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놓고 들이대면 어쩌자고

FPS 게임을 즐겨본 게이머라면 발소리를 죽이는 걷기 키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다. 상대방의 위치를 모를 때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유일한 단서는 발소리 혹은 격발음인데 대부분의 FPS 게임은 걷기를 사용하면 발소리가 아예 나지 않거나 아주 미세하게 새어 나가기에 양측 모두 적군의 위치 정보를 얻기까지 섣부르게 움직일 수 없다.

그렇다고 무한정 시간을 끌 수도 없기에 주어진 시간 내에 공격팀은 거점을 포위하고 진입한다. 수비팀은 보통 공격 거점 A, B에서 팀 인원을 쪼개어 거점을 막아야 하므로 공격팀의 행선지를 미리 잡아내는 것도 중요하다. 또한, 승패가 갈리기 전 1대다 혹은 1대1 상황에서 적 위치를 이미 알고 있다면 대강 예측을 통해 조준을 마치고 사격만 하면 되기에 교전 승률이 올라가며, 적의 후미를 찌르는 포지션을 잡고 있을 경우 도저히 질 수가 없는 그림이 나온다.

비단 FPS 게임이 아니더라도 배틀그라운드, 포트나이트와 같은 3인칭 슈팅 게임, TPS(Third-Person Shooter) 장르는 거점 공격, 폭파, 수비보다는 생존이 주 목적이기에 소리로 인한 정보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된다. 따라서 미세하고 정확한 적 위치를 분간하기 위한 게이밍 헤드셋은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으며, 투자할 가치가 충분히 있다.

그러다 문득 든 생각. 최고의 실력을 갖춘 슈팅 장르 프로게이머들은 어떤 게이밍 헤드셋을 쓸까? 일반인이 쓴 헤드셋의 리뷰나 유튜버들이 추천하는 신제품들은 인터넷에 검색만 해도 쉽게 찾을 수 있지만 최상위 유저의 헤드셋 정보는 찾기가 쉽지 않다.

설령 일반인에게 신제품을 추천받는다 하더라도 무언가 자질구레한 기능이 포함되었고 꼬부랑 영어로 표기된 신기술들이 난무해 아리까리 할 때가 많다. 그럴 때의 극약처방은 명의가 먹는 약이다. 기자도 일반인인지라 왈왈왈 설명을 늘어놔도 그님티(그래서 님 티어가?)를 당해버릴 확률이 높기 때문에 신뢰를 얹어줌과 동시에 "이게 맞나?"와 같은 불확신을 한 방에 날려줄 쐐기. 프로게이머조차 인정하고 현재 그들이 사용 중인 제품이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치열한 프로씬에서 구른 짬이 몇 년차인데, 새로운 도전보다 검증된 안전빵이 나을 수 있지.

▲ 잘 찾아보면 한국 선수도 있다

따라서 이번 시간에는, 슈팅 장르 프로게이머들이 사용하는 헤드셋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고자 한다. 정보 참고는 E스포츠 프로들의 설정값과 장비 정보를 제공하는 사이트인 prosettings.net을 통해 프로게이머 혹은 스트리머들이 어떤 헤드셋을 쓰는지 조사했다.

그들이 사용하는 장비 이외에도, 인게임 설정값, 하드웨어 장비 세팅 등 방대한 양의 정보를 제공하며, 유저들이 실시간으로 댓글을 달아 수정 요청을 하고 관리자가 확인을 한 이후에 업데이트를 하기 때문에 꽤 신빙성이 있고 업데이트 주기가 짧아 참고하기에 정보를 찾는 유저에게 유익한 사이트이다.

행여 관심이 있을 경우 하단에 관련 제품 인벤 리뷰 URL을 걸어 놓았으니 더 많은 정보를 얻기 바라면서 시작하겠다.



■ FPS 프로게이머 600인의 선택은?


이번에 선정된 게임은 카운터 스트라이크: 글로벌 오펜시브, 오버워치, 발로란트, 배틀그라운드로 총 4개이다. 위 게임에 포함된 프로게이머의 수는 약 600명이며, 현 프로게이머의 비율은 약 90%이고 나머지는 프로게이머 생활을 중단하고 스트리머로 전향하여 활동하고 있으니 참고 정도만 하기 바란다.

프로게이머들이 애용하는 브랜드는 하이퍼엑스, 로지텍, 젠하이저, 스틸시리즈, 보스이며, 이외에 아스트로, 레이저, 커세어 등이 그 인기를 이었다. 사실 조사 이전에는 적게는 3개, 많이 쳐줘봐야 5개로 선택지가 좁혀질 줄 알았는데 게임별로 다양하고 특색 있는 헤드셋을 쓴다길래 적지 않게 놀랐다. 이 중 프로씬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게이밍 헤드셋 5종으로 추려 보았다.

▲ 표본은 충분해




1. 하이퍼X Cloud ll
노병은 결코 죽지 않는다



HyperX Cloud ll(이하 하이퍼엑스 클라우드2)는 2015년에 출시한 제품이지만 '혜자'스러운 가격대와 사운드 플레이에 최적화된 음질을 갖췄다는 점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출시 이후 6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도 수요가 꾸준한 것을 보면 과연 게이밍 헤드셋 영역에서 최고를 달리는 베스트셀러가 아닐까 싶다.

본 제품은 7.1 채널 가상 서라운드 사운드를 포함하고 53mm 대형 드라이버로 향상된 베이스 음역대를 갖췄다. 때문에 먼 거리의 적군 위치도 정확하게 파악이 가능하다. 저음역대의 발소리, 격발음, 폭발음 특성상 전방향으로 퍼지는 진동을 표현하기에는 드라이버가 클수록 유리하다. 보통 헤드셋 드라이버 크기는 30~50mm가 일반적인데, 하이퍼엑스 클라우드2는 그 이상인 것을 보면 저음역 표현에 유용하다고 할 수 있겠다.

요즘 프리미엄 헤드셋의 대세라고 할 수 있는 탈착식 마이크가 탑재되었다. 또한, 마이크 입력 시 잡음을 제거하고 목소리를 뚜렷하게 감지하는 노이즈 캔슬링이 적용된 건 덤이다.

또한, 출시 당시 무선 헤드셋이 상용화되지 않았지만 현재는 단점들을 모두 개선하여 일반인, 프로 할 것 없이 유무선 헤드셋을 사용한다. 하이퍼엑스 클라우드2 역시 유선 모델의 인기를 힘입어 무선 모델을 21년 4월에 출시했다. 케이블 간섭 없이 무선 헤드셋을 고집하는 유저들의 입맛을 맞춘 제품이라고 생각된다.



2. 로지텍 G PRO X
최고의 EQ 이퀄라이저 설정



이어서 프로게이머들의 다음 픽은 Logitech G PRO X다. G시리즈 출범 이래로 최근 e스포츠 씬에서 가장 빈번하게 볼 수 있는 헤드셋이지 않을까 싶다.

7.1 서라운드 사운드를 지원하는 DTS X 2.0와 블루보이스(BLUE VO!CE) 기술이 탑재된 헤드셋이다. DTS X 2.0 버전은 향상된 베이스 렌더링, 선명한 오디오로 근원거리 오디오 구분이 확실하다. 블루보이스 마이크는 외부 노이즈를 줄이고 또렷한 음성을 전달하는 기능이다. 2018년 로지텍이 마이크 제조사인 블루 마이크로폰(Blue Microphones)을 인수했다는 점을 미루어 보았을 때, 소프트웨어 연동에서 비롯되는 효과를 극대화했다고 본다.

RGB LED가 없는 클래식을 강조한듯한 디자인을 갖추고 있으며, 호불호가 크게 갈리지 않는 검정색에 은색 금속 원형 디스크가 자리했다. 인조 가죽 재질의 소프트 메모리폼 이어패드가 기본적으로 장착되어 있고 천 재질의 이어패드 한 쌍이 동봉되었다. 입맛에 따라 사용할 수 있으나 개인적으로 추천하는 건 차폐성이 뛰어난 가죽이다.

또한, 하이브리드 메쉬 PRO-G 50mm 드라이버를 통해 이 제품 역시 저음역 출력에 유리하다. 저음을 더 강조해서 이점을 가져가고 싶다면 소프트웨어 설정으로 더 깊은 베이스 사운드를 만끽할 수 있다. 아니면 소프트웨어 내에서 지원하는 프로게이머 프리셋을 활용해 최적의 설정값을 단번에 찾거나.



3. EPOS 젠하이저 GAME ZERO
아니, 게이밍엔 어쩐 일이십니까 형님?



헤드폰을 통틀어 음향기기 영역에서 끝판왕이라고 불리우는 젠하이저 제품이다. 젠하이저가 오픈형 다이나믹 드라이버를 필두로 헤드폰과 이어폰에 주력하는 이유에서 "형이 여기서 왜 나와?"라며 의문을 제기했지만 브랜드 앞에 EPOS를 붙여 저음역을 강조한 게이밍 제품을 따로 내기에 기자 머리 위에 뜬 물음표는 금세 쏙 들어갔다.

사실 젠하이저 만으로도 매니아 층이 확실하고 프리미엄 오디오 브랜드로 정평이 나있어 게이밍 분야에 어필하기 힘들겠거니와 진심이 아닌 줄 알았는데 막상 조사해 보니까 이포스가 떡하니 버티고 있더라. 아무튼 게임 제로는 젠하이저와 디만트의 노하우가 들어간 제품으로 최고의 명성답게 높은 퀄리티의 헤드셋이다. 이 부분에 있어 어느 정도 프리미엄이 붙은 탓인지 가격도 조금 센 편이다.

게임 제로와 동일 라인업 제품군인 게임 원(GAME ONE)은 오픈형인데 반해, 제로는 밀폐형으로 저역이 새어나갈 일도 없고 낮은 음량으로도 저역 울림 보장이 확실한 편이다. 또한, 40mm 드라이버와 젠하이저 트랜스듀서 기술이 접목되어 왜곡 없이 정확한 사운드를 표현한다. 덕분에 10Hz부터 26,000Hz까지 FPS 장르에서 필수 요소인 낮은 영역의 주파수를 갖고 있다. 사람의 가청주파수가 20Hz부터 20,000Hz인데 그 이상의 퍼포먼스를 지녔으니 범위 내에서 여유있게 사용이 가능하다.

2014년 출시로 연식이 있는 녀석이라 그런지 외형은 요즘 트렌드와 거리가 멀다. 헤드셋 자체 무게는 312g으로 다소 무거운 편에 속하며, 귀를 전부 덮는 XXL 사이즈 이어패드가 적용되어 푹신함을 귓바퀴에서 느끼기엔 힘들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사용자의 귀가 크건 작건 차폐성은 뛰어나다고 볼 수 있겠다.

휴대성은 젠하이저만의 독특한 감성이 짙게 묻었다. 헤드밴드와 유닛 사이에 위치한 연결부가 최대 90도까지 회전할 수 있어 헤드셋을 아예 접을 수도 있고 보관 이동에 용이한 하드케이스를 제공하기 때문에 앞에서 소개했던 헤드셋에서는 볼 수 없는 감성의 소유자다.



4. 스틸시리즈 Arctis Pro
Hi-Res 인증 40kHz! 표준 헤드셋의 2배라고



스틸시리즈 게이밍 헤드셋 역사는 15년이 넘을 정도로 깊다. H시리즈, 플럭스(Flux)에 이어 시베리아(Siberia) 시리즈까지. 가장 앞의 두 녀석은 이른 시기부터 단종되었지만 시베리아는 비교적 최근까지 인기를 구가하던 제품군이다. 현재는 아크티스(Arctis)가 출범하며 앞서 말한 모든 시리즈들의 계보를 이어가고 있다.

스틸시리즈 Arctis Pro(이하 아크티스 프로) 는 게이밍 헤드셋 최초로 하이레스(Hi-Res) 오디오의 인증을 받은 제품이다. 이 말인즉슨, 무손실 WAV와 FLAC, DSD 고품질 파일을 경험할 수 있으며, 별도의 다운 샘플링이 없어도 96kHz/24bit를 보장한다는 말이다.

또한, 40mm의 고밀도 네오디뮴 자석이 장착된 고해상도 스피커 드라이버를 사용하여 대부분의 표준 헤드셋(20,000Hz)의 2배에 달하는 재생 대역폭(40,000Hz)을 발휘할 수 있다. 121dB의 다이내믹 레인지와 -95dB의 전고조파 왜율과 노이즈('Total Harmonic Distortion Plus Noise' (THD+N))는 보다 사실적인 음향을 제공해준다.

동일 제품군으로 가격대가 나뉜다. 기본적인 유선 버전과 하이파이(High Fidelity) USB DAC+ 앰프 구성, 트랜스미터 베이스 스테이션(Transmitter Base Station)으로 구성된 무선 버전도 있으니 알아두면 좋다. 외부 악세서리의 장점은 PC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을 통해 설정을 만져줄 필요 없이 EQ 및 서라운드 사운드, 게임 사운드, 챗사운드 볼륨 조절을 원터치로 조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헤드밴드에 쿠션을 넣는 일반적인 헤드셋과 달리 스포티함이 가미된 요소를 집어넣은 흔적이 엿보인다. 쭉 당기면 팽팽해지는 고무끈 형식의 헤드밴드가 적용됐다. 신축성이 높기에 무게를 분산하기 용이한데, 머리가 클수록 헤드밴드 장력이 정수리 쪽으로 가해지는 게 느껴진다고 한다. 참고로 기자는 베레모 57호 착용자로 장시간 아크티스 프로 사용에 아무 문제를 못 느꼈었다.



5. BOSE QC20
뭐? 다시아 엔진 소리가 그렇게 잘 들린다고?



마지막으로, 본 특집 기사가 슈팅 장르 e스포츠 프로들이 쓰는 헤드셋 특집이라 넣어야 하나 고민을 유독 많이 했던 제품이다. 인기의 기원은 해당 제품이 노이즈 캔슬링을 최초로 지원하는 이어폰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보스 특유의 중저음과 외부 사운드카드의 조합으로 배틀그라운드에 특히 어울리는 제품으로 현 배틀그라운드 프로게이머들의 50% 이상이 Bose QC20(이하 QC20)을 사용하기에 뽑았다.

배틀그라운드 게임 장르 특성상 생존이 곧 승리이며, 방향, 거리에 따라 적군의 정보를 습득할 수 있어 사운드에 더 민감한 편이다. 그렇기에 외부 사운드카드를 통한 EQ 설정이 주를 이루며, 총소리는 줄이고 발소리를 키우는 설정, 주파수 별 EQ 설정으로 자신만의 최적 세팅을 찾을 때 비로소 승률이 올라간다고 할 수 있다.

QC20은 백미는 노이즈 캔슬링이다. 지금이야 에어팟 프로처럼 노캔을 지원하는 블루투스 이어폰들이 인기를 끌고 있지만 보스 특유의 중저음역 노이즈캔슬링은 역시 슈팅게임에 유리할 수밖에 없다. 컨트롤 모듈을 통해 노이즈 캔슬링을 끄고 킬 수 있으며 게임 도중 충전이 가능하다는 점과 완충 시 16시간 이용 가능이라는 점에서 게이밍 영역만큼은 한 수 우위인 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