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조 원의 빅딜로 이루어진 세기의 반도체 공룡 탄생이 결국 무산됐다.


엔비디아는 현지 시각으로 7일, 공식 성명을 통해 소프트뱅크와의 ARM 인수 거래의 종료를 발표했다. 엔비디아는 당사자 간의 선의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규제상의 이유로 계약을 종료할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지난 2020년 9월 엔비디아는 400억 달러(한화 약 48조 원) 규모의 거래로 소프트뱅크로부터 영국의 CPU 제조업체 ARM을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세계 최대 모바일 AP 설계 업체의 인수로 엔비디아는 모바일을 넘어 PC로 확장하는 ARM 아키텍처를 통한 모바일 그래픽 칩셋 시장 영향력 확대가 예상됐다. 또한, 엔비디아는 자사가 주력으로 내세우는 AI 기술과 함께 서버, 데이터 센터 컴퓨팅 시장에서도 한단계 성장하는 데 있어 ARM의 역할을 강조했다.

하지만 양사의 인수는 엔비디아가 ARM 인수에 흥미를 보이는 시기부터 우려가 많았다. ARM이 매물로 나오자 반독점법 저촉 가능성이 있는 인텔이 일찌감치 물러서는 등 시장 경쟁력 약화에 따른 인수 불발을 예측하는 움직임이 있었다. 주요 기업들의 반대도 이어졌다. 애플, 퀄컴, 삼성전자, 화웨이 등 여러 기업이 ARM 아키텍처를 기반으로 모바일 AP를 설계, 제조하는 등 ARM이 모바일 칩 설계 부분에서 영향력이 크기 때문이다.

직접적인 거래 불발의 이유가 된 규제 당국의 움직임도 거셌다. 미연방거래위원회(Federal Trade Commission, FTC)는 지난 2021년 12월 두 회사의 거래를 수직적 통합으로 규정하고 인수를 막기 위해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빅테크 규제를 통해 경쟁법 강화를 천명해온 유럽 집행위원회(European Commission) 역시 FTC 행동에 앞선 10월 시장 경쟁력 저하 우려에 따른 인수 심층 조사를 개시한다고 밝혔다.


거래 취소에도 인수 계약 체결 당시 엔비디아가 소프트뱅크에 선불로 지불한 12억 5천만 달러(한화 약 1조 5,000억 원)은 위약금 형태로 소프트뱅크가 가지게 된다.

다만, 소프트뱅크 입장에서는 위약금이 만족스럽지 않은 상황이다. 당시 1분기 최악의 적자를 기록한 소프트뱅크는 부채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ARM 매각 카드를 꺼냈다. 이후 현금에 엔비디아의 자사주를 받는 형태의 매각 합의가 이루어지며 소프트뱅크는 현재 가치로 660억 달러(한화 약 79조 원)를 챙길 수 있게 됐다. 하지만 거래가 종료됨에 따라 소프트뱅크는 2016년 ARM 인수에 들어간 금액 320억 달러를 금액을 기업 공개 형태로 회수할 것으로 보인다.

이날 손정희 소프트뱅크 회장은 성명을 통해 엔비디아 팀에 감사를 전하며 ARM 상장 준비를 시작해 더 큰 진전을 이룰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