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한창 가을로 접어드는 9월의 어느 주말. 어느덧 세 시즌의 LCK를 마친 윤수빈 아나운서를 위해 인터뷰를 빙자한 특별한 나들이를 준비했습니다! 목적지는 인천 선재도였고, 날씨는 더없이 완벽했죠.

오랜만에 만난 윤수빈 아나운서는 침착하고 정중했던 작년과는 꽤나 달라진 모습이었습니다. 격식 없는 인터뷰를 요청한 게 실수였을까요. 장난기로 가득 찬 윤수빈 아나운서와 장장 여섯 시간에 걸쳐 나눈 대화에선 영양가 있는 내용보다 실없는 농담이, 실없는 농담보다 웃음이 더 많이 나왔습니다.

총 대화 분량의 20%도 채 안 되지만, 가끔씩 나온 진지함을 꾹꾹 눌러 담아 힘겹게 작성했습니다. 팬분들의 관심과 응원에 '관종'이 되어 버렸다고 주장하는, 윤수빈 아나운서의 이야기입니다.

※ 본 인터뷰의 야외 촬영 당시 '코로나19' 방역을 위해 모든 기자가 마스크를 착용하고 소독을 진행하였으며, 윤수빈 아나운서도 소독을 마치고 사진 촬영을 제외한 시간에 마스크를 착용했음을 알립니다.



지난 인터뷰 이후로 약 1년 만이네요. 인벤 독자 여러분께 인사 먼저 부탁드릴게요.

안녕하세요! LCK 아나운서 윤수빈입니다. 오랜만에 인터뷰로 인사드립니다.


말씀드린 대로 이번 인터뷰 컨셉은 비시즌 나들이에요. 오늘 목적지는 선재도인데요, 날씨가 좋아서 놀러 오신 분들이 되게 많을 것 같아요.

어휴... 팬분들이 제가 오늘 선재도 오는 걸 또 어떻게 알고... 오늘 사진 촬영하는 데 고생 좀 하시겠어요.


...?? 그나저나 요즘 어떻게 지내셨어요?

올해는 LCK 서머 스플릿이 끝나고도 RCK(와일드 리프트 챔피언스 코리아)나 각 팀 행사, 예능 프로그램 등을 촬영하며 눈코 뜰 새 없이 일하고 있어요. 올해를 되돌아보면 정말 한 달에 하루 이틀 쉴까 말까 할 정도로 바쁘게 지냈죠. 그래서 선재도에 가자고 해주셨을 때 너무 좋았어요. 평소에 쉬는 거라곤 시간을 쪼개 집에서 드라마나 영화를 보는 게 다였으니까요. 최근엔 D.P.랑 오징어 게임을 재밌게 봤네요.


지금까지 LCK 외에도 '오지는 사무실로 출근합니다', '나의 롤저씨', '큐베의 협곡식당', '성캐가중계' 등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여하셨잖아요. 최근엔 하하씨가 유튜브에서 진행하는 바텀 듀오 프로젝트에도 합류했고요. 이런 프로그램들을 촬영하면서 힘들었던 적은 없었나요?

지금까지 전혀 없었어요. 모두 정말 잘 해주셔서요. 반대로 너무 잘 해주셔서 오히려 아쉬워요. 전 정말 만만하고 편한 사람인데 출연자나 관계자분들이 절 굉장히 조심스럽게 대하시거든요. 아무 때나 불러도 좋고, 놀려도 좋고, 우스꽝스럽게 만들어도 좋으니 그냥 막 굴려줬으면 좋겠어요. 망가지는 것에 대한 부담은 전혀 없으니까요.


확실히 최근엔 이미지가 많이 달라졌어요. 작년엔 조신하고 단아한 이미지였는데 요즘엔 허당, 푼수 이미지에요.

맞아요. 그런데 최근에 보여드리는 모습이 진짜 제 모습과 가까워요.


그렇다면 작년의 이미지는 무엇이었나요?

작년은 e스포츠 업계에 처음 들어선 해다 보니 딱 제게 주어진 것만 소화하고 보여드린 듯해요. 솔직히 욕을 먹는 게 무서웠던 이유도 크고요. 누가 봐도 문제가 없도록 몸을 많이 사렸죠. 그런데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어요. 방송에서 있는 그대로의 제 모습을 보여드리더라도 절 싫어할 분들보다 좋아해 줄 분들이 더 많을 거라는 확신이 생겼어요. 이젠 정말 하고 싶은 대로 할 거예요.


아나운서님은 원래 어떤 사람이었나요? 학창 시절이 궁금한데요.

완전 내성적인 건 아니었지만, 학창 시절에는 노력형 인싸였어요. 많은 사람이 그러하듯 친구들 사이에서 소외되지 않기 위해 꽤 노력했었죠. 그러다 LCK 아나운서가 되고 나서 지금까지 받지 못했던 많은 관심과 응원을 받게 됐는데요. 언제부턴가 제가 그 관심을 즐기고 있더라고요. 흔히 말하는 '관종'이 되면서 팬분들께 웃음을 드리고 싶은 욕심이 커졌어요.


그래서 SNS 활동도 열심히 하시는 건가요?

맞아요. 처음에 SNS를 시작했을 땐 팔로워가 실제 친구들밖에 없었고 크게 신경도 안 썼어요. 그런데 작년부터 팔로워 수가 급격히 늘어나다 보니 아무래도 신경이 쓰이더라고요. 저는 절대 안 그럴 줄 알았는데 좋아요, 댓글, 팔로워 수 하나하나에 일희일비하고 있어요. 그래도 가장 좋은 건 팬분들이 메시지로 직접 응원해 주시는 점이죠!


관심이 낳은 괴물이셨군요...! 그렇다면 커뮤니티나 유튜브 게시물의 댓글도 자주 체크하시나요?

아뇨. 일단 커뮤니티를 아무것도 안 하고, 유튜브 댓글도 잘 안 봐요. 그래서 주로 지인분들이 전해주는 이야기를 듣거나 아주 가끔 댓글을 통해 반응을 확인하는 편이에요. 그런데 댓글을 확인하다가 종종 있는 악플을 보면 마음이 심란해져요. 특히 외모에 대한 악플에 상처를 많이 받아요. LoL 실력 지적은 맞는 말이니까 수긍이 가능한데...


외모 지적만큼은 도저히 수긍할 수 없다?

그런 건 아니지만... 그렇게 말씀하시면... 사실 맞아요(웃음). LoL 실력은 후천적인 거고 제 노력에 따라 앞으로 발전하고 바뀔 여지가 있지만, 외모는 그냥 제가 타고난 거잖아요. 그 부분에 대해 맹목적으로 비난하는 건 정말 어쩔 수가 없는 거죠.


이제 윤수빈 아나운서한테는 선플만 다는 걸로! 올해 '노페' 정노철 감독, '꼬꼬갓' 고수진 해설과 LCK 코멘터리를 한 시즌씩 진행했는데요. 두 사람의 개성이 엄청 달랐을 것 같아요.

먼저 두 분께 정말 많은 것을 배웠다는 점에 감사드리고 싶어요. 또 LCK 관계자분들께도 잘 챙겨주신 덕에 정말 편하고 재밌게 촬영할 수 있었다는 인사를 전하고 싶네요.

'노페' 감독님은 장난을 좋아하는 꾸러기에요. 그런데 천재기도 해요. 한 단어로 '천재 꾸러기'겠네요. 전혀 생각지 못한 각도에서 게임을 바라보고, 참신한 아이디어를 많이 내요. 정신연령이 어리셔서 그런지 장난치기도 좋고, 저한테 장난도 많이 쳤고요.

'꼬꼬갓' 해설님은 진성 노력파에요. 매번 준비를 엄청나게 많이 해오고, 주어진 상황에 대해 엄청 진지해요. 항상 노력하는 모습이 눈에 보여서 존경스러웠어요. 변수가 생기면 당황하는 모습도 귀여웠고요. 그래도 장난치기는 '노페' 감독님보다 힘든 편이었네요.


그럼 분석 데스크 동료들은 어때요?

일단 '빛돌' 분석 위원님은 아는 게 정말 많고 분석도 엄청 세세하게 해요. 일, 십 단위의 대미지나 영점 몇 초 단위의 작은 디테일까지요. 이런 놓치기 쉬운 부분들을 캐치하고 잘 알려줘서 좋아요. '고릴라'는 그냥 아줌마에요. 찜질방에서 한번 붙잡히면 큰일 나는 타입. '쿠로'도 말을 잘하고 엄청 재밌는데, '고릴라'랑 티격태격하는 걸 옆에서 보고 있으면 진짜 웃겨요. 둘은 제발 유튜브 좀 했으면 좋겠어요.


또 이번 서머 스플릿에선 처음으로 롤파크 무대에서 직접 선수 인터뷰도 진행했죠. 새 도전을 앞두고 떨리진 않았나요?

당연히 엄청 긴장됐죠. 단 한 번이라도 실수했다간 정말 큰일이니까요. 그래서 평소보다 훨씬 더 집중하고 노력했던 기억이 나네요. 그나저나 코로나 악화로 무대 인터뷰를 많이 못 한 게 아쉬워요. 2022 시즌엔 부디 무대 인터뷰를 계속할 수 있길 바라요. 제 목표가 인터뷰를 통해 저 스스로 선수 및 팀 간의 스토리를 만들고 연출하는 거거든요.


최근에 와일드 리프트 챔피언스 코리아(WCK) 분석 데스크도 진행했는데, 기존 LCK와 어떤 점이 가장 달랐나요?

와일드 리프트는 LoL이랑 속도 면에서 비교가 안 돼요. 말 그대로 1초만 눈을 떼면 한타가 끝나 있고 게임이 기울어져 있어요. 그래서 분석 데스크 준비도 엄청 바쁘게 해야 하죠. 와일드 리프트가 LoL보다 깊이는 부족할지 몰라도 속도감 때문에 재미는 충분한 듯해요. 그리고 WCK의 가장 좋은 점은 퇴근이 빠르다는 거죠!


김수현, 이현경, 최시은 아나운서 등은 캐스터로도 활약 중인데요. 혹시 나중에라도 캐스터에 도전해 볼 생각은 없나요?

아직은 자신이 없어요. e스포츠 중계 관련해서 캐스터가 가장 어려운 자리라고 생각해요. 진행 능력과 높은 텐션은 기본에, 게임 지식도 해박해야 하잖아요. 그런데 전 캐스터를 할 수 있을 만큼 에너제틱한 사람도 아니고, 중심을 꽉 잡고 최전방에서 이끌어나가는 역할은 어려울 것 같아요. 선수, 팬분들과 직접 호흡하는 게 더 좋기도 하고요.


그렇군요. 그나저나 지금 썰물 시간이라 목섬으로 가는 길이 열렸네요! 조금 멀긴 하지만 한번 같이 가 봐요.

여긴 풍경이 진짜 예술이네요. 저 혼자 있었으면 몇 시간이고 걸으면서 상념에 빠졌을 텐데... 기자님들이 생각보다 눈치가 없으시네요...


죄송합니다... 지난 인터뷰에선 e스포츠 아나운서로 활동하는 게 정말 재밌고 즐겁다고 했었죠. 1년이 지난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이 없나요?

당연하죠. e스포츠 아나운서가 된 건 인생이 완전히 바뀐 선택이었고, 두말할 것 없이 정말 행복해요. 사실 옛날엔 지적 허영심이 커서 '시사 프로그램 MC나 토론 진행자가 아니면 안 돼!'라는 생각이 있었어요. 그런데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런 자리는 저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자리라고 생각해요. e스포츠 팬분들과 함께 하는 지금이 정말 좋고, 이 생각은 앞으로도 변함없을 거예요.


그렇다면 지난 1년을 돌아봤을 때의 소회는?

부족한 부분도 분명 있었지만 충분히 잘 달려왔다고 생각해요. 사실 작년엔 완전한 무지 상태였기에 주어지는 것만 처리하기에 급급했고, 제가 뭘 잘하고 있는지 뭘 잘못하고 있는지 전혀 몰랐죠. 하지만 올해는 두 시즌의 LCK를 더 보내면서 어느 부분을 보완해야 하는지 스스로 깨달았고, 저 자신에 대해 확신이 더 생겼죠. 이와 함께 내년에는 더 다양한 것을 해보고 싶은 욕심도 생겼고요.


욕심이요?

저는 제게 주어진 상황에 오래 만족하질 못해요. 목표가 생겨서 그걸 달성하면 다음 목표가 생기고, 그걸 달성하면 또 그다음 목표가 생기면서 계속 달려야 직성이 풀리죠. 예를 들어 제가 국회의원이 된다면 대통령이 되고 싶고, 대통령이 된다면 미국 대통령이 되고 싶을걸요? 그런데 요즘엔 이렇게 현재를 전혀 즐기지 못하고 마음만 저 멀리 앞서가는 게 너무 피곤해요. 저 스스로도 그걸 잘 알고 마음을 다잡으려 하는데 쉽지가 않네요. 마음의 평화가 필요한 때예요.


그렇다면 내년 이맘때의 윤수빈은 어떤 모습일까요?

제가 아이유씨 노래를 좋아하는데요. 최근에 '아이와 나의 바다'라는 노래를 들으면서 공감된 게 있었어요. 그 노래가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아물지 않는 일들이 있지'라는 가사로 시작해서 '또다시 헤맬지라도 돌아오는 길을 알아'라는 가사로 끝나거든요.

내년의 제가 1년을 되돌아보면 분명 아쉬운 점이 많이 있겠죠. 그중엔 아물지 않는 상처도 분명 있을 거고요. 그래도 저는 돌고 돌아 결국 올바른 길에 서서 더 많은 걸 이뤘을 거예요. 지금까지 많은 길을 거치고 실패를 뛰어넘어 현재의 제가 됐듯이, 1년 후의 저는 물론 먼 미래의 저도 돌아오는 길을 알고 있을 거니까요.


이제 인터뷰를 마칠 때가 됐네요. 마지막 인사를 전해 주세요!

오랜만에 경치 좋은 곳에 와서 제대로 힐링했네요. 사실 여기 목섬에 못 들어왔으면 엄청 실망할 뻔했어요(웃음). 먼저 일거리를 주시는 LCK 및 팀 관계자분들께 감사 인사 전합니다. 전 언제든 준비되어 있고 편한 사람이니 앞으로도 마음껏 써 주세요. 그리고 팬분들께서는 지금까지의 제 모습 말고도, 앞으로 보여드릴 제 모습도 사랑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언제나, 항상,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