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말 출시된 크래프톤의 '썬더 티어 원'은 아무리 좋게 포장해도 굵직한 게임은 아니다. 짜장면 하나로 아쉬울 때 함께 주문하는 군만두 정도의 무게감이랄까. 19.900원이란 저렴한 가격과 그에 걸맞는 볼륨, 메이저 게임계에서 보기 드문 탑다운 슈터라는 장르까지. 개발사가 크래프톤이라는 점 하나를 제외하곤 대기업의 느낌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게임이 바로 '썬더 티어 원'이다.

이유도 있다. 썬더 티어 원은 크래프톤의 수뇌부가 고심한 끝에 개발 결정을 내린 간판작이 아닌, 개발자 중 한 명인 '파벨 스몰레브스키'의 개인 프로젝트에서 시작한 게임이기 때문이다. 크래프톤 입사 전, 'ARMA' 시리즈의 개발사인 보헤미아 인터랙티브에 재직했던 시절 시작했던 작은 프로젝트가 끝내 회사의 눈에 들어 정식 프로젝트가 된 케이스. 이 사회생활 판타지같은 성공담이 바로 '썬더 티어 원'의 개발 배경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만큼, '썬더 티어 원'은 흔히 '대기업이 만드는 게임'으로 분류되는 많은 게임들보단 인디 게임에 가까운 모습을 보인다.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게임 내 부분 결제 요소, 정해진 플로우에 따라 진행되기보단 최소한의 개입과 플레이어의 재량으로 만들어지는 게임 플레이와 모딩 툴을 통한 콘텐츠의 확보를 지원해 개발 개입을 최소화한다는 점이 그렇다.

그리고 출시 후 한 달이 지난 지금, '썬더 티어 원'의 원안을 만든 크래프톤의 건플레이&액션 유닛 장 '파벨 스몰레브스키'와 대화를 나눌 기회가 생겼다. 그저 '아이디어'였던 개인 프로젝트가 완성된 게임이 되어 정식 출시되기까지, 어떤 일들이 있었을까?


▲ 썬더 티어 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파벨 스몰레브스키(Pawel Smolewski)


Q. 먼저, 본인 소개를 간단히 해줄 수 있는가?

제 이름은 파벨 스몰레브스키(Pawel Smolewski)입니다. 크래프톤에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Creative Director)를 맡고 있으며 '썬더 티어원'의 책임 프로듀서(Executive Producer)입니다. 게임을 열정적으로 즐기는 사람이며, 지금은 ARMA 3가 된 '오퍼레이션 플래쉬포인트' 시리즈 참여를 시작으로 10대 때부터 게임 업계에서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후에 보헤미아 인터랙티브(Bohemia Interactive)로 옮겨 5년 간 ARMA 3 개발에 참여했으며 2016년 펍지(PUBG)에 합류했습니다. 제 하루 업무는 조금씩 다른데요, 제가 제 업무를 좋아하는 이유이죠. 조금 정리해 보자면 회사의 크리에이티브 비전을 확장하고, 디자인 논의를 주도하고, 일상적으로 여러 사안을 관리하는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가끔은 저희 게임의 개별 사안을 확인하며 개발 과정에 도움을 주기도 합니다.


Q. 썬더 티어 원을 개발하면서 가장 중요시한 기조는 무엇이며, 개발진이 생각하는 게임의 핵심 가치는 무엇인가?

'썬더 티어원'의 핵심 가치는 독창적이면서도 색다른 시점으로 현실 같은 환경을 만들어낸 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희가 가장 집중해 온 부분이기도 한데요, 원래 저희 목표가 전에 없던 새로운 것을 만드는 데 있었기 때문이죠. 매우 신선하면서도 멋진 게임을 선보였다고 생각합니다.


▲ 전체적인 분위기나 슈팅 감각 등은 가격 대비 훌륭한 수준


Q. 기획 이후 3년 간 개발이 중단되어 있다가 재개되었다고 들었는데, 어떤 일들이 있었던 건가?

'썬더 티어원'의 컨셉이 처음 떠오른 건 ARMA 3 개발에 참여하던 때였고, 남는 시간이 있을 때 언리얼 엔진을 통해 실험해 보고 싶었습니다. 탑다운 택티컬 슈터로 방향을 잡고 테스트를 시작했는데 게임이 재미있으면서 쉽지만은 않다고 느껴졌습니다. 이런 시도들이 '썬더 티어원'으로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고, 몇몇 주변 동료에게 보여주자 그들도 흥미롭다며 개발에 참여하길 원했습니다.

약 1년 간 저희는 여유 시간을 최대한 활용해 '썬더 티어원'을 개발했습니다. 하지만 2016년 말이 되자 개발 속도가 떨어지기 시작했고 결국에는 개발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죠. 너무 바빠서 이 게임에 들여야 할 시간을 충분히 확보할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3년 동안 '썬더 티어원' 개발을 진행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2019년이 됐는데, 처음부터 개발에 참여했던 팀원 하나가 다시 시작해보자고 했습니다. 당시 저는 크래프톤에서 일하던 상황이었고 '썬더 티어원'에 대한 제 아이디어를 크래프톤에 제안했습니다. 회사에서는 게임의 컨셉과 저희의 열정을 인상 깊게 보고 '썬더 티어원'이 세상에 나올 수 있도록 도움을 주기로 했습니다.


Q. 장르 상 게임에서 조작 가능한 범위가 제한적인데, 디테일한 택티컬이라는 컨셉과 충돌하는 부분 어떻게 극복했는가?

먼저 다른 택티컬 슈터 게임의 전형적인 메커니즘을 모두 확인해 봤습니다. 그리고 이 메커니즘을 탑다운 시점에서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 분석했죠. 쉽지는 않았습니다. 게임에 다양한 기능을 구현하기 위해 엄청난 시행착오를 거쳐야 했죠. 똑같이 구현해내는 건 불가능했기에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기능들도 있었습니다. 이 모든 것을 일일이 직접 시도해 보며 알아내야 했습니다.

▲ 조작계는 탑다운 시점에 맞춰 잘 조정되어 있는 편


Q. 90년대 초반이라는 시대적 배경이 퍽 인상깊은데, 가상으로 처리할 수 있었던 배경 설정을 디테일하게 지정한 이유가 있는가?

'썬더 티어원'의 시대 배경은 제가 자라면서 봤던 액션 영화들의 시대 배경과 동일하게 설정했습니다. 그 영화들에서 게임에 대한 영감을 받았기 때문이죠. 팬들이 게임을 플레이하며 추억에 빠져들기를 원했습니다. 또 비슷한 장르의 게임에서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같은 시대 배경을 잡게 됐습니다.


Q. 개인화기와 장구류 등 장비는 물론 애니메이션이나 전술 연출 등에서 사실성을 중시한 모습이 돋보인다. 고증 과정은 어떻게 이뤄졌는가?

군인의 동작을 현실감 있게 보여주는 캐릭터 애니메이션을 위해 모션 캡처를 활용했습니다. 실제 군사 훈련을 받았던 연기자를 투입해 플레이어의 동작이 최대한 실제 군인처럼 보이도록 했습니다.

다이내믹 라이팅(Dynamic Lighting)에도 상당한 시간과 공을 들였습니다. 그리고 다양한 기후 상태와 하루 중 시간의 흐름도 잘 구분되도록 했습니다. 구조물 전담 아티스트 팀도 별도로 두어, 재질과 표면 등을 고려한 사실적인 모델을 제작하도록 했습니다. 정말 디테일 하나하나를 살리는 접근 방식을 택했죠.


▲ '탑다운' 시점이지만 캐릭터 움직임은 대부분 모션 캡쳐 기반


Q. 게이머가 직접 미션을 편집하거나 모드를 제작할 수 있도록 모드 툴을 제공하고 있지만, 공식 콘텐츠에 대한 니즈가 존재할 것으로 보인다. 추후 업데이트 계획이 있는가?

현재로서는 게임 출시 직후 지원 업무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또, 곧 추가될 모드 개발에서 플레이어들이 직접 모딩을 하는데 어려움이 없게끔 다양한 지원을 준비 중입니다.

언리얼 엔진 4를 사용해 본 적이 없다면 모딩 툴이라는 개념 자체에 겁을 먹으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희는 게임 커뮤니티에 모두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적절한 가이드를 제공할 것입니다. 예를 들어 플레이어들이 스스로 모드를 제작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문서와 튜토리얼을 제공할 예정입니다.

모딩 과정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만 했다면 스스로 기능을 제작하는 일은 의외로 쉽습니다. 관련 경험이 전혀 없던 '썬더 티어원' 내부 아티스트들도 모딩 과정을 훌륭하게 습득했으니, 누구나 할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팬들에게는 약간의 가이드가 필요할 뿐이고, 저희는 기꺼이 이를 제공할 생각입니다.

▲ 다소 부족한 콘텐츠는 모딩으로 보완할 예정


Q. 썬더 티어 원의 멀티플레이는 게임 외적 요소를 고려하지 않으면 퍽 인상적인 모습이었다. e스포츠화에 대해서는 논의된 바가 없는가?

좋게 봐주시니 기쁩니다. 커뮤니티에서도 긍정적인 피드백을 많이 주셨습니다. 이스포츠는 저희가 당장 고려하는 부분은 아닙니다만, 미래는 알 수 없는 것이죠!


Q. 썬더 티어 원을 즐겁게 플레이한 게이머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이 있다면?

지켜봐 주시고 응원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플레이어들로부터 이렇게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는다는 건 너무나도 감사한 경험입니다. 시간이 좀 걸리긴 했지만 정말 보람 있는 과정이었습니다. 모딩 업데이트를 기다려 주세요. 곧 찾아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