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와 어려움 사이, 팽팽한 줄다리기


게임의 난이도는 재미와 직결될 만큼 중요한 요소 중 하나입니다. 난이도가 너무 쉬우면 아무리 독창적이고 신선해도 금방 지루함을 느낄 수 있고 또 반대로 너무 어렵다면 게임에 재미를 붙이기도 전에 흥미가 식어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난이도가 너무 높다면 진입 장벽 때문에 소수의 사람만 즐기는 게임으로 전락해버리기 쉽습니다. 이는 사업적인 성과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대부분은 게임의 난이도를 조절하는 옵션을 만들거나 혹은 적당한 난이도 곡선을 그려 유저가 차츰 게임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 방법을 채택하죠.

지난 19년, 알파 테스트를 시작한 GTFO는 꽤 충격적인 결과물을 내놨습니다. 알파 테스트에 참여한 15만 명의 유저들 가운데 클리어 한 유저가 272명, 퍼센트로 비교하면 0.18%로 1%조차 채 넘지 못한 것입니다. 보통 이런 결과를 받으면 게임의 난이도를 대폭 수정할 겁니다. 어렵고 괴짜 같은 게임이란 낙인이 찍히면 대중적으로 성공을 거두기 어려울 테니까요.

하지만, 10 Chambers의 생각은 조금 달랐습니다. 오히려 이런 결과물에 흡족한 것처럼 보였죠. 이는 2차 알파 테스트의 결과를 보면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1차보다 2배 가까이 참여율이 늘었지만, 고작 1.25%의 클리어율에 그쳤기 때문입니다. 이후 얼리 엑세스에서도 그들의 하드코어한 난이도 설계는 계속되었고 어느새 "세계에서 가장 어려운 FPS"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10일, GTFO가 정식 출시를 맞이했습니다. 일반적인 난이도 공식대로라면 소수의 놀잇거리가 되어야겠지만, 기사 작성일 기준으로 2만 2천 개가 넘는 스팀 평가와 매우 긍정적인 반응을 보여주고 있죠. GTFO는 어떻게 해서 하드코어한 난이도를 그대로 유지하되 게이머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었던 걸까요. 정식 출시와 함께 대규모 업데이트가 이뤄진 게임을 플레이해보면서 그 해답을 찾아봤습니다.


게임명: GTFO
장르: 호러 FPS
출시일 : 2021. 12. 10
개발 : 10 Chambers
배급 : 10 Chambers
플랫폼: PC



하드코어할 수 밖에 없는 게임 설계

먼저, 왜 GTFO가 세계에서 가장 어려운 FPS로 불릴 수 있는지 게임의 시스템을 살펴보겠습니다. GTFO는 호러 FPS 게임으로 4인 코옵 플레이를 제공합니다. 플레이어들은 폐쇄된 지하 연구소에 들어가서 특정 목표를 달성한 뒤 탈출해야 하며, 그 과정에서 기괴한 모습의 괴물들과 마주치게 되죠.

4인 코옵을 제공하는 FPS 게임하면 보통 '레프트 4 데드'를 떠올릴 겁니다. 4명이서 달려오는 좀비들을 학살하며, 탈출 지점으로 달려나가는 게임 전개도 어딘가 비슷한 느낌이죠. 괴물을 상대하는 또 다른 4인 코옵 게임인 '워해머: 버민타이드2'도 강력한 영웅들이 달려드는 몬스터를 학살한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GTFO는 앞서 소개한 게임과 근본적으로 다른 방향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폐쇄된 지하 연구소는 한정된 자원밖에 남아있지 않으며, 적들의 수는 굉장히 많습니다. 플레이어 캐릭터는 그저 평범한 인간인데 반해 괴물은 굉장히 강력한 편이죠. 따라서 적을 발견하는 족족 마구잡이로 쏴죽이는 플레이보단 은신, 잠입하면서 아주 조심스럽게 목표를 달성해야 합니다.

등장하는 적들도 은신 플레이를 권장하듯 평소에는 동면 상태에서 가만히 있다가 특정 상황에 반응하는 형태를 보이고 있습니다. 지하라는 지리적 특징을 반영하듯 시각보단 청각, 빛에 반응하며, 가끔씩 몸을 움직여 주변을 탐지하는데요. 조심스럽게 접근해서 근접 무기로 때리면 손쉽게 쓰러트릴 수 있지만, 만약 동면 상태의 적을 깨우면 알람을 울려 주변에 있는 모든 몬스터를 깨워버립니다. 한 구역 내에 보통 4마리에서 많게는 수십 마리가 있기 때문에 될 수 있으면 이런 상황 자체를 피하는 것이 이롭습니다.

▲ 한 번의 실수가 미션의 성공 유무를 판가름한다

적들을 근접 무기로 안전하게 처리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한정된 자원 때문입니다. 전투를 하다 보면 체력과 탄약은 어떻게든 소모될 수밖에 없는 자원인데 이를 채워줄 마땅한 장치가 별로 없습니다. 잠겨있는 사물함이나 상자 등을 일일이 뒤져봐야 하는데 맵에 랜덤으로 생성되기 때문에 찾기가 쉽지 않죠. 설령 소모품을 찾았다고 해도 생각보다 많은 양을 채워주지 않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불필요한 전투는 피하고 최대한 아끼면서 진행하게 됩니다.

또 게임에 기본적인 것조차 알려주는 튜토리얼이 없습니다. 시작부터 별말도 없이 실전 상황으로 돌입하며, 근미래를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무기나 장비들도 생소한 것들이 많습니다. 소모품의 경우, 별다른 설명이 없으므로 직접 써보기 전에는 이게 도대체 뭐에 쓰이는 물건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죠.

그래도 여기까진 괜찮습니다. 게임은 하다보면 점차 익숙해지고 한정적인 자원과 잠입 플레이는 어느 정도 숙련도가 쌓이면 조금 번거로울 뿐이지 어떻게든 적응할 수 있으니까요. 게임의 난이도를 최악으로 끌고 가는 진짜 주범은 극한의 상황으로 몰고 가는 랜덤 이벤트와 구역 이벤트입니다.

▲ 보안문을 열기 위해선 어쩔 수 없이 몬스터 웨이브를 막아야 한다

폐쇄된 지하 연구소는 A, B, C 등의 구역으로 나뉘어 있는데 다른 구역으로 넘어가기 위해선 반드시 보안문을 통과해야 합니다. 문제는 보안문을 열려고 할 때 자동으로 알람이 울리게 되고 이는 근처에 있는 모든 몬스터를 깨워버린다는 점입니다. 보안문마다 알람을 해제하는 방식이 다양하며, 대부분은 몰려오는 적을 막으면서 해제를 수행하게 됩니다. 전투를 피하고 싶어도 게임 내에서 강제적으로 전투 상황을 만들어내는 것이죠. 이 때문에 자원을 아끼고 싶어도 어쩔 수 없이 써야 하는 상황이 자주 생겨나며, 일반적인 상황일지라도 엄격하게 자원 소모를 통제할 수밖에 없습니다.

또 다른 문제는 이런 조심스러운 플레이를 혼자가 아닌 네 명이서 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사람이 많으면 그만큼 좋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어떤 행동을 하든 신중해야 하는 이런 게임에서는 사람이 많다고 꼭 좋은 게 아닙니다. 네 명 다 숙련자라고 해도 실수 한 번 하는 순간 나락으로 떨어지기 쉬운 게임이라 굉장히 수준높은 분대 플레이를 요구합니다.

따라서 게임에서도 4명의 파티원을 구해 손발을 맞추기를 강력히 권장하고 있죠. 게임은 기본적으로 멀티 플레이 매칭을 제공하긴 하지만 파티원이 구해지지 않으면 4인 미만으로 갈 수도 있는데요. 얼리 엑세스 당시에는 빈자리를 채워줄 마땅한 장치가 없었지만, 정식 출시 때 A.I가 빈 자리를 채워주는 업데이트가 생겨 그나마 상황이 나아졌습니다.

▲ 나 좀 살려줘...

정리하자면 GTFO는 4인 코옵 플레이에 초점을 맞추고 게임을 설계했으며, 굉장히 엄격한 파티 플레이를 권장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네 명의 합이 완벽하게 맞아도 난이도가 높아질수록 예상치 못한 상황에 파티가 터질 확률이 크기 때문에 어느 정도 운도 따라줘야 하죠. 이는 실력과 별개의 문제라 어찌 보면 굉장히 불합리한 난이도 설계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불편함을 압도하는 분위기와 택티컬 플레이

불친절하고 그저 어렵기만 한 게임은 꽤 많습니다. 그런 불편함을 뛰어넘을 정도로 재미있는 게임이 소수일 뿐이죠. GTFO는 불편하고 불친절한 게임이 맞습니다만 이를 감내한다면 생각보다 재미있는 게임입니다. 물론 누구나 재미있을 정도로 대중적인 게임은 절대 아닙니다. 장르부터 호불호가 갈리는 호러인데다 굉장히 어려운 게임이니까요.

GTFO는 굉장히 어려운 게임이지만 무턱대고 어렵게만 만든 게임은 절대 아닙니다. 단순히 어렵게만 만들었다면 이렇게까지 큰 주목을 받지도 못했을 겁니다. GTFO는 어중간한 느낌으로 게임을 만들바엔 아예 확실한 타겟층을 노리겠다는 생각으로 게임을 만든 티가 곳곳에서 묻어나는 게임입니다.

▲ 미션 시작부터 분위기가 장난 아니다

GTFO는 시작부터 끝까지 소름 돋고 숨 막히는 심리적 느낌을 플레이어에게 선사합니다. 호러 게임을 좋아한다면 게임의 오프닝 화면에서부터 빠질 수밖에 없을 정도로 말이죠. GTFO에 등장하는 플레이어 캐릭터는 모두 죄수라는 설정을 지니고 있는데요. 죽음을 코앞에 뒀기 때문인지 일반적인 게임의 캐릭터라면 볼 수 없을 정도로 불안정한 심리 상태를 가감 없이 표현하는 편입니다. 가령, 로비 화면에서 틱 장애를 앓고 있는 캐릭터는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며, 게임 중 피해를 입거나 죽을 위기에 처하면 극한의 감정을 표출하면서 살려달라고 울부짖습니다.

그리고 플레이어는 이 모든 것을 직접 보고 들으면서 마치 내가 저런 곳에 있다면 어떨까 하는 느낌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게임의 배경이 되는 폐쇄된 지하 연구소의 분위기도 이런 호러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데 한 몫하고 있습니다. 폐쇄된 곳이라는 특징을 반영해 시설 대부분은 암전 상태이며, 지하라는 지리적 특징 때문인지 구역 곳곳에 안개가 자욱하게 낀 곳도 존재합니다. 눈앞만 겨우 비춰주는 손전등마저 없다면 한 치 앞에 있는 것도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말이죠.

▲ 저런 곳에서 제정신을 유지하는게 오히려 이상할 지경

이런 어둡고 습한 분위기에서 소리와 빛에 반응하는 몬스터가 만나니 게임을 하는 내내 숨 막히는 공포감을 선사해줍니다. 눈앞에 뭐가 안 보이니 손전등은 켜야 하는데 그러자니 빛에 몬스터가 반응해서 깨어날까 봐 두렵고, 어디에 뭐가 있는지 알 수가 없으니 항상 긴장 상태를 유지해야 합니다. 천천히 움직이는데 답답함을 느낄 수조차 없을 정도로 주변 분위기가 압도적인 게임은 오랜만이었습니다.

한편, GTFO에서 연구소로 탐사를 떠나는 것을 런다운이라고 부르며, 연구 시설에서 탐사를 완료할 때마다 점점 아래층으로 내려가게 되는데요. 런다운은 대형 업데이트마다 달라지며, 현재 정식 출시에 등장한 런다운은 #006이라고 불립니다. 런다운마다 정해진 맵과 목표가 있으며, 안에 배치되는 소모품과 적들만 랜덤으로 바뀌게 되는데요. 따라서 반복적인 플레이를 통해 게임에 숙달되는 것이 어느 정도 가능합니다.

▲ 터미널에서 목표를 입력해야 진행이 가능하다

▲ 코딩하는 느낌

만약 사전에 4인 파티를 짰다면 계속 도전해보면서 서로의 합을 맞추고 게임의 엔딩을 볼 수도 있다는 소리죠. 앞서 언급했듯 GTFO는 4인 플레이를 권장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많을수록 실수나 챙길 것이 많아진다고 했지만, 실보다 득이 크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게임은 주 무기와 보조 무기, 특수 무기를 사전에 정할 수 있는데 특수 무기의 경우 잘만 활용한다면 큰 피해 없이 몬스터 웨이브를 막을 수 있습니다. 또한, 적의 위치를 탐색해주는 도구도 있으니 원활한 플레이를 위해선 사전에 역할을 나눠둘 필요가 있습니다.

게임을 하다 보면 악랄한 난이도 때문에 파티원끼리 자연스럽게 뭉칠 수밖에 없는데요. 다른 게임처럼 혼자 잘한다고 깰 수 있는 게임이 아니기 때문이죠. 몬스터를 조용하게 정리할 때도 서로 합을 맞춰서 진행하게 되고 웨이브를 막을 때도 딱딱 정해진 대로 움직이는 행동 자체가 선사하는 쾌감이 꽤 큽니다. 자칫 실수하면 파티가 터질지도 모른다는 난이도가 파티의 결속력을 강하게 만들고 목표를 달성했을 때의 성취감도 두 배, 아니 세 배 이상으로 다가옵니다.





게임 내에서 보이스와 핑 시스템도 제공하고 있으니 자동 매칭에서 만난 유저들끼리도 어느 정도 합을 맞출 수가 있지만, 본격적으로 게임을 즐기고 싶다면 지인들끼리 파티를 짜는 것이 제일 속 편했습니다. 혼자서 한다면 빈자리에 인공지능을 넣어도 되긴 합니다만, 지하로 내려갈수록 게임이 점차 어려워지기 때문에 한계가 있는 편입니다.

사실 게임의 난이도보단 이런 분대 플레이에서 느껴지는 진입 장벽이 더 크게 다가옵니다. 반드시 4인 플레이를 해야만 게임의 재미를 느낄 수 있다는 점은 장점이자 단점이라고 생각됩니다. 일단 모아서 플레이해본다면 정말 재미있지만, 사람을 모은다는 것 자체가 어렵기 때문이죠. 개발자들도 이를 알고 있기 때문에 궁여지책으로 인공지능을 넣지 않았나 싶습니다.


전체적으로 봤을 때 GTFO는 친구들과 즐기기 딱 좋은 게임이라고 생각됩니다. 관련 커뮤니티에서 사람들을 모아서 즐겨도 무방하지만, 원체 게임의 난이도가 어렵기 때문에 몇 번의 실수가 큰 부담으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 결국, 속 편하게 즐길 수 있는 사람들과 하게 되더군요.

아무튼 같이 할 수 있는 지인들만 있다면 GTFO는 어려운 난이도에도 충분히 재미를 느낄 수 있을 만큼의 만듦새를 자랑합니다. 정식 업데이트를 통해 불합리다고 느껴졌던 레벨 디자인도 그나마 이해될 정도로 낮아졌고 인터페이스나 자잘한 부분에서도 대중적인 느낌을 어느 정도는 가져가려는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친구들과 웃고 떠들면서 할 정도로 화목한 분위기의 게임은 아닙니다만, 네 탓 내 탓 몰아가며 정겹게 할만한 게임을 찾고 있다면 GTFO를 조심스럽게 추천해봅니다.

▲ 성공의 짜릿함을 한 번 아는 순간 벗어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