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나 휴식이 필요하다. 인간이라는 생물은 놀라울 정도로 높은 효율과 가능성을 갖고 있다. 제때 움직여주고, 필요한 연료만 넣어주고 제대로 휴식만 취해준다면 자가 회복을 하고 아무렇지 않게 다시 활동하는 놀라운 생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휴식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조금씩 삐걱거리기 마련이다. 기계조차로 제대로 된 관리와 운용 방침을 지키지 않으면 멈춰버리거나 큰 사고가 있기 마련인데, 사람은 오죽할까. 그러니 활동을 하는 인간에게 휴식이 필요한 건 매우 당연한 일이다.

그렇다면 휴식이란 노동이 있는 업계 어디에나 당연히 필요한 것인데, 왜 이번 기사에서는 하필 게임 '업계'만을 언급할까하는 의문이 있을 것이다.이를 논하기에 앞서 전체적인 산업 구조의 변화와 이에 대한 업계의 노동 환경 변화를 간략하게 나마 살펴볼 필요가 있다.


다른 모든 산업도 마찬가지겠지만, 특히나 게임 업계도 시장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특히나 근 몇 년간은 내외부적인 요인의 영향으로 큰 변화가 있었다. 이러한 변화는 국내 시장에만 머무르지 않고,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는 변화다.

콘솔-PC 게임 시장 위주의 구도는 '모바일'이라는 새로운 플랫폼이 각광받으며 크게 변화했고, 플랫폼에 출시되는 게임들에서도 대세 장르에 따라 개발의 변화가 심하다. VR과 메타버스도 빼놓을 수 없으며, 내수 시장에 집중하면서도 글로벌 시장 진출을 고려해야 하는 요소도 있다. 그리고 가장 큰 외적인 요인으로 'COVID-19' 이슈가 발생했다.

국내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COVID-19 대유행으로 비대면 시대가 되면서, 기술 발전 속도와 시장의 환경 및 규모가 급속도로 확대되고 있다. 특정 시기를 기준으로 게임 산업은 오프라인 매장에 주력한 아케이드 시장을 제외한 대부분의 부문에서 더욱 확대됐다. 실질적으로 '게이머'의 층이 늘어났다고 볼 수 있으며 이러한 변화들은 각종 데이터 분석 보고서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주 52시간제라는 '환경'은 대부분의 노조와 종사자들이 워라밸을 보장하는 '최소한'의 법적 보호 장치로 받아들이고 있다. 2021년부터 5인 이상 모든 사업장에는 주 52시간제가 적용되고 있으나, 게임 시장의 변화와 업계의 특수성 및 대응에 대해서 사업자 측은 이에 반대의 목소리를 내는 상황이다.

설상가상으로 게임 업계의 양극화는 COVID-19이후로 더욱 가속화되는 양상이다. 사업장이 양극화되면 결국 노동 환경은 인력 및 채용에 양극화로 이어지고 이는 '노동 환경'의 양극화로도 이어진다. 결과적으로는 이러한 대응에는 단순히 사업자-근로자의 합의만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정부 차원에서의 관심과 지원 및 양성책이 더욱 절실한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2021 게임산업 종사자 노동환경 실태조사 연구'에 따르면, 종사자들은 주로 추가 인력 채용에 따른 인건비 지원과 주 52시간제 준수를 위한 제작 인프라 확충, 그리고 작업 환경 개선에 필요한 비용 지원 및 근로/원격 시스템 등의 마련과 개선에 지원을 요구하고 있다. 추가적으로 명확한 제도 운용 방안을 정부에서 제시하기를 원한다.

사업체들도 인건비 지원과 제작 인프라 확충 개선 비용 지원 등에 대한 부분은 비슷하지만, '산업 틍성'을 반영한 근로시간 제도 마련을 요구하고 있다. 환경에 따라서 유연하게 제도를 운용해야 하는 산업의 특수성에 대해 근로자와도 조율을 하면서도 이에 대해서 정부가 관심 있게 지켜보기를 원하는 셈이다.

▲ 게임의 경우, 출시 당일의 개발실은 말로 표현하기 힘든 분위기와 업무가 지속됐다.
그런데 이런 강도 높은 업무 이후 '휴식'이 보장이 되지 않는다면 견딜 수 있을까?

게임업계의 특수성은 '크런치'로 대표된다. 일명 "월화수목금금금". 출시를 앞두고 강도 높은 노동으로 완성에 심혈을 기울이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러한 크런치들은 게임업계에서도 예전부터 존재해왔고, 실제로 현재에도 모두 사라졌다고 하기에는 무리인 일종의 관행이다.

물론 크런치로 인한 강도 높은 근무는 어느 정도 기회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 모른다. 출시를 앞두고 콘텐츠 혹은 게임의 높은 퀄리티가 등장하는 경우도 있다. 그렇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크런치 이후 휴식이 보장된, '합법적인' 선에서의 노동에서만 말할 수 있는 경우다. 실제 크런치의 경우는 대부분 이러한 규칙이 올바르게 지켜지지 않을 가능성이 적지 않다.

보고서에 따르면 5인 미만 회사 소속 종사자들의 48.3%가 크런치 모드를 경험했고, 그 시기에는 평균 주 61.4시간을 근무하면서 크런치 모드의 경험 비율과 노동강도가 상대적으로 높다고 응답했다. 크런치 모드 이후 휴식이 보장되는 정도에 있어서도 회사 규모가 클수록 보장되는 정도가 높았다. 이는 앞서 언급한 '양극화'를 대표하는 예시라고 볼 수 있다.

크런치로 '결과물'의 퀄리티가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더라도, 기업의 근간이 흔들릴 수도 있다. 너티독의 언차티드4의 예시가 대표라고 할 수 있다. 언차티드4는 이미 개발자들이 '라스트 오브 어스'의 마무리로 강도 높은 크런치 모드에서 제대로 된 휴식을 하지 못하고 다시 크런치 모드에 돌입하게 됐고, 결과물은 좋았으나 발매 이후 많은 직원들의 장기 휴가나 회사를 떠나는 일이 발생했다. 많은 명작을 배출한 '너티독'은 강도 높은 크런치 모드가 업계의 본격적인 화두에 오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강도 높은 크런치를 한다고 완벽한 게임이 나온다는 보장도, '사이버펑크2077'의 사례로 반박할 수 있다.

▲ 크런치에 대한 인식도 기업과 근로자간의 차이가 있다.

멀리 해외까지도 갈 필요 없이, 국내에서도 이런 사례는 적지 않다. 2017년에도 한차례 위메이드 아이오의 크런치 모드에 대해서 강도 높은 비판이 있었고 위메이드도 이를 철회하며 부랴부랴 진화에 나선 적도 있다. 그리고 업계에 몸담은 사람이면 크런치에 대해서 누구나 쉽게, 종종 이야기를 듣는 건 부지기수다. 괜히 '판교의 등대'라는 말이 나온 것이 아닌 것처럼.

그래도 긍정적인 부분은 업계에 관행이던 크런치 모드가 매년 감소하고 있다고 조사된 점이다. 2019년 60%의 경험률에서 23%까지, 그리고 지난해는 15% 정도까지 줄어든 건 기업에서도 나름 노력을 하고 있는 모양새다. 이는 앞서 언급한 주 52시간 근무의 영향이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고 분석할 수 있다.

크런치가 '없어져야 하는 문화'임에는 여전히 갑론을박이 존재하겠지만, 결과적으로는 크런치라는 강도 높은 근로 없이도 '훌륭한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는 문화와 환경이 조성되어야 하지 않을까. 물론 크런치의 발생 원인이 다양해 크런치가 사라진다는 건 다소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일 수도 있다. 기업과 근로자 간 합의 하에 크런치가 이루어지더라도 확실한 휴식 보장이 필요하며, 이로 인해 장기간 휴식을 한 근로자들에게는 확실히 업무로 복귀할 수 있는 재활 프로그램과 제도 마련이 만족스럽게 이뤄지는 것이 가장 현실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 크런치의 필요성도, 아직은 '전혀 필요없다'고 모두가 공감할 사안은 아니기도 하다.

노동의 산물은 훌륭한 결과만 있는 게 아니다. 노동으로 인해 누적된 피로는 종사자의 건강을 해치는 만큼, 기업 입장에서도 단순히 근로자를 쓰고 버리는 존재로 생각하지 않고 함께 기업을 이끌어갈 인재이기에 당연히 휴식을 보장해야 한다. 그렇지만 이러한 휴식이 완벽하다고 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2021년 1월부터 단 한 가지라도 건강과 관련된 문제가 있다고 응답한 종사자의 비율이 90%를 넘는다. 그중의 88%는 건강 문제아 '일'과 관련이 있다고 응답했다. 수면 장애부터 요통, 상하지 근육통이나 전신 피로 등 부문도 다양하다. 이러한 응답과 비율은 특히 '일'과 관련된 부분에서 눈에 띄게 두드러진다. 아래 표만 놓고 봐도 모든 요소를 불문해도 될 정도로 개발자들에게 좀 더 휴식이 필요하다는 이유가 뚜렷하게 나타난다.

추가로 하나 더 덧붙이자면, 근로자들의 번아웃 증후군도 빼놓을 수 없다. 근로자들이 극심한 피로와 스트레스로 인해 체력이 저하되고 일에 견디지 못해 성취감과 열정을 잃어버리는 순간, 기업의 성장 동력도 크게 저하될 수밖에 없다. 기업 입장에서도 근로자들의 건강을 체크하고, 꾸준히 열정을 불어넣으면서 성취감을 달성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할 것이다.

▲ 건강문제 경험자 중 건강 문제와 일과의 관련성이 있다고 대답한 종사자가 88%가 넘는다.

게임 산업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창의성이 발휘되는 산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람들에게 '재미'를 제공하는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경향도 무시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즐거움은 상대적이지만, 최소한 게임을 만드는 사람이 즐겁게 만들 수 있는 환경이 아니더라도 괴롭지 않게 만들었으면 한다는 개인적 바람이 있다.

앞서 언급한 대로, 사실상 개발자들에게 좀 더 휴식이 필요한 건 누구나 알 수 있다. 기업들의 노동 환경 인식 재고와 정부, 그리고 노조의 등장으로 게임 산업의 노동 여건은 10년 전과 비교해도 많이 나아진 것은 틀림없다. 그렇지만 여기서 멈추지 말고, 끊임없이 기업과 근로자 양자 간의 대화를 이어가면서 더 나은 길을 물색해야 한다.

개발자들에게 휴식이 더 필요한 건 "제대로 만들기 위해서", 즉 더 나은 게임을 만들기 위해서다. 게임에서도 고난도 콘텐츠를 즐길 때, 게이머 본인의 컨디션이 좋지 않다면 클리어하기 어려운 것과 마찬가지다. 게임을 제작하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고, 많은 생각과 창의적인 사고 및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장기 레이스다. 그만큼 개발자들에게도 만드는 게임을 포기하지 않고 이끌어갈 수 있는 건강을 확보하고 컨디션을 관리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일은 근로자-기업만의 문제로도 끝나지 않는다. 주 52시간을 비롯해 노조의 활동이 꾸준히 필요하며, 기업 입장에서도 근로자들과의 대화를 통해 더 나은 업무 환경을 조성하고 정부에서는 이를 지원할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 안정적으로 정착시켜야 한다. 때마침 게이머뿐 아니라 게임 업계에 대한 정치권의 관심도 높아졌으니, 2022년부터는 한층 더 이에 대한 목소리를 굵게 내야 할 때가 된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