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장인들이 지옥에서 벼려낸 '소울' 마스터피스


게임사에게 있어서 최고의 극찬은 뭘까요? 최다 GOTY의 영예? 흥행과 비평 모두를 거머쥐었다는 평가? 저마다 다르겠지만, 유저로부터 들을 수 있는 최고의 극찬이라고 한다면 역시 '믿고 사는 게임'만한 게 또 없을 겁니다.

저에게 있어선 프롬 소프트웨어의 소울본 시리즈가 바로 그런 게임입니다. 데몬즈 소울부터 다크 소울 삼부작, 블러드본, 그리고 세키로에 이르기까지 단 한 번도 실망을 안겨준 적이 없었죠. 암울하면서도 깊이 있는 세계관과 은유로 점철된 스토리텔링, 그리고 소울라이크 특유의 시스템은 매번 높은 만족감을 안겨줬고 그 결과, 다른 소울라이크 게임들을 할 때에도 본가만 못하다는 소리가 저도 모르게 나올 정도였습니다.

그런 프롬 소프트웨어의 신작인 만큼, '엘든 링'에 거는 기대 역시 그 어느 게임보다도 컸습니다. 비단 저만 그런 게 아닐 겁니다. 실제로 더 게임 어워드에서 2년 연속 가장 기대되는 게임상을 수상할 정도였으니 얼마나 많은 유저들이 '엘든 링'을 기다렸을지 구태여 더 말할 것도 없을 테죠.

장황하게 얘기했지만, 결론은 그만큼 많은 유저들이 '엘든 링'의 출시를 기다리고 있다는 겁니다. 과연 '엘든 링'은 유저들의 기대를 충족시킬 수 있을까요? 지난 주말부터 지금까지 약 50시간 넘게 '엘든 링'만 붙잡고 있었습니다. 그저 넓기만 한 소울본 시리즈일지 아니면 그 이상일지, 이제 그에 대한 얘기를 해볼까 합니다.

게임명 : 엘든 링 (Elden Ring)
장르명 : 오픈월드 액션 RPG
출시일 : 2022.02.25.
개발사 : 프롬 소프트웨어
서비스 : 프롬 소프트웨어, 반다이 남코
플랫폼 : PC, PS4|PS5, Xbox One, XSX|S

관련 링크: '엘든 링' 오픈크리틱 페이지



소울라이크 원조가 빚어낸 오픈월드

프롬 소프트웨어의 전작들과 비교할 때 '엘든 링'의 가장 큰 차별점이라고 한다면 역시 오픈월드로의 변화를 빼놓고 말할 수 없을 겁니다. 사실 '엘든 링'의 뼈대가 된 기본적인 시스템은 기존의 소울본 시리즈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스태미나를 수시로 신경 써야 한다는 점부터 경험치이자 화폐 역할을 하는 룬, 그리고 화톳불 역할의 축복까지. 소울본 시리즈를 해온 게이머라면 게임을 하자마자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림이 그려질 정도죠. 하지만 오픈월드는 다릅니다. 지금까지의 소울본 시리즈에는 없던 요소입니다. 그나마 세키로가 오픈필드로 비슷한 느낌을 주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엘든 링'의 오픈월드와는 여러모로 차이가 있죠.


가장 큰 차이로는 자유도를 들 수 있습니다. 기존의 소울본 시리즈는 여러모로 이동에 제약이 있었습니다. 단순히 점프 기능이 없어서 허리높이의 언덕을 넘지 못한다든가 그런 의미에서의 제약이 아닌, 개발자가 의도한 대로 따라가는 형태로서 제약이 있었죠. 이를테면 A에서 B로 가는 와중에 샛길로 빠져서 선택형 보스를 잡을지 말지 정하는 걸 제외하면 대부분은 그 순서가 정해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엘든 링'은 달랐습니다. 어디로 갈지부터 어떤 보스를 잡을지 일부 큰 틀에서 반드시 잡아야 하는 보스를 제외하면 자유롭게 고를 수 있었죠.

그렇다고 모든 걸 유저에게 일임한 건 아닙니다. 어딜 가야 하는지, 어떤 보스를 잡아야 하는지도 모른다면 오히려 혼란만 안겨줄 뿐이죠.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엘든 링'에는 축복의 인도라는 요소가 들어갔습니다. 일종의 가이드로 메인 스토리에 필요한 지역으로 유도하는 거였죠. 이쯤에서 그런 의문이 들 수 있을 겁니다. 축복의 인도가 가야 할 곳을 알려준다면 오픈월드로 만들 필요가 있느냐는 점입니다. 저 역시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1시간도 채 되지 않아 사라졌죠.


▲ 처음에는 축복의 인도만 따라가면 만사형통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축복의 인도는 어디까지나 기본적인 가이드에 가깝습니다. 유저의 레벨과 실력까지 염두에 두진 않고 있죠. 기존의 소울본 시리즈가 정교한 레벨 디자인을 통해 유저를 성장시키던 방식이었다면 '엘든 링'은 유저가 직접 체험을 통해 알아가도록 만들었습니다. 오픈월드로 바뀐 만큼, 유저가 직접 몸으로 부딪히면서 자신의 레벨에 맞는 지역을 찾도록 말이죠. 오픈월드이기에 생기는 문제를 오픈월드로 해결한 겁니다.

스톰빌을 예로 들자면 막히는 순간이 온다면 스톰빌을 벗어나서 축복의 인도가 유도하는 곳이 아닌 다른 곳으로 모험을 떠나면 됩니다. 물론 이러한 모험이 별다른 재미를 안겨주지 못하고 그저 경험치 파밍에 불과했다면 '엘든 링'이 자랑하는 방대한 오픈월드도 빛이 바랬을 겁니다. 다행스럽게도 '엘든 링'은 방대한 오픈월드 여기저기에 다양한 탐험 요소를 넣어놨습니다. 필드 보스가 봉인된 봉인감옥을 발견하거나 아이템 강화에 필요한 단석을 주는 갱도나 음산한 지하 묘지를 발견할 수도 있고 혹은 새로운 NPC를 찾을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통해 레벨과 실력이 자연스럽게 성장하도록 짜여진 셈입니다.

▲ 핵심은 자신의 레벨에 맞는 지역을 유저가 직접 찾아야 한다는 데에 있습니다

오픈월드와 관련해서 새롭게 추가된 채집과 제작, 그리고 뿔 달린 영마 토렌트 역시 눈여겨볼 만한 요소들입니다. 게임 내에서 유저들은 다양한 것들을 채집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전투에 필요한 각종 도구들을 만들어낼 수 있죠. 만들 수 있는 종류 역시 한두 개가 아닙니다. 각종 속성 부여 도구를 비롯해 공격력, 강인도 강화, 전투에 쓰는 보조 도구 등 다양하죠.

다만, 이러한 채집, 제작 시스템은 전투에서 큰 축을 차지하는 건 아닙니다. 해독 아이템 등 일부는 쓸만하지만, 대부분은 그 필요성을 느끼기 어려웠습니다. 더욱이 제작 아이템의 종류를 늘리기 위해선 여기저기 돌아다녀서 제작서를 찾을 필요도 있죠. 종류도 한둘이 아닙니다. 십여 개가 넘습니다.

▲ 아이템을 제작하기 위해선 별도의 제작서를 찾아야 합니다

▲ 해독, 속성 부여, 화살은 여러모로 전투를 편하게 보조해주죠

그렇다고 채집과 제작이 필요 없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제작의 본질은 어디까지나 보조에 있기 때문이죠. 소울본 시리즈를 하다 보면 원거리에서 적을 끌어와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곤 합니다. 그런데 룬도 화살도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보통은 적들을 처치해서 룬을 파밍하고 상인을 찾아가서 화살을 산 후 돌아가야 하겠죠. 하지만 '엘든 링'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동물을 사냥해서 얻은 뼈로 뼈 화살을 만들어서 중간에 돌아갈 필요 없이 전투를 이어갈 수 있죠.

새롭게 추가된 뿔 달린 영마 토렌트는 탐험을 한층 쾌적하게 해주는 든든한 동반자입니다. 빠르게 이동할 수 있어서 필드에서 적들을 따돌릴 수 있을 뿐 아니라 2단 점프가 가능해 필드를 탐험하는데에도 큰 도움을 줍니다. 거대한 오픈월드를 누벼야 한다는 부담을 단숨에 줄여준 거죠. 또한, 전투에도 큰 도움이 됩니다. 일부 보스는 치고 빠지는 식으로 상대하면 큰 어려움 없이 잡을 수 있습니다. 실력에 자신이 있다면 말에서 내려서, 다소 부담이 된다면 마상 전투로 깰 수 있도록 선택지를 준 셈입니다.


레거시 던전은 이러한 자유도와 선택지가 빛을 발하는 장소입니다. 다시 한 번 여기서 소울본 시리즈를 소환하도록 하죠. 기존의 소울본 시리즈에서는 보스까지 가는 길이 거의 같았습니다. 우회하는 길이라고 해봐야 중간에 숏컷을 열거나 했을 때가 대부분이었죠. 하지만 '엘든 링'은 다릅니다.

대놓고 가도록 의도한 길이 있는가 하면 우회할 루트도 많습니다. 대놓고 가도록 만든 길은 정해진 길을 따라가는 만큼, 헤맬 위험은 없지만 적들 역시 길목을 지키고 있어서 싸울 수밖에 없습니다. 우회하는 루트는 반대입니다. 길을 찾아야 하지만, 대부분의 적을 피할 수 있고 거리도 단축할 수 있죠.


어느 지역을 가야하는지도 게임은 강제하지 않습니다. 림그레이브에서 다음 지역이랄 수 있는 호수의 리에니에까지는 자연스럽게 유도하지만, 그다음부터는 유저가 직접 부딪히면서 가야 할 곳을 찾아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때로는 전혀 예상치 못한 장소로 갈 수도 있습니다. 탐험을 하면서 숨겨진 비밀들을 마주하고 지금껏 몰랐던 '엘든 링'의 세계가 더욱 확장되는 걸 느낄 수 있죠.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었던 전작들의 레벨 디자인을 오픈월드에 어울리게 새로 짰다고 할 수 있습니다.



더욱 방대해지고 깊이가 더해진 서브 스토리

탐험 요소와 관련된 것으로 서브 스토리의 무게감이 더해진 점 역시 눈여겨볼 만합니다. 기존의 소울 시리즈는 서브 스토리에 대한 비중이 작았습니다. 대부분은 서브 스토리를 주는 NPC 개인의 이야기에 가까웠죠. 서브 스토리를 진행하면 그 NPC가 어떤 인물인지 알 수 있었지만, 딱 그 정도였습니다. 굳이 하지 않아도 게임의 전반적인 배경을 이해하는 데에는 큰 문제가 없었죠. 서브 스토리를 하는 방식 역시 단순해서 메인 스토리를 진행하다가 우연히 해당 NPC를 만나는 방식이었습니다.

▲ 서브 스토리를 진행하기 위해선 해야할 것들이 많습니다

'엘든 링'에서도 NPC를 찾아야 한다는 점은 변하지 않았지만, 그에 앞서 다양한 힌트들을 줍니다. 트레일러를 통해 여러 번 얼굴을 내비친 적이 있는 늑대 기사 블라이드가 대표적입니다. 블라이드는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찾을 수 없습니다. 대신 특정 NPC와 대화를 하다 보면 그에 대한 힌트를 주죠. 그렇게 블라이드와 만나면 그에 대한 방대한 서브 스토리를 진행할 수 있습니다.

물론, 모두가 이를 즐길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일부는 지도에 마커를 찍어주는 등 친절하게 가야 할 곳을 알려주지만, 대부분은 다양한 분기로 얽혀 있기 때문이죠. 앞서 언급한 블라이드와의 만남도 그렇습니다. 초반에 만나게 되는 NPC지만 만나지 못할 가능성도 높습니다. 블라이드가 있는 장소를 먼저 찾아야 하고 이후 그를 만나기 위한 힌트를 주는 NPC도 찾아야 하는 등 서브 스토리를 위한 조건을 충족시켜야 합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똑같은 NPC임에도 게임을 진행하면서 전혀 다른 상황이 펼쳐지기도 합니다. 병에 걸린 NPC를 구하지 못한다면 그냥 죽어버리기도 하고, 살린다면 이후 그에 대한 새로운 스토리를 즐길 수 있게 되죠.


▲ 이런 각종 힌트가 모여서 어디를 어떻게 가야 하는지 알게 됩니다

이러한 서브 스토리는 일회성에 그치는 것들이 대부분이지만, 일부는 메인 스토리를 보조하는 역할로 플레이 내내 따라다닙니다. 이를 위해 해야 할 것들도 많죠. 숨겨진 아이템을 찾아야 하는 건 물론이고 다음 서브 스토리를 진행하기 위해 선행되는 다수의 서브 스토리를 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얼핏 지루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엘든 링'은 오픈월드라는 변화에 힘입어 이를 영리하게 활용했습니다.

앞서 오픈월드에 대해 설명하면서 탐험을 하는 동시에 성장을 유도한다고 한 바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서브 스토리는 탐험에 더욱 힘을 실어주는 요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무런 목적도 없이 그저 돌아다니기만 해선 지루하겠죠. 하지만 서브 스토리를 하다 보면 때로는 전혀 예상치 못한 곳으로 유저를 인도하기도 하며, 미처 알지 못했던 이야기를 알려주기도 합니다. 스토리상 크게 상관없는 게 있는가 하면 일부는 메인 스토리를 관통하기도 하죠.


결국, '엘든 링'의 서브 스토리는 단순한 곁가지에 불과했던 전작들과 달리 경험을 확장시켜 준다는 측면에서 큰 발전을 이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안 해도 메인 스토리를 진행하는 데에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서브 스토리를 함으로써 알게 되는 것들도 많죠. 은유와 비유가 아닌 직관적으로 스토리를 전달하는 한편, 유저가 게임을 계속하도록, 그리고 오픈월드 여기저기를 탐험할 수 있도록 바뀌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문제가 없는 건 아닙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엘든 링'의 서브 스토리는 방대해졌습니다. 많은 NPC들이 다양한 분기로 얽혀 있죠. 잘못하면 다음으로 이어지는 분기를 놓칠 수 있고 그렇게 되면 그에 대한 서브 스토리는 그대로 끝날 수도 있습니다. 서브 스토리 또한 한 번에 쭉 이어지는 게 아닌 만큼, 메인 스토리를 하다가 놓치는 경우도 허다하죠. 자유로운 한편, 너무 자유롭기에 생길 수 있는 문제인 셈입니다.



상대할 적은 많아졌고 상대할 방법 역시 많아졌다


오픈월드로의 변화 못지않게 많은 유저들의 관심을 끈 거로는 전투 시스템의 변화를 들 수 있을 겁니다. 일단 큰 틀에서 본다면 기존의 소울본 시리즈와 큰 차이가 없습니다. 스태미나를 신경 쓰면서 막고 피하고 공격한다. 이 대명제는 그대로 유지되기 때문이죠. 다만, 여기에 점프와 가드 카운터, 잠입, 그리고 마상 전투가 추가되어 다양한 방식으로 '엘든 링'의 전투를 즐길 수 있게 변했습니다.

이러한 새로운 방식들은 전투의 가짓수를 늘리는 한편, 소울본 시리즈의 고질적인 문제점으로 지적되어온 높은 진입 장벽을 한껏 낮춰주는 요소이기도 합니다. 가드 카운터가 대표적이죠. 전작들에선 쉽게 플레이하는 방법의 하나로 대방패를 들어서 공격을 막고 한 대씩 치는 그런 식의 플레이가 가능했습니다. 다만, 이 방법은 너무 지루하단 단점이 있었습니다. 말 그대로 막고 치고의 무한 반복이었으니,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 회피 위주로 플레이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 패링을 어려워하는 유저들을 위해 가드 카운터가 추가됐다

'엘든 링'에서는 가드 카운터가 추가되어서 방어 위주로 플레이할 때에도 더욱 공격적으로 전투를 진행할 수 있도록 바뀌었습니다. 적의 공격을 막은 직후 반격을 하는 기술로 순간적으로 타이밍을 맞춰야 하는 회피나 패링에 비해 훨씬 쓰기 편한 게 특징으로, 적의 강인도를 대폭 깎을 수 있어서 플레이 내내 애용하게 됩니다. 잡졸은 물론이고 필드 보스를 잡을 때에도 요긴하게 쓰이죠.

점프 역시 비슷합니다. 단순히 이동용으로 쓰이는 데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전투에서도 요긴하게 쓰입니다. 회피만으로는 피하기 어려운 하단 공격은 통해 손쉽게 피할 수 있으며, 점프 강공격을 할 경우 강인도를 대폭 깎을 수 있어서 어려운 적들도 한결 수월하게 상대할 수 있습니다. 물론 모든 걸 전투로 해결해야 하는 건 아닙니다. 적이 많다면 우회해도 되고 꼭 잡아야 한다면 웅크려서 몰래 뒤로 다가가면 됩니다. 웅크리면 적에게 발각될 확률이 낮아지며, 몰래 뒤잡기를 하면 평소보다 더욱 강력한 일격을 먹일 수 있습니다.


앞서 언급한 마상 전투 역시 빼놓을 수 없습니다. 말은 이동 수단인 동시에 전투에도 큰 축을 차지합니다. '엘든 링'의 적들 가운데에는 말을 탄 적들도 많습니다. 그리고 대부분 이런 적들은 빠르고 강력하죠. 공격들 대부분이 범위 공격인지라 피하기도 어렵습니다. 마상 전투는 이런 적들을 상대할 때 빛을 발합니다. 빠르게 달려서 공격 범위에서 벗어날 수도 있고 2단 점프로 피하기도 쉽습니다. 덕분에 필드에서 만나는 보스들의 경우 그 진입장벽이 많이 낮아진 걸 체감할 수 있죠.

그럼에도 여전히 '엘든 링'의 전투를 어려워하는 유저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전투의 가짓수가 늘어났다지만, 잘 막고 잘 피해야 한다는 대전제는 여전하니까요. 결국, 컨트롤에 자신이 없는 유저에게는 먼나라 얘기일 뿐입니다.

▲ 초반 보스를 상대할 때 뼛가루의 든든함이란

다행스럽게도 그런 유저들을 위한 대비책 역시 '엘든 링'은 놓치지 않았습니다. 바로, 뼛가루입니다. 일종의 소환수인 뼛가루는 지하 묘지에서 보스를 잡거나 서브 스토리를 깨면 얻을 수 있는데 공격력은 약하지만, 보스의 어그로를 끄는 등 여러 측면에서 전투에 도움을 줍니다. 마찬가지로 일부 지하 묘지에서 얻은 아이템으로 강화도 할 수 있죠. 기도와 마술 위주로 플레이하는 유저에게는 그 어떤 것보다도 든든한 조력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 소환수를 소환하는 뼛가루부터 강력한 영웅을 소환하는 뼛가루까지 종류도 다양한 만큼, 취향에 따라 들고 다니면 됩니다.

다만, 아쉬움이 없는 건 아닙니다. 가장 큰 아쉬움으로는 메인 보스와의 전투 방식을 들 수 있습니다. 점프와 가드 카운터 등은 지하 묘지와 필드 보스를 상대할 때에는 제값을 톡톡히 합니다. 뼛가루 역시 마찬가지죠. 하지만 메인 보스를 상대할 때는 얘기가 달라집니다. '엘든 링'의 보스들은 시리즈를 통틀어 가장 도전적인 난이도를 자랑합니다. 엇박자부터 연타까지 다양한 패턴을 보유하고 있죠.


그런 메인 보스를 상대할 때 점프와 가드 카운터는 갑자기 초라해집니다. 가드 카운터를 할라치면 그 전에 다음 공격이 날아오기 일쑤이며, 점프 역시 큰 도움이 되지 않죠. 뼛가루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의도한 건지 모르겠으나 뼛가루의 AI들은 매우 멍청합니다. 그저 무조건 보스에게 덤벼들죠. 공격을 전부 피하는 것까지 바라는 건 아니지만, 대놓고 깔린 불 위에서 보스를 상대하다가 무기력하게 녹는 걸 본 게 한두 번이 아닙니다.

결국, 메인 보스를 상대할 때는 다시 원점으로 회귀하게 됩니다. 가드 카운터와 뼛가루를 버리고 회피 위주로 플레이하는 방식으로 말이죠.



발전이 없다고 하기엔 '엘든 링'은 너무도 아름답다

원래부터 프롬 소프트웨어의 게임들은 빈말로도 그래픽이 엄청난 게임은 아니었습니다. 냉정하게 본다면 좋게 봐줘도 동시기 다른 게임과 엇비슷한 정도였죠. 당연히 '엘든 링'이 공개되자마자 비슷한 얘기가 나왔습니다. 기존의 소울본 시리즈를 그저 오픈월드로 확장한 것에 불과하다는 거였습니다.


하지만 그저 발전이 없다고 하기엔 '엘든 링'의 세계는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오픈월드에 힘입어 눈에 보이는 모든 곳을 갈 수 있도록 만들었으며, 각각의 지역은 저마다의 특색으로 무장했죠. 스톰빌은 위압적이면서 파괴되어 있어서 어딘지 황망한 느낌을 안겨주고 호수의 리에니에는 어딘지 을씨년한 분위기를 풍깁니다. 여기저기 용암이 끓어오르는 화산관은 그 열기가 느껴질 정도죠.

다른 곳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도읍 로데일은 황금 나무 아래에서 웅장한 자태를 뽐내고 있으며, 독에 잠식된 그늘성과 부패가 들끓고 있다는 케일리드는 어딜 봐도 역한 분위기를 풍겨냅니다. 지하에 숨겨진 노크론은 말도 안 되는 장엄함을, 파름 아즈라는 이게 바로 지옥도라는 듯 압도적인 풍경을 보여주죠. 부족한 기술력을 어찌 조면 그간의 노하우로, 미장센으로 메꾼 셈입니다.



실사급이라고 불리는, 그래픽의 끝을 달리는 다른 게임과 비교하면 현실적이진 않지만, 프롬 소프트웨어에게 어울리는 그래픽으로서 끝을 달렸다고 할 수 있죠. 한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이렇게 멋진 장면들을 제대로 담기 힘들다는 점입니다. 포토 모드가 없기에 그냥 스크린샷을 찍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 어딜 가든 환상적인 세계가 유저들을 맞이합니다



완벽하다곤 하기엔 다소 아쉬운 '밍글 플레이'

자, 지금까지 '엘든 링'에 대한 극찬이 이어졌으니 이제 아쉬운 점도 얘기해볼까 합니다. 오픈월드로 변하면서 여러모로 많은 변화를 보여준 '엘든 링'이지만, 여전히 변화가 없는 부분도 있습니다. 암령 침입과 백령 조력자 등 싱글에 멀티 요소를 결합한 소울본 시리즈의 특유의 '밍글 플레이(Multi + Single Play)'가 대표적이죠.


밍글 플레이의 핵심은 멀티를 함께 하는 쪽은 방해하는 쪽이거나 조력자 둘 중 하나로만 고정된다는 점입니다. 함께 특정 지역을 클리어하거나 보스를 잡는다고 해도 어디까지나 소환한 상대에게 도움을 준다 뿐이지 동등한 위치에서 함께 클리어한 것으로 나오진 않습니다.

기존 소울본 시리즈에선 선형적인 레벨 디자인이었기에 이를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했습니다. 그 이상의 발전은 오히려 소울본 시리즈가 가진 프롬다움, 그 특징을 옅게 만들 수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엘든 링'은 다릅니다. 거대한 오픈월드로 구성되어 있죠. 아마 이 거대한 세계를 함께 모험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건 저만 그런 게 아닐 겁니다. 그렇기에 혹시나 싶었습니다. 좀 더 자유롭게, 조력자가 아닌 동료로서 함께 돌아다닐 수 있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 함께 '엘든 링'의 거대한 세계를 탐험할 수 없다는 점은 못내 아쉬움이 남습니다

이러한 일말의 아쉬움이 '엘든 링'의 재미를 해치는 건 아닙니다. 어찌 보면 이거야말로 프롬다운 모습일 수도 있습니다. 다만, 이미 보스전에서 조력자를 소환하는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멀티를 즐기고 도움을 받고 있는 만큼, 이 부분에서 발전이 없는 점은 역시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프롬 소프트웨어 특유의 개성을 유지하면서도 오픈월드에 어울리는 멀티플레이를 만들 수도 있었을 테니까요.




'엘든 링'을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프롬표 소울라이크의 총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소울본 시리즈를 뼈대로 세키로의 점프와 은신 시스템을 더했고 여기에 '엘든 링'만의 새로운 시도도 여럿 추가됐습니다. 처음에는 소울본 시리즈 느낌이 나지만, 하면 할수록 점차 소울본 시리즈와는 다르다는 걸 알게 되는 셈입니다.

촘촘하게 얽힌 서브 스토리들과 게임이 주는 재미의 깊이는 그간의 소울본 시리즈와 비교가 안 될 정도죠. 과장을 좀 보태서 말하자면 '엘든 링'과 비교해 소울본 시리즈와 세키로는 얕은 여울에 불과하다고 해도 될 겁니다. 파고들수록 더욱 재미있게 즐길 수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엘든 링'은 수십 번의 죽음을 마다치 않으면서도 천 길 낭떠러지 아래에 뭐가 있을지 찾아보는 그런 유저들에게 있어선 아마 최고의 게임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정해진 대로 따라가는 게 아닌 진정한 의미에서 모험을 즐기고 싶으신가요? 최고의 액션을 즐기고 싶으신가요? '엘든 링'이 그 해답일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