌륭한 게임도, 그렇다고 나쁜 게임도 아닙니다. 그냥 평범합니다. 그래픽이나 일러스트의 수준이 굉장한 것도 아니며, 지금껏 본 적이 없던 참신한 시스템이 쓰이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체험'을 중심으로 삼는 '시뮬레이터'의 장르 문법으로 바라보면, 헬프 미는 아주 완벽한 게임입니다. 정신과 의사의 '업무'를 넘어서 그들의 마음가짐과 심리 상태, 그리고 미약한 책임감까지 체험할 수 있는 게임이죠.

때문에, 아무 생각 없이 시간을 때울 용도나, 잔잔한 힐링물을 원한다면 플레이할만한 물건은 못 됩니다. 어느 정도의 탐구욕과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진 채 진지하게 임해야 그만큼 많은 것을 가져갈 게임에 가깝다고 할 수 있죠. 그렇게 플레이할 경우, 단순히 정신과 의사들의 처우와 고충 이상의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약간의 자아성찰까지 하게 되죠.

▲ 스토리의 뼈대가 되는 배경이 존재하긴 합니다.

산업이 발전하고 정신 질환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가 지속적으로 이뤄지면서 정신질환 유병률 또한 해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긴 합니다. 그럼에도 오늘날 정신질환 평생 유병률은 25%에 가까운 수치를 보이고 있죠. 네 명중 한 명은 살면서 한 번쯤 정신 질환을 겪게 된다는 겁니다. 본인의 질환을 숨긴 채 살아가는 환자들도 꽤 많기에 어쩌면 실제 유병률은 이보다 더 높을 수도 있습니다. 의학이 발전하면서 신체의 질병은 하나씩 정복되고 있지만, 여전히 마음의 병은 언제나 우리 곁에 머문다는 뜻입니다.

'헬프 미'는 이렇듯 누구나 앓을 수 있지만, 쉽사리 밖으로 내보이지 못하는 마음의 병을 소재로, 이를 치료하는 과정과 앓고 있는 이들을 보여줌으로서 정신과라는 진료과와 치료 과정에 대한 허들을 낮추는 게임입니다. 아직 얼리 억세스 단계이기에 게임 내에 구현된 환자의 수도 적고, 버그도 심심찮게 보이지만, 정식 출시가 이뤄질 때 쯤엔 게이머들에게 충분히 이런 질문을 던질 수 있는 게임이 될 수 있을 겁니다.

'당신의 마음은 안녕하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