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3의 오프라인 행사 취소 소식을 전한 지 2주도 되지 않았다. 그때만 해도 미국의 비디오 게임 산업 협회인 엔터테인먼트 소프트웨어 협회(Entertainment Software Association, ESA)는 지난 2021년처럼 E3 2022의 온라인 행사에 무게를 실은 성명문을 발표했다.

하지만 17일 전문 매체 게임즈비트(벤처비트)의 기자 제프 그럽은 자신의 틱톡 채널과 유튜브 채널을 통해 E3의 오프라인 행사 취소 결정과 함께 온라인 행사 취소 가능성에 관해 이야기하는 1분 분량의 영상을 업로드했다. 자동차 안에서 급박하게 찍은 듯한 영상에서 제프 그럽은 취소에 대해 정확한 이유를 설명하지는 않았지만, 현재의 혼란스러운 상황이 지속된다면 제프 케일리 주도로 이루어지는 디지털 게임 행사, 서머 게임 페스트가 그 자리를 대체할지도 모른다고 언급했다.

제프 그럽의 준수한 보도 신뢰도와는 별개로 ESA가 아직 공식 성명을 내놓지 않은 상황인 만큼 E3 2022의 온라인 행사 가능성은 여전히 열려있다. ESA와 협회사간의 갈등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확실한 건 E3 취소가 대규모 팬데믹 상황에서 처음 취소가 결정된 2020년과 비교하면 그다지 큰 뉴스가 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 E3 2022 완전 취소를 주장한 제프 그럼

지난 2020년 E3의 취소와 함께 행사의 존폐에 대해 고민하는 글에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E3는 날이 갈수록 변해가는 오늘날 게임 행사와 비교해 여전히 낡았다고 말이다.

실제로 지난 2010년대 들어서며 온라인 영상 채널이 발달하자 게임 행사의 무게 중심은 현장에서 온라인, 디지털로 기울어졌다. 2011년 자사 게임을 소개하는 온라인 프레젠테이션 닌텐도 다이렉트를 시작한 닌텐도는 디지털 전환을 일찌감치 이뤄낸 게임사다.

닌텐도 다이렉트는 탄탄한 게임 정보와 직접 등장한 개발자들의 소개, 흥미로운 프로모션 영상 등 소위 정보의 밀도를 높였다. 이를 통해 온라인이기에 어쩔 수 없었던 현장감 부족을 극복했다. 그리고 당시에는 부족하다고 느껴졌던 현장감도 오늘날 영상 플랫폼의 발달로 활발한 채팅에 더 익숙한 세대에게는 그다지 큰 문제가 되지도 않는다.

오늘날에는 닌텐도 외에도 소니(SIE), MS(Xbox) 등의 플랫폼 홀더 등이 스테이트 오브 플레이나 인사이드 Xbox 등을 통해 게임을 소개하고 있다. 또한, 대형 배급사 중심의 게임쇼, 여러 인디 게임사들을 소개하는 통합형 게임 컨퍼런스 등이 온라인을 통해 팬들을 만나고 있다. 더군다나 E3의 상징과도 같았던 미디어 쇼케이스 역시 대중이 쉽게 확인할 수 있도록 온라인을 통해 생중계되며 미디어만의 대형 쇼케이스는 사실상 사라진 지 오래다.

▲ 해외 온라인 쇼케이스의 틀로 자리잡은 닌텐도 다이렉트

그렇다고 온라인으로 열린 E3가 오프라인 행사의 아쉬움을 채워줬을까? 알다시피 그마저도 완벽하지 못했다. 각 게임사 주도의 온라인 쇼케이스에서 공개된 대작 몇몇이 주목받았을 뿐 전체적인 행사 분위기는 예년만 못했다. 그마저도 게임사 개별 온라인 쇼케이스에서 충분히 공개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

오히려 늘어지는 행사 기간에 맞춰 각 게임사 쇼케이스의 간격도 하루, 이틀 단위로 나뉘었고 중간에는 비교적 소규모 게임들의 소개나 이벤트 정도로 채워지며 부족한 내실 이야기가 떠오르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주목받은 건 연말 열린 시상식 더 게임 어워드(TGA)였다. 글로벌 게임 시상식으로 알려진 TGA는 4시간이 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스테이지 하나를 두고 주요 부문 게임 시상과 함께 신작 정보를 쏟아냈다. 수일에 걸쳐 나뉜 게임 쇼케이스보다 집중도도 높고 소개된 주요 게임도 관심도가 높은 작품들로 꾸려졌다. E3 나흘보다 더 낫다는 호평도 나왔다.

그렇다면 E3와 함께 손꼽히는 게임쇼들도 함께 부족한 게임쇼로 남았을까? 비슷한 변화의 시기에 선 다른 게임쇼는 저마다 달라진 흐름에 맞는 변화를 보여주었다.

독일의 게임스컴은 유럽 최대 규모의 개발자 컨퍼런스로 꼽히는 데브컴으로 행사를 시작했다. 개발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은 후 이어진 본격적인 게임스컴 시작은 오프닝 나이트로 대신했다. 게임사별로 쪼개진 쇼케이스 대신 행사 시작일에 열리는 대규모 쇼케이스로 팬들의 집중도를 높인 셈이다. 이후 진행되는 이벤트는 소개된 게임의 부가적인 행사 위주로 시청자들의 부담도 낮췄다.

여러 게임사 주도의 행사가 여러 날로 분배된 도쿄 게임쇼는 게임사 주도로 이루어지는 미디어와의 협업으로 행사 안팎에서 정보를 전했다. 쇼케이스에서 소개하지 못한 내용은 인터뷰 기사나 사전 미디어 프레젠테이션으로 채웠다. 또 일부 대형 게임의 경우 데모 버전을 통해 팬들을 직접 찾아가기도 했다. 행사 자체의 아쉬움은 남겼지만 이를 해결할 방안을 여러 방향으로 고민한 티가 났다.

▲ 시상식에서 최대 규모의 게임 행사라 불릴만한 TGA(사진은 잇 테이크 투로 올해의 게임을 수상한 요제프 파레스)

팬데믹 선언 이전 오프라인 행사가 문제없이 펼쳐졌을 당시에도 E3에 대한 부정론은 줄곧 있었다. 게임스컴이나 팍스 등 쇼케이스가 아니라 시연 위주의 행사들이야 직접 팬을 만나고자 하는 개발자들이 사라지지 않는 한 여전히 그 중요성을 남긴다. 하지만 미디어 중심의 E3가 온라인 쇼케이스가 활성화된 상태에서 어떤 가치가 있느냐는 이야기가 뒤이었다. 결국, E3는 2017년 관계자만이 아니라 일반 관람객을 받는 결정을 내리며 변화를 예고했지만, 행사 내실에 대한 변화는 그에 미치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6월에 열리는 E3가 일명 사기 트레일러를 만드는 주범이라고 지목하기도 한다. 전 세계 게임 팬들의 눈이 몰리는 E3 시기에 맞추기 위해 실제 게임에 맞지 않는 영상을 만들거나 과대광고를 일삼게 된다는 주장이다. 만약 E3 대신 게임사 주도의 행사가 자리 잡는다면 각 게임사가 게임이 충분히 준비된 상태에서, 정확한 정보를 원하는 시기에 보여줄 수 있으리란 기대감도 이런 주장을 뒷받침한다.


결국 오늘날의 E3는 이미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행사가 되어가고 있다. 실제로 마지막 오프라인 행사가 열렸던 2019년에는 3대 플랫폼사인 소니가 광고 효과 부족을 이유로 행사 참여를 취소했다. ESA는 소니의 빈자리를 행사 시작까지 채우지 못했고 E3 2019 현장에 참석한 게이머들은 한가운데가 텅 빈 거대한 홀을 뒤로 한 채 몇 안 되는 게임에 몇 시간 씩 줄을 서야 했다.

계속된 오프라인 취소. 그리고 다른 게임 쇼가 해낸, 온라인 행사의 아쉬운 부분을 제대로 채워날 묘수를 찾아내지 못한다면 모든 게이머의 버킷리스트였던 E3의 취소 소식은 내년도, 그다음 해도 별것 아닌 뉴스 한 줄로 끝날 소식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