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의 가치'가 무엇이냐는 질문에는 참 여러가지 답이 나옵니다. 싼 값에 편하게 즐기는 유흥이라는 원초적 견해부터, 체험을 기반으로 하는 미디어라는 고차원적 답변, 그리고 문화의 첨단을 달리는 최첨단 복합 미디어라는 의견까지 말이죠.

다 맞는 말이긴 합니다만, 이 중에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를 꼽자면 '체험'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다른 미디어가 읽고, 듣고, 보는 등의 간접적 경험을 줄 때 게임은 가상에서나마 직접 무언가를 할 수 있습니다. 내 의사가 미디어에 반영된다는 건 그만큼 높은 몰입을 줄 수 있다는 거죠. 바로 이 점 때문에, 게임은 역으로 몰매를 맞기도 합니다. 게임은 현실에서는 할 수 없는 것을 체험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그리고 현실에서 할 수 없는 것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굉장히 위험하거나 금지되어 있는 일들도 있기 마련이죠.

그래서 '게임'에는 폭력성이라는 꼬리표가 따라 붙습니다. 세상 어디서 인생 걱정할 일 없이 총격전을 벌이고 범죄를 저질러 보겠습니까. 게임 산업이 발전하면서 게임이 추구하는 방향도 사뭇 달라졌고, 게임업계 내에서도 자발적 검열이 행해지면서 조금 덜해지긴 했지만, 여전히 게임의 주류는 쏘고 베고 박살내는 소재들로 이뤄져 있습니다. 솔직히 부정할 수가 없어요. 그만큼 재미있고 짜릿한 경험을 주는게 참 찾기 어렵기 때문일 겁니다.

하지만, 찾기 어렵다고 없는 것은 아닙니다. 데이브 미라의 BMX, 토니 호크의 프로스케이터, 그리고 SSX 시리즈까지, 모두 말초신경의 끝을 자극하는 소재의 게임들이지만 결코 누군가를 해하지도, 무엇을 때려부수지도 않습니다. 오늘 다룰 게임도 그렇습니다. 분명 폭력적이진 않지만 목숨을 걸어야 할 수 있는 '익스트림 스포츠'를 소재로 하는 게임. 바로 '라이더스 리퍼블릭'입니다.


게임명: 라이더스 리퍼블릭
장르명: 레이스, 스포츠
출시일: 2021. 10. 28.
개발사: 유비소프트
서비스: 유비소프트
플랫폼: 유플레이 / XBOX / PS



본능에 따라 달리고 점프하는 시간

'라이더스 리퍼블릭'의 기본은 굉장히 단순합니다. 미국에 위치한 7개의 국립공원을 묶은 가상의 세계 속을 탐험하면서, 여기 저기 놓인 레이스 시작점에서 경기를 치르면 됩니다. 레이스의 종류는 큰 틀에서 세 종류. 보드와 스키, 자전거, 그리고 윙수트와 로켓윙수트입니다. 물론, 단순한 속도 경쟁만 존재하진 않습니다. 결승점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 대신 정해진 시간 내에 정해진 수의 트릭을(2분 이내에 15번의 트릭 등) 수행해 점수로 겨루는 형태의 대회도 존재하죠.

'포르자 호라이즌'을 해보신 분이라면, 매우 익숙할 시스템입니다. 세계를 돌아다니며 각종 경기를 즐기고, 이벤트를 경험하고, 가끔은 그냥 오픈월드 자체를 즐길 수도 있죠. 포르자 호라이즌의 번쩍이는 자동차와 훤히 뚫린 도로는 없지만, 대신 붕붕 날아다닐 수 있는 수많은 점프포인트와 아무리 높은 곳에서 떨어져도 멀쩡한 무적의 자전거를 비롯한 익스트림 장비들을 받은 셈입니다.

▲ 그냥 사람 구경하면서 다니기만 해도 그럭저럭 재밌다

라이더스 리퍼블릭의 세계는 완전한 오픈 월드이며, 각 거점에서는 대회를 진행할 수 있을 뿐, 굳이 대회를 통하지 않아도 마음대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가장 높은 산봉우리에서 시작해 바람을 가르며 저지대까지 활공할 수도 있고, 손이 닿지 않은 야생의 설원을 가로지르며 속도감을 느낄 수도 있죠. 그리고 대회에 참가하지 않은 상태의 이 모든 오픈월드 활동들은 거대한 통합 서버 내에서 이뤄집니다.

말인즉, 라이더스 리퍼블릭의 세계엔 현재 접속해 있는 수백 수천명의 사람들이 언제나 바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게임 내에서 이들이 어떻게 이동하고 있는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바로 확인할 수 있죠.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착지 포인트에 캐릭터를 세워 두면 주변에 끝도 없이 사람들이 쏟아져 내립니다. 유비소프트가 채널을 어떻게 나누는지는 알 수 없지만, 외로울 틈이 없어요. 오픈월드라는 소재를 잘 살려낸 포인트라 볼 수 있습니다.


▲ 맵에서 꼬물거리는 표식들이 전부 다 접속중인 게이머들

게임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레이싱은 무척 잘 만들어져 있습니다. 안 그래도 자동차로 가는 200km/h보다 자전거를 타고 밟는 80km/h가 더 자극적으로 다가오기 마련인데다 대부분의 코스가 다운힐이고, 코스 중간마다 점프 패드가 존재해 뜬금없이 날아가는 경우가 숱하다 보니 레이싱의 근본이라 할 수 있는 '속도감'은 최근 등장한 포르자 호라이즌에 전혀 꿀리지 않습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가장 속도감이 좋다고 느꼈던 레이싱 게임이 90년대 말에 나온 '스타워즈 에피소드1 레이서'인데, 시속 400km/h 근처로 달리는 이 게임에 비빌 정도입니다.

그런가 하면, 게임의 다른 핵심 축인 '트릭'부분도 굉장히 훌륭하게 구현되어 있습니다. 실질적인 전작이라 볼 수 있는 '스팁'에 비해 조작이 훨씬 간편해졌고, '똥손'들도 쉽게 구사할 수 있도록 컨트롤 보정을 지원(대신 포인트는 적게 얻지만)하기 때문에 붕 떠서 아무것도 못 하고 내려오는 경우는 확실히 줄었습니다. SSX 시리즈에 등장하는 초인들처럼 보드 위에서 윈드밀을 돌리는 수준은 아니지만, 현실적인 선에서 마음껏 트릭을 시도할 수 있죠.


▲ 날아다니기 참 쉽다

'라이더스 리퍼블릭'의 근본은 달리는 게임입니다. 화려하게 달리냐, 빠르게 달리냐의 차이만 있을 뿐, 결과적으로는 빠르게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을 목표로 플레이하는 게임이죠. 그리고, 이 잘 만든 달리기가 게임의 핵심 재미를 줍니다. 레이스에 임하는 동안, 솔직히 다른 생각을 할 틈이 없습니다. 바로 다음 코스를 정해야 하고, 경로를 파악해야 하고, 앞에 놓인 바위를 피하다 보면 모든 시름을 잊고 게임 그 자체에 집중하게 되거든요.

▲ 레이싱이 아닌 트릭 경쟁도 존재한다.



다운힐에서 벌어지는 현실 폴가이즈

▲ 가만 보고 있어도 초당 수 명씩 트릭을 펼치며 날아다니는 커뮤니티 허브

라이더스 리퍼블릭이 많은 부분에서 전작 '스팁'의 뒤를 잇고 있는 건 사실입니다. 자전거가 추가되긴 했지만 스키와 보드, 윙수트는 스팁에도 존재했고, 오픈월드 기반의 익스트림 스포츠라는 게임의 기본 컨셉은 같으니까요. 저 또한 처음엔 스팁에 자전거와 협곡을 추가한 대형 확장팩 정도라는 인상을 받았으나, 내면을 조금씩 뜯어보면서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별로 푸쉬도 받지 못하고 매니아용 게임으로 남아 버린 스팁과 달리 라이더스 리퍼블릭은 많은 부분에서 보다 나아진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죠.

가장 먼저 다가오는 부분은 '체계'가 잡혔다는 부분입니다. 스팁이나 라이더스 리퍼블릭이나 둘 다 오픈월드 익스트림 스포츠인건 맞습니다만, 스팁은 그게 전부였습니다. 멀티플레이가 가능하긴 했지만 관련 시스템은 너무 미비했고, 커뮤니티 허브 공간조차 없었습니다. 하지만, 라이더스 리퍼블릭엔 엄연히 허브가 존재해 연습부터 파티 매칭까지 다양한 기능을 활용할 수 있고, 원한다면 서킷을 직접 디자인 할 수도 있죠. 심지어 허브를 안내해주는 NPC는 숙희라는 이름을 가진 한국인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스팁에선 절대로 경험할 수 없었던 핵심 콘텐츠가 존재합니다. 최대 64명의 게이머가 모여 한 번에 치르는 대규모 레이싱이죠.

▲ 우리의 인스트럭터 '숙희'씨, 옆동네 미래전사랑 비슷하게 생긴 걸 보니 해외 게임업계의 한국 여성 인식은 이런가 싶다.

이 '대규모 레이스'는 라이더스 리퍼블릭에 등장하는 모든 레이스를 하나로 합쳐 둔 형태입니다. 처음엔 자전거를 타고 시작해 눈밭이 나오는 순간 점프와 동시에 스키로 장비를 바꾸고, 그렇게 또 레이스를 진행하다가 점프와 동시에 윙수트로 장비를 변경하는 식이죠.(이 복합 레이스는 소규모로도 가능하긴 합니다) 유비소프트가 만든 이 게임의 자동차 버전인 '더 크루2'에서 봤던 시스템입니다만, 자동차에서 갑자기 비행기로 탈것이 바뀌던 더 크루2와 달리 라이더스 리퍼블릭은 장비보단 게임 플레이 자체에 포커스가 가 있기에 크게 거부감이 없습니다.

매우 당연하게도, 굉장히 재미있습니다. 라이더스 리퍼블릭의 길은 잘 닦인 길이 없이 야생 그 자체이거나 산악의 협로로 이뤄져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게이머들은 좁은 길에서 각축전을 벌이거나 체크포인트만 덜렁 서 있는 눈비탈을 우당탕탕 내려가야 합니다. 몸싸움 끝에 데굴데굴 구르는 선수나 코스를 이탈해 절벽 너머로 날아가는 이들이 드물지 않게 발생하죠. 대규모 아케이드 게임인 '폴가이즈'처럼 하나 둘 떨어져나가다 보면 마지막엔 선두 그룹만 남아 최후의 레이스를 펼치게 됩니다.


▲ 자동으로 장비 변경이 이뤄지는 식

그리고 이 모든 레이스의 현장은, 오픈월드를 돌아다니면서 실시간으로 관측할 수 있습니다. 직접 레이스에 참여하지 않아도 수십명의 레이서들이 우당탕탕 내려오는 과정을 옆에서도 잘 볼 수 있죠. 제가 이 콘텐츠를 처음 접한 것도 마일스톤을 따라가다 직접 참여해서가 아닌, 그냥 지나가다 본 거였습니다. 점프대 옆에서 잠시 쉬려고 자전거를 세우고 대기 중인데 수십명이 줄달아 내려오더니 붕 날아서 그대로 윙수트를 타고 가버리더군요.



선택과 집중으로 '핵심 가치'는 지켰다

정리하자면, '라이더스 리퍼블릭'은 오로지 '익스트림 스포츠'라는 소재에 모든 것을 올인한 게임입니다. 고속 주행 구간이 많음에도 조작감이 매우 뛰어나 컨트롤이 튄다거나, 내 캐릭터를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은 거의 일어나지 않으며, 공중 트릭도 쉽고 간편하게 구사할 수 있죠. 수많은 레이스와 이에 쓰일 장비들이 마련되어 있으며, 드넓은 오픈월드는 굉장히 다양한 환경을 제공하면서 동시에 익스트림 스포츠라는 소재에 걸맞게 적당히 변조되어 있습니다.

▲ 딱 봐도 점프하고싶은 포인트가 가득한 세계

하지만, 그렇다고 이 게임이 완벽한 게임인 건 아닙니다. 오픈월드와 익스트림 스포츠, 대규모 멀티플레이라는 게임의 핵심 가치는 무엇보다 잘 살려냈지만, 그 외의 부분들에선 여러모로 부족한 면모를 보이죠. 목숨을 내건 스포츠임에도 진지함은 1도 찾아볼 수 없는, 그저 신나 죽기 직전인 등장인물들과 이 텐션을 따라가려는 성우들의 어설픈 연기부터가 그렇습니다.

유비소프트는 지난 몇 년간 내놓은 작품들 중 대부분에서 이상할 정도의 하이 텐션을 고집해왔습니다. '와치독2'가 아마 그 시작점이었던 것 같은데, 사이버 독재에 대응하는 스토리에 중간에 멤버를 잃기까지 하는 일견 진지한 스토리임에도 불구하고 게임 분위기는 시종일관 가볍기 그지없었죠. 근래 등장한 '파 크라이6'도 비관적인 현실에서 펼치는 쿠데타라는 비장한 소재를 뒤로 둔 채 CD나 날리고 싸움터에서 콘서트를 하는 등의 모습을 보여 다소 이질적이고 어색하다는 느낌을 받았던 바 있습니다.

▲ 솔직히 좀 어색할 정도로 과한 느낌이긴 했다

물론 앞선 두 게임에 비하면 '라이더스 리퍼블릭'은 이런 하이 텐션에 훨씬 적합한 게임이긴 합니다만, 가끔은 좀 과하다는 생각도 들긴 합니다. 고글의 접안부에 엑스자로 마커를 긋고 방독면에서 총천연색 연기를 뿜어내는 공식 타이틀 이미지부터가 그렇죠. 솔직히 아닌 말로 하자면, 다들 몸에 안좋은 뭐 하나쯤 맞거나 점막 흡입한 사람들같은 과한 텐션을 드러냅니다. 이런 분위기가 게임에 자연스럽게 녹아났다면 참 괜찮은 감성이었을 것 같은데, 역으로 이 감성에 맞추기 위한 게임을 만든 것 같다는 생각도 몇 번씩 들 정도긴 합니다. 사실 이 부분은 개인의 취향이 중요한 부분이니 적당히 넘어갈 수는 있지만요.

또한, 멀티플레이와 오픈월드에 콘텐츠에 집중하다 보니 싱글 플레이 경험이나 시나리오는 그냥 없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소재는 다르지만 장르 구조상 같은 '포르자 호라이즌'의 경우 인물 간의 대화 등을 통해 별 거 없는 배경 설정과 시나리오라도 전달하려는 노력을 보였는데, 이 게임은 그런 게 전혀 없습니다. 대회 몇 번 뛰다 보면 '우와 너 최곤데? 이것도 해 봐!'하는게 전부죠. 게임 내에 중요한 요소들을 제외하면,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는게 여실히 보이는 수준입니다.


▲ 쉽고, 빠르고, 재밌다는 캐주얼 레이스의 핵심은 잘 살아있다

결국 게임 플레이 구조는 오픈월드에서 대회 찾아가기 - 대회 플레이 라는 두 가지 시퀀스의 반복으로 이뤄집니다. 레이스와 트릭 자체를 즐기는 성향의 게이머라면 이만한 게임도 없겠지만, 이 와중에 느끼게 될 성취감이나 마일스톤 달성, 그 외의 여러 가지 가치들을 중시하는 게이머들에게는 다소 부족한 느낌을 줄 수밖에 없습니다. 레이스와 오픈 월드, 조작감 등 여러 면에서 호평을 받는 게임임에도 라이더스 리퍼블릭이 대승적 유행을 이끌지는 못하고 있는 이유기도 하죠.

그러나 톤을 살짝 바꿔 말하면 게임 내에서 중요한 요소들은 제대로 힘을 줬다는 뜻도 됩니다. 말 그대로 선택과 집중이죠. 오늘날, '갓겜'이 되는 조건엔 두 가지가 있습니다. 너티 독의 게임들처럼 다른 요소의 부족이 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선택과 집중을 잘 해내거나, 락스타의 게임들처럼 다른 부가 요소들까지 완벽하게 만들어놓는 겁니다. 라이더스 리퍼블릭은 전자에 가깝지만, 다른 부족점이 아예 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핵심 시스템을 완벽하게 다듬은 정도는 또 아닙니다. 다소 아쉬운 부분이 보이긴 해도, 게임이 주고자 하는 핵심 경험은 부족함 없이 살아있는 정도지요.

▲ 있어야 할 것 다 있고, 좋아야 할 것은 다 좋다.

결론을 말하자면, '라이더스 리퍼블릭'은 충분히 추천할 만한 게임이지만,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권할 만한 게임까지는 아닙니다. 취향에 맞는다면 그 어떤 게임보다 즐겁게 할 수 있지만, 적용할 취향의 폭이 그리 넓지 않고 집중한 부분 외적인 요소는 사실 그다지 뛰어나다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누군가에겐 갓겜인 게임이 꼭 모두에게 그렇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라이더스 리퍼블릭은 익스트림 스포츠라는 소재를 매우 잘 살려낸 게임이고, 서두에서 말씀드렸듯 폭력적 요소를 완전히 배제하면서도 비슷한 수준의 짜릿함과 자극을 선사하는 게임입니다. 조금 아쉬운 부분은 없잖아 있지만, 라이더스 리퍼블릭은 분명 여러분의 시상하부가 도파민 분비를 위해 열일하게끔 만들기에 부족함이 없는 게임이 맞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