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게이머의 멘탈을 심연의 끝으로 날려버렸던 '다키스트 던전'의 후속작이 얼리 엑세스로 출시됐습니다.

다크소울 시리즈를 포함한 온갖 고난이도의 게임 등을 즐겼던 게이머로서 '다키스트 던전'도 역시 해봤었는데요. 뭐랄까, 괴롭히는 부분이 다르달까요. 다크소울 시리즈가 육체적으로 힘들게 한다면 '다키스트 던전'은 정신적으로 힘들게 했던 기억이 납니다. 애지중지 키운 파티가 적들의 운빨 주사위 한 번에 터졌을 때의 괴로움은... PTSD가 올 것 같으니 과거 회상은 여기까지 하도록 하죠.

아무튼 짜증은 났지만, 한편으론 재미있게 즐겼고 또 인디 게임 중에서 손에 꼽을 정도의 수작이니 후속작 역시 큰 관심을 두고 있었습니다. 오매불망 출시만을 기다렸기에 얼리 엑세스 출시 소식을 접하자마자 바로 구매 후 게임을 해봤죠. 참고로 '다키스트 던전 2'는 얼리 엑세스 기간 동안 에픽 게임즈 독점으로 판매가 이뤄지고 이후 정식 출시 때 플랫폼 제한이 해제될 예정입니다.

기사 작성일 기준 한국 에픽 스토어에서는 아직 심의 통과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해외 스토어에서 구매를 해야 했습니다. 에픽 게임즈는 자체 심의로 진행되는 만큼 출시되기 전 미리 이를 해결해야 했을 텐데 출시 날이 넘어서도 이런 모습을 보인다는 게 아쉽게 느껴지긴 했습니다.

시작부터 다소 삐걱거렸지만 게임 자체는 이런 수고를 들여서까지 해볼 만할 정도로 재미있었습니다. 전작과 비교하면 확실히 후속작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많은 부분이 달라졌죠. 그러면서 전작과 공유하는 핵심 가치관은 여전히 살아있다고 느껴졌습니다.


먼저, 전투 외적인 변화를 살펴보겠습니다. 처음 게임을 시작하면 제일 먼저 3D로 탈바꿈한 그래픽이 눈에 띕니다. 기존 2D에서 3D로 달라지면서 캐릭터들의 대기 모션, 공격 모션 등에 생동감이 깃들었어요. 움직이는 모습에 이질감이 들지 않고 다키스트 던전 특유의 음습함을 더해 굉장히 자연스러운 모습이었습니다. 세세한 부분에서 신경을 썼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죠.

플레이 진행 방식도 크게 달라졌습니다. 전작에서 플레이어는 저주받은 영지를 관리하는 영주로서 영지 개발과 용병 관리 등을 진행하면서 주기적으로 던전으로 모험을 떠났었습니다. 크게 보면 게임의 흐름은 던전 탐험 - 마을 복귀 - 스트레스 관리 이후 다시 던전 탐험의 반복이었죠. 따라서 어느 정도 인프라가 갖춰진 중반부에 다다르면 운영 방식이 반복돼 게임이 루즈해진다는 단점이 있었습니다.

후속작은 영지 관리에서 오는 루즈함을 탈피하고자 대대적인 변화가 이뤄졌는데요. 이제 플레이어는 작은 영지를 다스리는 영주가 아닌 세계를 탐험하는 모험가가 되어 마차를 타고 떠납니다. 크게 보면 4명의 파티원 선택 - 마차 타고 탐험 - 여관 입장 - 탐험 - 여관 입장을 죽기 전 혹은 보스를 처치하기 전까지 반복하게 됩니다.


전작이 한 판을 한 호흡에 길게 끌고 갔다면 '다키스트 던전 2'는 로그라이트처럼 짧게 한 호흡으로 게임을 진행한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개발자가 밝히길 한 판의 플레이 타임은 대략 4~5시간으로 잡고 있으며, 모든 콘텐츠를 해금하는 데 필요한 시간은 전작과 동일하게 맞출 계획이라고 합니다. 얼리 엑세스에서는 엑트 1까지밖에 콘텐츠가 준비되어 있지 않았는데요. 첫 마을과 두 번째 마을까지 대략 1시간 좀 넘게 걸린 것으로 보아 총 플레이 타임이 짧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영지 관리가 사라지고 매 판이 초기화되는 로그라이트식 모험으로 바뀌면서 게임의 플레이 양상은 완벽히 달라졌습니다. 이전에는 탐험에서 애지중지 키운 용병이 죽기라도 하면 내 멘탈이 박살 나는 것을 경험했지만, 이젠 수틀리면 다시 시작하면 된다는 마음가짐을 갖게 됐죠. 구조적인 변화 때문에 캐릭터를 향한 애착이 조금 줄어든 셈입니다.

반대로 수틀리기 전까지는 최대한 파티를 길게 끌고 가려는 마음가짐이 생겼습니다. 어쨌든 첫 4인의 용병과 끝까지 가야 하니 최대한 보살펴주면서 끌고 가려는 것이죠. 중간에 새로운 용병을 합류시킬 수가 없으니 특정 캐릭터에 무한한 애정을 주기보단 파티 전체에 애정이 생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편, 교체 없는 4인 파티 체제로 변화하면서 파티원끼리 감정을 교류하는 새로운 시스템이 추가됐습니다. 파티원끼리 신뢰를 쌓는 느낌인데 전작에서 캐릭터마다 고유의 성향이 있던 것의 변형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서로의 감정은 다양한 상황에서 변화합니다. 버프나 힐을 주면 고맙다면서 신뢰도가 오를 수 있고 적에게 마지막 공격을 하면 왜 나대느냐면서 기분 나빠할 수도 있죠.

감정 시스템은 전투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데요. 가령 A와 B가 서로 신뢰하는 관계라면 전투 중 서로 격려해 버프를 걸거나 혹은 적의 공격 때문에 자리 배치가 바뀔 때 이를 저지하는 등이 가능합니다.

반대로 사이가 좋지 않은 관계라면 욕을 해서 디버프를 걸고 버프를 거절하기도 합니다. 가끔은 아군이 적의 공격에 맞아 빈사 상태가 되면 좋다면서 스트레스 수치가 떨어지기도 하죠. 세상이 멸망할 위기에 처했는데도 사소한 걸로 말다툼하고 치고받고 싸우고 있으니 보는 입장에선 환장할 노릇입니다.


▲ 사이가 최악으로 치닫으면 사사건건 시비를 걸면서 사기를 떨어트립니다

여기에 전작과 같은 스트레스 시스템도 존재하니 파티원끼리 쌓인 감정을 풀어주고 스트레스 수치 관리하는 등 전투 외에 다가오는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차라리 전작에선 주기적으로 여관에서 성향별로 스트레스 수치를 낮출 수 있고 여차하면 성향을 지울 수라도 있었는데 이번에는 통제할 수단이 적어 그저 짜증만 날 뿐이죠. 세계를 구할 영웅이란 사람들이 내 막타 뺏어서 삐쳤다고 버프도 안 받고 하면 누가 좋아하겠습니까.

신뢰 수치를 쌓기는 어렵지만 깎기는 너무 쉽다는 점에 매력적인 시스템보단 그냥 짜증만 나는 시스템으로 다가왔습니다. 전작처럼 어느 정도 통제할 수단을 많이 남겨둬 이 부분도 전략적으로 쓸 수 있길 바라봅니다.


'다키스트 던전 2'는 마차를 타고 여러 갈래의 길을 따라 달리는 방식으로 게임이 진행됩니다. 마차는 플레이어가 조작할 수 있으며, 갈림길마다 전투, 보상, 상인 등의 메인 보상이 존재해 상황에 따라 선택해서 갈 수 있죠. '죽은 신들의 저주', '슬레이 더 스파이어' 등의 로그라이트 게임과 비슷한 던전 탐험 구조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전작에서 게임의 난이도를 조절했던 횃불 역시 새로운 방식으로 등장했습니다. 이전에는 횃불 아이템을 소모해서 불의 크기를 키울 수 있었지만, 이제 횃불 아이템 대신 선택지에 따라 횃불을 키우거나 혹은 작아질 수가 있습니다.

한편, 길을 따라 다니다 보면 다양한 이벤트와 마주치게 되는데요. 모든 선택지는 4명의 용병의 성향에 따라 선택지가 달라지며, 그 중 하나를 선택할 경우 해당 선택에 동조하는 파티원과는 사이가 좋아지고 반대라면 사이가 나빠질 수 있습니다. 가령, 위험에 노출된 피난민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줄 것인지 혹은 그냥 무시할 것인지 등의 선택지 중 도움의 손길을 준다를 고르면 무시한다는 의견을 낸 용병은 심리적으로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죠.

전투 이벤트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지막 보스와 길목에서 대기하고 있는 적들과의 전투를 제외한다면 모든 전투는 선택지에 따라 회피할 수 있습니다. 대신 공격을 피하면 횃불 수치가 크게 깎이니 모든 공격을 피하기보단 상황에 따라 유동적으로 선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 어... 저희 그만 갈게요. 안녕히 계세요

다음은 달라진 전투 시스템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전작의 전투는 TRPG처럼 주사위를 굴리는 전투 방식이었습니다. 공격을 맞출 확률과 크리티컬이 터질 확률은 모두 주사위에 결정됐죠. 이 확률을 최대한 올리기 위해 아군에겐 버프를 걸고 적에겐 디버프를 거는 것이 기본적인 전투 운용이었습니다. 난이도가 올라갈수록 적의 회피 수치가 엄청나므로 확정 공격을 때릴 수 있는 조합이 인기를 끌기도 했죠.

'다키스트 던전 2'는 전작의 불확실한 전투 시스템을 과감하게 버리고 토큰 시스템을 통해 직관적으로 바꿨습니다. 토큰 시스템은 캐릭터에게 토큰 형태의 상태 이상을 부여해주는 버프/ 디버프 상태창의 일종입니다. 가령, 회피 토큰을 보유하고 있다면 적의 공격을 피할 수 있죠.

토큰 시스템이 추가되면서 크게 달라진 점이라면 이제 모든 공격은 빗나가지 않습니다. 적이든 아군이든 특정 토큰이 없다면 모든 공격은 100%로 적중해요. 언제 어떻게 벌어질지 알 수 없는 불확실한 확률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확정적으로 상태를 부여할 수 있는 토큰으로 전장을 통제할 수 있게 됐죠. 물론 회피, 빗나감 등의 특정 토큰은 효과에 따라 50%, 75%의 확률이 있긴 하지만, 토큰을 보유하고 있는 상황에서만 적용되니 크게 불편하거나 짜증 나진 않았습니다.

▲ 27종의 다양한 효과를 가진 토큰

▲ 감나빗 없는 해피 전투

종합하자면 '다키스트 던전 2'는 전체적으로 영지 관리에서 오는 피로도를 줄이고 모험 요소를 강화하면서 전투에 힘을 준 느낌이었습니다. 3D 그래픽으로 변한 덕분에 전투의 보는 맛이 한층 발전했고 확률에 의존하는 운빨 전투가 아니라 토큰으로 확실하게 상황을 제어할 수 있어 전투가 더욱 전략적으로 느껴지기도 했죠.

모험 중간에 모든 파티원이 죽고 마차가 전복되더라도 로그라이트처럼 경험치가 계승된다는 점도 괜찮았습니다. 게임을 반복할수록 계정 레벨이 올라 다양한 아이템과 캐릭터가 해금 되고 캐릭터의 스킬이 많아져 반복 플레이의 동기부여가 됐습니다.

물론 모든 것이 완벽하게 좋아졌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전작의 영지 관리를 별로 안 좋아해서 후속작의 마차 탐험이 더 재미있긴 했지만, 전투 중 캐릭터를 재정비할 수 있는 수단이 너무 적고 캐릭터들의 스트레스, 신뢰를 관리하기가 힘들어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더 커졌습니다. 4명의 찡찡이들을 데리고 지구를 지키려니 그냥 다 망해버리자는 생각이 샘솟더군요. 토큰식 전투는 지금도 충분히 재미있었으니 그 외에 변경된 부분을 게이머가 이해할 수 있도록 바꿔주는 것이 필요해 보입니다.

▲ 분기마다 나타나는 여관은 전작의 영지와 비슷한 느낌입니다

▲ 진짜 적은... 내부에...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