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피아노 선율이 가득 들리던 레이아크의 리듬 게임, 디모가 후속작으로 돌아왔다. 까만 몸에 까만 턱시도 대신 옅은 하늘색 투명한 물이 찰랑거리지만, 어딘가 아련하게 만드는 특유의 분위기는 여전하다.

리듬 게임인 듯, 어드벤처 게임인 듯, 아니면 애니메이션인 듯, 뛰어난 연출과 영상미, 음악이 어우러져 참 독특하면서도 서정적인 게임이 탄생했다. 다만 그래서 조금은 헷갈린다. 분명 리듬 게임이 맞는데, 뭔가 다른 것도 참 많다. 리듬 게임은 음악만 좋고 음악만 많으면 충분하다는 생각을 디모2는 제대로 깨부쉈다.


게임명: DEEMO II
장르명: 리듬 게임
출시일: 2022. 1. 13.
개발사: 레이아크
서비스: 레이아크
플랫폼: 안드로이드, iOS



아름다운 영상미와 뛰어난 연출


분명 리듬 게임이다. 그럼에도 가장 놀라운 점이자 가장 눈에 띄는 점은 음악이 아니다. 없던 롱노트가 추가된 것도 조금 놀랍긴 했지만 여튼 아니다. 그럼 도대체 뭘까.

'연출', 리듬 게임인 디모2의 첫인상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연출이다. 인게임 그래픽, 컷신, 음악, 목소리, 스토리가 모두 어우러져서 정말 아름다운 게임을 만들어냈다. 중간 중간 흐름을 끊어버리는 기나긴 로딩이 조금 거슬리긴 하지만 어쨌든 아주 감성적이다.


우선 그래픽. 디모 리본 역시 3D 그래픽을 선보이긴 했지만, 디모2의 그것은 훨씬 발전한 모습을 보여준다. 완벽하게 유려다고는 할 수 없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주인공 에코와 디모를 포함해 동글동글한 형태의 다른 인물들, 배경 등이 깔끔하면서도 환상적인 세계관에 아주 잘 녹아들었다.

여기에 스토리에서 ‘비’가 큰 비중을 차지하는 만큼 비가 내리는 모습은 기본이고 전체적인 배경의 색감 역시 녹색빛과 잿빛으로 톤 다운되어 어딘가 젖어있는 듯한 느낌을 듬뿍 담아냈다. ASMR로 써도될 정도로 톡톡 떨어지는 빗소리와 서정적인 배경 음악은 그런 잔잔한 게임의 분위기를 한껏 살리는 데 한몫을 더했다.


내리는 비를 맞으면 하얀 꽃으로 변하는 이들이 모여 있는 기차역. 그리고 비를 멈추기 위해서는 악보를 모아 피아노를 쳐야 한다니, 정말 이 이상 동화스러울 수 있을까. 그리고 이 서정적인 이야기가 3D와 2D를 섞은 컷신, 아름다운 피아노 선율의 음악, 성우의 목소리와 어우러져 멋들어진 애니메이션 영화 한 편, 아니 게임이 탄생했다.

3D 컷신도 나쁘지 않지만, 디모2의 백미는 2D 애니메이션 컷신이다. 스토리가 전개되는 도중 가끔 등장하는 이 2D 컷신은 게임을 순간 감상의 영역으로 이끌어낸다. 그리고 자연스레 연주를 연결하며 리듬 게임이라는 정체성도 잊지 않고 잘 버무렸다.

디모2가 가진 가장 큰 특징이 바로 이 아름다운 영상미다. 리듬 게임에서 영상미가 아름답다니 조금 어색하긴 하지만, 사실이다.




믿고 플레이하는 레이아크 리듬 게임


수록곡들은 여전히 아름답다. 처음부터 플레이할 수 있는 ‘Echo over you’를 비롯해 무료 곡들 역시 어디 하나 부족함 없이 유려한 피아노 선율을 자랑한다. 보컬곡과 연주곡의 밸런스도 좋은 편이고.

비록 초반부 플레이 가능한 무료 수록곡의 수가 많다고 볼 수는 없지만, 숨겨진 악보를 얻거나 스토리를 풀어나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곡들이 추가된다. 이외에도 5곡씩 들어있는 유료팩을 개당 7,500원에 구매해 플레이할 수 있다. 역시 레이아크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수록곡의 전체적인 퀄리티가 매우 좋다.


노트에 있어 가장 큰 변화는 아무래도 꾹 터치하고 있어야 하는 롱노트의 등장이다. 다만 리듬 게임 장르 자체에서 롱노트는 이미 너무나 익숙하다 못해 당연하게 여겨지는 요소라 크게 새롭다거나 놀라운 부분은 아니다.

노트의 시인성은 괜찮은 편이다. 전체적으로 플레이 영역의 배경이 매우 깔끔해서다. 물이라는 테마에 맞게 작은 물결이 치는 하늘색이 기본 배경이며, 노트를 치는 순간 판정 라인 근처가 반짝이는 걸 제외하면 크게 거슬리는 이펙트도 없다.

다만 노트의 시작 지점이 매우 밝게 빛나고, 슬라이드 노트는 더욱 빛나기에 오래 플레이하다 보면 눈이 좀 뻑뻑해진달까 흐릿해진달까. 여튼 그런 단점은 있다.

사실 레이아크의 리듬 게임 개발력은 이제 믿고 플레이할 수 있는 단계를 넘어섰다고 본다. 디모와 사이터스 시리즈, VOEZ까지 각 작품마다 고유한 특징을 살리면서도 다양한 난이도의 채보, 세련되면서도 아름다운 음악 등 리듬 게임의 필수 요소들도 잊지않고 챙긴다. 디모2 역시 어디 하나 딱히 부족한 점 없이 잘 만들어졌다.




리듬 게임? 어드벤처 게임?


디모2는 절대 리듬 게임으로서 부족하진 않다. 다만 게임 전체를 리듬 게임으로만 보자면 살짝 아쉬운 맛이 있다.

분명 디모 시리즈만의 그 눈물 날 정도로 서정적인 곡들을 마치 피아노 건반을 내리누르듯 노트를 터치할 생각으로 설치한 것뿐인데, 묘하게 리듬 게임 요소가 포함된 힐링 어드벤처 게임을 하는 기분이 드는 건 왜일까.

디모2가 타 리듬 게임들에 완성도 면에서 밀리는 건 아니다. 당장 수록곡만 두고 봤을 때도 아름다운 피아노 음악들이 즐비하고, 난이도 역시 다양하다. 전혀 부족한 건 없다.

그런데 다른 요소가 너무 많다. 디모2의 특장점으로 꼽은 어드벤처 요소는 참 아이러니하게도 리듬게임이 차지하고 있던 저 꼭대기 위치를 중간보다 살짝 위쯤으로 끌어내려버렸다.


디모는 리듬게임 시리즈고, 디모 시리즈를 설치하는 사람은 리듬게임을 하기 위해서고, 수많은 리듬게임 중 디모 시리즈를 선택한 것은 부담 없이 피아노 선율의 곡을 플레이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디모2는 스토리를 보기 위해 곡을 ‘쳐야 하는’ 느낌이 강하다. 뼈대는 리듬 게임이 맞는 것 같은데, 이상하게 중심이 되는 건 스토리를 진행해나가는 부분처럼 느껴진다.

시리즈 특성상 새로운 곡을 열기 위해서는 반드시 스토리를 진행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마주하게되는 텍스트, 컷씬, 조작 등의 요소가 전작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다. 굳이 전작과 비교하지 않더라도 리듬 게임이라 생각하고 설치한 사람에겐 조금 당황스러울 정도로 다른 뭔가가 많다.


물론 이는 호불호의 영역이다. 다양한 수집요소와 훨씬 유려하게 펼쳐지는 스토리 전개는 유저가 게임에 좀 더 애착을 둘 수 있도록 해주는 플러스 요인이 되기도 한다. 당장 온라인 게임만 봐도 누군가는 그냥 레벨업을 하고, 누군가는 수집품을 모으지 않나. 패키지 게임도 마찬가지다. 한 번 엔딩을 보고 와 끝났다며 홀가분하게 다른 게임을 하러 떠나는 사람이 있는 반면 모든 컬렉션을 끝장내는 사람도 있다.

다만 디모2의 콘텐츠 중 몇 가지는 결국 연주할 수 있는 곡과 연결되어 있기에 선택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긴 한다. 이게 단순히 리듬 게임만을 즐기려던 사람에겐 귀찮음으로 다가올 수 있고, 과한 추가 조작으로 여겨질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워낙 컷씬도 아름답고, 배경에 흐르는 음악도 아름답고, 스토리도 나쁘지 않았기에 곡을 플레이하는 중간 중간 쉬어가는 느낌으로 즐겼다.




장점까지 갉아먹는 최적화 문제

정작 디모2의 가장 큰 단점은 게임 콘텐츠 외적인 부분에 있다. 바로 최적화 이슈다. 레이아크 게임에서 고질적으로 나타나는 문제기도 하다.

특히나 안드로이드는 거의 모든 구글 플레이스토어 리뷰에 언급될 정도로 최적화가 좋지 않다. 갤럭시 S21로 플레이하면서 풀옵션을 선택할 시 로딩이 과하게 길어지는 문제가 있었으며, 모든 옵션을 끄고 낮춘 이후에도 끊어짐, 발열, 싱크 밀림으로 인한 노트 씹힘 등 다양한 문제가 발생했다. 특히 발열이 꽤나 심한데, 게임을 좀 하다보면 긴 슬라이드 노트를 치면서 액정의 불타오름이 손가락 너머로 느껴질 정도다.


리듬게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예쁜 그래픽도, 서정적인 분위기도 아니다. 지금 치는 이 노트가 내가 치고자 하는 정확한 타이밍에 ‘쳐지는’ 것, 그것 뿐이다.

그런데 생각보다 많은 리듬 게임이 이런 기본을 자꾸 잊는 느낌이다. 플레이 배경이 아무리 아름답더라도 정작 노트가 떨어지기 시작하면 그 모든 것은 시선 너머로 사라진다. 노트가 아무리 아름답더라도 결국 제일 좋은 건 그냥 잘 보이는 노트다.

리듬 게임에서 가장 큰 만족감을 얻을 때는 바로 노트와 손가락이 혼연일체가 되어 최대한 정확하게 모든 노트를 치는 순간이다. 그 과정에서 개인의 취향에 따라 선호하는 음악이나 노트 배치, 난이도, 그래픽 등을 통해 부차적인 만족을 얻게 된다.

그런데 디모2는 최적화라는 문제 때문에 리듬 게임의 가장 기본적인 즐거움을 흘리고 있다 . 음악, 채보, 난이도, 여기에 그래픽까지 모든 요소가 적절하게 잘 만들어졌기에 더 안타까운 일이다.

리듬 게이머라면 알테다. 가장 어려운 곡을 노트 하나 놓치지 않고 완벽한 타이밍에 쳐낸 뒤 오는 뿌듯함과 만족감을. 그런데 디모2에서는 아쉬운 최적화로 인해 그 긴장감과 쫀득함, 희열을 온전히 기대하기는 힘들다.




스토리 도중, 폭우가 내리자 배경 역시 잿빛으로 출렁거리던 것이, 비가 점점 그치고 맑은 하늘이 드러나기 시작하니 다시 깨끗한 하늘색으로 돌아오는 부분이 있었다. 어떻게 보면 소소한 부분의 연출마저 섬세하게 신경 썼다는 게 놀라웠다. 굳이 대사나 다른 설명이 없어도 색깔 하나만으로 노트를 치며 자연스럽게 이야기의 흐름을 느낄 수 있었으니까.

디모2는 분명 리듬 게임이지만, 한편으론 어드벤처 게임이라고도 볼 수 있을 듯하다. 아니, 리듬 게임을 어드벤처의 특징을 살리면서 풀어냈다고 보는 게 맞는 것 같다.

레이아크만의 섬세하고 아름다운 그래픽과 음악을 피아노 선율에 맞춰 곡을 연주한다는 디모 시리즈의 아이덴티티에 연결하자 독특한 스토리가 탄생했다. 그리고 그 스토리를 진행해나가다 보면 결국 이 모든 것은 다시 ‘연주’로 돌아온다.

음악을 연주하기 위해 이야기를 읽어나가고, 이야기를 읽어나가기 위해 음악을 연주한다. 이게 바로 디모2가 선택한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