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컵헤드'가 지난 18일 넷플릭스 오리지널 애니메이션으로 방영됐다. 원작부터가 1930년대 애니메이션의 기법을 활용, 그 느낌을 고스란히 살리고자 노력했던 작품인 만큼 애니메이션이 나오는 건 어찌보면 당연할지 몰랐다. 게임 화면 속 캐릭터 움직임 하나하나가 그 시절처럼 셀화로 한 장 한 장 그려내면서 만든 건 물론이고, 당시 장비의 스펙상 어쩔 수 없이 낄 수밖에 없었던 노이즈나 약간 바랜 배경까지도 놓치지 않고 구현했던 작품이니 말이다. 게다가 그 당시 느낌이 진하게 나오는 재즈 사운드까지, 고전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입장에선 눈과 귀까지도 즐거운 작품이었다.

라떼는 말이야, 꼰 같은 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긴 하다. 원작 자체가 1930년대 애니메이션에서 영감을 받아 그 느낌을 살리기 위해 집중한 작품이니 말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막상 그때 작품들을 열거하면, 그렇게까지 낯설지는 않을 거다. 우리에게 이미 친숙한 미키 마우스, 베티 붑, 톰과 제리, 뽀빠이 등이 이미 그때 혹은 그 이전부터 계속 활약하던 캐릭터들이고, 몇몇 작품은 비교적 최근에 새로 시리즈를 시작하기도 했으니 말이다.

사실 그 점 때문에 '컵헤드'가 애니메이션으로 나온다고 했을 때 다소 불안했다. 최근 클래식 애니메이션을 새로 시리즈로 만들어냈을 때, 그 고전 특유의 맛이 떨어졌던 적이 많았기 때문이다. 일례로 2014년에 톰과 제리의 새로운 단편 시리즈 '톰과 제리쇼'가 나왔는데, 그림체도 달라지고 그 특유의 과장된 개그 코드가 많이 사라져서 아쉬움이 남았었다. 물론 그 당시의 개그 코드 중 일부는 현대에 와선 살리기 어려운 소재들도 꽤 있으니, 어쩔 수 없었겠지만 그림체나 음악 등에서도 클래식한 느낌이 덜하다는 평이 지배적이었다.

그런 우려는 트레일러를 보고 난 후, 그리고 게임제작자인 몰덴하우어 형제가 직접 각본과 감독을 맡았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수그러들었다. 30년대의 그 열화된 화질까지 재현한 건 아니지만, 그 특유의 고전적인 그림체와 과장된 몸개그, 여러 밈들이 원작 캐릭터에 자연스럽게 입혀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트레일러뿐만 아니라, 본편도 디지털 작업을 거쳤음에도 마치 셀화로 하나하나 그려낸 듯한 느낌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처음 트레일러를 보았을 때부터 요술고양이 펠릭스 같은 고전이 자연스레 떠올랐을 정도로 미장센이나 연출이 그때 그 시절의 감성을 충실히 살려냈다.



▲ 그 옛날 슬랩스틱과 특유의 감성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그래서일지 컵헤드 애니메이션, '컵헤드쇼'는 그 시대의 TV 단편 시리즈의 구성도 똑닮았다. 최근 TV 애니메이션하면 오프닝과 엔딩곡 그리고 차회 예고와 스폰서를 떼면 보통 20분에서 23분 가량이 1화 분량이지만, 컵헤드쇼는 다 떼고 보면 톰과 제리 같은 작품과 비슷하게 10분에서 12분 가량으로 구성이 되어있다. 그리고 대부분 이야기가 한 편에서 완결이 나는 단편극이다. 컵헤드와 머그맨이 악마에게 영혼을 빚진다는 원작의 설정은 그대로 유지했지만, 빚을 갚기 위해 다른 채무자들에게 수금하러 다니는 처절한(?) 모험을 그대로 담아내지는 않았다.

영혼을 빚지는 과정도 원작과는 달리 일부 각색이 있었다. 원래는 카지노에서 악마와 내기에서 지는 바람에 빚을 지게 된 것이지만, 이번에는 악마가 영혼을 수거하기 위해 만들어둔 유원지에서 영혼 공놀이 오락기를 즐기다가 악마의 난입으로 삑사리를 내서 졌다는 식으로 변경됐다. 그 외에도 원작에서는 카지노나 클럽 고객들의 흡연 장면 등 최근 전체이용가 애니메이션 및 넷플릭스 키즈 애니메이션에서 넣기 어려운 소재들은 빠지거나 다른 소재로 대체되곤 했다.

이처럼 정말 어쩔 수 없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컵헤드쇼는 그 옛날 고전 느낌을 충실히 살렸다. 배경의 톤이나 노이즈 등 소소한 것도 놓치지 않았던 몰덴하우어 형제가 직접 각본과 감독을 짜서 그런지 최근에 다소 폭력적(?)이라는 비판을 듣고 사라지고 있는 과장된 슬랩스틱도 거침없이 집어넣었다. 페인트 넣은 대포를 맞아도 그냥 페인트 투성이가 된다던가, 하나만 걸려도 사람을 몇 번이나 잡을 법한 함정 연계에 휘말리는 모습, 그리고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만화적인 난투극 표현까지. 보다보면 그 옛날 TV에서 틀어주던 만화동산이나 혹은 그 이전의 미국 애니메이션 시리즈를 즐겁게 보던 시절이 절로 연상될 정도였다. 여기에 원작 못지 않게 그 시대의 느낌을 살린 재즈풍의 BGM도 한몫을 했다.



▲ 원작의 카지노 관련 요소는 전체이용가에 맞게 각색됐다

물론 한 화 단위로 끝나는 코미디쇼에서 고전의 향수를 느낄 유저도 있지만, 원작 스토리를 어떻게 애니메이션으로 풀어냈을까 궁금했던 유저들에겐 다소 실망스러울 수도 있을 것이다. 특히 단편 코미디쇼로 바꾸다보니 원작에서 꽤 비중을 차지했던 캐릭터들도 비중이 적어지거나 각색을 거치면서 아쉬운 느낌도 있었다. 원작의 주요 테마를 잊지 않은 듯 후반에는 영혼을 수거해가려는 악마와 이를 막으려는 컵헤드와 머그맨의 이야기가 지분을 꽤 차지하긴 하지만, 악마의 오른팔이자 중간 보스 킹다이스를 거의 거치지 않고 바로 이어지다보니 원작 팬이라면 그 다채로운 소재를 미처 다 살리지 못했다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전체이용가에 맞춘 구성을 취하다보니 주전자 장로의 집을 중심으로 그 주변에서 벌어지는 컵헤드와 머그맨의 일상과 소소한 에피소드 비중이 높고, 그래서 아직 나오지 못한 캐릭터도 많은 것도 아쉽다.

다만 후반으로 가면 갈수록 조금씩 무대가 확장된다는 암시를 줬으니, 만약에 시즌2가 나온다면 그때는 어떤 이야기를 할지 일말의 기대를 하기엔 충분했다. 아울러 우리말 더빙은 흠잡을 곳 없이 훌륭하다. 스폰지밥의 전태열 성우를 비롯해 소정환, 엄상현, 정재헌, 홍진욱 성우 등 베테랑 성우진의 연기를 듣고 있노라면 마치 원래부터 우리말로 만들어진 것 같은 자연스러움이 느껴진다. 전태열 성우가 맡은 컵헤드의 연기가 스폰지밥과 약간 겹치는 느낌이긴 하지만, 컵헤드 역시도 스폰지밥 못지 않게 요령 피우고 사고를 치는 괴짜니 잘 맞아떨어진다. 오히려 그래서 고전 애니메이션을 안 봤던 사람들도 TV에서 챙겨보던 그때 그 애니메이션의 느낌이 어떤 건지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귀에 착착 감긴다.

▲ "잘 모를 땐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아? 판을 더 키우는 거야!"

물론 그 옛날 미국 애니메이션이 한 때 '애들이 보는 것'이라는 선입견을 어른들에게 심어주던 물건이었으니 호불호는 크게 갈릴 것이다. 날것 그대로인 그때 미국 애니메이션도 옛날엔 재미있게 봤더라도 지금은 유치하다고 느낄 때가 있는데, 고전의 느낌을 살렸다고 해도 전체이용가, 혹은 넷플릭스 키즈에 맞춰서 다듬은 컵헤드쇼는 오죽할까. 그래도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컵헤드쇼는 원작에서 보여준 것처럼 고전에 대한 존중을 잊지 않았다는 점이다. 특유의 과장된 연출과 슬랩스틱은 물론이고, 최근 사회적 이슈와 연관지어서 해석하는 흐름 때문에 집어넣기 꺼려하는 소재들도 전체이용가에 문제될 표현이 아니라면 고전적인 코미디쇼의 완성을 위해서 거리낌 없이 집어넣었다. 이런저런 이유 때문에 컵헤드쇼는, 모두를 위한 애니메이션이면서 또 모두를 위한 것이 아니기도 하다. 우선은 한 화에 10분 정도라 보는 것 자체에 부담은 없으니, 일단 1화 찍먹해보고 다음을 결정해보는 것도 나쁘진 않은 선택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