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쓸하고도 아름다운 세계, 파: 변화의 파도는 이미 멸망해버린 세계를 그저 잔잔히 그려낸 항해 어드벤처다.

어떤 이유인지 명확히 알 순 없지만 주인공이 바다로 항해를 떠나는 시점, 모든 문명은 무너져 물에 잠겨버렸다. 바다 위와 수중에 널브러져 있는 문명의 잔해들은 너무나 황량하고, 홀로 떠도는 주인공의 모습은 또 너무나 외롭게 느껴진다.

그리고 이런 외로움은 과함 없이 평범하게 흘러가는 연출로 더욱 극대화된다. 분명 세상은 완전히 무너져버렸는데, 그에 대한 비극적 설명도 없으며, 그렇다고 과하게 황폐한 모습도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너무나 아름다운 그래픽과 고요한 사운드가 차분하게 '쓸쓸함'을 표현한다.


게임명: 파: 변화의 파도
장르명: 어드벤처, 퍼즐
출시일: 2022. 3. 1.
개발사: Okomotive
서비스: Frontier Foundry
플랫폼: PC / PS4, PS5 / XBO, XSX|S / NSW

▶ 관련 링크: '파: 변화의 파도' 오픈크리틱 페이지


이 게임을 하게 되는 이유, 그리고 이 게임의 전부라고도 볼 수 있는 건 바로 이런 묘하고 독특한 분위기다.

그저 길게 펼쳐진 바다 위를 떠가고 있노라면 그 뒤로 무너진 다리, 반쯤 잠긴 건물과 기차의 잔해가 보인다. 그리고 그 폐허가 펼쳐지는 동안 아이러니하게도 눈앞에는 너무나 따뜻한 색의 햇빛이 검푸른 잿빛의 바다를 비춘다.


밤에는 남색 하늘 사이로 별이 반짝이고, 먼바다에서는 희게 빛나는 해파리들이 심해를 밝힌다. 무섭게 몰아치는 폭풍우 가운데에서도 바닷속은 고요하며, 반대로 파도가 잔잔한 수면 아래는 문명의 흔적이 차갑고 무겁게 가라앉아 있다.

돛을 펴고 뱃머리에 가만히 서서 푸른 바다 위를 항해하다 보면 그저 단순히 배경이 흘러갈 뿐인데 계속해서 화면을 보게 하는 매력이 있다. 뭐랄까 크게 화려하거나 세밀한 그래픽이 아님에도 수도없이 스크린샷을 찍을 정도로 게임 자체가 참 '아름답다'. 횡스크롤 플랫폼 게임이라는 부분이 오직 배경을 여러 각도에서 볼 수 없다는 점 때문에 아쉽게 느껴질 정도로 아름답다.


파: 변화의 파도의 독특함은 또 다른 부분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거의 모든 상황에 대한 직접적인 설명이 없다는 점이다. 대사도, 나레이션도 없기에 도대체 어쩌다 세상이 이 지경이 되었는지, 도대체 주인공의 진짜 목표는 무엇인지조차 알 수 없다. 오직 '보이는 것', 시각적 요소만으로 모든 것을 설명한다.

이는 플레이 측면에서도 마찬가지다. 게임의 전부라고도 볼 수 있는 항해와 퍼즐 역시 이건 이렇게, 저건 저렇게 하라는 확실한 가이드가 없다. 하나하나 유추해서 풀어나가야 한다.

직접적인 설명 대신 퍼즐을 통해 다음 부착될 배의 부품에 대한 조작 방식을 슬쩍 풀어주며, 이 퍼즐을 풀기 위한 힌트 역시 정말 최소한으로 주어진다. 반짝거리는 푸른 오브젝트들이 퍼즐을 풀기 위한 요소라는 것, 그게 플레이하는 우리가 알 수 있는 전부다.


물론 설명이 거의 없는 만큼 퍼즐의 난이도 자체는 어렵지 않다. 다만 주어진 문제를 수학적으로 풀어나가는 게 아닐 뿐, 한참 상상하고 고민해야 해결할 수 있는 방식이다. 뭐랄까 감으로 푸는 문제가 많다고 보면 좋을 듯 하다.

"아, 여기 파란 뭔가가 있네. 그럼 일단 한 번 잡고 당겨볼까?"라거나, "아, 여기는 사다리가 있네. 그러니까 일단 한 번 타고 올라가 볼까?" 이런 느낌이다. 확실한 힌트가 없기에 직접 하나하나 바라보며 어떤 방식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지 고민해야한다.

직접 바람에 날려간 뒤에서야 장애물 뒤에 숨어야 한다는 걸 알아차리고, 이상하게 생긴 기계를 고장 난 부품에 가져다 댄 뒤에야 수리용품이라는 걸 확신하게 된다. 물론 막힌다면 그만큼 답답할 데가 없다.

그리고 이 모호함은 게임 내 모든 전개에도 적용된다. 배경, 스토리, 목표. 그 어느 하나 명확한 게 없다. 단지 스쳐 지나고 마주치는 모든 것들을 단서로 추측할 뿐이다. 그렇다 보니 명확한 가이드나 목표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라면 게임 자체가 매우 답답하게 다가올 수 있다.


아쉬운 점은 게임의 볼륨이다. 플레이타임이 부족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엔딩을 보기까지 대략 4~5시간 정도가 걸렸기 때문에 플레이타임 자체가 크게 짧다고 보기는 힘들다.

하지만 게임 자체의 콘텐츠 적 볼륨은 생각보다 매우 작다. 분명 4시간이 훌쩍 넘게 게임을 플레이했음에도 묘하게도 한 게 별로 없는 느낌이다. 이는 플레이 타임에 비해 게임의 재미라고도 할 수 있는 메인 콘텐츠, 퍼즐의 분량이 매우 적어서다.

배의 조각난 파츠를 붙이고, 새로운 기능을 추가하고, 다음 이야기를 읽어내기 위해 풀어낸 퍼즐은 고작 해봐야 열 개가 되지 않는다. 와중에 퍼즐, 그것도 감으로 풀어내는 퍼즐이라는 특성상 한 두 번만 하다 보면 금방 다음 퍼즐의 풀이 방법을 어느 정도 유추할 수 있기에 더욱 적게 느껴진다.


그럼 나머지 시간들은 도대체 어떤 '콘텐츠'가 채운 걸까. 바로 항해다. 플레이의 대부분은 잔잔한 파도를 타고 순풍과 함께 미끄러지듯 나아가거나, 몰아치는 폭풍을 피해, 장애물을 피해 심해로 잠수하며 지나간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레이더에 걸리는 연료를 열심히 주워 엔진을 켜거나, 모아둔 연료가 부족할 시 물 위로 올라와 돛을 펴 바람의 힘으로 이동해야 한다. 그러다 장애물이 나타나면 돛을 접고 다시 엔진을 켜야하며, 마냥 엔진을 사용하기에는 또 연료가 부족하므로 지속해서 레이더를 확인하며 바다 속 연료를 하나하나 주워오거나 갈고리로 끌어와야 한다.

즉, 항해내내 너무나 바쁘게 이리저리 움직이며 이것저것 확인해야 한다. 장애물에 돛이 찢어지거나 돛대가 부러지지 않게 계속 접었다 폈다를 반복해야 하고, 와중에 레이더도 확인해야 하며, 엔진에는 계속해서 불이 꺼지지 않게 연료와 바람을 넣어줘야 한다. 결국 그러다 보면 원활한 연료 수집을 위해, 그리고 장애물을 피하기 위해 잠수 후 이동하는 경우가 많아지게 된다.


아마 개발사는 짧지 않은 항해 과정을 지루하지 않게 하려고 이러한 조작을 추가한 듯하다. 하지만 이 단순하면서도 반복적인 과정은 오히려 항해를 지루하게 만들어버렸다. 조금의 다른 점 없이 계속 같은 방식을 반복하며 다음 퍼즐까지 짧지 않은 길을 가야 하는데, 하필이면 아름다운 배경을 감상할 수 있는 수면 위가 아닌 속도감도 별로 느껴지지 않는 바다 아래만 주야장천 봐야 한다니.

특히 '레이더'와 '연료'라는 부분은 이 단점을 극단적으로 만드는 주범이다. 배를 물 위로 올려 돛을 조종하고 있으면 배 내부의 상황이 보이지 않는다. 즉, 레이더를 확인할 수 없고, 그러다 보면 연료를 주울 수도 없으며, 결국 반드시 잠수해야 하는 상황에서 배를 이동시키기 위한 엔진을 활용할 수 없게 된다는 말이다.


결국 물 위의 그 아름다운 배경을 제대로 감상할 새도 없이 돛을 조종했다가, 급하게 배 안으로 들어와 레이더를 확인했다가, 다시 또 급하게 돛을 조종하러 움직였다가, 다시 또 배 안으로 들어와 레이더를 봐야 한다.

물론 연료를 초반부터 꽤 많이 모아놨을 경우에는 이렇게까지 극단적으로 움직일 필요는 없다. 하지만 어쨌든 게임을 지루하지 않게 하려던 요소가 반대로 게임의 장점을 깎아 먹는 아쉬운 요소가 된 것은 확실하다.

다만 배의 전체 파츠를 찾은 뒤 중후반부가 되면 본격적으로 서사가 전개되기에 이런 항해에서 오는 지루함 자체는 훨씬 덜하다. 아니, 아예 사라진다. 그때까지 게임을 지배하던 느릿하고 고요한 분위기가 묘한 긴장감과 기대감, 놀라움으로 변하며 이야기는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모든 것이 사라진 세상은 분명 황량하지만 그렇기에 고요하며 아름답다. 그리고 파: 변화의 파도는 그러한 세상을 바다와 배만으로 참 담담하게 그려냈다. 언제 부서져도 이상하지 않을 낡은 배를 타고 떠나는 끝이 보이지 않는 여정.

게임 전체에 도는 차갑고 무거운 톤의 색상과 과하게 작은 주인공은 이미 문명을 삼켜버린 자연을 더욱 압도적으로 느끼게 한다. 그 어떤 괴물도, 적도 등장하지 않지만 어딘가 서늘한 분위기가 돈달까.

그리고 전작인 파: 론 세일즈에서 이어지는 독특하면서도 어딘가 마음 한구석이 아릿해 오는 서정적인 그래픽과 쓸쓸하면서도 잔잔한 사운드는 그 분위기를 더욱 짙어지게 했다.


게임을 하는 중간 중간 열심히 움직이는 주인공의 모습을 보며 한편으로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아무도 남지 않은 외로운 세상에서 이 아이는 도대체 뭘 하려는 걸까. 혼자 이렇게까지 살아남아야할 이유가 있을까.

그리고 주인공은 그러한 의문에 대해 몇 번의 예시를 보여준다. 하지만 그 역시 확실한 답이 되지 않는다. 왜 이 아이는 계속해서 항해하는 건지, 이정도면 멈출만한데 왜 계속해서 포기하지 않는 것인지. 그리고 주인공의 목표가 결국 무엇이었는지 알아차리는 순간, 게임은 끝이 난다.