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으로 출발해 TCG, TV 시리즈, 코믹스, 애니메이션과 실사 영화, 테마 파크까지 여러모로 외연 확장이 꾸준히 이루어지고 있는 포켓몬스터. 프랜차이즈의 성장은 이제 더는 말할 필요가 없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포켓몬스터라는 프랜차이즈의 훌륭한 성장이 게임 '포켓몬스터'의 긍정정인 평가로까지 온전히 이어지지 않았죠..

본가 시리즈의 경우 매 작품 준수한 리뷰 평점을 기록하고 판매량도 매번 닌텐도를 웃음 짓게 만들지만, 팬들에게는 뭔가 부족한 부분이 매번 눈에 밟혔고 기기 발전에 크게 따라가지 못하는 듯한 변화들도 아쉬움을 샀죠. 내적인 콘텐츠 변화라는 장점이 눈에 직접 보이는 변화의 부족이라는 단점을 쉬이 지워버리지 못했다는 의미기도 하고요.

그래서 이번 포켓몬 레전드 아르세우스(Pokémon Legends: Arceus, 이하 PLA)는 새로운 변화의 문턱을 넘은 기대작인 동시에 문턱에 발이 걸려 넘어질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공존하는 작품이었죠.

뭐 일단 출시 직후 공개된 평가들을 통해 PLA가 그동안 틀에 갇힌 포켓몬스터를 얼마나 자유롭게, 또 훌륭하게 그려냈는지 확인할 수 있으셨을 겁니다. 그래서 이번 리뷰에서는 단순히 좋고 나쁨보다는 PLA가 문턱, 아니 그동안 거대한 장벽처럼 존재하던 포켓몬식 게임 디자인을 어떻게 넘어 새롭게 구현했는지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게임명: 포켓몬 레전드 아르세우스
장르명: 액션 어드벤처/RPG
출시일: 2022. 1. 28.
개발사: 게임프리크
서비스: 닌텐도
플랫폼: 닌텐도 스위치

관련 링크: '포켓몬 레전드 아르세우스' 오픈크리틱 페이지

■ 게임 스토리 내용이 일부 포함되어 있습니다 ■


오픈 월드보다 중요한 포켓몬 월드

오픈 월드. 사실 이번 작 변화의 핵심은 이 한 단어로 설명이 가능한 것처럼 보입니다.

정확히는 스토리를 진행하며 추천되는 지역이 어느 정도 정해진 선형적 플레이에 전체 지역도 하나가 아니라 핵심 지역으로 구분된 세미 오픈 월드식 플레이긴 합니다. 어쨌든 이러한 변화가 게임의 액션성과 자유로운 플레이와 맞물리며 게임의 여러 변화를 이끈 듯 보이게 한다는 거죠.

하지만 흔히 오픈 월드 게임을 떠올렸을 때 생각하는 샌드박스식 플레이와 함께 엮는다면 그다지 맞물리지 않습니다. 맵 곳곳에 심볼로 대신한 수집품이 촘촘히 박혀 있는, 흔히 유비식 오픈 월드로 불리는 게임은 확실히 아닙니다. 그렇다고 젤다의 전설: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처럼 유저의 플레이 창발성을 기반으로 게임이 확장되는 형태도 아니죠.

이런 설정이라면 오픈 월드라는 특징을 살려 이것저것 플레이할 수 있는 콘텐츠의 밀도는 낮을 수 밖에 없는 구조라는 겁니다. 실제로 플레이어가 게임에서 오픈 월드 콘텐츠를 즐길 수 있는 건 미션을 받아 이걸 수행하고 약간의 수집품 모으기 정도를 빼면 광물 캐고, 재료 모아 아이템 만드는 정도겠죠.

▲ 사방이 트여있는 맵을 돌아다닌다는 건 확실히 전에 없던 재미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겠죠?

물론 이건 여타 게임의 기준으로 설명했을 때입니다. 잘 짜인 오픈 월드 게임은 스토리라는 핵심 이야기와 함께 서브 퀘스트, 숨겨진 아이템, 장비, 게임 속 이야기를 훑어주는 로어(서적 따위의 세계관 관련 아이템), 그리고 플레이어의 선택지, 월드에서 놀 수 있는 플레이 권한 등 작은 톱니들이 서로 이를 맞물리고 꼼꼼하게 돌아가야 하죠.

하지만 PLA는, 포켓몬 시리즈는 다른 무엇보다 포켓몬이 핵심입니다. 물론 수집품이나 등장 인물의 관계, 세계의 이야기 등이 없는 건 아니지만, 사실 이게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도 상관없죠. 그게 제대로 작용하지 않아도 여러 작은 톱니가 떨어져 나가면 나갔지 포케몬이라는 커다란 톱니가 돌아가는 걸 멈출 수는 없으니까요.

뒤에 좀 더 다루겠지만, 포켓몬 관련 외의 부분이 단점으로 작용한 것만은 아닙니다. 하지만 어쨌든 중요한 건 포켓몬이라는 게임의 핵심이 PLA에 잘 담겨 있다는 거죠. 그래서 오롯이 오픈 월드 덕에 PLA를 완성됐다기보다는 포켓몬스터라는 시리즈에 오픈 월드를 더해 팬들이 꿈꾸던 포켓몬스터의 이야기가 만들어졌다고 보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 겁니다.

▲ '맵에서 만나는 포켓몬'이 더해졌을 때 비로소 게임의 핵심이 드러납니다

여기서 말하는 포켓몬의 핵심은 바로 포켓몬의 포획입니다. 시리즈에 포켓몬의 성장, 배틀을 통해 더 높은 자리에 오르는 대전 등도 중요했지만, 이번 작품에서는 이 포획을 게임의 핵심 요소로 두고 있죠.

포획의 중요성이 높아지며 게임도 포켓몬 자체가 아니라 포획하는 사람에 중점이 맞춰집니다. 이건 이번 작품이 추구하는 이야기의 주제와도 연결되죠.

핵심이 사람에게 맞춰지며 플레이 스타일의 변화도 여기 맞춰 이루어졌습니다. 그 중 가장 큰 건 바로 맵 위를 돌아다니는 포켓몬들의 등장이죠. 포켓몬들이 맵 위에 돌아다니는 심볼 인카운트는 이미 몇 작품에서 등장했지만, 포켓몬스터 소드&실드에서처럼 굳이 포켓몬과 들이 박아야 포켓몬을 포획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수풀에 숨어 잠을 자는 포켓몬에게 몬스터볼을 던져 잡을 수도 있고 미끼가 될 열매를 던져 이걸 먹고 있는 포켓몬을 잡을 수도 있죠. 굳이 어떤 몬스터가 나올지도 모른 채 수풀을 돌아다니다 몬스터를 흠씬 두들겨 패 몬스터볼로 강제 이주 시킬필요가 없어졌다는 겁니다.

물론 모든 포켓몬이 순순히 볼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건 아니겠죠. 포켓몬은 플레이어의 존재를 눈치채면 일부는 도망가고 또 일부는 플레이어를 공격합니다. 주인공이 공격을 여러 번 맞으면 기절해버리죠. 도망가든, 아니면 적절한 회피로 공격을 무시해 다시 도전하든, 열매를 머리에 맞춰 잠시 기절한 사이 포켓볼로 재포획을 노리든 플레이어가 할 수 있는 선택지가 있습니다. 물론 포켓몬이 담긴 볼을 던져 배틀로 이어나가도 되지만, 그렇지 않아도 게임을 즐길 수 있는 방법이 더해진 셈입니다.

사실 기존의 포켓몬에서는 싸운다와 싸우지 않는다라는 2가지 선택지만 있었습니다. 그리고 싸우지 않고서는 일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포켓몬을 잡는 게 불가능했죠. 결국, 오픈월드, 액션성 등이 더해진 이곳의 가장 큰 차이는 바로 포켓몬의 포획이라는 핵심에서 확장된 플레이어의 자유도라 할 수 있습니다.

▲ 기존 포켓몬처럼 혼 좀 내주고 포획할 수도 있지만

▲ 열매로 유인해 잡을 수도 있습니다. 인권, 아니 폿권이 높았던 시기네요

플레이어 중심으로 게임이 재편되며 덩달아 전에 없던 편의성도 높아졌습니다. 플레이어가 던질 수 있는 아이템, 포켓몬이 담긴 볼은 X, L, R 버튼으로 실시간으로 교체할 수 있고 ZL로 조준, ZR로 던질 수 있습니다.

이 조작들이 필드 위에서 별도의 메뉴 없이 가능하다 보니 상대 포켓몬을 확인하고 그걸 맞춰잡는 상성의 포켓몬을 곧장 배틀에 도입할 수 있게 됐죠.

물론 이 경우 포켓몬 대결이 지나치게 쉽게 그려질 것을 대비했는지 피해량이 꽤 높아졌습니다. 동렙 기준이면 공격 한두 번에 전투 이탈. 만약 상성만 잘 걸리면 누가 때리든 한 방에 끝이죠. 그러다보니 기본적으로 강력한 포켓몬 하나로 스토리를 깨나가기보다는 포켓몬을 치료하고 기절 상태를 제거하는 플레이어의 아이템 활용이 더 중요해졌습니다.

당연히 아이템을 수급하는 필드의 채집 활동도 중요해졌고요. 몬스터 볼부터 체력/상태이상 회복약, 발소리를 없애주거나 포켓몬을 유인하는 아이템도 재료만 있으면 어디서든 만들어 쓸 수 있게 했고요. 볼도 일반적인 몬스터볼, 슈퍼볼, 하이퍼볼 외에도 무거워 던질 수 있는 거리는 정말 짧지만, 뒤를 잡으면 포획률이 올라가는 헤비볼, 메가톤볼, 기가톤볼도 있고 원거리로 잘 날아가는 페더볼 시리즈가 있죠. 볼에 따라 그리는 포물선 궤적이 달라 거리에 따라 던지는 요령도 필요하고요.

반면 포켓몬을 강화시키는 노력치 시스템은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노력의 모래, 자갈, 돌, 바위는 각각 특정 레벨의 포켓몬 노력치를 1씩 올려주는데요. HP, 공격, 방어, 특수공격, 특수방어, 스피드 등 모두 10까지 성장 가능해 아이템만 잘 모아 먹여주면 됩니다.

사실상 포켓몬 성장에 기대는 게임 플레이 대신 플레이어와 포켓몬이 함께 성장하도록 하는 모양새입니다. 포켓몬마다 따로 설정된 도감 과제 역시 파고들 경우 포켓몬 하나만이 아니라 여럿을 성장하고 또 만나야 하는 구조를 그리고 있죠. 일부 보스는 액션 요소로 포켓몬 한 번 꺼내지 않고 제압할 수도 있고요.

더 강해진 포켓몬을 통한 트레이너로서의 성장이 아니라 위험한 포켓몬을 잡고, 길들이며 더 많은 포켓몬의 비밀을 파헤치는 은하단의 조사단원으로서의 아이덴티티가 더 강조됐다고 할 수 있습니다.

▲ 성장 시스템은 보다 간략하게 압축됐고

▲ 비슷한 싸움이면 얼마나 덜 맞냐가 중요해졌습니다

이제 처음 이야기로 되돌아가 보죠. PLA는 오픈 월드라는 특징에 맞는 세밀한 콘텐츠 구성은 없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출시 전 비슷한 분위기로 젤다의 전설: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야생의 숨결)의 이름을 따 포켓몬의 숨결로도 불렸습니다만, 사실 비슷한 점을 찾기가 쉽지 않은 수준이죠.

하지만 반대로 포켓몬을 포획하고, 도감을 채워나가고자 하는 이들에겐 이보다 세밀한 콘텐츠 구성은 없을 겁니다. 어딜 가도 포획하고 빈 도감을 써내려 갈 포켓몬들 천지이니까요.

다른 게임 입장에서 보면 다른 거 다 제치고 포켓몬 핵심 요소만 잘 갖추면 이 정도로 고평가 받을 수 있느냐고 질투 어린 시선을 보낼지도 모르겠는데요. 어쩌겠어요. 이게 바로 IP의 힘인걸요. 그리고 모든 게임사가 훌륭한 IP 만들기에 목을 매는 것도 이런 이유겠죠.

그래서 PLA는 단순한 오픈 월드 게임이라기보다는 포켓몬에 집중한 포켓몬 월드라는 표현이 더 정확한 설명일 것 같습니다.

▲ 승단을 위한 도감 채우기는 포켓몬 많이 잡고 많이 키우기 중심이며

▲ 맵 탐험을 끝내는 것도 단원으로서 조사 내용을 검사받은 뒤에야 가능합니다



게임 디자인, 그리고 그걸 만드는 이야기

포켓몬보다 사람에게 초점이 맞춰졌다는 건 단순히 새로운 게임 플레이를 유도하는 디자인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디자인이 PLA의 배경이 되는 히스이지방이라는 특징을 함께 생각하면 이야기와 게임 속 디자인이 꽤 잘 어우러져 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히스이지방은 포켓몬 4세대, 그리고 최근 리메이크된 포켓몬스터 브릴리언트 다이아몬드&샤이닝 펄(BDSP)의 배경인 산오지방의 먼 옛날을 그리고 있습니다. 오늘날에야 ‘우리는 모두 친구’라며 동료애를 강조하는 포켓몬이지만, 게임 속에 그려진 히스이지방의 세계에서 포켓몬은 친구가 아니라 인간을 위협하는 위험한 야생 동물처럼 그려집니다.

게임 시작부터 포켓몬 공격받고 쓰러진 것으로 나오는 영빈(혹은 윤슬)의 모습을 봐도 포켓몬은 꽤 위협적으로 표현되고 있죠. 또 반대로 왕이라는 존재를 비롯해 여러 단체가 신처럼 떠받드는 포켓몬도 존재합니다.

▲ 위협적인 맹수로도, 신성한 존재로도 그려지는 포켓몬

이런 모습은 호랑이나 용, 혹은 여러 상상 속 동물이 생명에 위해를 가할 수 있는 위협적인 존재임과 동시에 숭배의 대상이 되는 토속 신앙에 가깝죠. 그만큼 포켓몬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있는 시기라는 걸 보여주는 연출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게임의 먼 훗날 이야기를 다루는 4세대, 그리고 리메이크인 BDSP. 그리고 기타 여러 작품만 봐도 인간과 이미 친숙한 존재로 그려지는 포켓몬도 있지만, 환상이나 전설로만 존재하는 것처럼 표현되는 포켓몬들도 있죠.

그래서 PLA의 이야기는 포켓몬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는, 또 그들을 두려워하는 과거 세계라면 ‘포켓몬에 대한 접근 방식이 이렇지 않을까?’라는 질문에서 출발해 채워넣은 듯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포켓몬에 대해 잘 알지 못하니 게임의 주체도 당연히 그걸 알아가는 사람으로 맞춰졌고, 플레이어의 역할도 앞서 설명했듯 트레이너보다는 조사단원에 더 집중된 거죠.

그리고 이게 단순히 옛 시대를 다루는 데에 맞게 이야기를 변형한 건지, 아니면 이야기에 맞춰 게임 특징을 고쳐정했는지 따지기보다는 게임의 특색과 이야기 설정이 서로 잘 융합되어있다는 데 더 집중해볼 필요가 있고요.

▲ 그리고 이런 포켓몬과 함께하는 인간에 더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게임의 설정이 전체 게임 플레이 디자인에 영향을 준 부분이 있으니 당연하게도 스토리와 주변 퀘스트에도 이 설정이 녹아들어 있습니다.

사실 포켓몬을 포획해 작은 볼 속에 담고, 또 그걸 어떻게 활용하는지에 대한 고민은 현세대 포켓몬스터에서 많이 희석된 편입니다. 첫 작품부터 이미 포켓몬은 그런 형태로 인간과 함께한다는 설정이 자리 잡혀있었기 때문이죠.

하지만 히스이지방의 사람들은 좀 다릅니다. 포켓몬을 잘 알지 못해 두려워하는 것처럼, 이들은 포켓몬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또 그들과 공생하는 과정은 어떻게 만들어나갈지 고민하는 단계에 있죠.

그래서 PLA의 인물들은 포켓몬스터라는 프랜차이즈에 있어 꽤 근본적인 질문들을 많이 던지는 편입니다. 과연 볼 안에 포켓몬을 담아두는 게 옳은지 묻는 이들도 있고, 포켓몬이 사람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 생각해보는 이들도 있죠. 물론 순수하게 포켓몬이라는 생명체에 대한 궁금증, 혹은 두려움을 가지고 그 감정이 변화하는 과정을 다루고도 있고요.

포켓몬의 근원까지 다룬 건 아니지만, 포켓몬이 인간 삶에, 또 우리 생활에 어떻게 들어오는지에 대한 고민이 담겨있는 셈입니다.


▲ 인간과 포켓몬의 공존은 이번 작품에서 유독 부각되는 주제기도 합니다

그리고 PLA는 사실 이런 심도 깊은 주제를 덜어내더라도 포켓몬스터 시리즈 전체를 아울러 훌륭한 스토리 전개를 보여주었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합니다.

사실 그동안의 본가 포켓몬스터는 어디까지나 일반인이 주인공이었습니다. 세계적인 트레이너를 꿈꾸든, 어쩌다 포켓몬과 함께 여행을 떠나든, 어쨌든 평범한 사람이 포켓몬들과 함께 성장해나간다는 이야기를 가지고 있죠.

이런 성장 스토리는 플레이어가 이야기 속 주인공에게 자신을 이입하는 감정을 보다 쉽게 느끼도록 한다는 장점은 있습니다. 하지만 결국 플레이어는 여러 등장인물과 상황에 의해 결정되는 이야기를 따르는 주변인적 성격이 강하게 드러날 수밖에 없었죠.

하지만 PLA는 아르세우스의 부름을 받고 시공의 균열에서 떨어진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웠죠. 그리고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으면서도 조사대원으로 점차 인정받아나가기 시작하고 끝내 모든 사건을 해결한다는 꽤 왕도적인 이야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또 특별한 존재로 포켓몬과 인간의 거리를 좁혀나간다는 점은 영웅처럼 묘사되기도 하고요.

즉, 그동안 주변인에 그쳤던 주인공이 이번 작품에서는 당당히 이야기의 중심으로 플레이어와 함께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주인공이 직접 목소리를 내 대사를 전하는 장면은 다뤄지지 않습니다만, 플레이어의 선택에 따라 적극적으로 표정을 드러내는 것도 주인공 역할 변화에 따라 달라진 점 중 하나고요.

▲ 특별한 존재로서 이야기를 해결해나가는 주인공

▲ 주인공 연출도 한층 다채로워졌죠

이런 이야기 구조는 어디까지나 미래의 히스이지방인 산오지방을 다루는 포켓몬스터 4세대와도 연계되며 구현됩니다. 단순히 포켓몬 하나에 그치는 게 아니라 진짜 신화적 존재로 다뤄지는 아르세우스부터 본편에서는 신화로서 다뤄지던 이야기를 플레이어가 보다 직접 개입하는 이야기로 바꾼 거죠.

시간대가 다른, 같은 배경인 만큼 4세대에서 만날 수 있었던 장소들을 3D 오픈 필드에서 만날 수 있다는 점도 색다른 변화고요.

사실 4세대의 리메이크인 포켓몬스터 BDSP은 4세대의 과거를 다룬다는 PLA에 대한 관심을 끌어올리는 동시에 4세대의 기억을 되살리고, 새로운 팬층을 흡수할 역할을 맡은 작품인데요. 외주 개발사가 4세대의 그것을 오롯이 옮기는 데 치중했다면 본가 개발사인 게임프리크가 보여준 PLA는 4세대에 다뤄졌던 이야기와 고민들을 보다 폭넓게 확장하고 이어가는 실질적인 후속작 내지 리메이크의 모습을 보여줬다 할 수 있습니다.


출시 6년차 스위치 런칭 타이틀과 비교되는 신작의 그래픽

이번 작품에 눈에 보이는 부분에서의 완성도는 예술적인 부분과 테크니컬적인 부분, 두 가지를 동시에 확인해야 합니다.

예술적인 부분은 이미 전작에서 보여준 것처럼 데포르메 된 2D캐릭터가 3D 디자인으로 넘어가는 모습 과정 이후를 제대로 보여줍니다. 포켓몬스터 XY를 시작으로 리얼 등신대로 바뀌어가는 캐릭터 연출은 앞선 8세대를 통해 완벽한 3D 형태로 가다듬어지며 보다 현실적인 모습으로 그려지죠.

이번 작품도 이러한 캐릭터 디자인을 보여주는 동시에 앞서 설명한 한층 다양한 인물 표정 묘사를 구현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인물의 묘사만이 아니라 게임 내내 등장하는 연출 역시 거대한 포켓몬의 위압감이 느껴질 정도로 역동적으로 표현되고 있죠.

이런 부분을 보면 사실 디렉팅 자체의 문제는 크게 두드러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기존 작품보다 강점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겠죠.

▲ 분명 위압감이 느껴지는 연출이기는 한데

▲ 빈말로도 좋다고 할 수 없는 그래픽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연출이라도 그 장면 하나만 캡쳐해 보여준다면 누구든 고개를 갸웃거릴 겁니다. 즉, 뛰어난 묘사나 연출을 충분히 보여줄 수 있을만한 기술적인 부분에 약점이 드러나 있다는 점이죠.

절대적인 그래픽 기준을 본다면 사실 그렇게 나쁘다고만은 할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이번 작품은 여느 포켓몬스터 게임이 그렇듯 닌텐도 독점으로 출시되는 작품입니다. 예전 닌텐도 스위치 독점으로 출시된 노 모어 히어로즈3의 리뷰 ​노서도 밝힌 바 있듯, 독점으로 출시된 게임이 그 기기에 맞추지 못한 그래픽을 선보인다는 건 확실히 제 역할을 다했다고 보기 어렵죠.

방대한 오픈 필드와 그 위에 존재하는 수많은 포켓몬들을구현했다 치더라도 이보다 훨씬 넓고 광대한 세계를 그린 젤다의 전설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가 구현한 모습을 보면 확실히 부족함이 눈에 띌 정도입니다. 젤다의 전설이 벌써 5년 전 출시된 닌텐도 스위치의 런칭 타이틀이었던 걸 생각하면 그 부족함이 더 아쉽고요.

앞서 포숨이라는 별명은 게임 디자인 측면에서는 전혀 다른 게임이라 이런 비유가 적합하지 않다고 말했는데요. 반대로 그래픽의 기술적인 부분에서 포숨이라는 호칭은 젤다의 전설 입장에서는 꽤 수치스러운 별명이 될 수도 있죠.

새로운 닌텐도 스위치 소식이 요원한만 큼 스위치로의 포켓몬스터 게임 출시가 더 이루어질 가능성도 있는데요. '작은 화면으로 볼때는 나아요'라는 해명이 아니라 기기 성능을 훌륭히 활용해 어디서나 좋은 그래픽을 만날 다음 작품을 위해서는 게임 프리크가 이번 작품에 대한 평가를 꼭 기억해야 할 겁니다.





본가 시리즈의 인기로 그동안 포켓몬스터는 다양한 변주곡을 써내려갔습니다. 본가 시리즈를 만드는 게임 프리크는 조이콘, 혹은 현실 몬스터볼을 폭넓게 사용하는 포켓몬스터 레츠고!를 선보였고 여러 외주, 합작 개발을 통해 이상한 던전 시리즈로 분류되는 던전 RPG 불가사의 던전, 대전 격투 폿권, 포켓몬의 생태를 사진으로 남기는 포켓몬 스냅 등을 선보였습니다.

이번 작품도 그런 외전작에 가까운 듯한 모습으로 팬들을 찾았습니다. 평가야 다르겠지만, 어쨌든 본가의 빈틈을 메꿔 줄 작품이 될 것으로도 보였고요.

하지만 PLA는 포켓몬스터라는 시리즈에서 그동안 부족한 부분을 훌륭히 채워주는 작품이 됐습니다. 선형적인 플레이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포켓몬을 포획하고 또 성장시키는 그런 포켓몬스터 말이죠.

그래픽 등 일부 아쉬운 부분이 남긴 하지만, 전체적인 이야기와 게임 디자인이 절묘하게 녹아들도록 한 게임 디렉팅도 최근 포켓몬스터 시리즈의 아쉬움을 달래기 충분했고요. 이야기의 중심이 인간에 더 맞춰져 있지만, 혹시 같은 시스템으로 나오는 다음 작품이 포켓몬의 중요성도 함께 강조한다면 조금은 부족한 트레이너의 역할도 제대로 느낄 수 있을 것처럼 보이고요.

프랜차이즈가 거듭되며 매너리즘에 빠진 작품에 새 바람을 불러오는 건 변화와 전에 없던 시도였습니다. 하지만 포켓몬스터는 스핀오프라는 이름으로 그 시도를 별개의 것으로 구분 지었고 또 기존에 하던 방향에서 내부적인 개선점 만으로도 높은 판매고를 올리는 작품이었죠. 외부 평가야 어쨌든 약 40일 만에 1,170만 장을 판 포켓몬스터 BDSP을 봐도 알 수 있고요.

▲ 포켓몬 레전드 아르세우스가 포켓몬과 인간의 관계를 더 수준 높게 그려낸 것은 분명합니다

그렇기에 이번 작품의 성공과 호평은 더 귀중합니다. 제작진의 개발 방향성이 유저들이 바라는 것과 올바르게 맞아떨어졌고, 또 그것을 더 발전시킬 가능성도 아직 무궁무진하니까요.

그래서 이번 PLA는 단순히 잘 만든 포켓몬이어서는 안됩니다. 포켓몬 레전드 아르세우스는 닌텐도와 주식회사 포켓몬이 새로운 변화가 포켓몬 시리즈를 더 나아갈 수 있다는 걸 깨달을 수 있도록, 포켓몬스터 시리즈 최고의 작품이 되어야 합니다. 또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작품이고요.

그리고 또 쪼개지지 않은 하나의 작품으로 즐기는 포켓몬스터에 대한 즐거움이 다음 작품에서도 이어지길 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