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머에게 지금까지 이런 대선은 없었다. 3월 9일 제20대 대통령 선거를 위해 양당 대선주자들이 게임공약을 비중 있게 다루고 있다. 이전까지 대선에서 게임정책은 문화, IT 공약의 일부분만 차지한 정도였다. 반면, 이번 대선에서는 아예 게임만을 다룬다. 각개전투를 하듯 대선캠프끼리 게임정책 논쟁도 활발하다.

게이머가 대선후보의 게임정책을 비교하고 고를 수 있다. 대선주자가 게이머의 표를 얻기 위해 정책을 개발한다. 생경한 상황이다.

▲ (왼쪽부터)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 윤석열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

확률형 아이템, 이용자 보호를 위해 자율규제보다는 법적규제

두 후보 모두 확률형 아이템 이슈에 있어 이용자 보호에 방점을 찍고 있다. 방법론도 비슷하다. 두 후보는 자기 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확률형 아이템 규제 법안을 지원한다. 이재명 후보는 이상헌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게임산업법 전부개정안을 통해 확률형 아이템 법적 정의와 규제에 나선다. 윤석열 후보는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이 발의한 '확률조작 국민감시법'을 대선공약으로 내세웠다.

두 법은 상호보완 관계다. 하태경 의원의 감시법은 이상헌 의원 법이 통과된 이후 소비자의 신뢰를 더하는 역할을 한다. 실제로 이상헌 의원이 하태경 의원 개정안에 공동발의자로 참여했다. 하태경 의원은 감시법 발의 당시 "'확률조작 국민감시법'이 문체위에서 논의 중인 게임산업진흥법 전부개정법률안(이상헌 의원안)과 함께 통과되는 것이 중요하므로 여야가 뜻을 모아 초당적인 협력을 이뤄낸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이재명 후보는 확률형 아이템에 강경하다. 아예 '컴플리트 가챠'는 원칙적으로 금지시키겠단 입장이다. 그는 "확률형 게임 아이템의 투명한 정보공개를 추진하고 확률형 아이템의 정확한 구성확률과 기댓값을 투명하게 공개하겠다"며 "과도한 구매 비용을 유도해 사행성을 부추기는 컴플리트 가챠는 원칙적으로 금지시키겠다"고 밝혔다.

윤석열 후보도 강경하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윤석열 후보는 사행성 게임에 대해 법률가 출신으로서 단호하게 대한다"라고 설명한 바 있다. 윤 후보는 "지금까지 게임업계는 확률형 아이템으로 막대한 수익을 올리면서 불투명한 확률 정보로 유저들의 불신을 받아왔다"며 "확률형 아이템 조작 사실까지 밝혀져 불매 운동이 확산한 적도 있다"고 질타했다. 윤 후보는 하태경 의원 개정안대로 확률 정보 공개를 의무화하고 게이머인 국민이 게임사를 직접 감시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려 한다.


지역연고제로 엇갈린 e스포츠 정책

▲ 게임공약을 두고 논쟁도 활발하다

e스포츠 지역연고제를 두고 두 후보 측 의견이 갈렸다. 화두를 던진 건 윤석열 후보다. 윤 후보는 게임정책을 발표하면서 e스포츠 지역연고제를 주요 공약으로 내세웠다. 윤 후보는 " e스포츠가 1020세대와 수도권에 편중되지 않도록 앞으로 e스포츠에도 지역연고제를 도입하기로 했다"며 "지역 기반 아마추어 e스포츠 생태계가 탄탄하게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지원한다는 구상이다"라고 설명했다.

이에 이상헌 의원은 SNS를 통해 "지역연고제는 미국이나 중국에는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우리나라 실정에는 잘 맞지 않다"며 "만일 지역연고제를 강제로 도입한다면 무늬만 그 지역 팀들이 매우 많이 나올 것이다"라고 우려를 표했다. 그는 △우리나라, 특히 이스포츠는 기업의 후원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상황 △지역연고제는 어느 정도 이상의 인구가 기본적으로 뒷받침 되어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중국이나 미국에 비해 인구의 수도 훨씬 적고, 그마저도 수도권에 편중됨 △우리나라 이스포츠 팬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선수가 있는 팀을 좋아하는 경향이 매우 도드라짐 등을 근거로 들었다.

이재명 후보는 e스포츠 인프라 구축에 힘쓴다. 그는 '소확행 공약'을 통해 e스포츠 상무 구단 창단과 국내 게임사의 e스포츠 종목 전용 콘텐츠 개발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또 '리그 오브 레전드'에 편중된 프로리그를 다양한 종목으로 확대하는 정책을 마련하겠다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해서는 넷마블 '오버프라임', 넥슨 '커츠펠' 같은 새로운 게임이 수혜를 입을 것으로 예상된다.

윤석열 후보는 롤파크에 방문하는 것으로 e스포츠 산업에 대한 관심을 나타냈다. 이런 행보에 이준석 대표는 "그동안 정치권에서 게임을 다룰 때는 학부모의 관점에서 '게임을 하면 공부 못 한다'라고 다뤘다"며 "반면, 윤석열 후보가 롤파크에 방문한 의미는 게임을 젊은 세대의 건전한 여가선용의 한 방법으로 본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대표는 "윤석열 정부가 출범하면 지금까지 게임정책과는 완전히 다른 방향성을 가지고 정책이 입안될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P2E 게임, 사행성 살핀다


이재명 후보, 윤석열 후보 모두 P2E 게임이 신사업임은 인정하는 분위기다. 다만, 두 후보 모두 P2E 게임의 사행성 요소를 우려한다. 두 캠프는 P2E 게임에 대해 법적, 행정적으로 가이드라인을 우선 제시해야 할지, 게임업계의 자율규제를 지켜볼지 기다리는 분위기다.

윤 후보 측은 P2E 게임에 대해 큰 방향성만 설정한 상태다. 윤 후보 캠프 게임특별위원장 하태경 의원은 "게임이용자, 소비자 권익 보호를 최우선으로 하여 P2E에 접근하겠다"며 "구체적인 내용은 2차 게임공약 발표 때 알리겠다"고 말했다.

이 후보는 "P2E 시장은 현재로서는 아무도 예측하지 못하는 막 시작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라며 "사행성 문제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인식하면서 앞으로 P2E가 어떻게 발전하는지 지켜보고 사회적 합의를 찾아 나가겠다"고 밝혔다.

게임을 제외하면 두 후보 모두 가상자산 산업에 긍정적이다. 이 후보는 '2022 가상자산 콘퍼런스'에서 "실물에서 금융으로 옮겨 왔던 경제의 축이 디지털 가상자산 시장으로 이동하고 있다"라며 "가상자산 관련 산업의 획기적인 전환과 이용자 보호를 위해 합리적인 법과 제도를 시급히 마련하고, 창의와 혁신을 장려하며 공정한 거래 질서를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 후보도 같은 자리에서 "가상자산 시장만큼은 규제 걱정이 없도록 네거티브 규제 시스템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전했다. 윤 후보는 가상자산 정책으로 '디지털자산 기본법' 제정, 디지털산업진흥청 설립, 국내 코인발행(ICO) 허용, NFT 활성화를 통한 신개념 디지털자산시장 육성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일각에서는 규제 강화에 '우려'


두 후보 모두 게임정책은 이용자 보호가 우선이다. 게임사를 위한 정책에서 이용자로 전향적으로 바뀌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반면, 게임사는 규제가 덧붙여지는 것을 우려하는 분위기다. 다만 이용자 보호 논리를 공개적으로 반대하기는 어려워 침묵을 유지하고 있다.

황성기 한국게임정책자율기구 의장은 20일 중앙일보 주최 간담회에서 확률형 아이템 법적 규제화에 우려를 표했다. 그는 "법적규제가 완벽한 건 아니다. 형법에 살인죄가 있다고 살인이 발생 안 하나? 도로교통법이 있다고 해서 문제가 발생 안 하나? 법적 규제가 만능은 아니다"라며 "자율규제 비판에 실효성을 이야기하는데, 질문의 순서가 바뀌었다. 법적규제는 100% 완벽한가? 그렇지 않다. 법적규제와 자율규제는 대체제가 아니라 상호보완제로 자리 잡아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어떻게 상호보완할 것인지는 고민이 더 필요하다. 정부와 시장을 상호 적대적인 관계로 상정해서는 안 된다"라고 덧붙였다.

황성익 한국모바일게임협회장은 P2E 게임의 사행성 우려에 대해 "사행성으로 몰고 가는데, 캐릭터를 현금화하는 게 왜 문제가 되어야 하나? 애니메이션을 현금화했다고 문제 되지 않는다"며 "과거 바다이야기 사태 고정관념에 묶여 논의가 한발자국도 못 나간다"고 비판했다. 이어 "정부는 P2E, NFT, 메타버스에 새로운 가이드라인을 줄 필요가 있다"며 "어떻게 개발할 수 있고, 어디까지 허용되는지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 가이드라인도 법적규제가 아닌 자율규제를 통해 지키게 해달라고 제안했다. 황 회장은 "장기적으론 사행성에서 게임과 도박을 분리하는 법개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박형준 성균관대학교 교수는 '규제 샌드박스'를 통한 선허용 후규제 모델이 P2E 게임에 필요하다고 봤다. 그는 "결국 게임산업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게임사가 신사업을 개발하고 투자해야 하는데, 현재는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없다"며 "우선 게임사가 다양한 게임들을 만들어볼 수 있도록 허용하고, 실제 해봤을 때 문제가 생기면 해결방안을 찾는 방식으로 가는 게 좋을 것이다"라고 제시했다. 정부가 처음부터 P2E 게임을 막아버리면, 게임사가 개발에 투자를 하지 않기 때문에 국가적으로도 손해라는 설명이다. 박 교수는 "게임규제를 상위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협의체를 만들어 논의하길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