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팀을 통해 지난 7월에 출시된 인디 공포 게임 'Summer of '58'

스팀의 환불 정책 때문에 한 인디 게임 개발자가 자신의 꿈을 포기하게 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인디 공포 게임 'Summer of '58'의 개발자는 스팀에서 자신의 게임을 구매하고 플레이한 유저들 중 85%가 넘는 이들이 긍정적 평가를 남기며 호평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게임을 환불해버리는 유저들이 많았다고 전했다.

현재도 매우 긍정적 평가를 유지 중인, 정가 1만 원이 채 되지 않는 그의 게임은 그저 '전체 플레이 시간이 두 시간이 채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환불 러시에 시달리게 됐다. 물론 개발자가 제시한 공포의 방향성이 자신의 입맛과 맞지 않아 도중에 하차한 이들도 있겠으나, 환불을 요청한 이들 중에는 엔딩까지 모두 본 뒤 긍정적 평가 리뷰를 남길 정도로 게임을 알차게 즐긴 이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이번 사례에서 과연 잘못을 저지른 사람은 누구일까. 2시간도 채 되지 않는 짧은 게임을 만든 개발자가 잘못한 것일까? 아니면 게임을 모두 플레이하고도 환불을 요청한 유저들이 나쁜 것일까?

도덕적인 잣대로 따져보면, 이번 일은 게임을 모두 플레이하고도 별다른 이유 없이 환불을 요청한 유저들이 질타를 받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 선불로 계산하는 식당에서 식사를 모두 마친 뒤, 음식 맛이 없었으니 돈을 다시 돌려달라고 따지는 '진상'들의 모습이 겹쳐 보일 수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해당 사례가 커뮤니티를 통해 공유되자, 해당 게시판에는 1만 원도 채 되지 않는 짧은 게임을 플레이하고 환불을 요청한 유저들이 너무 파렴치하다는 내용의, 환불 요청을 한 유저들을 향한 비난 일색의 댓글들이 이어졌다.

이번 사례 이전에도 사람의 눈 깜박거림을 게임 조작에 활용한 독특한 컨셉으로 세간의 시선을 끈 게임 ‘비포 유어 아이즈(Before Your Eyes)’의 개발자가 같은 사안으로 유저들에게 아쉬움을 토로한 적이 있다. 당시 환불을 요청했던 한 유저는 "이 게임은 충분히 돈을 지불할 가치가 있다”며 다시금 게임을 구매, 자신의 환불 결정을 철회한 바 있다. 게임을 온전히 즐겼음에도 환불을 요청한 자신의 행위가 잘못된 것이었음을 시인한 셈이다.

▲ 압도적으로 긍정적 평가를 받은 '비포 유어 아이즈' 개발자도 같은 피해를 호소한 바 있다

그렇다면 이번 사례는 무조건 유저들이 잘못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번엔 관점을 조금만 틀어서 다른 관점으로도 생각해보자.

여기 '두 시간 미만 이용 시 입장료 전액 환불'이라는 홍보 문구를 내세우고 있는 놀이동산이 있다. 홍보 문구를 보고 나쁘지 않겠다 싶어 놀이동산을 찾아갔더니, 내부에 있는 놀이기구라곤 롤러코스터 단 한 대뿐이다. 롤러코스터는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재미있었지만, 두 시간 동안 계속 롤러코스터 하나만 반복해서 타기에는 역시 무리가 있어 보인다. 이러한 상황이라면 억지로 두 시간을 채우기보다 사전에 들었던 홍보 문구대로 두 시간이 미처 되기 전에 놀이동산을 빠져나와 입장료를 돌려받는 것이 합리적인 것처럼 보일 수 있다. 놀이공원이 홍보한 서비스를 활용한 것일 뿐, 딱히 불법 행위를 저지르는 것도 아니다.

예시에 다소 비약이 있을 수 있으나, 이번 환불 사태 속 유저들 중 일부는 이 정도 마음가짐으로 환불을 요청했을 가능성이 높다. 스팀 측에서 '구매 2주 안에, 플레이 시간 2시간이 넘지 않은 게임은 이유에 관계없이 환불할 수 있다'라는 환불 정책을 공공연하게 명시하고 있고, 플레이어들은 이 약관을 따랐을 뿐이기 때문이다. 물론, 어떠한 이유가 있더라도 개발자의 노력에 대한 정당한 대가 없이 무료로 콘텐츠만 즐기려 한 행위는 정당화될 수 없는 일이지만 말이다.

종합해보자면, 결국 여기서 개선이 필요한 것은 스팀의 환불 정책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스팀의 환불 정책은 유저들이 다양한 게임을 부담 없이 접해볼 수 있도록 마련된 '편의 서비스' 성격의 유저 친화적 정책이지만, 아무리 선의로 제정된 정책이라 하더라도 이를 통해 분명한 피해를 호소하는 피해자가 있다면 밸브는 이를 좌시해서는 안 된다.

밸브는 스팀 환불 정책 공지 중 '환불 기능을 악용하는 이들은 추후 해당 기능을 사용할 수 없도록 차단할 수 있다'는 내용으로 여지를 남겨두었다. 다만 어떤 행위까지를 악용의 범주로 볼 것인지 정확히 명시하지 않았고, 공지 역시 지난 20년 11월 이후로 별다른 업데이트 없이 방치해둔 상황이다.

▲ 스팀은 환불과 관련된 기준을 공개적으로 공지하고 있다

인디 공포 게임 'Summer of '58'을 만든 개발자는 "게임의 엔딩까지 한 번에 플레이해도 전체 플레이 시간은 2시간이 채 되지 않으며, 이는 플레이어가 게임을 플레이하는 도중에 질리지 않고, 온전히 작품에 몰입할 수 있도록 설계했기 때문"이라고 소개했다. 실제로 그의 게임은 마치 한 편의 영화를 감상하듯 멈추지 않고 쭉 플레이할 경우 빠르면 한 시간, 늦어도 한 시간 반 안에 엔딩을 볼 수 있는 구조로 디자인됐다.

만약 지금의 상황이 계속 이어진다면, 판매량을 경시할 수 없는 게임 개발자들은 스팀의 환불 정책을 회피하기 위해 어떻게든 플레이 시간이 2시간이 넘도록 늘어지는 템포의 게임 개발을 강요받게 될지도 모른다. 공포 장르라면 이상하리만큼 똑똑하거나 끈질긴 괴물을 넣어 잦은 게임 오버를 유발하고, 퍼즐을 심하게 꼬아 유저들이 헤맬 수밖에 없게 만드는 식으로 말이다. 짧으면서도 강렬한 경험을 담은 게임들이 점차 사장되고, 상점에 억지로 플레이 타임을 늘린 게임들만 가득하게 되는 것은 개발자는 물론, 게이머에게 있어서도 서글픈 미래가 아닐 수 없다.

해당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스팀에서 시도해볼 수 있는 대안으로 당장 떠올릴 수 있는 것은 사전 플레이 시간을 2시간에서 1시간으로 줄이거나, 플레이 타임이 짧은 게임의 경우 별도의 환불 정책을 적용하고, '1회차 엔딩' 도전 과제를 달성한 유저의 경우 나머지 환불 조건이 충족되더라도 환불 가능 대상에서 제외하는 방식 등이 있다.

물론 이러한 방식들이 실제로 적용되더라도 또 다른 정책의 악용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있다. 어떻게든 정책을 악용하려고 마음먹은 이들에게 있어 정책의 소폭 변경은 큰 걸림돌이 되지 않을 것임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만약 '플레이 타임이 짧은 게임'에 대한 별도의 규정이 생긴다면 게임을 개발하는 개발자들 역시 게임의 플레이 타임을 속여서 등록하거나, 게임 시작과 동시에 '1회차 엔딩' 도전 과제가 달성되도록 하는 등의 편법을 사용하지 않으리라고는 확신할 수 없다.

당장 시급한 것은 스팀 환불 정책의 보완이지만, 여기엔 무조건 사용자들의 인식 개선이 뒷받침되어야만 한다. 인식 개선 없이 언제 바뀔지 모르는 스팀 정책을 탓하며 막연히 기다리는 것은 이번 사례와 같은 문제들을 그저 제3자 입장에서 방관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게임 개발자들의 노력을 존중하고, 좋은 콘텐츠에 대한 올바른 대가를 낼 줄 아는 성숙한 게이머 의식이 필요한 때다.

▲ 정책이 성공적으로 자리잡으려면 사용자들의 성숙한 인식이 꼭 뒷받침되어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