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본에 충실한, 그리고 전에 없이 화려해진 2D 메트로이드의 귀환


메트로이드 시리즈는 닌텐도의 아픈 손가락이다. 마리오, 젤다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닌텐도의 개국공신 중 하나지만, 인지도는 물론이고 흥행 실적 역시 두 게임에 비할 바가 못 된다.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낮은 일본이나 아시아권만의 문제가 아니다. 북미나 유럽 등 서양권에서는 지금도 회자되는 최고의 게임 프랜차이즈 중 하나지만, 흥행을 담보하진 않는다. 시리즈 최고의 성적을 기록한 게 2002년 게임큐브로 출시된 메트로이드 프라임의 284만 장에 불과할 정도다. 처참하다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 닌텐도라는 배경과 메트로배니아라는 장르의 기원을 연 게임이란 점을 생각하면 여러모로 아쉬운 모습이랄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일까. 닌텐도의 퍼스트 파티임에도 유독 찬밥 신세였던 메트로이드 시리즈다. 2010년 메트로이드 아더 M을 출시한 후 메트로이드 프라임 페더레이션 포스가 나오기까지 무려 6년이나 걸렸을 정도. 그나마 메트로이드 프라임 페더레이션 포스가 성공을 거뒀다면 얘기는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30주년 기념작이자 프라임 시리즈를 잇는 중요한 위치임에도 메트로이드 프라임 페더레이션 포스는 외전에 불과한 모습을 보여줬고 이에 팬들의 혹평 속에 흥행과 비평 모두 놓친 게임이 돼버렸다.

그나마 이후 출시된 메트로이드 사무스 리턴즈(이하 사무스 리턴즈)가 체면치레를 했지만, 흥행 면에서는 여전히 아쉬운 모습을 보여줬다. 그러던 가운데 등장한 '메트로이드 드레드'다. 35주년 기념작이자 19년 만에 나오는 메트로이드 퓨전의 공식 후속작. 여러모로 관심이 갈 수밖에 없었다. 메트로이드의 부활을 알리는 타이틀이자 메트로이드 프라임4 출시에 앞서 다시 한 번 메트로이드라는 프랜차이즈를 알리는 중요한 역할을 맡았기 때문이다.

과연 '메트로이드 드레드'는 침체기에 빠진 시리즈의 구원 투수가 될 수 있을까. 그 어느 때보다도 막중한 임무를 맡은 사무스 아란과 '메트로이드 드레드'에 대한 얘기를 이제 해볼까 한다.

게임명: 메트로이드 드레드
장르명: 메트로배니아, 플랫포머
출시일: 2021. 10. 8.
개발사: 닌텐도, 머큐리스팀
서비스: 닌텐도
플랫폼: 닌텐도 스위치

관련 링크: '메트로이드 드레드' 오픈크리틱 페이지


원조는 다르다, 물 흐르듯 이어지는 레벨 디자인


메트로이드 시리즈를 비롯한 메트로배니아 장르의 핵심이 뭔지 묻는다면 아마 열에 아홉은 입을 모아 레벨 디자인이라고 답할 것이다. 레벨 디자인이 중요하지 않은 게임이 어디 있겠느냐마는 다른 장르와 비교할 때 메트로베니아가 가진 레벨 디자인의 무게는 사뭇 다르다. 게임의 정체성 그 자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메트로배니아를 정의하는 레벨 디자인은 어찌 보면 단순하다. 각각의 스테이지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게임 초반에는 갈 수 없는 장소도 나중에 새로운 능력을 얻게 되면 갈 수 있게 되는 식이다. 이러한 능력들이 전투에도 도움이 되는 건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많은 메트로배니아 장르의 게임이 이 단순한 걸 제대로 하지 못해 혹평을 면치 못했다. 탐험의 재미를 살린다는 게 터무니없이 복잡한 형태의 맵으로 표출되는 경우가 부지기수였고 그러다 보니 전투의 재미를 간과하는 경우도 많았다.


▲ 복잡하게만 보이지만 이 모든 맵들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런 면에서 '메트로이드 드레드'는 여러모로 장르의 원조다운 모습을 보여줬다. 각 스테이지는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어서 탐험의 재미를 안겨줬을 뿐만 아니라 게임을 진행할수록 점점 속도감이 더해져 스테이지를 왔다갔다하는 데에서 오는 지루함을 덜어줬고 전투에 이르기까지 절묘하게 균형을 이뤘다.

실제로 '메트로이드 드레드'는 가야 할 길을 명확히 제시하지 않는다. 게임 내에서 아담이 사무스 아란에게 하는 조언 역시 모선으로 돌아오라거나 능력을 얻지 못하면 열기나 냉기에 대미지를 입는다는 것 정도. 막힌 문을 열기 위해선 어떤 능력을 얻어야 하는지는 물론이고 이 길을 가다보면 어디로 이어지는지, 어떤 적을 잡아야 하는지도 알 수 없다. 사실상 플레이어에게 제공되는 정보는 한없이 0에 가깝다.


그럼에도 플레이어는 자연스럽게 개발자가 의도한 대로 걸음을 옮긴다. 제대로 가는 건가 의문이 들 때도 있지만, 아니 자주 그런 의문이 들지만 그럴 때가 되면 막혔던 곳을 갈 수 있는 능력을 얻게 되고 좀 더 진행하다 보면 이전 지역으로 가는 이동 수단을 발견하게 된다. 스테이지에 숨겨진 아이템을 전부 찾는 게 목적이 아니라면 일부러 맵을 열 필요도 없을 정도다.

이러한 완성도는 장점인 동시에 단점이 되기도 한다. 각각의 요소들이 워낙 튼튼하게 맞물렸기에 새로운 걸 더하거나 빼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이미 그 자체가 메트로이드를 구성하는 하나의 정체성이 된 셈이다. 그러나 '메트로이드 드레드'는 달랐다. 새롭게 등장하는 E.M.M.I.와의 추격전과 그로 인한 긴장감마저도 완벽하게 게임에 녹여냈다.


게임 초반부터 후반에 이르기까지 E.M.M.I.존에서 지겹도록 사무스 아란을 쫓는 E.M.M.I.는 시종일관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E.M.M.I.를 파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센트럴 유닛을 처치하고 오메가 캐논을 얻는 것뿐이다. 오메가 캐논이 없다면 E.M.M.I.존에 들어선 순간부터 최우선 순위는 E.M.M.I.를 피해 도망치는 게 된다. 얼핏 이러한 추격전은 탐험이라는 메트로배니아의 핵심과 상충하는 요소로 여겨질 수도 있다.

E.M.M.I.존에 들어온 이상 느긋하게 맵을 돌아볼 여유 따윈 없다. 넓은 인식 범위를 지닌 E.M.M.I.는 금세 사무스 아란의 위치를 파악하고 달려든다. 붙잡히면 2번의 카운터 기회가 주어지지만, 불규칙한 타이밍에 반응시간도 짧아서 카운터로 살아남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정신없이 E.M.M.I.를 피해 다녀야 하는 이유다.


그러나 이게 게임의 흐름을 방해하는 요소가 되진 않는다. 추격전은 길어야 1~2분에 불과하기에 분위기를 환기하는 정도에 불과하며, 자연스럽게 가야 할 길로 유도하기 때문이다. 잘못해서 당장에는 갈 수 없는 막다른 길로 빠지는 경우를 제외하면 E.M.M.I.와의 추격전으로 인해 흐름이 끊기는 경우는 거의 없다. E.M.M.I.와의 추격전을 따로 떼어낸 게 아닌 메트로배니아의 정체성에 녹여낸 것으로 '메트로이드 드레드'가 얼마나 레벨 디자인에 공을 들였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난이도와 연출 모두 잡은 역대급 보스전


레벨 디자인 못지않게 공들인 부분은 또 있다. 전투 시스템과 매력적인 보스들의 존재다. '메트로이드 드레드'의 전투 시스템은 큰 틀에서 본다면 사무스 리턴즈를 빼다 박았다. 사무스 리턴즈를 개발한 머큐리스팀에서 개발했으니 이상할 것도 없다. 하지만 그게 곧 '메트로이드 드레드'의 전투 시스템이 사무스 리턴즈와 같다는 걸 의미하진 않는다. 어디까지나 사무스 리턴즈의 시스템을 베이스로 했을 뿐, '메트로이드 드레드'에 어울리게 많은 변화를 거쳤다.

대표적인 변화로는 멜레이 카운터(Melee Counter)를 들 수 있다. 사무스 리턴즈에서 새롭게 추가된 멜레이 카운터는 이름 그대로 적의 공격을 튕겨내는 반격기다. 타이밍만 잘 맞추면 적을 무방비로 상태로 만들어 손쉽게 쓰러뜨릴 수 있지만, 이동하거나 공중에서는 쓸 수 없다는 단점이 있었다.


'메트로이드 드레드'는 그랬던 멜레이 카운터의 단점을 개선했다. 이동하거나 공중에서도 자유롭게 쓸 수 있도록 했으며, 여기에 속도감을 더함으로써 전투의 템포를 끌어올렸다. 사무스 리턴즈에서는 안 쓰자니 좋고 쓰자니 니가 와 전법을 쓸 수밖에 없던 것에서 이제는 안 오면 내가 간다라는 느낌으로 적극적인 전투를 펼칠 수 있도록 개선됐다.

이러한 멜레이 카운터가 더욱 빛을 발하는 순간이 있다. 바로 보스전이다. '메트로이드 드레드'의 보스전은 가히 시리즈 최고라고 할 수 있다. 저마다의 개성으로 무장한 보스들이 등장하며, 다양한 패턴으로 플레이어와 사무스 아란을 몰아붙인다. 한 대라도 맞으면 체력이 왕창 깎이는 건 물론이고 패턴을 모르면 순식간에 죽을 수도 있다. 멜레이 카운터를 쓰지 않는다면 난이도는 배로 올라갈 정도. 다소 단조로웠던 메트로이드 시리즈의 전통적인 보스전과 달리 패턴을 파악해야 하는 동시에 플레이어의 실력 또한 요구하는 식으로 바뀐 모습이다.


그렇다고 도전을 주저할 정도로 어렵다거나 한 건 아니니 걱정하지 말길 바란다. 보스들의 패턴은 정직하다. 처음에는 패턴이 눈에 익지 않아서, 강력한 보스의 공격에 당황해서 허둥대다 죽기 일쑤지만 도전을 반복하다 보면 서서히 눈에 익게 된다. 그렇게 되면 남은 건 플레이어의 실력뿐이다. 당황하지만 않는다면 얼마든지 잡을 수 있다. 실수로 보스의 공격에 맞아서 체력이 좀 줄었어도 걱정할 건 없다. 보스가 날린 투사체를 착실히 부수거나 카운터를 노려서 체력과 미사일을 회복하면 된다. 플레이어의 실력을 요하는 편이지만, 터무니없이 어렵다거나 한 건 아니다. 입맛을 돋우는 그런 매운맛이다.

다양한 패턴과 연출을 통해 역대급 보스전을 선보인 '메트로이드 드레드'지만, 아쉬운 점이 없는 건 아니다. 대표적인 아쉬움으로는 보스전에서의 스킬 필요성을 들 수 있다. 게임을 진행하면서 사무스 아란은 다양한 능력을 얻게 된다. 하지만 능력의 사용처는 거의 정해져있다. 대부분 스테이지를 지나고 퍼즐을 푸는 데에나 쓰이지 보스전에서는 거의 쓰이지 않는다. 그나마 쓰이는 능력이라곤 스페이스 점프와 플래시 시프트 정도. 능력을 얻게 되면 그걸 활용해 보스를 공략하는 다른 게임들과 비교하면 한정적인 '메트로이드 드레드'의 능력들은 보스전에서 여러모로 아쉬움을 남겼다.





드레드가 쏘아 올린 메트로이드 부활의 신호탄


결론을 내리자면 '메트로이드 드레드'는 메트로이드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 올린 타이틀이라고 할 수 있다. 메트로이드 프라임 삼부작을 끝으로 부진의 늪에 빠져버린 메트로이드 시리즈는 오래도록 침체기에 빠졌었다. 메트로이드 아더 M, 메트로이드 프라임 페더레이션 포스, 사무스 리턴즈에 이르기까지 침체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했으나 모두 무위에 그쳤다. 그랬던 시리즈의 부진을 '메트로이드 드레드'가 마침내 끊었다.

시리즈의 정체성이랄 수 있는 정교한 레벨 디자인은 더없이 훌륭하고 새롭게 추가된 E.M.M.I.와의 추격전마저도 완벽하게 녹여냈다. 도전 욕구를 자극하는 보스전은 시리즈 역대급으로 굳이 더 말할 것도 없다. 2D 메트로이드, 3D 메트로이드를 떠나서 시리즈 최고의 완성도를 갖췄다고 봐도 무방하다.

물론, 게이머들에게 있어선 시리즈의 부진을 끊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보다 중요한 건 게임 그 자체의 재미다. 그런 의미에서 살만하냐고 묻는다면 '무조건 사라'고 답하겠다. 메트로이드 시리즈의 오랜 팬이라면 만족할 수밖에 없고 시리즈의 팬이 아니더라도 만족할만한 재미를 선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