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게임 없나...?'


분명히 어제 잠들기 전까지만 해도 온라인 게임을 재밌게 즐기고 있었다. 하지만 가끔씩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적은 다음, 로그인 버튼이나 게임 시작 버튼을 누르기 망설여지는 날이 있다. 그게 바로 오늘인가 보다. 회의감에 쌓인 채 스팀 상점 페이지를 뒤적거리며 신작 게임, 혹은 할인 중인 게임들 중 할만한 게 없나 살펴본다.

게임을 하며 글을 쓰는 것을 업으로 삼고 있지만 이처럼 급작스레 찾아오는 게임 불감증은 나도 어찌할 방도가 없다. 난생 본 적이 없는 신선한 시스템을 보여주거나, 예상을 뛰어넘는 화끈한 손맛을 자랑하는 다른 게임들로 해소하는 수밖에. 하지만 게임 불감증의 전조가 찾아왔을 땐 할만한 게임들을 찾아내는 것도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런 시기에 새로운 게임을 보게 되면 부정적인 생각이 먼저 들곤 한다. 신작 게임들은 스크린샷만 봐도 어디서 해본 듯한 양산형 게임같이 보이는 게 굳이 먹어보지 않아도 대강 무슨 맛일지 알 것만 같다. 명작으로 정평이 나있거나 유저 평점이 좋은 게임들은 대게 내 취향과 거리가 멀게 느껴지고, 그래픽도 썩 마음에 들지 않는다.

지금 스팀 페이지의 신규 출시 제품을 둘러보고 있는 내 심정이 그렇다. 곧 있을 추석 연휴를 어떻게 보내야 할지 막막하다.

▲ 게임 불감증을 한방에 날려줬던 '레드 데드 리뎀션 2'


이럴 때일수록 최신 게임보단 예전 명작들을 찾아보는 편이다. 할만한 게임이 없나 스팀 페이지를 둘러보던 중 꽤나 큰 폭으로 할인 중인 제품을 발견했는데, 과거 6개월이 넘게 지속됐던 지독한 게임 불감증을 치료해 줬던 게임, GTA의 개발사로 유명한 락스타 게임즈의 '레드 데드 리뎀션 2'다.

레드 데드 리뎀션 2는 2018년 콘솔 독점 발매 이후 2019년부터는 PC로도 즐길 수 있게 된 명작이다. 나같이 게임 불감증에 시달리고 있는 게이머라면 적극 추천한다. 초반의 답답함만 잘 극복하고, 또 취향만 맞는다면 추석 연휴가 통으로 사라지는 마술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하지만 PC버전 출시 당시 악명 높은 조작감과 괴랄한 하드웨어 요구 사양으로 인해 꽤 많은 유저들이 2시간을 채 버티지 못하고 대거 이탈했었던 게임이기도 하다. 나 역시 하드웨어 사양 때문에 환불한 경험이 있는데 당시 권장 사양보다 높은 GTX 1070 그래픽카드를 사용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게임 플레이가 거의 불가능했을 정도였다.

지금은 최적화가 많이 진행됐고 하드웨어의 성능이 대폭 상승해 그나마 부담이 덜 한 편이지만, 레드 데드 리뎀션 2가 가혹할 정도로 높은 하드웨어 사양을 요구한다는 건 아직까지 변함이 없다. 때문에 이번 할인을 기회로 게임을 즐겨 볼 유저라면 먼저 본인의 하드웨어 사양을 점검해보도록 하자. 무턱대고 구매했다간 게임 설치하는 데만 반나절을 소모하고 실행과 동시에 눈물을 흘릴 수 있으니 말이다.

▲ 이거 믿고 샀다간 진짜 피눈물 본다






■ DLSS ON, RTX 사용자라면 망설이지 말자


▲ 21년 7월 이후로 DLSS를 완벽 지원한다


▲ RTX 그래픽카드를 사용한다면 DLSS 옵션을 활성화시킬 수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레드 데드 리뎀션 2는 DLSS를 지원하지 않았고, 당시 메인스트림급 그래픽카드였던 RTX 2060 으로도 평균 35FPS(FHD 해상도 기준)라는 처참한 수치를 보여줬다. 30프레임에 익숙한 콘솔 유저가 아닌 순수 PC만 굴리는 유저라면 적응하기 어려운 수치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21년 7월 이후로 DLSS를 완벽 지원하게 되며 RTX 2060 그래픽카드에서도 쾌적한 플레이가 가능해졌다. 무려 풀 옵션으로 말이다. FHD 해상도, 매우 높음 옵션(그래픽), 'DLSS 매우 높은 성능' 모드 기준 평균 75FPS 정도로 약 2배가량 상승했다.

다만 'DLSS 매우 높은 성능' 모드로 설정 시 약간의 그래픽 뭉개짐과 그림자 품질 저하가 나타난다. 나는 그렇게 예민한 편은 아니라 문제없이 즐길 수 있었으나 타협 없는 최고의 그래픽 옵션을 원하는 사용자라면 약간은 실망할 수도 있겠다. 뭐 그런 유저라면 이미 최상위 등급 그래픽카드를 사용 중일 테니 넘어가도록 하자.

▲ DLSS 품질 모드 (클릭시 확대됩니다)

▲ DLSS 매우 높은 성능 모드 (클릭시 확대됩니다)

▲ DLSS 품질 모드 평균 FPS

▲ DLSS 매우 높은 성능 모드 평균 FPS

최고의 그래픽으로 레드 데드 리뎀션 2를 즐기고자 하는 유저라면 'DLSS 매우 높은 성능' 모드가 아닌 'DLSS 품질' 모드로 설정해도 무방하다. 매우 높은 성능 모드 대비 약간의 프레임 저하는 발생하지만 RTX 2060으로도 평균 65FPS 내외로 꽤나 부드러운 게임 플레이가 가능한 정도다.

위 테스트는 인텔 i7-11700 CPU가 활용됐다는 점을 참고하자. 인텔 i5-11400 CPU의 경우 동일한 테스트 환경에서 약 15FPS 가량 떨어진 평균 프레임을 보여줬다. 쾌적한 PC 게임 환경의 마지노선인 평균 60FPS 방어에는 최소 i7 등급의 CPU는 필요한 셈이다. 라이젠 CPU 사용자라면 최소 3700X 이상은 돼야 위 테스트와 비슷한 결과가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PC버전 발매 초기, 라이젠 3세대 CPU에서 심각할 정도의 랙, 프리징 현상을 비롯해 게임이 실행조차 되지 않는 상황이 발생했었지만 현재는 해결된 상태다. 만약 라이젠 3세대 CPU를 사용 중인 유저 중 위와 같은 현상을 겪고 있다면 바이오스를 최신 버전으로 업데이트한 후 실행해보도록 하자. 바이오스 버전이 AGESA 1.0.0.3이라면 해당 현상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 인텔 CPU 기준 i7-11700 + RTX 2060이면 풀 옵션으로 쾌적한 플레이가 가능하다.




■ 권장 사양 턱걸이, GTX 1060 6GB

▲ 풀옵에 비하면 볼품없지만 못할 정도는 아니다 (클릭시 확대됩니다)

▲ 예상외로 GTX 1060으로도 할만했다. 물론 CPU 성능이 받쳐준다면.

GTX 1060 6GB 사용자라면 그래픽 옵션 타협이 불가피하다. DLSS를 지원하지 않기 때문에 RTX 2060과 꽤 많은 성능 차이가 난다는 점은 미리 감안하도록 하자. 그래도 출시 초기보다 최적화가 많이 진행된 터라 옵션 타협 시 게임을 즐기는 데는 큰 무리가 없었다.

GTX 1060 6GB 그래픽카드와 인텔 i7-11700 CPU로 테스트해본 결과 낮음 옵션에선 평균 67FPS, 중간 옵션에선 평균 58FPS의 결과를 보여줬다(FHD 해상도 기준). 물론 그래픽 품질을 꽤 많이 낮춘 탓에 레드 데드 리뎀션 특유의 아름다운 그래픽을 감상할 수 없다는 점은 다소 아쉬웠다.

그리고 CPU도 걸림돌이 될 수 있어 보인다. 과거 GTX 1060 6GB로 게임용으로 데스크톱을 구성했다면 CPU는 어느 정도 밸런스가 맞는 인텔 i5 등급 혹은 라이젠 2600 정도로 구성되어 있을 확률이 높은데, 만약 본인이 사용 중인 CPU가 여기에 해당한다면 위 테스트 결과에서 약 10FPS 가량 떨어지는 결과가 나온다고 생각하면 된다. 매우 낮음 옵션으로 플레이 시 아슬아슬하게 60FPS 유지가 가능한 정도다.





■ 예상 외로 복병은 CPU

▲ 역시나 오픈월드 게임 답게 CPU도 중요하다

여타 3D 게임들과 마찬가지로 레드 데드 리뎀션 2 역시 그래픽 옵션을 올릴수록 더 상위 등급의 그래픽카드를 요구한다. 하지만 엔비디아 DLSS를 본격적으로 지원하게 되며 하이엔드급 그래픽카드가 아닌 RTX 그래픽카드만 가지고 있다면 거의 최상에 가까운 그래픽 옵션으로 게임을 즐길 수 있으니 예전보단 진입 장벽이 많이 낮아졌다고 볼 수 있다.

예상외로 복병은 CPU였다. 인텔의 11세대 데스크톱 CPU인 i5-11400, i7-11700, i9-11900으로 테스트를 진행해보니 8코어인 i7-11700이 가장 높은 효율을 보여줬다. 레드 데드 리뎀션 2가 타 오픈월드 게임들과 비교했을 때 CPU 사양을 덜 요구하는 건 맞으나 명색이 오픈월드 게임답게 적당한 CPU 사용량과 멀티 코어 활용을 보여줬다.

8코어 미만 CPU는 그다지 효율이 좋은 편은 아니다. 6코어의 인텔 i5-11400은 i7-11700과 비교했을 때 대부분의 상황에서 10~15FPS 감소된 평균 프레임을 보여줬으며 특정 상황에서 약간의 프레임 드롭 현상도 발생했다.

8코어 이상 CPU는 효율적으로 모든 자원을 활용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8코어 CPU인 i7-11700은 대부분의 상황에서 모든 코어의 사용량이 60%를 초과했으며 일시적으로 단일 코어만 사용된다던가 하는 현상도 없었다. 같은 8코어 CPU이면서 부스트 클럭이 더 높은 인텔 i9-11900은 i7-11700과 별다른 성능 차이가 없었다. 따라서 프레임 향상을 위해 무리하게 오버클럭을 감행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 8개의 모든 코어를 적당히 활용하는 모습






■ 하드웨어 사양을 충족한 당신, 서부로 떠날 준비가 됐다!

▲ 사양 OK? 서류 전형은 통과한거다


하드웨어 요구 사양에 한번, 느릿느릿한 조작감에 한번, 불편한 시스템에 또 한번.

2019년 말, PC버전 출시일에 맞춰 바로 구매한 게임이지만 나 역시 1년이 넘게 지난 후에야 레드 데드 리뎀션 2의 참 맛을 느낄 수 있었다.

하드웨어 요구 사양을 비롯해 귀찮고 번거로운 조작 방법, 뇌절에 가까워 보이는 디테일 등 게임을 즐기기 위해 헤쳐나가야 할 난관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똑 부러지는 튜토리얼, 빠른 이동, 자동 사냥 시스템(?) 등 요즘 게임들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편의성은 단 하나도 찾아볼 수 없는 불편한 게임이다. 아, 빠른 이동은 비슷한 게 있긴 한데....

하지만 말을 타고 광활한 대지를 달리는 것이 익숙해지는 그 순간 레드 데드 리뎀션 2의 모든 요소들은 하나의 콘텐츠로 다가온다. 사소한 일로 나에게 먼저 말을 걸어오는 NPC라든지, 퀘스트 지역으로 이동하는 중 목격하게 된 마차 사고 현장이랄지, 심지어는 바람에 흔들리는 자연 풍경까지 말이다.

하드웨어 요구 사양이라는 큰 벽을 넘은 유저라면 언제든지 19세기 말의 서부로 떠나보라고 권하고 싶다. 긴 추석 연휴를 알차게 보낼 방법을 찾고 있는 유저라면 더더욱 그렇다. 취향만 잘 맞는다면 생에 최고의 추석 연휴를 보낼지도 모르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