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9일 출시를 앞둔 헤일로 인피니트의 어깨는 무척 무겁습니다. 이유는 너무 많습니다. 콜오브듀티와 배틀필드가 나란히 죽을 쑤면서 슈터 팬들에게 남은 유일한 희망이 되었고, 스핀오프를 제외한 바로 이전 정규 타이틀인 '헤일로5'가 형편없는 완성도로 혹평받은 바 있으며, 이게 뭐라고 정통주의자와 진보주의자로 나뉜 헤일로 팬덤을 하나로 통합할 만한 게임성을 갖춰야 함은 물론 '기어즈' 시리즈의 이름값이 떨어져 '포르자' 시리즈가 겨우 명맥을 잇고 있는 XBOX진영의 선봉으로서 이름값을 해내야 하죠.

다행인 점이라면, 선행 공개된 멀티플레이 베타는 퍽 좋은 평가를 받았다는 겁니다. 현존하는 슈터 게임 중 콘솔 베이스에 가장 적합하게 맞춰진 게임 시리즈기에 PC를 아우르는 플레이 테스트는 아무래도 잡음이 발생할 여지가 있으리란 예상을 뒤엎고, 헤일로 인피니트의 멀티 플레이 베타는 호평받았습니다. 하지만, '마스터피스'를 염원하는 팬들에게 멀티플레이는 어디까지나 싱글 캠페인 이후에 생각할 요소지요.

때문에 '싱글 플레이'에 초점을 맞춰 말해 보자면, 그간 헤일로 시리즈의 싱글 플레이는 5편을 제외하곤 쭉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콜오브듀티 시리즈처럼 현란한 스크립트 놀음과는 다른 전술적 사고를 요구하는 레벨 디자인, 훌륭한 AI 덕분에 만들어진 아군과 적들의 사실적 움직임, 그리고 고리형 우주 시설인 '헤일로'의 시각적 웅장함과 이에 걸맞는 장엄한 서사, 마지막으로 콘솔에 최적화된 조작감과 초보도 얼마든지 즐기며 플레이할 수 있는 적절한 난이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점을 지닌 시리즈였죠.


이 모든 것 또한, 처음에 말한 '헤일로 인피니트'가 받는 기대에 속합니다. 헤일로 인피니트는 필연적으로 '희망(希望)'이 될 수밖에 없는 게임입니다. 너무나 많은 이유들이 헤일로 인피니트의 성공을 필요로 하고 있으며, 이를 충족하지 못할 때 프렌차이즈가 받을 타격은 여느 작품의 실패보다도 크게 다가올 겁니다. 단순히 콜오브듀티와 배틀필드가 망해서 어부지리격으로 살아남은 게임에 그쳐서는 안 될 부담을 안고 있다는 뜻이죠.

하지만, 큰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리뷰에 앞서 게임 플레이를 시작할 때만 해도 많은 걱정을 했건만, 헤일로 인피니트는 매우 훌륭합니다. 수많은 부담과 기대를 짊어지고 있는 건 사실입니다만, 다리는 굳건히 땅을 디뎠고 허리는 곧게 펴져 있으며, 어깨는 금성철벽과 같이 든든히 모든 걸 떠받치고 있습니다. 마치 스파르탄의 묠니르 전투복처럼 말이죠.


게임명: 헤일로 인피니트
장르명: FPS
출시일: 2021. 12. 9.
개발사: 343 인더스트리
서비스: MS
플랫폼: PC / XBOX



'세미 오픈월드'로의 매력적인 변신

그간 헤일로 시리즈의 싱글 플레이 디자인은 '매우 일반적인 FPS 캠페인'으로 말할 수 있습니다. 콜오브듀티 시리즈처럼 빡빡한 경로를 따라가면서 스크립트를 감상하는 게임보단 자유도가 높지만, 맵이 전체적으로 넓고 우회로가 여럿 존재하는 식이었을 뿐, 정해진 경로를 따라가야 한다는 건 같았습니다. '둠'이나 '울펜슈타인' 시리즈도 콜오브듀티 시리즈에 비하면 진행이 자유로운 편이지만, 결국 시나리오 진행을 위해서는 계속해서 전진해야 했으니 말이죠.

'헤일로 인피니트'의 초반부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습격당한 'UNSC 인피니티'에서 생존해 본작의 무대가 되는 제타 헤일로에 진입하는 과정은 그간의 일반적인 헤일로 시리즈의 선형 플레이를 따릅니다. 여전히 넓은 맵에 우회 경로가 많고, 숨겨진 수집품이 존재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선형 플레이라 할 수 있죠.

▲ 가까스로 다시 눈을 뜬 마스터 치프

하지만 초반부를 넘어서고 제타 헤일로 표면에 진입하기 시작하면서 게임의 양상은 180도 바뀌게 됩니다. 게임상의 한계로 제타 헤일로 전체가 아닌 파손부 인근의 좁은 영역이긴 하지만, 그간 헤일로 시리즈에선 볼 수 없었던 오픈월드가 뜬금없이 펼쳐지죠. 오픈월드가 도입될 거란 사실 자체는 이미 이전에 공개되었던 바 있고, 시리즈의 최초 컨셉(개발 단계에서 지금의 모습으로 변경)이 오픈월드이기도 했지만, 실제로 보면 생각보다 더 짜임새있는 밀도를 지닌 세계를 구현해 두었습니다.

그리고 이 때부터, 게임은 단순히 무기를 얻고 상대를 쏘는 FPS의 형태를 벗어나 보다 큰 게임의 모습을 취하게 됩니다. 메인 시나리오 뿐만 아니라 맵 전역에 위치한 전진 기지(FOB)를 탈환하고, 위기에 빠진 UNSC 대원들을 구조하며, 적의 전초 기지와 방송탑을 박살내는 한편 제타 헤일로 내에 위치한 선조 유물과 수집품들을 모아야 하죠.

▲ 본작의 무대인 '제타 헤일로'

완전한 오픈 월드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제타 헤일로는 모든 헤일로 시설들이 그렇듯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폐쇄 생태계이며, 표면상에는 UNSC와 적 세력인 '배니시드'외에 중립적 구성원들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적과 아군이라는 뚜렷한 인물들만 존재하며, 넓은 세계를 구축했으나 이 모든 세계가 결국 싸움의 배경이 될 뿐이라는 점에선 GTA나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와 같은 완전한 오픈 월드 보다는 '배트맨: 아캄 나이트'나 '메탈기어솔리드5: 팬텀 페인'과 비슷한 세미 오픈 월드에 가깝죠.

하지만, 그게 문제가 되진 않습니다. 애초에 헤일로라는 게임에서 완전한 오픈월드를 기대하는 게이머는 없을 뿐더러, 딱히 필요치 않을 정도로 지금의 디자인도 충분히 재미있거든요. 세미 오픈월드이긴 하지만, 게임의 시퀀스가 오픈 월드로 넘어가면서부터는 게임의 세부적인 부분들도 상당 부분 바뀝니다.

전술 지도가 열리면서 탈환한 전진 기지나 박살낸 적 시설로 빠른 이동이 가능해지고, 전진 기지에서는 탈것과 무기를 원하는 대로 수급할 수 있습니다. A-B-C로 나아가는 순서에 맞춘 진행이 아니더라도, 맵 곳곳을 원하는 순서대로 돌아다니면서 여러 활동들을 할 수 있다는 거죠.


▲ 이렇게 이동용으로 활용할 수도 있고


▲ 전투 용도로도 쓸 수 있는 갈고리 총

'스파르탄 코어'와 '밸러(Valor)' 시스템도 오픈월드에 맞춰 만들어진 시스템입니다. 스파르탄 코어는 마스터 치프의 전투 장비를 강화합니다. 예를 들어 강화 전엔 빠른 이동용으로 쓰이는 갈고리 총이 최종 강화까지 가면 수직 절벽도 극복 가능할 정도로 쿨다운이 줄어들면서 동시에 적을 기절시키고 강력한 충격파 근접 공격까지 가능한 만능 장비가 됩니다. 각 강화 단계엔 스파르탄 코어가 일정 갯수 필요하며, 이 코어들은 맵 전역에 흩어져 있어 지역 점령 후 찾아볼 수 있죠.

'밸러(Valor)'는 오픈월드 활동을 통해 얻는 포인트로, 포인트가 누적될수록 전진 기지에서 호출할 수 있는 무기와 차량, 해병의 종류가 변합니다. 처음에는 기본 돌격소총과 2인승 탈것 몽구스에 헐벗은 해병대원이 등장하지만, 나중엔 비행 탈것인 와스프나 스콜피온 탱크에 중화기병과 저격병을 태우고 다닐 수도 있습니다. 맵 곳곳에 위치한 현상수배범을 잡을 경우 이들이 지닌 독특한 변형 무기를 얻을 수 있는데, 이 또한 전진기지에서 호출 가능하죠.

▲ 게임 내 활동들을 할 수록 보다 좋은 장비와 무기, 병사들을 수급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이 굉장히 재미있습니다. 부정적으로 바라보면 메인 미션만 따라가면 짧을 수 밖에 없는 볼륨을 병렬적 구성으로 늘린 꼴이지만, 제타 헤일로에서 배니시드를 몰아낸다는 서사적 당위성에 부합될 뿐더러 맵 곳곳에 위치한 오디오 로그를 통해 마스터 치프가 제타 헤일로에 도달하기 전 도대체 이 시설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알아낼 수 있기 때문에 탐험의 재미까지 갖추고 있습니다.

물론, 이 모든 재미가 단순히 '오픈 월드'를 도입했기 때문에 오는 것은 아닙니다. 헤일로 인피니트가 훌륭한 게임인 이유는 그간 헤일로 시리즈가 보여준 장점을 모두 지닌 채 게임 내 배경을 단순한 평면에서 입체적 공간으로 바꿨기 때문입니다.

▲ '열어'



하나도 빼먹지 않고 가져온 시리즈의 장점들

앞서 한 차례 언급하긴 했지만, 헤일로 시리즈 캠페인의 장점을 다시 한 번 언급해보죠. 일단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레벨 디자인입니다. 헤일로 시리즈는 전통적으로 통상적인 FPS의 캠페인 문법을 따르면서도, 높은 수준의 레벨 디자인을 보여주었습니다. 앞으로 나아가는 구간에서는 길을 잃을 염려 없이 자연스럽게 플레이어를 유도하고, 전투가 진행되는 공간에서는 탄약과 소모품을 적절히 배치함은 물론, 각종 우회로와 지형 고저차, 엄폐물과 개활 영역을 조화롭게 배치해 플레이어의 성향에 따라 다양한 전투 스타일을 소화할 수 있도록 고안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헤일로 시리즈의 근간인 레벨 디자인은 이번 작품에서도 어김없이 드러납니다. 오픈 월드 기반의 게임이 되면서 기본적으로는 개활지의 모습을 띄지만, 험준한 산이나 엄청난 높이의 선조 유물들이 곳곳에 위치했기에 Z축을 활용하는 전투 역시 충분히 가능하며, 맵 상에 존재하는 적성 시설에도 지하 통로나 특정 장치를 조작해야 열리는 통로 등 다양한 진입로가 존재합니다.

▲ 오픈월드이지만, 레벨 디자인은 여전히 훌륭하다

다른 장점도 말해 보죠. 헤일로 시리즈의 장점 중 하나인 다양한 역할군의 여러 무기 역시 제대로 준비되어 있습니다. 5종의 탄종이 존재해 상대하는 적에 따라 적합한 무기가 마련되어 있는 것은 물론, 플레이어의 스타일에 따라 전투 상황을 풀어갈 수 있게끔 비슷하지만 다른 성향의 무기들이 충분히 준비되어 있죠.

예를 들어 '저격'이라는 카테고리 내에만 해도 피해량이 강하진 않지만 연사가 가능하고 보호막 파괴에 특화된 스토커 라이플, 적당한 피해량과 차량 무력화 효과를 지녔지만 장탄량이 적고 다루기 까다로운 충격 라이플, 그리고 충격 라이플만큼 다루기 까다로운데다 탄약 수급도 어렵지만 굉장한 피해량과 고배율 스코프를 지원하는 저격 소총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 선조 무기인 하드 라이트 무기도 빠지면 섭하다

이 다양한 무기는 게이머 성향에 따라 플레이 스타일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것 외에 전투 상황의 변수가 되기도 합니다. 헤일로 인피니트에 등장하는 적들은 그리 종류가 많은 편이 아니지만, 이들과의 전투 상황은 매번 조금씩 다릅니다. 플레이어가 어떤 무기를 들고 있고, 어떤 성향의 전투를 펼치느냐에 따라 적들의 무기가 달라지고, 때로는 이 적들이 전투 중에도 플레이어를 상대하기 위해 무기고로 뛰어가 새 무기를 쥐어 오기 때문입니다.

이는 곧, 헤일로 시리즈의 또 다른 장점인 우수한 AI와 연결되는 부분입니다. 헤일로 시리즈의 특징 중 하나는 게임에 등장하는 아군이 굉장히 잘 싸운다는 점인데, 같은 AI를 공유하는 적들 또한 잘 싸운다는 거죠. 그리고, 아군 또한 여전히 잘 싸웁니다.

▲ 강력한 무기를 쥐어 준 아군으로 차량 게릴라 플레이도 가능

아군이라 해 봐야 시체로만 나오던 고전 FPS의 시대 이후, 슈터 게임에서 아군은 그리 드물지 않게 등장하곤 했습니다. 콜오브듀티 시리즈처럼 전쟁을 배경으로 하는 슈터의 경우 기본 사양이라 볼 수 있죠. 하지만, 이 중 실제로 아군이 아군 역할을 하는 게임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대부분 그럴싸한 병풍에 그칠 뿐이죠. 하지만, 헤일로 인피니트의 아군들은 보호하며 싸울 가치가 있는 진짜들입니다. 사격 정확도도 굉장히 높은데다 적당히 몸을 사려 가며 싸울 줄도 알고, 현재 들고 있는 무기보다 좋은 무장이 보이면 망설임 없이 바꿔 들면서 '앗싸!'하고 좋아합니다.

때문에, 헤일로 인피니트는 마스터 치프의 원맨쇼로 게임을 진행할 수도 있지만, 이 아군들과 함께 풀어나가는 방법도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전진 기지에서 수급한 무기를 아군에게도 쥐어줄 수 있기 때문에 로켓 런처로 무장한 다섯 명의 병사와 함께 6인승 차량을 몰며 주변을 초토화시키거나, 기관총좌에 아군 병사를 앉힌 스콜피온 전차로 적병들과 시설물을 싸그리 청소할 수도 있습니다.

▲ 입으로도 총을 잘 쏜다

이 AI의 훌륭함을 잘 느껴지게 하는 부분은 헤일로 시리즈의 또 다른 강점 중 하나인 완벽한 현지화입니다. 헤일로 시리즈는 첫 작품 이후 꾸준히 음성 더빙까지 더해진 강도 높은 한국어화가 이뤄져왔는데, 이번 작품 또한 마찬가지이기에 게이머가 만나는 모든 적과 아군의 반응을 한국어로 들어볼 수 있습니다. 옆에서 동료가 쓰러지자 혼비백산해서 도망치는 적이라든가, 치프와의 만남에 감격하는 아군, 전투 상황에서 상대에게 쌍욕(...)을 퍼붓는 병사들의 모습은 게임의 소소한 재미가 됩니다.

레벨 디자인과 무기 디자인, AI 뿐만 아니라, 게임의 기본기 또한 완벽에 가깝습니다. 간소하지만 확실히 인지 가능한 타격 이펙트와 총기 사운드로 잡아낸 슈팅 감각은 물론, 종류가 많지는 않지만 명확히 다른 해결 방법들을 요구하는 적 개체, 그리고 사전 플레이 기간 단 하나의 버그도 보여주지 않은 완성도는 물론, 오픈월드 기반임에도 잊을만 하면 등장하는 멋진 연출의 컷씬(미리 준비된 컷씬이 아니기에 플레이어가 쓰던 장비를 그대로 들고 나와 더 멋집니다)과 등장인물의 심리 묘사에 이르기까지, 이 정도는 대충 해도 되겠지 싶은 부분까지 다듬어냈다는 걸 게임 플레이 도중 충분히 느낄 수 있습니다.

▲ 사회생활에 능숙한 치프(미취학아동 시절 납치당해 군인으로 한평생 보냄)



모두에게 '완벽한 게임'은 아니지만, '훌륭한 게임'으로서는 부족함이 없다.

'전작들의 장점을 모두 지킨 채, 성공적으로 캠페인 디자인을 바꿔낸 게임'

지금까지 말씀드린 '헤일로 인피니트'라는 게임입니다. 헤일로 인피니트는 두말 할 여지없이 훌륭한 슈터이며, 훌륭한 게임입니다. 스스로 자신만만하게 '올드 팬'이라고 할 수는 없는 제 입장에서 굉장히 보수적인 헤일로 시리즈의 올드 팬들도 만족하고 플레이할 수 있는 게임이라 말하긴 어렵겠지만, 일반적인 게이머로서 헤일로 인피니트의 캠페인은 굉장히 만족스러운 경험을 주는 슈터였습니다.

물론, 이 게임이 완벽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게임을 플레이하다보면 어쩔수 없이 눈에 들어오는 단점이 있기 마련이고, 헤일로 인피니트 또한 예외는 아닙니다. 그 중, 가장 먼저 꼽을 수 있는 단점은 이 게임을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는 헤일로 시리즈의 복잡한 배경 설정과 지난 서사를 어느정도 알고 있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 앞 한 6화쯤부터 드라마 보는 느낌은 어쩔수 없다

헤일로 인피니트의 이야기는 전작인 헤일로5 시점에서 벌어진 피조물 봉기를 일으킨 AI인 코타나에 대한 제압 작전을 실행한 이후를 그립니다. 이 시점만으로도 서사를 중시하는 게이머들에게는 어렵습니다. 헤일로 시리즈는 단순히 외계 세력 코버넌트와 지구인 세력인 UNSC의 전쟁이 다가 아닙니다.

선조, 선각자, 플러드, 계승자, 코타나, 스파르탄, 그리고 게임 시리즈의 이름인 '헤일로'에 이르기까지 온갖 고유명사가 떡칠되어 있는 복잡한 구조의 세계관이 밑바탕에 깔려있는데다, 헤일로 인피니트의 시점은 이미 대전쟁이 지나가고, 한 번의 전쟁이 더 일어난 이후입니다. 게임 중 최대한 과거사를 언급하지 않고 현재에 집중하려는 모습이 보이긴 하지만, 주요 서사 구조를 미리 파악하지 못했다면 '뭐지?', '왜지?', '어떻게...?'라는 의문을 품을 부분이 너무 많습니다. 오래된 시리즈라면 당연한 현상이지만, 헤일로 인피니트는 콘솔의 굴레를 벗고 PC게이머들을 본격적으로 포용하는 시점이라는 의미가 있으니 이 부분은 보다 안배를 철저히 했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 헤일로라는 시리즈만의 이 우주적 웅장함은 확실히 유니크한 감성

또한, 헤일로 시리즈 특유의 미끄러지는 탈것 조작감도 여전합니다. 본작 뿐만 아니라 헤일로 시리즈의 모든 탈것들은 육중한 움직임보단 지나치게 가벼운 무게감을 보이는데, 본작 또한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조금만 삐끗하면 차량이 전복되어 버리는데다 굉장히 쉽게 파괴됩니다. 멀티플레이야 그렇다 쳐도 캠페인 플레이의 조작감은 다소 아쉬운 느낌이죠.

무기와 탄약 간 밸런스도 문제가 됩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헤일로 인피니트에는 여러 무기가 기본형과 개량형까지 준비되어 있는데, 개량형은 전진 기지에서만 입수가 가능한데다 기본형과 탄약 호환이 되질 않습니다.(탄약 상자에선 가능하나, 다른 총기에서 수급 불가) 예를 들어 개량된 제식 소총 'MA40'의 경우 일반판보다 장탄량이 줄어든 대신 정확도가 올라간 버전인데, 최초 지급 탄을 제외하면 일반 탄을 활용할 수가 없어 일회용으로 쓰고 버려야 합니다. 개량형 무기를 해금하기 위해서는 발러 포인트를 꽤 모으거나 적 현상수배범을 찾아 처리해야 하는데, 그렇게 무기를 모아도 탄약 호환이 안되다 보니 사실상 쓸 이유가 거의 없습니다.

▲ 무기를 뽑으면 뭘 하나 탄약보충이 안되는데

마지막으로, 넓어진 맵 사이즈에 비해 플레이 감각은 늘 비슷하다는 것도 아쉬운 부분입니다. 오픈월드에 위치한 적 시설물들을 사보타주하거나 장악하는 콘텐츠가 주를 이루는 만큼, 다대일, 다대다 전투 외에도 잠입이나 침투, 무소음 플레이를 디자인하기에 최적의 무대가 마련되어 있음에도 게임의 전투는 언제나 전면전입니다. 애초에 소음 기능이 없으니, 강력한 적 하나를 저격으로 처리하거나 주포로 날려버리고 나면, 언제나 비슷한 전투가 벌어지죠. 뭐 '이게 헤일로다' 하면 할 말은 없지만, 잘 만든 필드에 비해 플레이 디자인이 다소 단조롭게 느껴지는 건 어쩔수 없었습니다.

▲ 단점은 있지만, 여전히 헤일로 인피니트는 훌륭하다.

그렇다 해도, '헤일로 인피니트'가 훌륭한 게임이라는 건 변함이 없습니다. 단조로운 플레이 감각을 제외한 단점들은 그리 문제라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며, 플레이 감각 또한 헤일로의 근본이 잠입 액션이나 오픈월드 게임이 아닌 정통 슈터라는 점을 감안하면 오히려 이전 대비 좋아졌다고 할 수 있을 뿐, 더 바라는 건 욕심일 겁니다.

오히려 이 변화를 헤일로 시리즈가 앞으로 나아갈 여정의 첫 걸음이라 생각한다면, 헤일로 인피니트는 맡은 역할을 충분히 해낼 저력을 갖췄다고 감히 말하고 싶습니다. 글로벌 SF 프렌차이즈로서 오랜만에 등장한 신작으로서, 우울했던 2021년 후반기 슈터 게임계의 생존자로서, 그리고 XBOX 진영의 큰형님이자, 희망으로서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