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수록 빠져드는 심연의 어둠을 보다


그 끝을 알 수 없는 깊은 바닷속은 사람들의 공포감을 불러일으키기 좋은 소재 중 하나다. 주변 어디를 둘러봐도 도망갈 곳이 마땅치 않은 고립에서 오는 공포, 완전한 정적, 그리고 어딘가에 숨어있을지 모르는 미지의 위협에 대한 불안감까지. 시종일관 끔찍한 괴물의 모습을 그려내지 않아도 그 분위기 자체가 주는 공포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이기에, 심해는 공포를 테마로 하는 여러 작품의 단골 소재로 사용되곤 했다.

지난 25일 얼리억세스로 스팀에 출시된 인디 게임 '히든 딥(Hidden Deep)' 역시 깊은 심해를 무대로 하는 공포 게임이다. 플레이어는 연락이 두절된 심해 광산에 파견된 특수 대원이 되어 현장의 상황을 조사하게 된다.

무대가 우주에서 심해로 바뀌었을 뿐, 명작 호러 게임인 데드 스페이스와 비슷한 플롯이라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이처럼 공포 게임이나 영화에 단골로 등장하는 검증된 소재인 만큼 자칫 식상하게도 느껴질 수 있는 심해를 어떻게 그려냈는지, 1인 인디 게임 개발사 코그휠 스튜디오가 자신들만의 공포를 전달하기 위해 어떤 장치를 사용했는지 직접 게임을 플레이하며 확인해보았다.

게임명 : 히든 딥(Hidden Deep)
장르명 : 2D 공포 / 액션 어드벤처
출시일 : 2022.01.25.
개발사 : 코그휠 소프트웨어
서비스 : 데달릭 엔터테인먼트
플랫폼 : PC

관련 링크: '히든 딥' 오픈크리틱 페이지


"내가 정말로 심해 광산을 탐험하는 대원이 된다면?"

바닷속 9,772m 아래에 위치한 로크 산업의 해저 광업 및 연구 시설. 칠흑 같은 심연의 어둠만 가득한 바다 아래 인간들이 만든 이질적인 광산 시설만이 홀로 옅은 빛을 내비치고 있다. 광산 내부에서 근무하고 있을 터인 시설 관리자들로부터 보내져 오던 정기 연락은 이미 끊어진 지 오래다. 본부는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진 것인지 확인하기 위해 급히 조사 대원들을 파견했지만, 이미 현장엔 그 어떤 사람의 인기척도 남아있지 않았다…


히든 딥은 '심해 시설에의 고립'이라는 상황에 유저가 온전히 몰입하도록 하며 공포를 전달하고 있다. 게임은 시설로 파견되는 잠수함의 모습을 비추며 시작되고, 시설에 파견된 대원은 현장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전혀 알지 못하는 무지의 상태로 조사에 나선다. 아무것도 모른 채 게임을 시작한 플레이어와 마찬가지로 말이다.

게임 플레이 내내 이러한 주요 기조는 계속 이어진다. 언젠가 살아서 나갈 수 있다는 희망을 품기 위해 유저가 할 수 있는 행동은 무전기를 통해 본부의 오퍼레이터가 내리는 지시를 그대로 따르는 것뿐이고, 시설 내부의 미지와 조우했을 때 조사 대원과 유저는 한마음으로 경악하게 된다.

이처럼 유저의 몰입을 유도하는 게임의 흐름 덕분에 '히든 딥'은 어둠이 8할 이상을 차지하는 단조로운 구성과 시설 내 살풍경 속에서도 플레이어가 흥미의 끈을 놓지 않고 끝까지 플레이를 이어갈 수 있게끔 하는 데 성공했다. 실제로 얼리억세스 버전에 포함된 총 10개의 미션을 모두 클리어하는 동안 지루함을 느낄 새도 없이, '한창 재미있을 때 이야기가 끊어졌네'라는 감상만이 남게 된다.


히든 딥에서 몰입감을 더해주는 또 하나의 요소는 실제로 광산 근무자들이 사용할 것 같은 여러 종류의 탐사 도구들이다. 플레이어는 다양한 장소로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그래플링 훅'부터 철근 콘크리트를 잘라내는 플라즈마 커터, 지면 구조를 손쉽게 파악할 수 있는 스캐너와 드론, 얇은 지형을 폭발시켜 길을 만들어낼 수 있는 C4 폭탄, 여기에 다가오는 위협으로부터 자신의 몸을 지킬 수 있는 각종 화기를 사용할 수 있다.

초반 튜토리얼 이후에는 각각의 상황에 어떤 장비를 사용하면 좋을지 별도의 안내가 나오지 않으므로, 플레이어는 자신이 보유한 다양한 장비와 현장의 상황을 함께 살피며 계속해서 닥쳐오는 위험 상황들을 헤쳐나가야 한다.

주황색 의복을 갖춰 입은 엔지니어 캐릭터가 지원 병력으로 투입되면 맵 곳곳에 배치된 광산 작업용 중장비들을 사용할 수 있는데, 이러한 장비들 역시 일말의 과장 없이, 사실적인 움직임을 보여주는 것이 특징이다. 이러한 모든 요소는 플레이어가 심해의 괴물들을 모조리 도륙하기 위해 찾아온 '해결사'가 아닌, 단순한 한 명의 평범한 사람에 불과하다는 것은 거듭 강조한다.


사실적인 물리 엔진과 다소 불편하게까지 느껴지는 조작은 게임의 몰입감을 더하고, 나아가 공포를 배가시키는 장치로 쓰이고 있다. 미션을 진행할 때 플레이어는 주로 로프나 사다리 등을 이용하여 높고 낮은 지형을 계속 오가게 되는데, 이때 이동을 귀찮게 생각하거나 자칫 조작을 소홀히 하면 금세 발을 헛디뎌 실족사하는 캐릭터의 모습을 보게 된다. 어둠 속에서 갑자기 주인공을 향해 덮쳐오는 괴물의 공세보다, 이동 조작 중 발을 헛디뎌 죽는 경우가 더 많을 정도다.

사람 키보다 살짝 높은 층계를 사다리나 로프로 이동하고, 문 하나를 여는 사소한 행동을 할 때조차 잠시 이동을 멈춰야 하는 히든 딥의 조작은, '그 너머에 무엇이 존재하는지 알 수 없는 칠흑 속으로 발을 내딛는 감각'을 효과적으로 담아내고 있다. 물론, 어떤 이들에게는 부당하게 느껴지거나, 마냥 번거로운 요소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는 부분이지만 말이다.

▲ '이 정도는 괜찮겠지?'라는 생각은 항상 죽음으로 이어진다



'히든 딥'을 더 재미있게 즐기는 방법들


'히든 딥'은 출시 전 매체를 통해 심해 광산에 존재하는 여러 괴생물에 쫓겨 끔찍한 죽음을 맞이하는 플레이어 캐릭터의 모습을 주로 노출해왔으나, 실제로 게임 속에서 이러한 장면은 보기 어려운 편이다. 캐릭터가 실족사하여 자유롭게 임무를 수행하지 못하게 됐을 때, 광산에 홀로 남겨져 겪게 될 모습을 상상하여 표현한 같은 시네마틱 연출에 가깝다. 트레일러 영상 등에서 그려졌던 것처럼 온갖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죽음을 맞이하는 잔혹한 데스 신 감상에 흥미가 있는 유저에게 현재 빌드의 '히든 딥'은 쉽사리 추천하기 어려운 작품이다.

하지만 히든 딥은 자극적인 죽음 연출이 없더라도 충분히 공포감과 재미를 만끽할 수 있는 게임이다. 얼리억세스 버전에서는 플레이할 수 있는 방식이 한정되어 있지만, 정식 출시 버전의 콘텐츠들이 추가되기 전까지 게임을 더욱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두 가지 방법을 더 소개해보려 한다.

▲ 정식 출시 버전에서는 잔혹한 죽음 연출이 주가 되는 콘텐츠가 추가될지도…?

첫 번째는 '고난이도 설정'으로 실제 같은 몰입감을 더하는 방법이다. 히든 딥에는 탐사와 심층 탐사, 그리고 고위험 탐사까지 세 가지 난이도가 존재한다. 히든 딥의 다소 불편하다면 불편할 수 있는 조작법에 익숙해지기 전엔 실수로 실족사하는 일이 왕왕 있으므로, 어이없는 죽음으로 게임의 흐름이 끊기는 것이 싫다면 탐사나 심층 탐사 모드로 안전한 플레이를 즐기는 것이 바람직하다.

다만 탐사와 심층 탐사 난이도의 경우 사용할 수 있는 플레이어의 목숨이 미션마다 최소 10개 이상 제공되어, 플레이를 이어갈수록 죽음과 미지에서 오는 공포를 느끼는 감각이 무뎌지기 쉬운 편이다. 심지어 여정 사이사이에 세이브 포인트가 빠르게 갱신되어 재시작의 공포도 줄어드니, 어둠 속으로 섣불리 이동했다가 위협적인 괴물을 만나 죽더라도, "바로 앞에서 다시 하면 그만이지 뭐'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정도까지 왔다면 '히든 딥'은 더는 공포 게임이 아닌, 단순한 퍼즐 게임으로 전락해버리고 만다.

다행히 개발사는 이러한 현상이 발생할 수 있으리라는 것을 예상했고, 극한의 공포감을 만끽하고 싶은 유저들을 위해 '고위험 탐사' 난이도와 '하드코어', '리얼함'이라는 추가 챌린지까지 선택할 수 있게 해두었다. 고난이도 게임에서는 단 하나의 목숨으로 모든 시설을 탐험해야 하기 때문에, 항상 이동하기 전 위협사격을 통해 괴물의 유무를 확인하고, 한정된 수량의 드론을 날려 나아갈 길을 미리 체크하는 등,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에도 계속해서 선택을 강요한다. 심해 광산에 홀로 남은 게임 속 조사 대원과 같은 마음으로 어둠 속을 탐험할 수 있게 되는 셈이다.


히든 딥을 재미를 더하는 두 번째 방법은 '챌린지 모드'다. 스토리를 따라가는 메인 미션을 모두 플레이했다면, 다음엔 챌린지 모드로 자신의 입맛에 맞도록 세부 설정을 커스터마이징하여 다시 심해 시설 탐험을 즐길 수 있다. 괴물 개체의 등장 수, 사용할 수 있는 탄약 수 설정은 물론, 스팀에서 지원하는 '리모트 플레이 투게더' 기능을 활용해 친구와 협력 플레이도 가능하다.

협력 플레이를 통해 플레이할 때는 공포감을 느끼기보다, 친구와 손발을 맞추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엉뚱한 해프닝을 즐기는 협력 게임 특유의 유쾌한 재미를 만끽하는 것이 주가 된다. 2인용 플레이를 위한 패드만 있다면 초대한 친구는 따로 게임을 구매하지 않아도 되므로, 협력 플레이의 허들도 높지 않은 편이다. 현재 빌드에서는 온라인 멀티가 제공되지 않으나, 곧 온라인 멀티 기능 업데이트를 통해 더 많은 유저들과 함께 협력 플레이도 가능해질 전망이다.

▲ 협력 플레이에서는 SHIFT 1,2를 바삐 눌러야 했던 솔로 플레이보다 훨씬 쾌적한 탐험이 가능하다




'히든 딥'은 지난 2021년 2월, 데모 빌드로 스팀을 통해 처음 공개됐다. 데모 공개 후 약 1년이라는 시간이 더 지났지만, 출시된 빌드에서는 남은 대원 수가 '나은 대원'으로 표기되고, 간혹 아예 번역이 되지 않은 안내문들이 출력되는 등, 미완성인 모습이 곳곳에서 쉽게 발견되고 있다. 얼리억세스라는 방패를 내세우고 있다고는 하지만, 완성된 게임으로서 평가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하지만 현지화와 관련된 몇 가지 이슈 때문에 그냥 지나치기엔 아쉬운 게임인 것은 분명하다. 아직 추가되지 않은 온라인 멀티 요소를 차치하더라도, 적막한 심해에서 생존을 위해 발버둥치는 주인공의 여정이 결국 어떠한 모습으로 마무리될 것인지 기대감을 자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추후 게임이 온전히 완성되었을 때 어떠한 방향으로든 이야기를 마저 완성한다면, 히든 딥은 심해를 배경으로 진행되는 '스토리에 몰입할 수 있는 명작 호러 게임' 중 하나로 기억되기에 충분한 잠재력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