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탠드얼론 VR 헤드셋 '오큘러스 퀘스트2'의 흥행 이후 줄곧 잠잠했던 VR 업계에서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다. 메타(Meta)로 사명을 변경한 페이스북을 필두로, VR 업계에서 내로라하는 기업들이 저마다 벼려왔던 신무기를 앞세워 '2차 VR 패권 전쟁'을 준비하고 있는 모양새다.

2020년 정식 출시 이후 줄곧 업계를 평정하다시피 하고 있는 오큘러스 퀘스트2에 맞서 시장에 출사표를 던진 이들이 선보인 VR 헤드셋과 시장 전략은 무엇인지, 또 업계 패자의 자리를 계속 보전하기 위해 페이스북(現 메타)이 준비한 대책은 무엇인지 알기 쉽게 정리해보았다.



HTC VIVE Flow - 더 작고, 가볍고, 편리하게 만나는 VR 콘텐츠를 꿈꾸다


첫 번째 주자는 한때 오큘러스와 함께 VR 시장을 양분했던 HTC의 신형 VR 헤드셋 '바이브 플로우(VIVE Flow)'다. 바이브 플로우는 마치 선글라스 같은 작고 날렵한 외형과 경량화를 통해 착용감을 개선한 것이 특징이다. 기기 무게는 189g으로, 기존의 다른 VR 헤드셋들보다 확실히 가볍다. 오큘러스 퀘스트2의 무게가 약 503g인 점을 고려하면, HTC가 경량화 부분에서 강점을 갖기 위해 얼마나 신경을 썼는지 쉽게 체감할 수 있다.

이렇듯, HTC의 차세대 VR 헤드샷 전략은 '편리함'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용자가 VR 콘텐츠를 편하게 즐길 수 있도록 하는 것에 모든 특징이 집중되었고, 그만큼 실사용과 보관 등 여러 면에서 편의성에 신경을 많이 썼다. 다만, 편의성에 집중한 만큼, 고사양 VR 게임을 위한 게임 머신보다 명상이나 음악 감상, ASMR 등 정신 건강의 회복에 도움을 주는 일부 콘텐츠를 위한 장치가 될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 시대가 되며 언택트 관련 기술이 주목받게 되었고, 여러 사전 준비가 필요한 고사양의 VR 콘텐츠를 플레이하기보다 가상 미팅, VR 영상 감상 등 일상적인 부분에서 VR을 찾는 이들이 기존보다 더 많아졌다. 이미 바이브 프로 시리즈 등 고가의 하이엔드 라인업을 갖추고 있는 HTC에게 있어서, 바이브 플로우처럼 '부담 없이 접할 수 있는 VR 헤드셋'은 괜찮은 선택지가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바이브 플로우는 이미 북미 시장을 통해 예약 접수를 개시한 상황이다. 가격은 약 499달러(한화 약 59만 원)로 책정됐다.



바르요 Varjo Aero - '사람의 눈' 수준의 초 고해상도 VR


HTC처럼 더 가볍고 편리한 VR 헤드셋을 연구하는 기업이 있는가 하면, 핀란드의 하드웨어 전문 개발사 바르요(Varjo)처럼 '사람 눈' 수준의 고해상도 헤드셋을 만들기 위해 계속 노력 중인 기업도 있다.

바르요는 지난 10월, 신형 PC용 VR 헤드셋 '바르요 에어로(Varjo Aero)'를 공개했다. 바르요 에어로는 '사람의 눈 수준의 VR'이라는 캐치프레이즈처럼, 법인 고객부터 일반 VR 사용자까지 모두에게 초 고해상도의 VR 경험을 전달하기 위해 개발된 기기다. 기기에 적용된 듀얼 미니 LED 디스플레이는 한쪽 렌즈당 2880 X 2770 픽셀의 해상도, 90Hz 재생률, 134도에 달하는 시야각을 갖췄다. 이외에도 시선 추적 기능, 물리적 IPD 조정 기능 등, VR 해상도의 극한을 보여주기 위한 다양한 기능을 탑재한 것이 특징이다.

사실 '하이엔드 VR 헤드셋'을 선보이려는 노력은 VR 기술이 처음 공개됐던 시점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여러 기업을 통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는 모습이다. 그 안에서 적당한 기준점을 발견하여 소비자들이 원하는 적당한 사양과 가격대를 제시한 것이 페이스북의 '오큘러스 퀘스트2'였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바르요가 추구하는 '사람의 눈 수준의 VR'을 만드는 노력이 결코 잘못됐다고는 볼 수는 없다. 지금도 더 좋은 사양의 VR 기술을 찾는 이들이 있고, 계속 위를 바라보지 않는 이상 더 이상의 기술 발전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바르요 에어로는 현재 약 1,990달러(한화 약 232만 원)에 사전 예약 판매를 진행 중이다. 바르요가 꿈꾸고 있는 숭고한 이상과 취지는 충분히 공감할 수 있으나, 그들의 기술을 일상 가까이에서 만나보기는 아직 쉽지 않아 보인다.



매직 리프 Magic Leap 2 - B2B에 집중! 현장 근무자들을 위한 필수품 될 수 있을까?


세 번째는 2011년 창업 이후 줄곧 증강현실 장비 개발에 몰두하고 있는 미국 매직리프(Magic Leap)사의 신형 MR 헤드셋 '매직 리프 2(Magic Leap 2)'다. 매직 리프는 기업 단위 고객을 대상으로 '업계 최소형, 최경량, 최대 시야각'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세워 오는 2022년, 최신 MR 헤드셋 매직 리프2를 공급할 계획이다.

앞서 공개된 기기 외형은 VR 헤드셋이라기보다 AR 글래스에 가까운 모습이다. 이미지에서는 기기 전면부에 트래킹을 위한 4개의 카메라와 2개의 적외선 센서까지 빼곡히 적용된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기기와 연결된 선은 전작 '매직 리프 원'이 그러했듯, 배터리와 기기를 연결하는 케이블이 될 것으로 보인다. 배터리는 사용자가 바지나 주머니에 착용하는 방식으로 제공된다.

매직 리프 원보다 더 향상된 성능을 탑재하여 게임 플레이에도 충분히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나, 매직 리프사는 일반 B2C보다 B2B 대상으로 타겟층과 방향성을 확실히 했다. 현장 노동자가 온종일 활용해도 부담이 없는 기기를 목표로 제작되고 있는 만큼, 200만 원을 훌쩍 넘는 고가의 장비였던 전작보다 얼마나 저렴한 가격으로 유통할 수 있을지가 성패를 가르는 주요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소니 PS VR2(가제) - PS5를 온전히 활용할 수 있는 진짜 게임용 VR 헤드셋

▲ PS5와 PS VR 이미지

네 번째는 현재 소니에서 준비 중인 VR 헤드셋 'PS VR2(가제)'이다. 아직 명확히 밝혀진 내용 없이 소문만 무성하지만, 소니의 차세대 콘솔인 PS5에 대응하는 새로운 VR 헤드셋이 출시되리라는 사실 만큼은 확실시되고 있다. PS5에서도 PS VR을 사용할 수 있다고는 하지만, 현재 PS VR로 플레이할 수 있는 게임들은 PS5의 성능을 활용하기보다, 대부분 PS4 시절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 PS VR2는 케이블 없이 무선으로 PS5에 연결되며, 한쪽당 2000x2040 해상도의 디스플레이와 더 발전된 사양의 신형 컨트롤러를 활용하고, 멀미 문제로부터 자유로운 헤드셋이 될 것이라고 기대를 모았다. PS VR로 다년간 경험을 쌓은 만큼, 현재 대두되고 있는 여러 문제들을 해결한 진짜 차세대 헤드셋이 될 거라는 믿음이 커졌고, 소니가 꾸준히 발표해온 특허 내용들 역시 이러한 믿음을 뒷받침해주는 단서가 되었다.

바이오하자드7이 그랬듯, PS5에서만 즐길 수 있는 몇몇 AAA급 독점 타이틀을 VR로 즐길 수 있는 하드웨어는 PS VR2가 유일할 전망이다. 소문은 그저 소문일 뿐이지만, PS VR2는 현재 PS5를 보유하고 있는 이들에게 더할 나위 없는 최고의 VR 헤드셋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확실히 공개된 것은 PS5의 듀얼센스처럼 적응형 트리거가 적용된 신형 컨트롤러의 모습뿐이지만, 여러 VR 콘텐츠 중에서도 게임을 선호하는 유저들에게 있어 매력적인 하드웨어가 될 것은 분명하다.

▲ 차세대 PS VR 컨트롤러의 이미지. 소니가 어떤 혁신을 보여줄 것인지 VR 팬들의 기대가 모이고 있다.



애플 Apple VR(가제) - '애플' 수집가들을 위한 감성을 담은 하이엔드 VR 헤드셋

▲ 가상의 '애플 VR' 컨셉 이미지

소문만 무성한 PS VR2를 살펴보았으니, 애플이 준비하고 있는 신형 VR 헤드셋도 함께 짚고 넘어가 보자.

2021년 초, 애플이 하이엔드 유저들을 위한 고가의 VR 헤드셋을 개발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애플은 줄곧 AR 글래스 개발에 집중하는 모습으로 비쳐왔으나, 결국 노선을 변경해 VR과 AR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헤드셋 개발에 착수했다는 소식이었다. 당시 코드네임 'N301'로 불렸던 애플의 프로토타입 헤드셋은 일반적인 VR 헤드셋처럼 게임이나 동영상 감상, 커뮤니케이션에 활용할 수 있으며, 동시에 AR 기능도 제공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르면 2022년 말에나 출시될 예정인 신형 기기인 만큼 여타 하이엔드 VR 헤드셋에 비견되는 높은 수준의 사양을 갖출 것으로 보이나, 애플 VR의 특징은 기기의 사양이 아닌 독특한 판매 전략에 있다. 저가 전략으로 폭넓은 사용자 풀을 확보한 페이스북의 전략과 달리, 한정된 팬들을 위해 판매하는 '고가 전략'을 선보일 것이라는 추측이다.

당시 소식을 전했던 북미 미디어 그룹 블룸버그(Bloomberg)는 애플이 '하나의 점포에서 하루 한대 판매' 전략을 구상 중이며, 약 500개의 직영점을 가지고 있는 애플의 상황을 고려하면 연간 판매 수는 많아 봐야 18만 대 정도에 그칠 것이라고 소개한 바 있다.

현재로선 열렬한 애플 컬렉터들을 위한 또 하나의 장치 수준에 그칠 것으로 보이나, 애플이 VR 헤드셋에서도 '혁신'을 보여준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실제로 감성과 성능 중 성능이 더 앞서게 됐다는 애플의 현재 평가처럼, 추후 공개될 '애플 VR'을 통해 기존의 VR이 보여주지 못했던 혁신을 기대해봐도 좋을 것 같다.



메타 Project Cambria - 업계 1위가 보여주는 굳히기 기술은?


끝으로 오큘러스 퀘스트2를 보유한 VR 업계 선두이자, 최근 '메타(Meta)'로 사명을 바꾼 페이스북의 행보를 보자. 메타는 지난 10월 29일, 차세대 MR 헤드셋인 '프로젝트 캠브리아(Project Cambria)'를 공개했다. 페이스북 커넥트 개최 직전에는 오큘러스 퀘스트2의 개선 버전인 신형 스탠드얼론 VR 기기가 새롭게 공개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으나, 실제로 공개된 프로젝트 캠브리아는 기존의 퀘스트 라인업과는 또 다른, 새로운 방향성이 돋보이는 기기였다.

프로젝트 캠브리아(이하 캠브리아)의 가장 큰 특징은 VR 헤드셋이라기보다, AR 글래스에 가깝게 바뀐 날렵한 외형이다. 고글 형태로 가벼움을 강조한 HTC와 같은 전략으로 보여진다. 이외에도 사용자의 눈앞에 펼쳐진 풍경을 헤드셋을 통해서도 볼 수 있도록 고해상도 카메라가 디스플레이 전면에 탑재됐다. 이 카메라로 현실의 풍경 위에 가상의 오브젝트를 겹쳐서 보는 AR 기능을 활용할 수 있을 전망이다.

헤드셋 디스플레이 내부에는 이용자의 시선과 표정을 추적할 수 있는 내부 카메라가 내장됐다. 버츄얼 유튜버나 VR 챗 플레이어처럼 가상의 아바타를 이용하는 이들이 별도의 표정 추적 장치를 추가로 부착하지 않아도, 캠브리아 한대로 자연스러운 표정 연출이 가능해진다.

메타의 수장인 마크 저커버그 CEO는 캠브리아가 오큘러스 퀘스트2와는 방향성이 다른 하이엔드 헤드셋이 될 것이라며, 저렴한 가격을 내세우는 오큘러스 퀘스트2를 대체하는 기기가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분명히 밝혔다.


HTC부터 매직리프, 애플, 그리고 메타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VR 업계가 보고 있는 공통적인 방향성은 VR과 AR을 동시에 충족하는 MR 장치에 있었다. 현재의 VR 기술 수준에서 사용자들에게 놀라움을 전달할 수 있는 혁신의 수준은 거의 막바지에 다다랐고, 이제 VR에만 머무르기보다 더 다양한 매력과 편의성을 어필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헤드셋과 PC를 연결하는 케이블이 없어지고, 더 가벼워지고, 더 선명해지고, 더 저렴해지는 VR 헤드셋의 빠른 발전을 지켜보며 매일이 놀라움의 연속이었던 기억은 어느새 추억이 되어버렸지만, VR 업계는 지금도 멈추지 않고 계속 성장하고 있다. 앞으로 공개될 VR 헤드셋과 새로운 기술이 또 어떤 놀라움을 줄 수 있을지, 코앞으로 다가온 2022년이 더욱 기다려지는 오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