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존 윅 형은 연필로도 사람을 죽여..


‘장인은 도구를 탓하지 않는다’.

누구나 다 아는 유명한 말입니다. 기본 실력이 출중한 사람들은 어떠한 장비를 갖다가 써도 본래 갖춘 실력은 변하지 않는다는 말이죠. 하지만 장인들이 장비는 더 까다롭게 고르니, 저도 제 장비 탓을 좀 해야 하겠습니다.

초보자의 손에서는 비싼 DSLR 카메라나 일반 콤팩트 카메라나 찍은 결과물에 큰 차이가 없지만, 전문가의 손에 들어가면 확연한 차이가 드러납니다. 게임 역시 비슷합니다. 게임을 즐기는 한 명의 유저의 입장에서 개인적으로 좋은 장비일수록 자기 능력을 100% 발휘할 수 있는 바탕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재작년부터 완벽한 장비는 아니더라도 나만의 컴퓨터를 꼭 갖고 말겠다는 결심을 했었는데, 게임을 좀 하시는 분들이면 모를 리 없는 그래픽 카드 대란이 찾아와서 1년 넘게 컴퓨터 조립 부품들을 장바구니에 넣었다 뺐다 하며 고민만 거듭했습니다. 게다가 주변에서 이 시국에 컴퓨터를 사는 건 너무 손해라는 얘기를 많이 하는 바람에 이번 연도에는 정말 못 사겠다고 하며 포기했었습니다.

하지만 2022년 1월, 새해를 맞이하여 저는 새로운 결심을 했습니다. 작년 한 해도 지긋지긋한 코로나에서 무사히 생존한 저를 위해 주는 선물을 하기로 했습니다. 기사를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끊임없이 치솟는 그래픽 카드의 가격을 보며 낙심하고 기다리는 시간만큼 후회만 커진다는 생각에 이번에야말로 스스로 주는 선물로 컴퓨터를 하나 장만하기로 했습니다.



내 인생 게임, 리그 오브 레전드
롤 너무 재밌엉-

▲ 징그럽게 많이도 했네..

▲ 정규 시즌 경기, 리프트 라이벌즈, 롤드컵까지 정복 완료!


한창 학업에 열중해야 했던 고등학생 시절, 동생의 컴퓨터로 봤던 챔피언 로그인 화면이 잊히지 않아 나중에 저 게임을 꼭 해보고야 말겠다는 다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그 게임이 바로 현재의 대세 게임인 '리그 오브 레전드(이하 롤)'였으며 그때 당시 제가 반한 챔피언은 '리산드라'였습니다. 이후 입시가 끝나자마자 고삐가 풀린 전 매일 혼자 PC방에 가서 롤을 했습니다.

저는 정말 롤을 좋아합니다. 대학생 때 저희 과에서 제 이름을 얘기하면 "아 롤 좋아하는 걔?"라고 통할 정도로 학점보다 롤을 더 중요시하는 학생이었습니다. 동기들을 모아 학과 내전과 다양한 e스포츠 대회에 참가했으며 나중엔 e스포츠 동아리에 들어갈 정도로 롤에 진심이었습니다.

LCK 시즌 때는 경기를 보러 나가면 다음 날에 집에 들어가는 게 일상이었으며 학기 중에 롤드컵을 보러 해외에 간 적도 있었습니다. 아마 티비에 나오는 연예인보다 모니터에 나오는 프로게이머들의 경기를 보러 가는 딸내미의 독특한 취향을 존중해주신 부모님 덕분에 눈치 안 보고 더욱더 맘 놓고 즐겼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흘러 흘러 어느덧 롤을 플레이한 지 6년 차가 되었습니다. 아직도 여전히 롤을 즐기고 있으며, 퇴근 후 늦은 저녁이 되면 친구들과 같이 게임을 하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것이 저의 소소한 낙입니다. 주변에선 이 정도의 애정과 노력이면 롤 프로게이머를 해도 되겠다고 했지만 아쉽게도 실력은 크게 나아지질 않아 데뷔하지 못했습니다.


▲ 이걸 왜 이기지?


이렇게 롤에 죽고 롤에 사는 저에게 최근 웃지 못할 사건이 터졌습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친구들과 칼바람 모드를 즐기고 있는데 10명의 유저가 한곳에 모여 한타를 시작하니 제 챔피언이 움직이지 않는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프레임과 핑을 확인해보니 프레임은 20 이하로 내려갔고 버벅거리는 화면만 보이기 일쑤, 결국 저는 약 24분 동안 1 킬밖에 못한 채 게임을 끝내야 했습니다.

이뿐만 아닙니다. 챔피언 픽 창에서도 일어나는 같은 현상 때문에 엉터리 룬을 들고 협곡에 달려간 적도 많으며(예를 들어 집공 이블린) 미드에서 한타만 하면 미친 듯이 뛰는 핑 때문에 게임을 즐길 수가 없습니다.

분명 저와 제 동생은 한 집에서 같은 인터넷을 쓰며 같은 게임을 하지만 동생 컴퓨터는 핑이 8~9 정도를 기록합니다. 반면 저는 핑이 평균 30인 상태로 매번 게임을 플레이하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간혹 핑이 1000이 넘는 경우가 있어 게임을 할 때 지장이 갈 정도였습니다.

저와 제 동생의 다른 점이 딱 하나 있는데, 바로 컴퓨터입니다. (동생이 옆에서 가만히 이 글을 보더니 "왜 실력이랑 손가락 안 적어?"라고 하길래 사뿐히 무시해줬습니다.)



너 그럼 여태까지 뭐로 게임 한 거야?
노트북으로 했는데요?

▲ 기계식 키보드를 샀는데 쓰고 싶어서 선택한 결과
따라 하지 마세요, 손목 다쳐요


저는 혼자서는 PC방을 잘 가지 않는 편입니다. 친구들과 다 같이 밖에서 만나 가거나 강의 수강 신청 혹은 e스포츠 경기 티켓팅을 하기 위해 갔던 순간을 제외하면 최근에는 게임을 하러 PC방을 간 적이 손에 꼽습니다. 사실 제가 가진 노트북으로도 롤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PC방과 거리가 멀어지게 된 영향도 있습니다.

처음 샀을 때는 누구보다 빠르게 남들과는 다른 속도로 게임을 즐겼지만, 이제는 전원을 켜는 것조차 버거워 보일 정도로 부팅 시간이 확연히 느려졌습니다. 올해로 7년이 된 노트북을 보여주면 다들 이 정도면 보내줘야 하는 거 아니냐는 걱정 어린 질문도 많이 받곤 했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모든 대학 과제부터 게임, 간단한 포토샵까지도 모두 이 100기가짜리 노트북과 함께했습니다. 제 첫 노트북이다 보니 좋은 추억들도 많았지만 파일 저장 못 해서 날아간 기억과 샷건 쳤는데 그대로 전원이 꺼져 탈주자로 신고당한 쓰라린 기억이 더 크게 남는 건 왜일까요? 결국, 올해는 미운 정 고운 정 다 들어버린 거북이 등딱지같이 생긴, 이 녀석을 떠나 보내줘야 하겠다는 결심을 했습니다.


▲ 듀얼 모니터 이거 맞나요?


비교 대상이 없었다면야 아마 저는 몇 년 더 이 노트북을 썼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회사에서는 엄청난 성능을 자랑하는 듀얼 모니터와 컴퓨터를 쓰다 보니, 집에 와서 게임과 작업을 하려면 불편한 점이 한두 개가 아니었습니다. 오죽하면 동생 노트북까지 빌려 제 나름대로 듀얼 모니터 환경을 만들어서 작업한 적도 있습니다.

특히 저는 다양한 게임을 좋아하는 유저이지만 장비가 안 받쳐줘서 6년 동안 롤 하나만 그 노트북으로 게임을 했습니다. 왜냐하면, 사양이 높은 다른 게임들은 물론 사양이 낮은 게임들을 깔아도 제 노트북에선 버벅거리기 일쑤였기 때문입니다. 친구들이 그 노트북으로 게임을 하는 제가 안쓰러워서 저는 장비 탓을 해도 인정해 준다고 얘기할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만년 실버인 거 아닐까요? 응, 아니야



도와줘요, IT맨!
감사합니다(넙죽)

▲ 구.. 구려!


▲ 이 정도면 깨끗한 편이지..


▲ 반짝 반짝 이쁘다


이런저런 상황을 고려하여 저는 드디어 새로운 본체를 하나 장만했습니다. 본체의 예상 가격을 볼 때마다 동료 기자가 정말 안타까워하는 눈초리와 함께 통곡했지만 저는 이번 기회가 아니면 진짜 영영 시기를 놓칠 것 같아서 있는 돈 없는 돈 끌어모아서 샀습니다. 여러 곳에서 컴퓨터 견적을 받은 후에 주변 사람들에게 자문해서 과연 이 견적이 최선인지 검토하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이후 제가 플레이하고 싶은 게임들을 고려하며 부품들을 선택한 뒤에 조립한 채로 우리 집으로 배송하는 방법을 선택했습니다. 드디어 집으로 본체가 오기로 한 날 저는 정말 경건한 마음으로 맞이해야 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결국, 엄마가 하라고 할 땐 안 하던 대청소를 시작했으며 오후 2시부터 시작한 청소가 저녁 6시가 다 되어야 끝이 났습니다.

그렇게 컴퓨터를 세팅하자마자 저는 롤을 깔아 플레이하기 시작했습니다. 노트북으로 플레이했을 때보다 훨씬 더 높은 프레임과 낮은 핑으로 게임을 하니 마치 처음 롤을 시작했을 때만큼 설렜습니다. 그렇게 동료 기자한테 롤을 플레이하는데 프레임이 100이 넘어간다고 하니 한참을 웃더라고요. 원래 그게 당연한 거라고 하면서 말입니다. 그 당연한 걸 저는 왜 이제 알게 됐을까요.

그러곤 그 좋은 컴퓨터를 롤만 플레이하고 있느냐는 일침을 들어서 이전 노트북으론 엄두도 못 냈던 게임들을 실컷 다운받았습니다. 배틀 그라운드와 각종 스팀 게임은 물론 RPG 게임까지 다양한 게임을 다운받은 뒤 친구들과 함께 즐겼습니다. 그리고 하는 김에 IT 인벤에서 자주 하는 그래픽 테스트도 한 번 해봤습니다.



새로 방에 입주하신 컴퓨터 정보
자세히 알아보자


PC 사양 정리
CPUAMD 라이젠 5-4세대 5600X 버미어
쿨러3RSYS Socoool RC510 RGB
메인보드MSI MAG B550 토마호크
VGAXFX 라데온 RX 6600 XT SWFT 210 CORE D6 8GB
저장장치삼성전자 PM9A1 M.2 NVMe (512GB)
Toshiba 2TB P300 HDWD120 (SATA3/7200/64M)
RAM삼성전자 DDR4 16GB PC4-25600 * 2
파워서플라이topower Guardian TOP-600DG 80PLUS BRONZE
케이스3RSYS R500 (블랙)



3D Mark
내 컴퓨터에서도 드디어 돌려본다



▲ 타임스파이 9,317 점


▲ 파이어 스트라이크 24,442 점


▲ 노트북으로 하는 롤


▲ 한타도 안 했는데 핑이 높아진다


▲ 같은 팀, 다른 핑


▲ 바뀐 컴퓨터로 플레이 한 롤 (햅삐)


▲ 데스크탑과 노트북 프레임 비교 그래프


두 대의 컴퓨터 프레임을 한눈에 비교하기 위해서 데스크탑과 노트북 모두 그래픽을 매우 높음으로 설정하고 벤치마킹 프로그램을 이용해 초반 5분의 프레임을 기록했습니다. 게임을 플레이하면서도 달라진 점을 확연히 알 수 있었지만, 그래프로 수치화한 뒤 본격적으로 비교하니 10배 가까이 이상 차이가 나서 놀라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보니 저는 게임도 잘 안 굴러가는 이 아이를 여태껏 학대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새로 바뀐 컴퓨터로 인터넷 서핑과 다양한 업무를 하니 기분 탓인지 몰라도 우리 집 인터넷이 이렇게 빨랐나 하고 다시 깨닫게 되었습니다. 컴퓨터를 이제 제대로 세팅하니 제 주변에 있는 모든 물품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여태껏 멀쩡하게 사용했던 있던 의자가 이제는 거슬리기 시작하고 모니터를 한 대 더 사고 싶은 욕심이 스멀스멀 기어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아직은 복구가 덜 된 통장 잔고에는 또다시 큰 타격을 입을 것 같지만 그래도 게이머라면 포기할 수 없는 게이밍 의자를 이제 장바구니에 담아뒀습니다. 이번에도 지난번과 같은 기약 없는 기다림을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나만의 아지트를 꾸미는 데에 첫발을 내디딘 기분이라 행복했습니다.


▲ 이고바바씨 인형 내줘요 제발
(출처: 로스트아크 공식 유튜브)


최근에는 새로운 게임을 시작했는데, 바로 '로스트아크'입니다. 작년 12월에 진행된 로아온 윈터를 실시간으로 보다가 귀여운 외모에 프링글스 콧수염을 달고 있는 '이고바바'씨에게 반해 플레이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는 군단장 레이드도 뛰면서 친구들과 함께 롤에서 입은 상처를 '로스트아크'로 치유하며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늦덕이 가장 무서운 법이라고, 고사양 RPG의 재미를 이제야 맛을 보게 되서 요즘엔 롤보단 로스트아크를 주로 하고 있습니다.

할아버지 컴퓨터와 함께한 지난 6년은 저에겐 영화 '올드보이'에 나오는 '오대수'의 심정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할 수 있는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작년까지만 해도 노트북으로 즐길 수 없던 게임들을 이제 마음 놓고 즐기니 삶의 질이 한껏 올라가며 역시 사람은 돈을 써야 행복하다는 걸 뼈저리게 느끼는 순간이었습니다. 기존보다 저렴하지 않은 가격으로 컴퓨터를 장만하긴 했지만, 개인적으로 게임에 대한 지식과 경험을 한층 더 넓힐 수 있어서 저에겐 값진 소비였다고 생각합니다. 이제는 동생이 제 방문 앞에 서서 어떤 게임을 하는지 보고 싶어서 기웃거리는 모습을 보니 왠지 모를 희열감을 느꼈습니다. (보고 있니 동생아)

그렇게 로스트아크에 빠져 살던 중 지난 7일부터 롤 2022년 시즌이 시작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잠시 떠나 있었던 마음의 고향으로 다시 돌아가기 위해 저는 새로운 마음가짐과 빵빵하게 준비된 장비들로 배치 고사를 보기로 했습니다. 시즌 초반에는 랭크 게임을 돌리지 않는 것이 원래 정석이지만 저는 참지 못하고 결국 혼란이 가득한 솔로 랭크 전쟁터에 뛰어들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님 티어는?
어?


▲ ?


▲ ??








▲ 참고로 지금 컴퓨터 뺏기게 생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