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사위로 장난질하는 여왕을 1%의 운과 99%의 실력으로 부수는 게임



랜덤, 확률, 무작위성, 아마 이 단어 중 하나만 듣고도 민감해질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돌아보면, 어지간한 게임에서 이 단어가 빠지지 않는다. 돈을 내고 뽑는 것 말고도, 몹을 수천 수만 번 때려잡아도 아이템이 안 나오는 악운이라는 게 있지 않던가. 반대로 친구놈은 고대 신화 원시 전설 어쩌구를 한 방에 뽑아내는, 될놈될 안될안은 게임 내에서 돈이 엮이지 않은 영역에도 얽혀있다. 이유야 간단하다. 무작위성이라는 게 그만큼 재미가 보장되어있고, 위력도 좋은 데다가 플레이타임도 늘려줄 수 있는 전가의 보도 같은 놈이니 말이다.

그런데 그 운을 누군가가 조작한다면 어떤 느낌일까? 심지어 삶마저도 무작위로 운에 맡긴다고 했는데 그 말마저도 거짓이라면? Fe의 개발사 조인크에서 선보인 '로스트 인 랜덤'은 그 실험을 잔혹동화라는 형태로 풀어내고자 한 작품이다.

발표 당시부터 '로스트 인 랜덤'은 마치 보드게임처럼, 주사위 눈이 잘 나오면 꽤 순탄하게 풀어갈 수 있지만 주사위 눈이 안 좋으면 빈민가로 가거나, 그 나쁜 운이 계속 쌓이면 엔딩에도 영향을 주는 등 '운'의 역할이 꽤나 큰 작품이라고 소개됐다. 만일 그렇게 무작위성과 운에 과잉의존하게 되면, 게이머가 어떤 역할을 하고 또 그 과정에서 어떤 재미를 느낄 수 있을까? 내심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패키지를 사면 그 외에 추가 비용 없이 내 운과 사고실험을 계속 해볼 수 있으니, 속는 셈치고 그 과감한 시도에 동참해봤다. 그런데 이 게임, 굉장히 역설적이다.

게임명 : 로스트 인 랜덤(Lost in Random)
장르명 : 카드 액션 어드벤처
출시일 : 2021.09.10.
개발사 : 조인크
서비스 : EA
플랫폼 : PC, 닌텐도 스위치, Xbox, PS

관련 링크: '로스트 인 랜덤' 오픈크리틱 페이지



확률, 아트, 스토리로 자아낸 멜랑콜리한 분위기


이 게임은 처음부터 모든 것이 '숫자'와 '무작위성'이라는 테마를 위해 설계됐다는 걸 직접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주인공과 그 언니부터 그렇지 않나. 짝수, 홀수라니. 한국어화되어있지 않아서 주인공의 이름이나 언니의 이름 그리고 사소하게 나오는 디테일까지는 체감이 안 될 수 있지만, 랜덤이나 다이시 등 영어를 굳이 잘 하지 않아도 다들 알 법한 것들이 툭하면 튀어나오지 않던가. 랜덤 룰즈, 무작위성이 지배한다 뭐 이런 말들이 시도 때도 없이 나오곤 한다. 더군다나 첫 시작부터 12살이 된 언니의 운명을 결정하는 주사위 던지기까지 나오니 그 테마를 진하게 느낄 수밖에 없다. 갑자기 주사위 눈이 1에서 6으로 바뀌는 장난질까지 대놓고 나오는 건 덤이다.

그렇게 툭 튀어나온 것들이 때로는 독이 되곤 한다. 메시지와 주제를 음미하고 해석하며 즐기는 유저도 있지만, 그런 것을 게임플레이만을 온전히 평가할 수 없게 만드는 불순물처럼 느끼는 유저도 있기 마련이니까. 예술성에 치우친 나머지 종종 상업적 재미를 잃어버린 작품도 많으니, 그런 우려가 기우는 아니긴 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사실 로스트 인 랜덤에서 이런 건 그냥 '알면 좋고' 수준에 그친다. 그보다는 멜랑콜리함에 젖어서 "이런 느낌으로 만든 건가?"라고 스스로 생각하게끔 유도하는 장치라 하겠다.

▲ 저렇게 대놓고 티가 나게...잠깐 저 주사위 눈 위치부터 뭔가 이상한데?

▲ 어쨌거나 6이 나왔으니, 여왕을 따라 식스토피아로 가야 하는 오드

▲ 오드의 새총을 전해준 정체불명의 유령을 만난 뒤, 이븐의 모험이 시작된다

스토리나 게임플레이 이전에, 아트를 볼 때부터 그런 묘한 느낌을 받기엔 충분하다. 마치 팀 버튼의 우울하고 몽환적이면서 약간 뒤틀린 듯한 화풍이 느껴지는 그래픽이랄까. 발표 당시부터 팀 버튼의 작품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다고 했으니, 그런 느낌이 드는 것도 이상하진 않겠다. 가느다란 팔다리에 살짝 투박한 인상, 뒤틀린 고딕풍의 건물들과 어두운 배경까지. 거기다가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다소 조잡하고 거칠게 보이는 텍스처로 고전적인 세트장이나 소품 같은 스타일도 살렸다. 다르게 이야기하자면 보자마자 딱 우울하면서도 뒤틀린 듯한 분위기를 캐치할 수 있게끔, 디테일까지 다 갖췄다.

사실 이렇게 어떤 분위기를 밑밥 깔듯이 깔면서 어떻게 하라고 지시하는 듯한 구성은 호응을 얻기 쉽지가 않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신파'라는 걸 생각해보자. 절체절명의 순간, 비장미 넘치는 슬로우모션 롱테이크와 슬픈 BGM은 눈물을 뽑아낼 수 있는 사기적인 스킬이지만 극중 이야기 전개와 부자연스럽게 이어진다면 종종 다들 그렇게 말하면서 평가절하하지 않던가. 게임에서라면 게임플레이 그 자체보다 연출 그리고 충격적인 결말 등에 신경 쓴 나머지, 직접 플레이하는 유저의 입장은 생각지도 않고 마구잡이로 집어넣어서 기분을 망치는 그런 유형도 있고.

로스트 인 랜덤은 그런 우는 범하지 않았다. 아트는 굉장히 멜랑콜리하지만, 스토리와 연출은 아주 담담하게 그려냈다. 주사위를 던져서 숫자가 1이 나오면 빈민가로 가고 6으로 가면 부촌으로 간다, 그런데 과연 그 운명이 진짜일까? 그런 이야기를 보여준 뒤에 나머지는 유저가 직접 그 숫자의 위력을 플레이하면서 체감하게끔 녹여낸 것이다.

실제 플레이에 대해서 간단히 설명하자면, 액션 게임에 덱 빌딩 게임을 가미한 형태다. 플레이어가 직접 이븐을 조작해서 적과 맞서싸우면서 일정 타이밍마다 주사위를 틈틈이 굴려 코스트를 버는 그런 형태로 게임이 진행된다. 그때 주사위 눈이 낮으면 당연히 높은 코스트의 카드는 사용할 수 없고, 손패도 순환시키기 어렵다. 여타 로그라이크 덱 빌딩은 코스트를 전 스테이지에서 벌어두거나, 턴이 지날 때마다 추가되는 식으로 확실하게 챙겨둘 수 있는 수단이 있지만, 로스트 인 랜덤에서는 순전히 운으로만 결정된다. 더군다나 중간중간 주사위 보드 게임에서도 운이 나빠서 눈이 잘 안 나오면, 체감 난이도가 몇 배는 어려워지는 건 덤이다. 랜덤이라는 이 암울한 디스토피아를 분위기와 스토리, 그리고 게임플레이로 녹여냈다으니 말이다.

▲ 슈팅 요소가 있긴 하지만

▲ 전투에서 쓰게 되는 무기는 결국 카드로부터 나온다. 코스트가 낮으면? 못 쓰는 거고



덱 빌딩에 액션과 에임으로 보정한 실력 게임


앞서 말한 내용은 일반적인 덱 빌딩이었다면, 바로 망겜이라고 하면서 그냥 홧김에 던져버리기 일쑤인 구성이다. 물론 덱 빌딩 게임 특성상, 나중에 가면 갈수록 코스트를 펌핑해주거나 손패를 바꿔주는 카드들이 등장하기 시작하면서 게임플레이가 바뀌기 시작한다. 이전에 덱 빌딩 게임을 해보지 않았더라도 이런 컨셉의 카드가 등장할 것은 스토리에서부터 예견되어있긴 하다. 앞서 말했듯 초반부터 여왕이 주사위 눈을 자기 멋대로 나오게 하는 수작질을 부리거나 하는 요소들이 눈에 보이는데, 그런 적을 상대로 순전히 '운'만 믿기엔 너무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래서 로스트 인 랜덤에는 '액션'과 '슈팅'의 요소를 가미했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로스트 인 랜덤은 단순히 턴제로 진행되는 게임이 아니다. 새총으로 적의 몸 곳곳에 난 수정을 쏴서 게이지를 충전하고 그걸로 주사위를 던져 코스트를 번 뒤 카드를 사용하는 그런 방식으로 플레이를 하게 된다.

카드 역시도 단순히 내면 끝이 아니라, 카드로 나온 무기를 활용해서 적을 물리치거나 혹은 어느 위치에 놓고 수동으로 폭파시켜야 하는 등, 컨트롤 요소가 꽤 있는 편이다. 처음에 카드가 별로 없을 때는 오히려 카드 게임의 탈을 쓴 액션 게임에 가깝다. 적의 공격을 회피한 뒤에 새총으로 수정을 깨뜨리고, 게이지를 모아 검 카드를 꺼낸 뒤 슥삭 베어나가거나 활 카드를 꺼내서 적을 원거리에서 쓰러뜨리는 그런 흐름으로 게임이 진행되기 때문이다.

▲ 새총으로 수정을 쏴서 게이지를 모으고

▲ 주사위를 던져서 코스트를 번 뒤, 카드 효과를 활용하는 것이 전투의 기본이다

여기에 친절하게도 그 카드를 골라서 적을 직접 공격하기 전까지 적들이 멈춰있으니, 잠시 숨을 고르고 다른 곳으로 이동하면서 다음 수를 카운팅하는 것도 가능하다. 지금 손패가 안 좋다고 해도, 실력이 된다면 적이 어디에 있는지 잠깐 파악해둔 뒤에 바로 쏴서 게이지를 완충하고 다시 턴을 잡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무쌍을 찍거나, 게이지를 계속 펌핑할 수는 없었다. 조작감이 상당히 뻣뻣하고 새총의 궤도가 상당히 빨리 포물선으로 바뀌는 편이라 처음 감을 잡기도 어려울 뿐더러, 수정이 깨진 뒤에 리스폰 위치가 몇 번 바뀌다가 나중에는 상당히 지연되는 등 브레이크를 걸 요소들이 꽤 많기 때문이다. 그래도 회피의 판정은 상당히 좋은 편이라 익숙해지면 적의 공격은 계속 피하면서 꾸준히 코스트를 버는 실력 행사는 가능했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계속 손패를 순환시키면서 나쁜 패가 나와도 영향력을 최소한 줄이는 등 다른 의미에서 '실력겜' 플레이가 가능했다.

▲ 주사위 눈을 던진 뒤, 적 수정을 깨뜨리거나 데미지를 입히기 전까지는 적들은 아무 행동도 할 수 없다

물론 액션이 강조된 나머지 덱 빌딩으로 볼 때는 다소 재미가 엇갈릴 수도 있겠다. 그래도 보드 게임 구간에서는 덱 구성이 어떻냐에 따라서 필드를 빨리 정리하고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나 갈리기 때문에 덱 짜는 '실력'도 상당히 중요한 게임이다.

더군다나 다른 덱 빌딩 게임과 달리, 전투 후에 쉬어가는 코너에서도 체력회복이나 그런 게 불가능하다. 따라서 전투 중에 다음 전투까지의 상황을 고려해서, 카드를 카운팅해서 내고 덱 상황을 파악하는 그런 노하우도 가면 갈수록 중요해진다. 단순히 쫄몹들이나 초반 보스들은 그냥 회피로 흐느적거리며 피할 수 있지만, 앞서 말했듯이 나중에는 주사위 눈도 자기 멋대로 바꿔버리는 여왕처럼 확정으로 들어가는 공격들이 수시로 들어오기 때문이다. 그 패턴에 맞춰 회복 카드나 방어 카드를 카운팅해서 최대한 빨리 뽑아낼 수 있는, 그런 노하우가 필요하다.


▲ 메인 공격, 방어 수단은 어디까지나 카드인 만큼 코스트 관리-덱 구성 등 카드 게임 노하우도 중요하다



산만한 사이드 퀘스트와 언어의 장벽, 다소 느린 템포


이렇게 재미있는 게임을 라떼는 말이야, 언어의 장벽 얘기가 나오면 아마 이렇게 말할 사람도 있겠다. 예전에는 외국 게임들이 번역되지 않아서 자기가 스스로 사전 보면서 공부했더니 외국어가 늘었다는 도시 전설 같은 이야기가 비일비재했으니 말이다. 물론 '라떼는' 이런 소리가 나왔으니,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는 알 거다. 지금 굳이 그런 수고를 하면서까지 그 게임을 붙들고 늘어져야 할까? 라는 질문이 나오기 일쑤다. 그만큼 시중엔 재미난 게임도 많아졌고, 한국어화도 충실히 지원하는 것들도 많아졌으니 말이다.

마음 같아선 '로스트 인 랜덤'은 상당히 유니크한 맛의 게임이라, 한 번 체험해보라고 권하고 싶긴 하다. 그렇지만 그 맛을 온전히 즐기려면 언어의 장벽이 꽤나 심한 게임이다. 여타 로그라이크 덱 빌딩 게임 같았다면 카드의 효과나 조건 같은 것은 그래도 몇 번 플레이하다보면 감각적으로 알면서 악으로 깡으로 플레이가 가능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로스트 인 랜덤은 로그라이크 요소는 거의 없이 정해진 스토리를 쭉 따라가면서 정해진 적과 싸우는 구성이고, 랜덤이라는 것은 스토리 및 세계관을 묘사하기 위한 장치에 가깝다. 그만큼 스토리가 중요하고, 스토리를 음미하지 않으면 재미가 반감될 수밖에 없다.

앞서 '잔혹동화'라고 이야기한 것처럼, 스토리에 나오는 단어 그 자체는 동화 정도 레벨이다. 그래서 조금 집중해서 보면 아예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다. 더군다나 중간중간, 으레 괴이한 동화에서 들려올 법한 나레이션이 보조해주고 있으니 집중해서 듣기도 좋다. 그렇지만 그 사이사이에 담겨있는 언어유희나 말장난, 시 그리고 알레고리까지 음미하게끔 구성된 터라 그 맛을 온전히 즐기기 쉽지 않다고 할까. 그게 그냥 흘러듣고 마는 거라면 모를까, 퀘스트 진행 중에도 심심찮게 나오는데 그 때문에 뭘 선택해야 할지 고민하는 과정은 썩 유쾌하지만은 않다.

▲ 라임 맞추라고 하는데 앞에서 뭐라고 얘기했는지 까먹었는뎁쇼...

그렇다고 해서 그런 수고를 무릅쓰고 스토리를 하나하나 음미할 가치가 없는 건 아니었다. 요즘 화두가 되는 '무작위성'과 '공정함'에 대해서 쿡 찌르는, 그런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있으니 말이다. 랜덤이라고 생각했는데 여왕 마음대로 움직인 주사위 때문에 이산가족이 될 위기에 처한 피해자들, 맹목적으로 확률을 맹신하고 여왕을 숭배하는 마을 사람들, 주사위의 운과 여왕의 선택으로 마을에 오게 된 아이들을 배척하는 식스토피아의 아이들, 운명을 가르는 주사위들과 그 주사위를 두고 일어난 전쟁 등등. 그 에피소드들이 묘한 비주얼과 나레이션이 얽히면서 몰입감도 있었고, 여왕과 그 추종자들이 말하는 무작위성이 모든 걸 지배한다는 그 이면에 감춰진 허상을 파헤쳐가는 맛도 있었다.

물론 여타 어드벤처 게임이 그렇듯, 로스트 인 랜덤도 메인 퀘스트뿐만 아니라 사이드 스토리 및 여러 수집 요소들을 통해서 이런 이야기들을 하나하나 풀어나가곤 한다. 그렇지만 그게 매끄럽게 이어진다는 느낌을 받기는 어려웠다. 맵은 단순하지만 동선을 의도적으로 꼬아둔 탓에 찾아가기가 번거로웠고, 일부 히든 보상을 주는 퀘스트를 빼고 그걸 무릅쓰고 찾아갈 메리트가 직관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스토리를 풀어나간다는 그런 재미는 확실하지만, 그 이상의 무언가가 조금 약하다고 할까.

▲ 그나마 가면 갈수록 사이드 퀘스트가 중간중간 동선에 배치되어있는 편이긴 하다

조작감이라도 매끄러웠다면 좀 달랐겠지만, 로스트 인 랜덤의 조작감은 상당히 뻣뻣한 편이라서 다른 길로 샌다는 것 자체가 썩 좋은 경험은 아니었다. 특히 키보드-마우스로 할 때 카메라나 방향 전환이 더 뻣뻣하게 느껴졌다. 그나마 회피와 공격은 무난하게 먹히는 편이라 전투의 재미 자체는 준수한 편이다. 다만 전투가 회피 및 게이지 충전 - 카드 선택 - 카드 효과 발동 - 액션의 4단계를 몇 번이나 반복하는 만큼, 템포가 필연적으로 느릴 수밖에 없었다. 보스전이라면 이렇게 느릿느릿해도 이해가 가겠지만, 잔챙이들과의 전투도 상당히 지지부진하게 흘러가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불필요한 전투가 발생하는 것 자체가 꺼려질 수밖에 없다.

특히 초반에는 다이시의 눈이 다 완성되지 않아서 저코스트 카드만 사용할 수밖에 없는데, 그러다보니 전투가 더욱 더 지지부진한 느낌이었다. 6코스트 카드까지 쓸 수 있는 후반에 가면 전투 경험이 확 달라지긴 하지만, 그러려면 원크로프트에서부터 식스토피아까지 6단계는 거쳐야 한다는 말이지 않던가. 그 갭을 잇기 위한 중간고리가 분위기와 잘 엮어낸 스토리 외엔 다소 미흡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 이 대신 잇몸식으로 처리는 하지만, 이렇게 계속 번거롭게 처리해서야...





돌이켜보면, 맨 처음 공개됐을 때부터 이 게임은 다분히 주제의식이 투철한 게임이었다. '운'이 모든 걸 결정한다는 것과 주사위의 눈이 모든 걸 결정한다는 그 내용은 작중에서 그대로 등장한다. 유저가 직접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유저가 맞서싸워야 하는 적으로서 말이다. 더 나아가서 그 운과 무작위성이 과연 누구의 간섭도 없이 공평하게 적용되고 있나 하는 의문도 계속해서 들 수밖에 없다. 원크로프트에서부터 식스토피아까지, 여왕이 굴리라고 한 주사위 눈 때문에 자신의 의사와 상관 없이 그곳에 살고 있지 않던가. 그런데 그 배치도 실은 때로는 눈을 조작해서 일어난 결과가 아니던가.

대놓고 훅 들어오는 주제의식이 때론 통쾌하고, 때론 불편할지도 모르겠다. 팀 버튼의 작품마냥 몽환적이고 뒤틀린듯 비주얼과 동화 같은 구성으로 그런 직설적인 느낌은 최대한 완화시켰다고 하지만, 그 테마와 관련된 내용들이 그냥 날것 그대로 드러날 때가 있기 때문이다. 언어의 장벽이 일부 있다지만, 그런 장면만큼은 바로 보면 알 수 있을 정도로 노골적으로 구성되어있다.

현 단계에서는 주제의식과 스토리를 음미해나가는 그런 부류의 게임을 아주 깊게 즐기지 않는 유저에게 로스트 인 랜덤을 선뜻 권하기는 애매하다. 한국어화가 됐다면 달랐겠지만, 그렇지 않기 때문에 음미할 때 드는 수고가 배로 들기 때문이다. 그냥 단순히 해석만 된다고 끝이 아니라, 중간중간 숨어있는 말장난이나 알레고리, 운율, 살짝 뒤틀어서 비꼬는 나레이션 등등의 느낌까지 고려해서 읽을 필요가 있는 작품이니까. 그나마 동화 컨셉이다보니 어려운 단어나 문장 구조는 최대한 지양하고 있어서 작정하고 본다면 어떻게든 읽을 수 있다는 게 다행이긴 하다.

▲ 비틀어서 만들어낸 고유 명사라던가, 문장들을 살펴보면 거진 라임을 붙여놔서 번역하기 까다로울 것 같긴 하다

액션 어드벤처에 덱 빌딩 요소를 일부 가미하면서 주제의식과 게임플레이를 결부한 시도는 괜찮았지만, 천편일률적으로 느린 템포와 다소 뻑뻑한 조작감은 애매하게 느껴졌다. 스테이지를 그냥 일직선적으로 클리어한다고 보면 넘어갈 법한 수준이지만, 사이드 퀘스트까지 엮이면서 플레이타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피곤함이 배가 될 수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사이드 퀘스트 구조도 여기저기 분산되어있고 수집 요소도 따로따로 배치되어있곤 하니, 돌아다니면서 찾아다녀야 하는데 그럴 만한 가치가 있나 돌이켜 생각해보면 모호하다. 큰 줄기는 좋아도, 그게 가지들까지 다 싱싱하다는 그런 의미는 아니니 말이다.

그렇지만 운, 확률이라는 놈에 좀 많이 데여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 확률에 장난치는 놈을 한 방 먹이겠다는 심정으로 몰입해서 플레이하기엔 괜찮을지 모르겠다. 주사위를 멋대로 놀리는 여왕에 맞서서, 약간의 운과 실력 드로우 그리고 액션과 슈팅으로 맞서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니 말이다. 그 이야기를 뉘앙스까지 온전히 한국어로 번역해서 뽑아내긴 어렵겠지만, 언젠가 한국어가 적용이 되서 좀 더 편하게 즐길 수 있는 날이 왔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