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는 락 사운드로 채워진 한 편의 스페이스 오페라


TV에서 자주 방영되는 자녀 육아 프로그램을 보면, 스포츠나 노래처럼 특정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냈던 부모가 자신의 자녀 역시 같은 분야에서 활약하길 바라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된다. 자녀에게 조금이나마 해당 분야의 재능이 보인다 싶으면 부모는 물론, 그 주변 사람들 역시 아이가 부모와 같은 길을 걷길 내심 바라며 기대에 찬 눈길을 보내게 된다. 여기엔 아이가 진로를 헤매며 허투루 시간을 낭비하는 것을 막아준다는, 허울 좋은 명분도 빠지지 않는다.

이때 아이가 갖게 될 부담감의 크기는 과연 어느 정도일까. 비록 천재나 영재라 불리며 세간의 기대를 받아본 적은 없는 처지지만, 남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애정이 담기지도 않는 일들을 억지로 파고 있을 때의 심정이 얼마나 괴로울지는 어렵지 않게 상상해볼 수 있다.

이처럼 국내외와 세대를 막론하고 오랜 시간 전부터 꾸준히 이어져 온 '진짜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유쾌한 락 사운드와 몽환적인 스페이스 오페라로 풀어낸 게임이 등장했다. 바로 플로렌스, 고로고아, 아우터 와일드, 저니 등 수 많은 명작 인디 게임들을 배출해낸 안나푸르나 인터랙티브의 신작 '디 아트풀 이스케이프(The Artful Escape)'다.

안나푸르나가 선택한 인디 게임들이 보여주는 특유의 테이스트가 입맛에 맞는 게이머라면, 디 아트풀 이스케이프 역시 매력적인 신작 선택지가 될 것이 분명하다. 다루고 있는 소재 자체도 머리아픈데 게임이 복잡하면 쓰겠나 싶었는지, 게임 플레이 자체는 놀라울 정도로 평범했지만 말이다.

게임명 : The Artful Escape
장르명 : 어드벤처
출시일 : 2021.09.10.
개발사 : Beethoven and Dinosaur
서비스 : 안나푸르나 인터랙티브
플랫폼 : PC, XBO, XSX|S

관련 링크: 'The Artful Escape' 오픈크리틱 페이지


'진짜 나'를 찾아가는 소년의 성장기

디 아트풀 이스케이프는 천재 포크 음악가였던 삼촌의 그늘에 가려져 진짜 자신을 찾지 못하고 삼촌의 대역으로서 살아가야만 했던 한 소년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주변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마음에도 없는 포크 음악을 연주하며 그저 흘러가는 대로 살아가던 주인공은 어느 날 낯선 외계인의 부름에 따라 시공을 초월하는 우주여행에 나서게 된다.

우주 여행 중에 만나게 되는 여러 인물은 프랜시스의 삶에 이정표가 되어줄 수 있는 다양한 조언들을 아낌없이 건네온다. 물론 중요한 것은 개인의 선택이기에, 그 어떤 순간에도 특정 선택을 강요하는 모습은 등장하지 않는다. 이러한 게임의 전개 방식 때문인지, 게임을 플레이하는 약 네 시간가량의 플레이 타임은 마치 게임의 형태로 풀어놓은 심리 테라피에 참가한 것 같은 기분을 전해준다.

▲ 음악을 좋아하지만, 포크 음악에 좀처럼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주인공 프랜시스

▲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모두 그가 전설적인 스타였던 삼촌과 같은 음악을 연주해주길 바란다

▲ 삼촌의 기일이 되면 그를 추모하기 위해 찾아온 관광객들로 마을 전체가 들썩일 정도인데,

▲ 과연 프랜시스는 그가 아닌 '삼촌'의 모습을 찾는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을까?

학창시절 자신의 진로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한 번쯤 방황해본 경험이 있다면, 자신이 진짜 나아가야 할 길을 깨닫기 까지 고뇌를 반복하는 주인공 프랜시스 벤데티의 이야기에 충분히 공감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물론, 플레이 과정을 통해 서서히 깨닫게 되는 '자아성찰' 만이 이 게임이 가진 유일한 매력은 아니다.



게임 속 모든 장면이 '인증샷 맛집', 우주를 담아낸 몽환적인 비주얼


이 게임의 진짜 매력은 소년이 여행길에 마주하게 되는 여러 외계 행성들의 몽환적인 비주얼에 있다. 스크린 샷을 찍지 않고는 그냥 지나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게 꾸며진 외계 행성의 비현실적인 풍경들이 모든 순간마다 플레이어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외계 행성의 배경도 단순히 별빛이 가득한 우주의 모습에만 그치지 않는다. 눈과 얼음으로 뒤덮인 행성부터 온통 모래밖에 보이지 않는 황량한 사막 지역, 신비한 불빛을 뿜는 발광 생물들이 가득한 지하 동굴, 지면이 온통 물로 덮였거나 나무와 풀이 울창하게 자란 밀림 지역까지, 시공간을 초월하며 행성과 행성 사이를 넘나드는 여행인 만큼, 그야말로 '우주여행'이라는 말이 아깝지 않을 정도다.

게임 초반에 등장하는 시골 마을 칼립소의 차분한 분위기와 상반되는 외계 행성들의 거대하고 압도적인 풍경들은 주인공 프랜시스가 삶의 전부라고 여겨왔던 세상이 얼마나 작은 범주에 지나지 않았는지 효과적으로 보여주는 장치가 되고 있다.


▲ 우주여행 중에 마주하게 되는 풍경들은 몽환적인 비주얼로 플레이어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이러한 배경들은 단순히 아름답기만 한 이미지에 그치지 않고, 유저가 직접 상호작용할 수 있는 플랫포머식 게임 플레이의 무대가 되어 주기도 한다. 맵에는 점프와 슬라이딩을 통해 뛰어넘을 수 있는 장애물들은 물론, 플레이어의 연주에 따라 반응하며 움직이는 다양한 생물들로 가득하다.

플레이어의 조작에 따라 더욱 다채롭고 화려하게 바뀌는 외계 행성들의 풍경을 만끽하다 보면, 다음 행성에서는 과연 어떤 외계 행성의 모습이 등장하게 될지 기대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게임을 플레이할 때 무엇보다도 비주얼을 중시하는 편이라면, 게임 시작부터 엔딩까지 지루할 새 없이 계속 달라지는 비주얼을 보여주는 이 게임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될 수밖에 없으리라고 본다.

▲ 눈 덮인 설산과 오로라, 여가에 자유롭게 하늘을 부유하는 고래까지

▲ 우주적인 존재와의 만남도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다

▲ 다음엔 어떤 행성으로 여행을 떠나게 될지 계속 기대하게 된다



게임 속 조작 요소인 플랫포머, 리듬 액션 파트는 아쉽다

앞선 문단에서는 생략하거나 간단하게만 언급하고 넘어갔지만, 디 아트풀 이스케이프라는 게임에 있어서 '플랫포머 액션'과 기타를 활용한 '리듬 액션'은 게임의 근간을 이루는 핵심 요소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이다. 플랫포머와 리듬 파트가 없다면 이 게임은 단순한 '걷기 시뮬레이터'에 지나지 않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플랫포머와 리듬 액션을 제대로 언급하지 않은 이유는, 이 두 요소가 게임 속에 유명무실한, 여기서 더 나아가 감점 요소로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플랫포머와 리듬 액션 파트가 아쉬운 요소로 느껴지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모든 순간에 긴장감이 결여되어 있어서다. 먼저 플랫포머 파트를 보자.

플레이어는 게임 속에서 점프와 이단 점프, 슬라이딩, 그리고 공중에서 기타를 연주하여 체공 시간을 늘리는 조작을 할 수 있다. 맵에는 길거나 짧은 절벽이 반복적으로 배치된 구간도 등장하므로, 해당 구간에서는 타이밍에 맞춰 점프와 공중 연주를 이어나가야만 스토리를 진행할 수 있게 된다.

분명 스토리에서는 추적자들이 바쁘게 쫓아오고 있는 긴박한 상황이지만, 플레이를 제한하거나 쫓기는 기분이 들게끔 하는 요소는 찾아보기 어렵다. 점프 타이밍을 놓쳐 구멍에 빠졌다면 바로 전부터 언제 그랬냐는 듯 자연스럽게 다시 게임을 반복할 수 있고, 생명을 위협하는 적이나 장애물 역시 일절 등장하지 않는다.

플레이어가 아름다운 게임의 배경에 집중하게끔 하는 배려라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그저 스토리를 감상하는 것 외에도 게임 플레이를 통해 액션 요소를 함께 즐기고 싶었던 유저에게는 아쉽게 느껴지는 요소가 아닐 수 없다.


기타 연주를 통한 리듬 액션 파트도 비슷한 약점을 갖고 있다. 실패에 대한 페널티가 없고, 연주 타이밍이나 테크닉에 따른 점수 개념도 없으므로 난이도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 식이다.

디 아트풀 이스케이프의 리듬 액션은 외계 생물체가 먼저 제시하는 코드를 그대로 따라 눌러 연주하는 '잼' 방식으로 진행된다. 보통 5음절 이내의 짧은 코드가 예시로 주어지고, 플레이어는 자신의 타이밍대로 느긋하게 따라 누르기만 하면 된다.

분명 스토리에서는 우주적 존재에게 놀라운 연주를 선보여 음악적 영감을 제시하지 못하면 영영 우주를 표류하게 된다며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이라는 분위기를 조성하지만, 타이밍이 늦었다고 점수가 깎이는 것도 없고, 심지어 음을 몇 번씩이나 틀리더라도 아무런 영향이 없다. 아이가 걸음마 하듯 하나하나 천천히 코드를 따라 누르고 나면 '놀라운 연주였다'고 형식적으로 감동하는 이들만 있을 뿐이다.

같은 상황이 게임 내내, 심지어 마지막 보스라고 할 수 있는 '글래머곤'과의 합주에서도 반복되다보니, 이야기에 대한 몰입도는 갈수록 떨어지고, 우주 규모의 큰 시련들을 모두 이겨냈음에도 별다른 달성감을 느끼기가 어렵게 됐다.

▲ 액션에 대한 기대는 버리고, 초현실주의 미술 작품을 본다는 생각으로 접하는 게 좋다




게임 속 액션 파트에서 다소 아쉬움을 느꼈지만, '디 아트풀 이스케이프'는 단연 남들에게도 추천해주고 싶은 아름다운 게임이다. 게임 전반에 가득 채워진 사이키델릭 락 사운드와 꿈속을 유영하는 듯한 몽환적이고 신비로운 비주얼은 다른 게임들 속에서 좀처럼 만나보기 어려운 매력적인 요소들이기 때문이다.

액션에 대한 기대를 덜어내고, 시작할 때부터 장엄한 SF 음악 영화 한 편을 감상한다는 기분으로 게임을 접하면, 딱 지루해지지 않은 선에서 특별한 만족감을 얻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게임 플레이에 더욱 몰입할 수 있도록 헤드폰과 게임 패드를 갖추고 플레이하면 더욱 좋다.

현생에 치여 모든 선택 하나하나가 무겁고 지치는 요즘이라면, 마음속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우주로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디 아트풀 이스케이프'에선 당신도 먼 우주 너머 코스믹 엑스트라오디너리로부터 찾아온 은하 간 전파의 독주자, 기타의 제왕이 되어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