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제: 그래도 우리는 인디게임을 만든다 : 학교도, 나이도 모두 다른 대학생 다섯명의 '산나비' 개발이야기
  • 강연자 : 유승현 - 원더포션 / 대표
  • 발표분야 : 기획, 개발
  • 강연시간 : 2021.11.19(금) 14:00 ~ 14:50
  • 강연 요약 : 아무것도 몰랐던, 대학생 다섯 명이 '산나비'를 만들며 느꼈던 점을 솔직 담백하게 풀어냈다



  • ■ 원더포션 결성 - '산나비'를 기획하기까지


    원더포션은 나이도 학교도 다른 대학생 다섯 명이 만든 인디 게임 개발팀이다. 산나비는 조선 사이버펑크 로프액션 플랫포머 액션 게임인 '산나비'를 개발하고 있다. 산나비는 스토리, 플랫포머, 로프액션을 내세우며 2020년 2월에 얼리억세스를 시작해 2021년 3월에 데모 버전을 배포했다. 산나비는 2022년 1분기에 정식 발매 예정이다. 원더포션의 팀장이자 기획자인 유승현 팀장은 목에 힘을 빼고 산나비가 어떻게 만들기 시작했고, 만들어지고 있는지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저희 원더포션은 저희 원더포션은 산나비라는 게임을 만들고 있습니다. 조선 사이버펑크 사슬액션 플랫포머 라는 해괴한 장르의 게임입니다. 우선 산나비의 시작에 대해 말을 해야 할 것 같아요. 보통 인디게임 팀은 친구들이나 형제가족, 아니면 학교 동아리같이 주변에서 사람들을 모아 시작하잖아요? 저는 게임잼에서 팀원을 모집했습니다. 극한 상황에서도 원활하게 같이 일할 수 있을 정도라면 인디 게임 팀이 터지는 1순위인 이상한 사람이 아니라는 소리니까요."





    "그렇게 원더포션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나 저희는 모두 게임 개발 경험, 지식, 현실 감각이 없는 사람들의 모임이었습니다. 유일하게 있는 건 남들이 하지 않는 걸 하고 싶다는 욕심뿐이었어요. 한 달에도 수천 개가 넘는 게임들이 스팀에 쏟아지고, 우리는 경쟁을 해야 하잖아요? 저희가 다른 게임들과 경쟁을 할 수 있을 리가 없었습니다. 개발력 자체가 비교가 안 되니까요."

    "그래서 저희가 어설프게 게임을 만들면 분명히 우리 게임의 상위 호환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대체 불가능한 게임이 되어야 한다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미래화된 조선, 로프 액션, 플랫포머, 무속 신앙을 사이버펑크로 재해석, 사슬잡이와 무당 소녀, 둘이 힘을 합쳐서 산을 오르는 감성 스토리. 이런 기획 같지도 않은 기획이 채택됐습니다. 이유는 우리가 게임 개발을 안 해봐서 그렇습니다. 우리가 뭘 만들려고 하는 건지 몰랐기 때문에 이걸 하기로 한 것입니다. 네, 그렇습니다. 경험이 없어도 알 수 있었습니다. 저희는 완전히 조진 겁니다."



    ■ 문제점들 발생 - 로프액션과 스토리텔링







    "산나비는 두 가지 커다란 문제점을 안고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로프액션입니다. 로프액션은 검증된 메커니즘입니다. 그러나 막상 만들어보니까 로프 액션은 지옥이었습니다. 액션 게임은 개발자들의 무덤이라고 하잖아요? 근데, 그냥 움직임도 아니고, 어딘가에 갈고리를 걸어 움직이는 액션 방식이 만들기 쉬울 리 없었습니다. 한마디로 게임 개발을 너무 간단하게 봤던 겁니다. 아이디어만 있으면 재밌다는 결론이 나올 줄 알았던 겁니다. 구현하고, 테스트하고, 버그를 고치고 하는 실제 제작 과정이 게임 개발의 메인 스테이지라는것을 몰랐습니다. 스파이더맨 같은 플랫포머를 원했는데, 항아리 게임이 나온 겁니다."

    "힘들게 만든다고 끝이냐? 절대 아닙니다. 유저 테스트와 피드백을 받아보면 유저들이 체감하는 난이도와 조작감은 차원이 다릅니다. 만드는데 힘들었다는 소리는 유저 입장에선 아무 의미가 없는 소리입니다. 게임이 불편하면 그냥 불편한 게임인거에요. 그리고 피드백은 초보 개발자로선 정말 이해하기 힘듭니다. 저는 만들면서 불편한 게임을 계속해보면서 불편에 적응이 됐던 겁니다."

    "스토리도 문제가 있었어요. 전 책도 많이 읽었고, 글도 써봤고, 창작물도 많이 좋아하니까, 막연히 어떻게든 만들 수 있지 않을까란 생각을 했었어요. 그것을 풀어나가는 텔링은 고려하지 않는 겁니다. 진짜 이야기를 구성하는 요소들이 준비되지 않았던 겁니다. 스토리보다 텔링이 중요하다는 걸 너무 늦게 알아챘어요. 1년 동안 스토리만 가지고 게임을 만든 겁니다. 로프액션과 스토리라는 핵심 요소는 한 달도 안 걸렸는데, 문제점을 알아차리기까지는 무려 1년이라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일일이 다 풀어야만 했어요. 쓰지 않던 유니티 물리 엔진도 결국 쓰기로 했습니다. 스토리도 전부 갈아엎기로 했습니다. 감당할 수 있는 부분만 남기고 전부 삭제했습니다."






    "조작감이랑 스토리. 이 두 가지만 문제였을 리가 없습니다. 이것 말고도 정말 많은 이유로, 정말 많은 부분이 바뀌었습니다. 산나비는 처음엔 셀레스테 같은 정밀 플랫포머를 목표로 하고 있던 게임이었습니다. 전투가 없던 게임이었는데, 막상 셀레스테같은 정밀 플랫포머를 만들기엔 조작이 너무 어려웠고, 난이도나 재미 문제도 있었고, 캐릭터의 거대한 기계 팔로 싸우지 않는 게 정말 이상해서 전투도 추가했습니다."

    "그럼에도 절대 변하면 안 되는 건 있었습니다. 산나비의 본질은 플랫포머라는 것입니다. 플랫포머인만큼 게임의 가장 큰 포인트는 이동이었고, 전투 역시 이동으로 활용하도록 만들어야 했습니다. 공격을 위한 공격은 가능한 한 배제하는 방향으로, 전투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주인공과 동행하는 소녀의 컨셉은 ICO라는 게임과 비슷하게 가려고 했습니다. 따로 전투 능력이 없어서 계속 뒤를 봐주어야 하는 히로인입니다. 죽지 않게 계속 신경을 써줘야 해요. 그리고 얘가 죽으면 게임오버가 됩니다. 물론 그만큼 히로인의 역할도 있고, 이 플레이가 주는 경험도 정말 강력하지만, 안 그래도 조작이 낯설고 어려운데, 남까지 돌보려면 몇 배는 힘들어져서 바꿨습니다. 이렇게 게임을 거의 뒤집어엎는 건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저희는 하나하나 고쳐 나갔습니다."



    ■ 느낀 점 두가지 - 피드백 분석, 난이도에 대해서



    "다음으로는 개발하면서 저희가 가장 크게 느꼈던 것 중에서, 저희가 얘기할 수 있는 두 가지를 얘기해보려고 합니다. 이것들은 어디까지나 저희의 주관적인 경험과 해석인 점 먼저 못 박고 가겠습니다. 첫 번째는 피드백의 알맹이를 찾자는 겁니다. 저희처럼 전문적인 QA를 받을 수 없는 작은 인디게임 팀들은 주변 인맥과 단톡방, 커뮤니티들을 통해 게임을 뿌리고 불특정 다수에게 피드백을 요청하는 방법을 많이 사용합니다. 이런 피드백은 조심해야 할 부분이기도 합니다."

    "산나비는 액션 플랫포머고 코어 유저가 타겟입니다. 그런데 산나비에 이런 피드백들이 들어왔다고 가정해봅시다. 자동 조준이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강화 요소가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난이도를 더 올려야 해요. 이 피드백에 공감하든 않든 간에 이러면 더 나아질 거라는 유저들의 진심 어린 충고는 무시하기가 어렵습니다. 기본 전제를 깔아야 할 건, 피드백들이 사실 잘못된 것일 수도 있다는 거에요."

    "좀 더 정확히는, 우리 게임을 안 할 것 같은 사람이 주는 피드백일 수도 있다는 겁니다. 모바일 게임을 즐겨 하는 사람, MMORPG만 하는 사람, 어려운 게임만 골라 하는 사람이 플랫포머인 산나비에 자신의 게임 취향을 피드백으로 포장해서 보낼 수 있어요. 그러니까, 우리 장르 게임을 즐겨 하지 않고, 앞으로도 플레이하지 않을 사람들인데, 우리가 굳이 요청했기 때문에 플레이했을 수 있다는 거에요. 당연히 이분들에겐 그 어떤 악의도 없습니다. 오직 순수한 선의로 자기 시간 꼬박 들여서 정성껏 피드백을 해주시는 거에요. 그래서 더 이 피드백에 휘둘리게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더 위험한 거고요."


    "그럼 어떻게 하느냐? 저희는 피드백의 껍질을 뜯어서 안에 숨겨진 알맹이를 끄집어내려고 합니다. 저희 게임에 튜토리얼 보스가 있는데, 몇몇 분들이 보스의 공격 속도가 지나치게 빠른 것 같다는 피드백을 주셨습니다. 이 피드백을 그대로 수용해 보스 공속을 낮춘다면, 쏟아지는 레이저를 피해 보스에게 접근해야 한다는, 이 보스전의 핵심 경험을 해칠 위험이 있습니다. 이 유저는 자기가 계속 보스의 공격에 맞는 이유를 보스의 공격 속도에서 찾은 겁니다. 다만, 저희 개발자 생각에는 이 보스의 공격 속도는 적절한 것 같아요. 그래서 보스의 공격 판정을 바꿨습니다. 눈에 보이는 공격 범위보다, 실제 공격 판정을 줄이고 판정을 짧게 만들어서 공격을 피하기 쉽게 만들었어요. 이렇게 수정하니까 공격 속도는 그대로 놔뒀음에도, 다음 피드백에선 그런 얘기가 더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두 번째는 어려움과 불쾌함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게임이 지나치게 어려워지면 유저들에 따라 불쾌함을 느낍니다. 그럼 쉽게 만들면 게임이 유쾌해지지도 않습니다. 쉽게 성공할 순 없지만, 그렇다고 못 깰 정도는 아닌 간신히 깰 수 있을 정도의 난이도를 잡았어야 했습니다. 난이도를 무작정 올리는 게 아니라, 고유한 경험과 재미를 유지한 채 난이도를 합리적인 수준으로 잡는 법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첫 번째는 관용입니다. 레벨을 제작하다 보면, 플레이어에게 정답을 강요하고 싶은 충동에 휩싸일 때가 많아요. '여기서 제대로 점프하지 않으면 넌 죽게 될 거야' 이렇게요. 이런 유저의 행동을 통제하는 건 난이도 자체가 비슷하더라도 더 큰 불쾌함을 느끼게 하는 것 같아요. 일부러 좌절감을 안겨주려고 하는 게 아니라면, 유저의 실수에 가능한 한 처벌을 하지 않도록 하는 걸 추천합니다. 추가적인 바닥을 배치하는 등으로 실수에 관용을 베푸는 겁니다."

    "두 번째는 다른 가능성을 열어두는 겁니다. 목적지에 도달하는 방법을 두 개 이상 두는 것으로요. 유저가 방법을 찾아내는 속도가 빨라지고, 게임에 막힐 확률을 크게 줄일 수 있습니다. 똑같은 방법으로 계속 죽지 않는 겁니다. 그리고 세 번째가 핵심입니다. 개발자의 생각보다 훨씬 더 쉽게 만드는 겁니다. 저희는 온갖 테스트와 QA를 하느라 게임 조작에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졌습니다. 플레이타임이 몇천 시간이 되는 거에요. 그리고 깨는 방법도 알고 있기 때문에 헤맬 가능성이 전혀 없어요. 이러다 보면 레벨이 점점 빡빡하게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네. 지금까지 이런 저런 얘기를 했지만, 다들 지금쯤 눈치를 채셨을 겁니다. 산나비는 처음부터 준비된 게임이 아니었습니다. 아는 게 없으니까 직접 박치기를 하면서 배웠습니다. 운이 좋았습니다. 게임을 만들려면 능력이 필요한데, 능력이 있으면 인디게임 팀에 있지 않죠. 그래도 다 운 탓으로 돌리면 너무 없어 보이니까 다른 이유를 하나 더 말하자면, 문제가 있다는 걸 알았을 때 다 고치려고 했습니다. 아는 게 없으니까 겁 없이 고치기 시작했고, 결국은 고치는 데 성공했습니다. 어쨌든, 이렇게 저희는 지금까지 왔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렇게 나아갈 겁니다. 지금 걸음 따라 꿋꿋하게 출시까지 가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