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이미 멸망했다. 내 주변에 남은 인간을 지키는 길을 선택할지, 절대자가 남긴 질서를 따를지, 아니면 새로운 가능성에 희망을 걸고 혼돈을 추구할지. 이 선택이 플레이어의 손에 맡겨진다.

꿈도 희망도 없는 세계. 악마와 신이 싸우고 핵이라는 살상 병기와 신앙이라는 이름의 폭력이 횡행하는 진여신전생 시리즈(메가텐)의 세계는 사실 그 어떤 세상보다 인간 안에 내재한 공포와 절망, 그리고 희망이라고 생각하는 잘못된 믿음을 그린다. 그래서 메가텐은 어떤 게임보다 인간성 그 자체를 다루고 있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그 누구보다 완벽한 21세기의 '인싸' 생활을 해나가는 파생작 페르소나 시리즈보다 메가텐의 세상은 더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비현실속에서의 현실성은 곧 메가텐의 정체성과도 같았고 진여신전생5는 그 정체성을 게임 시스템과 엮어 보다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 게임 스포일러를 다수 포함하고 있습니다.

게임명: 진여신전생5
장르명: RPG
출시일: 2021. 11. 11.
개발사: 아틀러스
서비스: 세가
플랫폼: 닌텐도 스위치

관련 링크: '진여신전생5' 오픈크리틱 페이지


희망은 이미 없는 세계, 진여신전생의 정체성과 또 다른 해석

게임을 플레이하며 답답함을 느낄 요소는 우선 돈이다. 마카라는 화폐가 통용되는 메가텐에서 이 돈은 곧 게임의 핵심 콘텐츠를 좌지우지하는 요소로 자리매김해왔다. 초기 시리즈에서는 주인공의 동료격인 악마를 소환해 데리고 다니는데만 해도 마카가 꾸준히 소비됐다.

▲ 사실 진여신전생 시리즈는 1편에서 얼마나 다른가부터 보는 게임

이런 시스템이 사라진 후에도 마카는 악마 합체를 위해 이미 한번 등록해둔 악마를 전서에서 불러오는 데에도 소모되고 악마를 동료로 만들기 위해 대화를 할 때 악마들이 먼저 요구하기도 한다. 특히 후술하겠지만 진여신전생5의 난이도를 직간접적으로 낮춰줄 아이템의 활용도가 높아졌고 구매는 전작보다 쉬워져 마카를 쓸 일이 더욱 많아졌다.

물론 악마를 불러내지 않고 순수하게 대화만으로 아군으로 합류시킬 수 있고 아이템 소모를 줄이며 플레이하는 게 불가능한 구조는 아니다. 마카가 있다고 무조건 게임이 쉬워지는 것도 아니다. 반대로 말하면 마카가 있으면 게임을 충분히 편리하게 풀어나갈 수 있다는 의미기도 하다.

돈이 곧 힘인 세상. 이건 우리 현실이 떠오르는 모습이기도 하다. 너무 과도하게 해석했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게임 속의 악마는 태생적으로 이 마카에 끌린다. 그리고 그 악마는 메가텐에서 인간이 변모했거나 히어로가 아닌 일반적인 인간을 상징하는 요소로 그려진다. 즉, 전혀 다른 세계에서의 모습을 통해 현실 세계의 모습을 담아내고자 하는, 앞서 말한 '정체성'이 마카라는 돈 요소에도 담겼다는 의미다.


악마가 날뛰는 가상의 세계에 인간의 본성을 현실적으로 담아내고자 하는 게임의 특징은 사실 첫 진여신전생에서부터 잘 드러난다.

플레이어의 진행 방향에 따라 로우, 카오스, 뉴트럴이라고 부르는 주인공의 성향은 여러 이해관계가 얽힌 인물들과의 교감으로 완성되거나 뒤틀리게 된다. 메가텐의 세계는 도쿄에 날뛰는 악마를 제거하기 위해 핵 공격을 감행하기도 하고 무법 천지가 된 세계에서 유일신 야훼의 질서에 조금이라도 어긋나는 자를 악으로 규정하고 처단해 버리기도 하는 인물들이 가득한 세상이다. 악마의 존재만이 다를 뿐 게임은 사실 포스트 아포칼립스가 다루는 노골적인 인간성을 드러내는 데 힘쓴다.

그리고 진여신전생1을 잇는 후속작들은 이 진여신전생1의 띠 안에서 재창조됐다.

세부적인 설정은 다르지만, 2편은 1편의 공식적인 후속 이야기를 다뤘고 4편과 4 FINAL은 1, 2편을 재창조하는 수준에서 이야기를 다뤘다. 반대로 악마소환 프로그램을 통해 인간으로 남아있는 전작과 달리 악마가 되어버린 주인공을 다룬 진여신전생3 녹턴도 인간의 사악한 본성과 무한한 가능성, 혹은 신의 섭리 등 어느 곳에 가치를 둘지 플레이어가 선택하도록 만들었다.

▲ 주인공이 인간 외의 존재로 그려지며 다른 색을 냈던 진여신전생3

그리고 이 틀은 진여신전생5로 이어진다. 창세를 위해 거대한 종말의 시작이 된 3편에서의 도쿄 수태. 그 18년 뒤의 모습을 새로 그리고 주인공도 신과 마인이 융합한 나호비노라는 존재를 다루며 1, 2, 4편의 틀과는 다른 3편의 특색을 따른다. 그리고 다른 시리즈와 마찬가지로 플레이어에게 세계의 방향 선택을 맡겼다.

결국 진여신전생5도 플레이어의 인생관. 혹은 게임을 플레이하며 여러 등장인물과의 교감을 통해 무엇이 옳은지, 무엇이 바른 방향의 세계 창조인지 고민하도록 하는 메가텐의 정수를 담아냈다 할 수 있다.

어느 한 쪽 루트를 선택했다 한들 게임에 깊이 빠져들면 다회차 플레이로 다른 엔딩도 보고야 말겠지만 말이다.



함축된, 간결한, 혹은 무의미한 이야기

결국 현실이 반영된 장엄한 이야기에 빠져들기 위해서는 그 과정으로 가는 인물들과의 교감이 중요하다. 등장인물과 그에 따르는 서사는 주인공을 두고 플레이어가 이 세계에 녹아들 매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만약 이 과정이 부실하다면 창세, 혹은 인간 본성 유지를 위해 신의 질서를 무너트린다는 지나치게 거대한 목표에 플레이어가 어색함을 느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작품은 기본적인 설정과 세계관 구성만이 아니라 이야기 전개에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인간 관계와 묘사까지도 아쉬움이 느껴졌던 3편을 닮아버렸다.


진 여신전생 5의 인물들은 한층 매력적으로 구현된 그래픽을 통해 이전 작품보다 훨씬 미려하게 구현됐다. 하지만 그건 외형뿐이다. 정작 이 인물들은 게임 과정에서 이야기의 흐름을 적합하게 만들기 위해 소모되는 수준에서만 다뤄진다.

게임 초반 비중 있게 그려질 것처럼 묘사되는 주요 인물들이 게임 각 루트 핵심에 걸쳐 그려지지만, 정작 그들의 이야기는 대사 몇 줄과 자기 소개 몇 마디로 끝나버린다. 확장판인 매니악스 이전, 주변 인물들의 캐릭터 서사에 소홀했다는 평을 들었던 진여신전생3 녹턴만 하더라도 각 루트의 히어로들은 적어도 어느 역할을 맡고 캐릭터성에 변화를 가져오는 이야기가 내재하거나 직접 묘사됐다.

하지만 진여신전생5에서는 이 부분이 심각하게 결여됐다. 그나마 우유부단한 성격을 가진 다자이가 신의 정의를 받아들이고 천사 아브디엘과 합일하는 정도가 손에 꼽을 캐릭터 묘사다. 다자이와 아브디엘은 이쪽에서는 고전으로 꼽히는 만화 데빌맨에서 한 쪽의 일방적인 애정과 데빌맨 타도를 외치며 합체한 카이무와 시레누. 이 둘을 오마주한 듯한 모습으로 그려진다.

이런 오마주, 혹은 뒤틀기를 생각하면 서사를 만들어내는 게 불가능한 건 아니었을 텐데 등장인물들을 그저 개발에 편리하게 다루거나, 확장판을 염두에 둔 게 아닐지 생각될 정도다.

다른 주요 인물들은 루트에 따라 그저 물 흐르는 대로 아군이 됐다가 적이 되기도 하고, 죽었다가 여신으로 부활했지만 정작 하는 일 없이 악마 A 정도의 역할만 소화하며 소모된다. 게임 광고에서 자주 얼굴을 드러낸 여와와 아쿠모의 이야기도 한 루트를 이끌어나가는 데도 고작 대사 몇 줄로 과거를 다루는 데 그치고 있다.

▲ 얘가

▲ 이렇게 되는 이유, 얘 정도를 제외하면 이정도 변화의 이유를 설명 몇 줄로 대신한다

사실 이러한 불만을 스토리 자체의 아쉬움이라고 줄여 말하기는 어렵다. 이야기 자체는 메가텐 자체의 특징을 고스란히 이었고, 야훼나 아미타불, 그리고 북유럽, 인도, 그리스 등 다양한 신화의 이야기를 비틀며 종교적 성역 없는 세기말 스토리를 꾸며내고 있다.

다만, 메가텐 정체성에 맞춰 그려진 큰 흐름에 몸을 맡기기엔 등장인물들의 음직임과 서사 과정의 부실함이 더 두드러진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이다.

스토리 전개에 또 다른 핵심이라 할 각 루트 분기 과정은 더 이전작으로 회귀했다.

분기별 전개 차이가 적었던 1편의 단점을 개선한 진여신전생2는 스토리 전개 과정에서 협력과 갈등을 통해 서로 다른 적을 퇴치하며 엔딩 방향을 여러 갈래로 뻗쳐나가도록 했다. 3편에서는 게임 중 일어난 플레이어의 선택 하나하나가 영향을 미치도록 했고 큰 틀은 1, 2편과 같은 진여신전생4도 성향 선택이 3편처럼 플레이어의 진행 중 선택에 따라 변하도록 만들었다.

▲ 선택 한 번에 엔딩 결정

앞선 작품의 분기 결정에는 플레이어가 게임을 플레이하며 쌓인 가치관과 이야기 흐름이라는 경험에 기반하니 플레이어가 이야기에 중심에서 극을 이끌어간다는 느낌을 준다. 이른바 그럴듯하게 느끼도록 하는 셈이다.

반면 진여신전생5의 분기 설정은 후반부에 신의 질서, 창세, 혹은 왕좌의 파괴. 이 중 하나를 결정하는 것으로 끝나버린다. 게임 플레이 과정에서 가치관 설정에 어울리는 여러 질문과 선택은 각 루트에 맞는 특전을 추가하는 용도로 바뀌었다.

플레이어의 선택이 후반부로 밀리게 되니 원하는 분기로 게임을 이끌어가는 건 더없이 쉬워졌다. 다만, 선택과 결과라는 부분을 점점 강조해오던 시리즈 방향에는 썩 어울리지 않는 모양새다. 몰입도 대신 편리함을 선택했다 할 수 있겠다.



복잡하고 광활한 맵이 만든 다른 디자인

분기 선택 이상으로 시리즈의 특징을 가장 크게 깨부순 건 바로 맵의 형태다. 오픈 월드 식으로 구성된 맵은 시리즈가 추구하던 탐험의 방향을 바꿔버렸다.

당대 여러 JRPG가 그렇듯 진여신전생, 그리고 그 기반이 되어 구약 여신전생으로 불리는 디지털 데빌 스토리 여신전생 시리즈는 일본에서 유독 인기를 끌던 위저드리를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1인칭 시점의 팀 기반 던전 플레이를 기반으로 한 만큼 눈앞에 보이는 길은 마치 미로처럼 구성됐고 각각의 지역이 한정된 크기의 지역으로 나뉘어 있었다.

미로처럼 구현된 지역은 플레이어가 맵을 밝혀나가며 이루어지는 길찾기를 강조했다. 여기에 함정이나 워프존 등의 퍼즐 기믹으로 플레이타임을 늘렸고 이는 맵 이동이 3D로 바뀐 3, 4편에서도 이어졌다.

진여신전생5는 이 한정된 공간을 개방했다. 도쿄시에서의 이동은 기존 작의 월드맵처럼 아이콘으로 표현되지만, 각 지구가 일본 내 여러 지역을 하나로 담아낼 정도로 거대하게 그려진 세미 오픈 월드 형태로 구현됐다.

▲ 크기로만 따지면 기존 시리즈와 비교 불가, 이런 지역이 여러 곳 존재한다

메인 스토리의 경우 루트에 따라 가야 할 길이 정해져 있는 선형적 플레이는 그대로지만, 사방이 꽉 막힌 미로형 지역 구분의 색은 옅어졌다. 이렇게 탐험할 곳이 많아지며 자연스레 월드에서 이루어지는 이벤트와 수집 요소도 더해졌다. 나호비호에게 적의를 덜 드러내는 악마를 통해 퀘스트를 받기도 하고 맵 곳곳에 있는 숨겨진 요소를 찾기도 한다.

주변으로 악마를 소환해내는 마가츠카는 악마의 주거지로 끊임없이 영력을 뿜어낸다. 이걸 제거하지 않으면 영령이 닿는 지역의 미니맵은 일부가 보이지 않는다. 어쌔신크리드의 뷰포인트 등이 가졌던, 보이지 않는 요소를 찾아내는 역할을 살짝 비틀었다고 생각할 만하다.

메인 줄기의 이야기 외에 다양한 이야기들도 필드 등에서 이루어지는 대화와 퀘스트를 통해 해결되기도 한다. 이건 결국 게임 디자인의 영역으로 광활한 필드를 채울 이벤트에 일부 중요한 이야기를 깔아두어 맵 탐험에 플레이어가 애정을 쏟을 수 있도록 만든 식이다. 물론 그게 메인 스토리의 이야기를 허술하게 만들어선 안됐지만 말이다. 부수로 채워주는 이야기마저도 완벽하지는 못했다.

▲ 마가츠카에 의해 맵 일부가 가려졌다

탐험 요소의 증가는 반길 일이지만, 기존과는 다른 방식으로 길찾기를 유도하는 맵 구성은 적응이 쉽지 않다. 게임 속 월드는 높은 다리, 건물 복층, 고저차가 확실히 느껴지는 산등성이 등 높고 낮은 곳을 자주 오르내리도록 구성됐다. 전작과는 비교도 안 되게 넓어진 맵이 사실상 다층 형태로 구현되어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정작 미니맵을 통해서는 이런 맵 형태를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얼핏 보면 지도처럼 등고선과 명암 대비로 높낮이를 구분하고 있는 듯 보이지만, 사실은 그저 지형적 형태일 뿐이다. 그마저도 여러 층으로 된 지역을 한 맵에 담아내 맵 아이콘만 따라가다가는 같은 장소를 빙글빙글 헤맬 뿐이다.

맵 아이콘으로 아이템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도록 했으니 그에 대한 반발로 컨트롤 요소를 집어넣기도 했다. 기본적인 틀은 RPG지만 달려가면서 눌러야 하는 점프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다면 필요한 자원을 모으는 게 쉽지는 않을 거다.

▲ 퍼즐 요소를 적당히 버무리며 짜증과 함께 도전 욕구를 자극시키는 구간도 있다

반대로 편의성이 향상된 부분도 존재한다. 상점이나 악마를 합체하는 사교의 관은 월드 곳곳에 존재하는 세이브 포인트 용혈과 합쳐졌다. 또 한 번 방문한 용혈끼리는 기존 작품의 터미널처럼 서로 이동할 수 있는 동시에 맵 어디서든 최근 방문한 용혈로 순간이동할 수 있다.

한정된 상점이나 사교의 관을 찾아 터미널로 지역을 옮기고 저장 파일을 로드할 필요 없이 필요한 건 곳곳에 있는 용혈에서 모두 이루어진다.

편의성이라는 부분을 고려하며 디자인한 것을 생각하면 불필요한 이동은 줄이되 게임에서 재미 요소라고 할 법한(혹은 특유의 난이도와 함께 분노를 유발하는) 길찾기를 3D 오픈형 월드로 남겨둔 건 다분히 의도적인 디자인이다. 다만 오늘날에는 이러한 요소가 견뎌내야 할 콘텐츠가 아니라 불편함으로 더 많이 인식되고 있다.

복잡다단한 월드의 구성으로 폐허가 된 마계 도쿄의 모습을 다시 그려낸 점은 분명 매력적이며 새롭다. 다만 메가텐만의 불친절함과 재미의 줄타기를 좀 더 고민할 필요는 있어 보인다.




악마와 가학적인 전투, 진여신전생을 완성하다

변화한 월드 구성이 기존의 특성과 새로운 재미를 함께 느끼도록 구성됐다면, 전투와 악마 육성은 메가텐의 근본을 잘 따르면서도 나름의 개선이 더해져 최고의 맛을 내고 있다.

적의 약점과 내성에 따라 추가 공격 기회를 얻거나 공격 기회를 날려버리는 프레스 턴 시스템은 더 전략적인 플레이가 가능하도록 구현됐다. 페르소나 시리즈를 통해 메가텐을 해보지 않은 유저들도 프레스 턴에 대해 어느 정도 익히긴 했을 텐데 프레스 턴의 핵심은 단순히 약점 공략만이 아니다. 적 역시 아군의 약점을 노릴 공격 수단을 가지고 있고 이를 통해 추가적인 이익을 가져갈 수 있다. 그래서 내 약점은 가리고 적의 약점을 공략하면서 한정된 마나와 아이템을 효율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특히 동료 악마가 없어 속성 내성과 공략법이 부족할 수밖에 없는 극초반 구간에서는 주인공이 찔리는 약점 한두 번에 곧장 게임 오버 화면을 보게 된다. 이 극악한 난이도는 흔히 유다희로 대표되는 소울본 시리즈에서 찾곤 하는데 진여신전생의 전투 역시 30분 동안 열댓 번 죽는 건 일도 아닌 게임이다. RPG에서의 가학이 살아있는 셈이다.

그렇다고 마냥 어렵게만 만들어진 건 아니다. 이러한 어려운 전투를 풀어내기 위해 상대의 전력을 파악하고 악마와 대화하고, 아이템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등 다양한 공략법이 존재한다. 이게 바로 진여신전생5의 다른 단점을 잊게 할 매력이기도 하다.

우선 기존 메가텐 팬들에게는 보다 다양한 스킬 활용을 통한 전략 다변화가 눈에 띌 요소다. 적의 속성을 무시하는 공격법이 마법과 물리 공격 등에 보다 다양하게 쥐어져 이를 활용해 상성을 뒤집는 전투가 가능해졌다. 여기에 아군에겐 버프를, 적군에겐 디버프를 잔뜩 걸고 싸우는 전투 양상은 지나치게 높아진 마나 소모량에 쉽게 써먹지는 못하게 됐다. 실제로 팀 전체에 가해지는 회복기나 버프류, 상급 공격 스킬은 수십에서 100 이상의 마나를 소비한다. 50 정도가 최고 마나 소비량이었던 3편을 생각하면 주어진 상황 안에서 어떻게 공격을 집중하고, 또 적의 공격은 어떻게 흘려낼지 더 깊이 있게 생각해야 하는 셈이다.

▲ 전투 중에도 약점 잘 보입니다

대신 100 마카에 살 수 있는 만리의 안경이라는 아이템 덕에 전략을 짤 수 있는 상황 자체는 더 쉽게 만들 수 있다. 만리의 안경은 보스를 포함해 게임 내 어떤 악마든 능력치와 약점을 확인해주는 아이템이다. 파생작을 포함해 여신전생 시리즈에서 적의 능력을 확인할 수는 있었지만, 곳곳에 있는 용혈 내 상점에서 언제든 수급이 가능한 만리의 안경만큼 초반부터 쉽게 사용할 수 있는 예가 몇이나 될까.

또, 게임 내 미이츠라는 재화로 스킬 수, 보유 악마 수 등을 익힐 수 있는 특전인 신의 중 아이템을 주인공 외에도 동료 악마까지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신의를 익히면 상황에 따라서는 첫 턴부터 성장이 끝난 주인공으로 공격을 이어나갈 수도 있다.

여기에 주요 속성 외에도 혼란이나 매혹, 독 등 보조적인 상황의 내성도 악마 정보에서 함께 확인할 수 있다. 버프, 디버프 잔뜩 칠해 일방적인 공격을 하는 것 대신 보조 스킬과 이런저런 공격을 엮어서 쓴다면 적은 자원으로 최적의 전투를 펼칠 수도 있다.

▲ 약점 공략은 핵심 중의 핵심

그렇다고 모든 적에 만리의 안경을 사용할 필요는 없다. 플레이어가 별도의 노력을 들여 개량하지 않는 한 같은 악마는 언제나 같은 속성을 가진다. 또 동료 악마로 만들어 전서에 등록한 악마의 정보도 게임 내에서 언제든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악마를 동료로 만들거나 돈을 뜯어내는 대화가 메가텐, 그리고 진여신전생5를 더 파고들도록 한다. 전투 중 주인공은 전투 대신 악마와 대화를 나눌 수 있는데 단순히 몇 가지 상황을 그려두고 공략까지 가능했던 이전작과 달리 진여신전생5의 대화 패턴은 그 수는 물론 종류도 다양해졌다. 덕분에 꽤 긴장감 있게, 또 몰입하며 대화를 진행하게 된다.

게임 중 신의를 대화 쪽에 잘 투자한다면 악마들이 원치 않는 답을 해도 한번 봐주기도 하고 평소에는 얻기 어려운 아이템을 얻을 수 있다. 전투만큼 애를 들이면 그만한 결과를 낸다 볼 수 있다.

특히 악마를 아군으로 끌어들이는 건 곧 전력 강화를 의미한다. 하나의 악마를 꾸준히 키우는 것보다는 레벨, 진행 상황에 맞춰 악마를 설득하는 게 훨씬 빠르게 전력을 성장시킬 수 있다. 물론 태생이 약한 악마라도 꾸준히 키우면 활용이 가능은 한데 어찌 보면 대화가 통하는 세기말 포켓몬스터쯤으로 이해하면 쉬울 듯하다.

▲ 차지를 기본 보유한 마라. 이래 봬도 시리즈 최고 인기 악마다

그리고 설득만큼 중요한 게 바로 악마 합체다. 악마들은 종족과 악마 간의 조합에 따라 전혀 다른 악마로 합체된다. 대화가 어렵거나 성장이 끝나 더 강력한 악마로 변화를 꿈꾼다면 이 악마 합체를 자연스럽게 이용하게 된다. 특히 악마 합체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새롭게 합체하는 악마가 재료가 된 두 악마의 스킬을 선택해 가질 수 있다는 점이다.

기존 작품에서는 이 스킬 계승을 통해 악마의 태생적 한계를 극복하기도 하고 강력한 스킬과 패시브를 여럿 갖춘 먼치킨 악마를 만드는 방법이 쓰였다. 진여신전생5에서도 이 스킬 계승은 건재하지만, 단순히 스킬 부여만이라면 보다 쉽게 가능하도록 하는 허물 시스템이 새롭게 도입됐다.

악마마다 존재하는 허물은 그 악마가 가지는 스킬을 자유롭게 익힐 수 있도록 한다. 케르베로스에 픽시의 허물을 사용하면 픽시가 가진 스킬을 케로베로스가 보유할 수 있게 된다. 주인공은 게임 중 별도로 스킬을 익히지 않으므로 이 허물을 통해 스킬도 익히고, 자체 내성도 허물의 주인 악마와 같은 것으로 바꿀 수 있다.

물론 악마마다 특정 속성 스킬을 사용할 수 있는 포텐셜이 있어 활용법이 달라지기는 한다. 어쨌든 비교적 쉽게 이용할 수 있는 허물을 통해 강한 악마를 만들어내는 시간이 줄어든 셈이다.

허물 자체는 필드에 일부 떨어진 것을 제외하면 악마 레벨업을 통해 선물로 받거나 구걸 상황이라는 특정 대화를 통해 받아야 한다. 그래서 대화 기능에 특전 포인트인 미이츠 투자가 필요한데 미이츠는 게임의 편의를 위해 정말 많이 쓰이니 분배에 꽤 고심이 필요하다.

▲ 합체에 합체를 거듭해 원하는 스킬이 담긴 악마를 만들어 낼 수 있고

▲ 귀찮으면 허물을 통해 왼쪽 스킬을 바로 습득할 수 있다

이 미이츠는 물론 초반에 언급한 마카 같은 자원의 부족은 게임의 높은 난이도와 맞물려 진여신전생5로 메가텐에 입문한 플레이어를 좌절시키는 요소가 된다. 하지만 합체에 쓰일 악마를 돈으로 소환하지 않고 대화를 통해 영입한다면 마카 부족은 중반부터 크게 와닿지 않는다. 미이츠 역시 맵 곳곳에 숨겨진 미망이나 미이츠 더미를 찾으러 잘 돌아다니면 핵심 요소들은 충분히 성장하며 익힐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부분에 대한 직접적인 정보는 부족하고 초반 난이도는 경악할 만하니 DLC에 손을 대도록 유도된다는 점도 두드러진다. 이건 3편의 리마스터는 물론 4편, 그리고 외전인 진여신전생 스트레인지 저니에서도 부각됐다.

이 작품들의 DLC는 게임 내 재화, 레벨이나 능력을 올려주는 아이템 등을 쉽게 올릴 수 있도록 하는 스테이지나 적을 등장시켜 치트에 가까운 이점을 제공한다. 이런 요소를 적당히 활용한다면야 문제없겠다. 하지만 초심자들이 이걸 얼마나 쓸지 알 수 있는 게 아니니 결국 게임의 핵심 재미인 전투의 쫄깃한 묘미를 제대로 집어내기도 전에 레벨과 능력, 돈으로 전투를 밀어버리게 된다.

또 무료 DLC로 출시 당일 추가된 세이프티 난이도는 일부 속성 악마를 제외하면 기본 공격만으로 적을 다 때려 부수고 죽을 일도 없을 정도로 적과 아군의 차이를 벌려버린다. 단순히 능력치에 큰 차이를 주는 난이도를 제공하며 전투의 재미를 미처 느끼지도 못하게 만들기보다는 플레이어가 핵심 전투를 차근차근 익혀 나갈 수 있도록 했으면 어땠을까. 단순히 문자로 가득한 튜토리얼 한 쪽 대신에 말이다.

▲ 급하게 생각하지 않으면 DLC 없이도 진행에 맞춰 필요한 것들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다



아름답지만 느끼기 어려운 그래픽과 최적화

3D 그래픽의 진화는 이전작이 다뤄졌던 3DS와 닌텐도 스위치의 차이에 맞는 모습을 보여준다. 대중적인 인기로는 보다 우위를 가진다 할 수 있는 페르소나 시리즈와는 다르게 좀 더 사실적인 디자인을 추구했는데 이게 3D 그래픽으로 잘 표현됐다.

단순히 인간형 등장인물 외에도 악마 디자인은 2D 시절부터 이어져 온 특유의 디자인이 그 어떤 작품보다 원본에 맞게 3D로 구현됐다. 아름답게, 혹은 잔혹하게 잘 다뤄진 악마의 모습은 현세대에 맞춘 모습이다. 여기에 어울리는 애니메이션을 통해 악마들이 보다 자연스럽게 움직이기도 하고 말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걸 온전히 받아들일 기회가 많지 않다는 점이다. 닌텐도 스위치라는 비교적 저사양의 콘솔에 이러한 3D 환경을 구현하다 보니 일반 게임은 물론 컷신에서도 프레임 드롭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텍스처가 밀리며 잔로딩도 굉장히 많다. 특히 휴대 모드로 주변을 주욱 둘러보면 자글자글한 해상도에 눈이 다 아플 수준이다.

게임에 적용된 높은 수준의 3D 기술, 그리고 추후 있을 멀티 플랫폼의 가능성이 어쨌든, 진여신전생5는 닌텐도 스위치 독점으로 출시된 작품이다. 당연히 이 작품을 지금 닌텐도 스위치로 즐길 플레이어가 있다면 당연히 여기에 맞는 최적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 3D 그래픽과 2D 일러스트의 괴리감은 거의 없는 수준이긴 한데

▲ 때때로 아쉬운 해상도, 프레임 드롭 등이 발목을 잡는다



진여신전생5는 진여신전생3을 잇는 개념과 새로운 요소들을 엮여내는 과정에서 꽤 많은 단점을 드러냈다. 어쩌면 이러한 부족함과 아쉬움 탓에 플레이어들이 잘 만들어진 부분은 개선하고, 잘못된 부분은 고쳐 진여신전생3가 그랬듯 확장판, 혹은 완전판을 벌써 기대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단점들을 뒤집을 장점들은 건재함을 넘어 한층 강화됐고 지나치게 산뜻해진 느낌도 있지만, 시리즈의 핵심 요소는 잘 이어졌다. 적어도 페르소나만으로 여신전생 시리즈를 접했거나 메가텐을 줄곧 즐긴 팬이 그저 아쉬운 부분만 보고 넘기기엔 진여신전생5는 충분한 매력을 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