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도 역시, 3은 아닙니다"

지난 2020년, '하프라이프: 알릭스'를 통해 유통사가 아닌 게임 개발사로서의 저력을 보여주었던 밸브 코퍼레이션이 딱 2년 만에 신작을 공개했습니다. 금일(2일) 스팀을 통해 출시된 신작 '애퍼처 데스크 잡(Aperture Desk Job)'이 바로 그 게임입니다.

밸브는 오랜만에 공개되는 신작 소식에 마치 무조건반사처럼 '숫자 3'을 떠올릴 팬들을 진정시키기 위해 일찍이 게임 페이지에 '이것은 포탈3가 아닙니다, 기대치를 낮추세요'라는 소개 문구를 적어놓았습니다. 게임이 누구나 편하게 플레이해볼 수 있도록 무료로 공개됐기 때문에, 애초부터 큰 기대를 품었을 이들이 많지는 않았겠지만 말이죠.

비록 포탈3는 아니지만, 이 게임은 포탈 세계관의 다른 이야기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을 팬들을 위한 작은 선물 같은 게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플레이어는 포탈 세계관 속 가상의 연구소 기업 '애퍼처 사이언스'의 근무자가 되어, 밝혀지지 않았던 세계관의 이면을 엿볼 수 있습니다. 애퍼처 사이언스의 설립자 케이브 존슨이 기계에 이식되게 된 과정이나 사마귀 인간들, 그리고 포탈 시리즈에서 유저들을 공격했던 포탑 로봇 '터릿'의 탄생 과정 같은 것 말이죠. 물론, 포탈 시리즈를 한 번도 플레이해보지 않은 유저들에게 있어서는 이게 무슨 생뚱맞은 이야기인가 싶겠지만 말입니다.

▲ 애퍼처 사이언스의 센트리 건 로봇 '터릿'은 변기 검수 과정에서 탄생했다

게임 요소에 관해서도 이야기해볼까요. 사실 '애퍼처 데스크 잡'은 게임이라기보다, 게임 형식으로 풀어낸 '스팀 덱 사용 설명서'에 가깝습니다. 위에서 언급했듯, 포탈 세계관에 대한 기본 지식이 전혀 없다면, 그냥 스팀 덱의 버튼 사용법을 소개해주는 하나의 튜토리얼 같다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스팀 덱이 없더라도, PC와 게임 패드로 플레이할 수 있지만 말이죠.

우리는 이미 이러한 형태의 게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타이틀로 듀얼센스 컨트롤러의 기능을 소개하기 위해 만들어진 게임 '아스트로 플레이룸(Astro's Playroom)'이 있습니다.

아스트로 플레이룸은 5세대 컨트롤러인 듀얼센스의 신기능을 선보이기 위해 PS5와 함께 기본으로 제공되는 무료 게임입니다. 관심이 없다면 그냥 지나쳐버릴 수 있는 무료 타이틀이지만, 5개 구역으로 나뉘는 스테이지 구성과 PS의 역사를 배울 수 있는 각종 수집 요소, 그리고 보스전 콘텐츠까지 더해져 단순히 '듀얼센스 설명서'로 치부할 수 없는 놀라운 게임적 완성도를 보여줍니다. 덕분에 메타스코어 83점, 메타 유저스코어 9.3이라는 높은 평가를 기록하기도 했고요.

▲ 단순한 튜토리얼 콘텐츠 이상의 재미를 선사했던 '아스트로 플레이룸'

이에 비해, 애퍼처 데스크 잡은 '게임적 기대'를 충족시켜주는 작품이 아닙니다. 게임 자체도 워킹 시뮬레이터로 구분되어 있을 정도로, 사용자가 직접 게임을 플레이하며 재미를 느낄 수 있는 부분은 제한되어 있습니다. 컨트롤러의 각 버튼을 누르고, 버튼을 누를 때마다 어떤 연출이 등장하는지 지켜보는 수준에 그치죠. 단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어린 시절에 타보았던 놀이공원 어트랙션인 '신밧드의 모험' 수준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은 정도랄까요.

스팀 덱 없이도 전체적으로 무리 없는 진행이 가능하지만, '자이로 센서'를 활용하여 목표물을 조준하고, 사격하는 파트는 다소 불편하게 느껴졌습니다. 무선 동글을 지원하는 컨트롤러가 아니라면 대부분 PC에 케이블을 연결하여 플레이하게 되는데, 이럴 경우 자이로 인식을 위해 컨트롤러를 이리저리 움직여야 하는 과정 자체가 부담스러울 수 밖에 없습니다. 이후에 계속 쓰이는 핵심 조작 같은 것은 아니기에 어찌저찌 넘기는 것은 가능했지만, 애퍼처 데스크 잡이 PC 사용자들을 위한 작품이 아닌, 스팀 덱 사용자들을 위해 마련된 콘텐츠라는 것을 여실히 체감할 수 있는 부분이었습니다.

▲ 중반에 레일 슈터 파트가 등장하지만, 구성도 짧고 별다른 특색도 없다

▲ 뛰어난 입담을 가진 그래디와 30분짜리 '싯다운 코미디'를 즐기자

물론 스팀 덱에 내장된 여러 기능을 게임 형태로 지루하지 않게 소개하고 있다는 점, 지난 2019년에 발매된 VR 교육용 게임 애퍼처 핸드 랩(Aperture Hand Lab)에 이어 다시 등장한 '그래디'의 유쾌한 입담을 즐길 수 있다는 점, 무엇보다도 게임이 '무료'라는 점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강점입니다. 이러한 특징들 덕분에 애퍼처 데스크 잡은 출시 하루 만에 약 2천 개가 넘는 유저 평가를 통해 '압도적으로 긍정적' 평가를 기록하게 됐습니다.

정리하자면, 애퍼처 데스크 잡은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소스 2 엔진 시연용 포탈 데모'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포탈 시리즈의 팬들이 "언젠가 포탈3가 출시된다면 이런 모습일까"하고 기대를 키워볼 수 있는 작품인 셈이죠. 포탈 시리즈의 세계관을 설명하는 여러 요소들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으므로, 아는 만큼 보이는 즐거운 게임이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요리조리 둘러보며 플레이하더라도, 30분이 채 되지 않는 짧은 플레이 타임 덕분에 큰 부담도 되지 않고요.

참, 게임 플레이에 스팀 덱은 필수가 아니지만, Xbox 컨트롤러나 듀얼쇼크 같은 게임 패드는 필수로 연결해야만 합니다. 상점 페이지에서도 이 점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혹시 게임 플레이를 위한 패드를 보유하고 있지 않다면, 함께 준비한 전체 플레이 영상을 참고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