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율 30%의 대게를 보는 기분



'닥스버그'는 쿼터뷰 핵 앤 슬래시에 로그라이크와 협동 플레이를 더한 게임입니다. 최대 4인까지 멀티 플레이를 지원하고 좀비가 떼거리로 몰려드는 전투는 얼핏 봤을 때 '레프트 4 데드'가 떠올랐죠.

원래 '닥스버그'는 2:2, 혹은 4:4의 팀 배틀 게임이었습니다. 플레이어는 인간 혹은 언데드 진영을 선택한뒤 적팀을 죽이는 방식이었죠. 개발 초창기 공개했던 트레일러를 살펴보면 언데드 진영의 플레이어 캐릭터 영상이 남아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러다 개발 중 내부적으로 노선을 바꿔 지금의 게임이 탄생하게 됐죠.

아무튼, 작년에 게임을 공개했을 당시 로그라이크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이 게임만큼은 지나칠 수 없다고 다짐했던 기억이 납니다. 싱글 게임 위주의 로그라이크 장르에 파티 플레이와 핵 앤 슬래시를 결합한 게임은 거의 없었거든요.

하지만, 막상 얼리엑세스로 출시되자 출시 일주일도 채 안돼서 스팀 유저 평가가 나락으로 떨어졌습니다. 얼리엑세스라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콘텐츠가 너무 부족하고 게임 편의성이 부족하다는 것이 이유였습니다. 시간이 흘러 어느덧 1년이 훌쩍 넘긴 끝에 다이렉트 게임즈를 통해 '닥스버그'의 한글화가 이뤄졌다는 소식을 접하게 됐습니다. 이미 게임은 얼리엑세스를 넘어 정식 출시가 되었고 출시 이후 꽤 시간이 흘렀으니 어느 정도는 개선되지 않았을까 하는 기대감에 게임을 시작해봤습니다.

게임명: 닥스버그(Darksburg)
장르명: 협동 로그라이크 액션
출시일: 2020. 09. 23.
개발사: Shiro Games
서비스: Shiro Games
플랫폼: Steam

관련 링크: '닥스버그' 오픈크리틱 페이지


액션의 손맛은 살아있다

'닥스버그'는 언데드 떼가 창궐한 마을에서 평화를 위해 싸우는 게임입니다. 플레이어는 5명의 캐릭터 중 한 명을 선택해 언데드와의 전투에 참여해야 하죠. 최소 2인의 협동 플레이를 기준으로 게임이 제작됐기 때문에 세션을 만들어서 다른 참여자를 받거나 혹은 AI와 함께 게임을 진행해야 합니다.

게임 플레이는 굉장히 단순합니다. 스테이지마다 목적지가 존재하고 그곳까지 안전하게 도착해야 다음 스테이지에 갈 수 있습니다. 총 5개의 스테이지로 구성되어 있으며, 마지막 스테이지는 보스전이죠. 플레이어는 몰려드는 언데드와 전투를 진행하며, 레벨업을 할 수 있는데요. 레벨업마다 랜덤하게 3개의 능력이 제공되며, 그중 원하는 능력을 1개 선택할 수 있습니다. 만약, 진행 중에 파티원이 모두 죽으면 게임은 그대로 끝나고 로비로 돌아가게 됩니다.


캐릭터마다 1개의 패시브 스킬과 3개의 일반 스킬, 1개의 각성기가 존재하며, 레벨업마다 원하는 능력을 선택해 스킬 강화가 가능합니다. 다른 로그라이크 게임에서 무가나 악세사리 등의 아이템을 얻어 능력을 강화한다면 '닥스버그'는 레벨업으로 전체적인 능력을 강화한다고 보면 됩니다.

스킬 강화는 단순히 피해량을 늘리는 데에 끝나지 않는데요. 가령 술통을 던지는 스킬이 원래는 1개만 던진다면 스킬을 강화해서 한 번에 3개를 던지고 통통 바닥에서 튕기게 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여러 능력으로 스킬을 강화할수록 확실한 효과를 보여주니 성장 자체의 즐거움은 괜찮은 편입니다.


전투는 생각보다 재미있습니다. 대규모로 밀려드는 언데드 떼를 상대로 스킬을 난사하는 맛이 괜찮더군요. 전체적으로 타격감도 우수하고 밸런스가 괜찮은 편입니다. 5명의 캐릭터 모두 개성이 살아있으니 본인의 취향에 맞는 캐릭터를 조작해도 무방했습니다.

게이머 대부분이 부정적으로 봤던 조작감도 현재에 이르러선 꽤 개선된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게임 패드 조작이 추가됐고 마우스 외에 키보드 조작이 추가되어 디아블로 스타일로 플레이하고 싶다면 마우스 위주로, WASD로 움직이면서 컨트롤하고 싶다면 키보드 위주로 선택하면 됩니다. 얼리엑세스 당시에 얼마나 끔찍한 조작감을 선보였을지 감이 잡히지 않지만, 일단 개선된 방식 기준에서 봤을 때는 조작감이 액션의 즐거움을 방해할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게임의 볼륨이 너무 작다

스팀의 부정적 평가에서 조작감 다음으로 많은 불만을 받았던 사항이 바로 게임의 볼륨이 너무 작다는 것이었습니다. 얼리엑세스 당시 스테이지가 너무 적고 짧았기 때문인데요. 아직 개발 중인 얼리엑세스라면 짧은 볼륨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차차 개발하면서 볼륨을 키워나가면 되니까요. 같이 욕먹었던 조작감은 개선되었으니 이 부분도 살짝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정식 버전이라고 해서 크게 다를 게 없더군요. 현재 '닥스버그'의 스테이지는 앞서 말했든 5개의 스테이지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마지막 스테이지는 오직 보스와의 전투만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성장과 탐험은 4개의 스테이지에서 이뤄지죠.

▲ 캐릭터라도 많았으면 좋았을텐데...

▲ 난이도를 올려도 크게 달라지진 않습니다

대략 1개의 스테이지를 클리어할 때 걸리는 시간은 플레이어의 숙련도에 따라 다르겠지만, 평균 5~7분 가량 소모된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보스전은 이보다 금방 끝나니 게임 시작 후 엔딩까지 대략 30분 정도가 걸리는 셈입니다. 반복 플레이를 기본으로 삼는 로그라이크 게임이니 한 판에 30분 정도면 짧긴 해도 괜찮다고 생각할 수 있을 텐데요.

로그라이크에서 반복 플레이가 가능한 것은 반복해서 게임을 즐겨도 매판마다 새로운 재미를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전체적인 흐름은 비슷할지언정 새로운 형태의 던전과 처음 보는 무기, 악세사리를 통해 이전과 다른 전투 플레이를 해볼 수 있으니 반복해서 게임을 할 생각이 드는 겁니다.

'닥스버그'에서 랜덤성은 레벨업마다 제공되는 3개의 능력 외에는 모든 것이 정해진 대로 등장합니다. 맵 디자인도 똑같고 특정 구역에서 진행하는 특수 이벤트도 같아요. 길도 똑같고 이벤트도 똑같으니 게임을 몇 판만 해봐도 금방 질리는 느낌을 받기 쉽습니다.

▲ 그나마 제일 화려한 기술입니다

스테이지마다 등장하는 몬스터도 정해져 있는데요. 몬스터마다 특별한 공격을 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물량으로 밀어붙여서 물고 뜯거나 원거리에서 창을 던지는 수준이기 때문에 특별함을 느끼기 어렵습니다. 게임 내 난이도를 올리면 간혹 특별한 접두사가 붙는 엘리트 몬스터가 등장하지만, 조금 더 강력한 수준에 그칩니다.

보스 몬스터는 더합니다. 그냥 체력이 더 많은 초 앨리트 몬스터입니다. 그래도 보스라고 여러 가지의 패턴을 갖춘 공격을 하지만, 진짜 액션 게임을 조금이라도 해본 사람이라면 너무나 쉽게 피할 수 있을 정도의 난이도라서 차라리 일반 스테이지를 도는 게 더 재미있는 수준이었습니다.




핵 앤 슬래시로서의 깊이가 부족합니다

'닥스버그'가 핵 앤 슬래시를 전투의 기본 골조로 삼았다는 점이 게임을 더 쉽게 질리게 하는 요인이 돼버렸습니다. 핵 앤 슬래시 장르는 컨트롤이 큰 의미가 없는 장르입니다. 대량으로 몰려드는 몬스터를 상대로 세밀한 컨트롤을 해봤자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공격 한두대 피할 바엔 차라리 적을 최대한 빨리 잡는 편이 더 낫습니다. 핵 앤 슬래시 게임은 컨트롤의 재미보단 적재적소에 알맞은 스킬 혹은 능력을 사용해서 효율적으로 몬스터를 처치하는 맛을 살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찌 보면 몬스터를 더 빨리 잡는 것이 핵 앤 슬래시표 컨트롤이라고 볼 수 있죠.

따라서 핵 앤 슬래시 장르는 빌드의 다채로움이 필요합니다. 컨트롤에서 큰 재미를 느낄 수 없다면 다양한 빌드를 제공해 몬스터를 사냥하는 방식 자체에 재미를 부여하는 것이죠. 대표적인 핵 앤 슬래시 게임인 '디아블로'나 '패스 오브 엑자일'을 떠올리면 이해하기 쉬울 겁니다.

▲ 능력 상승 기회는 딱 9번뿐, 개수마저 부족하다

'닥스버그'는 대량의 몬스터를 쓸어버리는 핵 앤 슬래시 전투의 기본적인 재미를 충족했지만, 빌드의 다채로움까지는 채우지 못했습니다. 게임에서 캐릭터를 성장시킬 수 있는 방식은 레벨업마다 획득하는 랜덤 성장 포인트와 로비에서 해금할 수 있는 초월, 큐리오 보관창이 있는데요. 스테이지마다 최대 레벨이 제한되어 있으며, 5챕터 기준 최대 9레벨밖에 성장을 못 시킵니다. 또한, 성장 포인트도 대략 15개 정도밖에 없어서 한 판만 해도 캐릭터의 성장 한계를 가늠할 수 있습니다.

당연히 레벨업만으로는 다양한 빌드 자체가 나올 수 없는 구조입니다. 이를 뒷받침 해줘야 할 초월과 큐리오 보관창도 결국 캐릭터의 능력치를 올려주는 정도에 그치기 때문에 빌드의 다양성이라고 보긴 어렵습니다. 그냥 더 세게 때리고 덜 아프게 맞는 수준입니다. 다양한 빌드가 뒷받침되지 않으니 결국 전투는 금방 질리고 단조롭게 느껴질 수 밖에 없습니다.

만약, 레벨업마다 새로운 능력치를 부여하는 방식 외에 사냥 중에 드랍되는 아이템을 장착해 능력치를 올릴 수 있고 스킬을 좀 더 많이 만들어서 다양한 빌드를 플레이할 수 있게 만들었다면 지금보다 훨씬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 숙련 시스템은 단지 캐릭터의 능력치 강화에 초점을 맞췄으며,

▲ 유물 시스템과 비슷한 큐리오 보관창도 비슷한 역할입니다





중간에 개발 노선을 바꿨기 때문일까요. 종합해서 살펴보면 개발사에서 너무 큰 욕심을 부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로그라이크 장르의 레포데를 꿈 꾼 것 같지만, 현실은 어느 한 쪽도 제대로 잡지 못한 어중간한 게임이 돼버리고 말았습니다.

협동을 중시한 로그라이크 게임을 만들 생각이었다면 지금보다 스테이지의 개수를 늘리고 협동 플레이에 좀 더 집중했어야 합니다. 지금처럼 단순히 누군가는 문 앞을 지키고 누군가는 자재를 옮기는 아주 단순한 협동이 아니라 '레프트 4 데드', '버민타이드'처럼 팀원의 협력이 없다면 게임을 깨는 것이 어려울 정도로 협동 플레이에 힘을 실어줘야 했습니다.

핵 앤 슬래시를 중시한 로그라이크 게임을 만들 생각이었다면 지금보다 더 많은 빌드를 만들어야 했습니다. 캐릭터에 스킬도 많이 추가하고 로그라이크의 랜덤 요소를 적극 활용한 랜덤 아이템 드랍, 랜덤 스킬 성장 등을 도입해 전투의 손맛을 살리고 반복 플레이의 지루함을 덜어내야 합니다.

개인적으로 게임의 그래픽과 전체적인 분위기는 만족스러웠기 때문에 이런 부분이 너무나 아쉽게 느껴지는 게임입니다. 조금만 더 선택과 집중을 했다면 지금보다 나은 게임이 되지 않았을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